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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어느 사서쌤의 레알 분투기] 현실이 되는 생각과 말의 힘
<학교도서관저널 , 2019년 07+08월호> 19-07-04 16:57
조회 : 205  


B고등학교의 생활은 대체로 만족하고 있었다. 어느 학교를 가더라도 이곳에서처럼 예쁜 학생들은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또한 학교 특성상 연봉도 공립학교보다 조금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서교사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단지 ‘수업’ 때문이었다. 수업이 하고 싶어졌다.
B고등학교에서 사서로 근무했지만 교사 못지않게 학생들과 정서적 교감이 가능했다. ‘인간은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1:1 토론도 하고, “어둠만 있었던 제게 빛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장이 적힌 편지도 받고, 육교 위에서 마지막 선택을 하려할 때 선생님 얼굴이 생각나서 내려왔다며 울면서 전화해 주는 학생도 있었다. 졸업하는 학생들이 도서관은 힐링의 공간이었다는 말을 꼭 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학교생활이 무료하고 재미없고 뭔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감정은 2017년 여름에 최대치를 찍었는데 그즈음 사서교사TO 예비 발표가 떠서 사서교사 임용 준비를 현실을 탈출하기 위한 선택지 중 하나로 인지하게 됐다.

#수업 복?
정말 평소 말뿐 아니라 생각도 조심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함께 합격한 동기들 중 가장 많은 수업 시수를 배정해 준 학교에 발령받았다. 수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현실이 되었다. 서울 시내에 이런 학교가 있을까 싶을 만치 작은 학교인데 1∼6학년까지 총 11학급이다. 1∼2학년은 연간 8차시, 3∼6학년은 연간 32차시를 배정받아 총 256시간 수업을 했다.
 
#잘 짜인 수업
학교교육의 중심인 학교도서관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활동은 교육과정과 떼려야 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육과정 총론, 도서관과 정보생활 교과서, 임용 2차를 준비하며 달달달 외웠던 2015 개정교육과정이 요구하는 인재상과 역량들은 수업지도안을 짜기 전에 꼭 읽어 보곤 한다. 수업지도안을 짤 때 꽤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속한 교육청에서는 ‘찾아가는 수업 SOS’라는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수석교사들의 실제 수업을 볼 수 있는 기회라 한 달에 한 번씩 참석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꼭 우리과 수업이 아니더라도 잘 짜인 수업을 보면 배우고 얻는 게 참 많다.

#사서교사만의 독서수업
기간제 국어교사로 근무하면서부터 고민했었던 국어과와 다른 사서교사만의 독서수업이 무엇일지에 대한 현재 나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국어과에서 말하는 독서수업은 대부분 독후활동에만 치중한다. 책에 어떤 내용이 나왔는지 나오지 않았는지를 물을 뿐, 그 내용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는 시간은 충분히 주지 않는다. 질문을 미리 준비하여 제시할 뿐이지, 스스로 질문을 만드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반면 사서교사는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제시된 문제 상황을 해결 할 수 있는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독서교육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책을 통해 가치관을 정립하는 계기와 실마리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3∼4학년 수업으로 한 학기 한 책 읽기를 단독으로 진행하게 되면서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이런 고민의 흔적을 수업에 담으려 노력했다. 3학년과 『만복이네 떡집』을 함께 읽으면서 학생들에게 만복이가 가진 4가지 복(집이 부자, 잘생긴 외모, 똑똑한 머리, 독차지 하는 가족의 사랑) 중 가장 갖고 싶은 복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고, 4학년과는 『아름다운 꼴찌』를 함께 읽으면서 책에서 제시한 9가지 단어(용기, 사랑, 우애, 이별, 헌신, 희망, 희생, 그리움, 이해)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시간을 가졌다. 인상 깊었던 건 3학년 학생들 대부분이 갖고 싶어 했던 복으로 똑똑한 머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똑똑한 머리로 공부를 잘하면 부모님의 사랑은 저절로 따라온다던 학생들의 대답이 잊히지 않는다.
 
#꼼꼼하게 읽기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 남과 다른 창의적 생각을 할 수 있는 ‘실마리’의 기본은 꼼꼼하게 읽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꼼꼼하게 읽을 수 있을 때 분석력과 비판력이 길러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어과 수업에서도, 수능에서도 끊임없이 ‘글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을 골라라’, ‘일치하지 않는 것을 골라라’ 등과 같은 문제가 출제되는 게 아닐까. 진도 나가기 바쁜 중·고등학교의 국어과 수업에서는 책 한 권을 천천히 읽으며 꼼꼼하게 읽는 법을 알려줄 여력이 없다.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개인 독서력의 문제일 뿐이라며 독서력에 책임을 전가한다. 또한 초등학교의 수업에서는 교사가 중고등학교에서 어련히 배우겠거니 여겨서, 아이들에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 자유롭고 부담을 주지 않는 수업을 진행하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이 안타까워서 2학기 수업은 책을 읽은 후 기억에 의존해 문제를 푸는 방식이 아니라, 책 본문에 등장하는 중요한 단어들과 중요한 문장들의 칸을 비워 둔 학습지를 만들어 학생들과 함께 책의 해당 페이지를 ‘보면서’ 칸을 채우는 방식으로 꼼꼼하게 읽는 연습을 진행했다.

#국어교과 수업
1∼2학년, 5∼6학년을 대상으로 국어교과 수업을 진행했다. 1∼2학년은 국어교과서의 한 단원, 5∼6학년은 국어교과서의 네 개 단원의 진도를 빼는 수업을 했다.
차라리 창체 시간처럼 자유롭게 수업을 했으면 했는데 내가 오기 전 이미 학교 교육과정이 완성된지라 빼도 박도 못하고 국어수업을 해야 했다. 처음엔 불만이 많았는데 하고 보니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는 생각이 든다.
2학년 교과서를 분석하면서 책의 인상적인 장면을 몸짓과 표정으로 표현하는것 또한 독후활동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고, 5학년 교과서를 분석하면서 KWL이라는 그래픽 조직자가 표현 형태만 달리해서 교과서에 녹아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또 6학년 국어교과서의 단원명으로도 제시된 ‘이야기 바꾸어 쓰기’ 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은 본인 창작물의 가치를 평가받는 활동에 굉장한 흥미를 느낀다는 걸 알게 됐다. 또한 초등학생이지만 어른들보다도 더 영민하게 옳고 그름,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하고 싶었던 일
얼마 전에 사서교사 단톡방에서 상조회의 전별금이 화제로 대두되어서 나는 B학교를 의원면직하면서 전별금으로 얼마를 받았었는지 더듬기 위해 B고등학교 선생님들과 주고받은 문자들을 뒤지다가 잊고 있던 교장선생님의 문자도 읽게 되었다.
당시에는 별 감흥이 없어서 저장해 두지 않았는데, 사서교사로서 1년 학교생활을 한 뒤 읽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전 선생님. 생일 축하드려요. 좋은 때 태어나셨네요. 서울 가셔서 그동안 하지 못한 많은 일들을 잘 이루시길 바랍니다.”
B고등학교에서 사서로서 하지 못했던 수업을 실컷 할 수 있는 요즘이 참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함께 고민하며 때로는 지하 100층집을 쌓았다가도 결국 하늘 100층 집을 쌓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서교사 동료들을 만나 함께 갈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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