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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교사 노인이 말하지 않는 모두가 알아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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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9 17:42 조회 8,50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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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지락 3월 모임
때 2011년 3월 2일 화요일
곳 서울 혜화동 카페 ‘시가 있는 풍경’
책 『노인이 말하지 않은 것들』 종합케어센터 선빌리지 지음|박규상 옮김|시니어커뮤니케이션|2006
참석자 김세진 사회복지사·자유활동가, 박상빈 사회복지사, 군 장교 의무복무 중, 신보경 면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엄태인 대학생,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채송아 강북영유아통합지원센터 사회복지사, 최진열 광장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태다미 방아골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사람다움이란 무엇일까?
김세진
사람은 누구나 살아있는 한 끝까지 자신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사람다움이란 그렇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누군가를 도울 때 그를 사람답게 돕는다는 것은 그가 원하는 삶을 살도록 거드는 것입니다. 비록 몸이 늙고 병들어 누워 있어도 그를 사람으로 본다면 그의 삶을 살도록 거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도왔을 때 사람답게 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몸이 쇠약해 걷지 못하니 먹고 씻는 일을 거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삶이니 거들기에 앞서 무엇을 먹고 싶고 어떻게 씻고 싶은지 물어야 합니다. 그가 해왔던 대로, 그가 원하는 대로 그의 먹는 생활, 씻는 생활을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존엄을 생각하는 케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누군가를 도울 때 그를 우리와 같은 인격적 존재로 여겨야 합니다. 아이에게도, 장애인에게도, 어르신에게도 일에 앞서 물어야 합니다.

휠체어를 밀고 있던 여성이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은 여성에게 “힘드시죠?”라고 말을 건넨다. 그리고 휠체어에 탄 사람의 상태가 어떤지 여성에게 물어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휠체어에 탄 사람에게 눈길 한 번 주고는 사라져 간다. …본인을 앞에 두고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그 사람에 대한 소문을 서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 …치매에 걸린 사람을 앞에 두고 “이 사람은 치매에 걸렸어요”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람도 분위기로 지금 무슨 말들을 하는지 감지하기 때문이다. _52쪽

이런 예는 또 있습니다. 유명한 만화가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 25화에도 이런 장면이 등장합니다. 주차장 관리하는 군봉이 할아버지는 치매에 걸린 아내와 둘이 살지요. 아내의 혈변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 아내가 암에 걸린 것을 압니다. 군봉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담당 의사에게 정확한 상태를 듣기 위해 찾아갑니다.

“음… 아내 분께서는 잠깐 자리를 피해주시는 게…”
의사는 병명을 말하려는 순간 할머니를 한번 쳐다보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 어차피 치매시니까, 잘 모르실테니 그냥 말씀드려도 되겠네요.”
의사의 말에 군봉이 할아버지는 분개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치매면? 어차피 못 알아들을 테니 없는 사람인셈 치고 말한다 그 말이오? 내 아내가 왜 없는 사람처럼 있어야 하지? 내 아내가 왜…!!!
살아있는 한 끝까지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우리는 그렇게 도와야 합니다. 그렇게 돕는 방법은 당사자에게 묻는 것입니다.

신보경 저는 복지관 방과후교실담당 사회복지사라 초등학교 아이들을 꾸준히 만납니다. 회의나 행정업무라든가, 일이 많으면 아무래도 아이들과 이야기할 시간이 많지 않아요. 그럴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회의가 들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이 업무 성과를 높이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아이들을 위한 일인지 모르겠더군요. 그때 이 책을 읽었습니다.

배설케어 순간에도 다음 작업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거나, 식사 케어 때는 아무런 말도 없이 도와만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용자의 표정을 미처 살펴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하는 것이 바로 밀착 케어의 시작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_49쪽

내가 하고 있는 업무가 머릿속을 온통 메우고 있을 때 ‘누구를 위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상사의 인정을 얻으려고? 나 자신이 만족하려고? 정말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과 얘기할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쁜 걸까? 고민이 들 때가 많습니다.

결국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는 이용자와의 만남에 질적 변화를 가져다 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도 시종일관 입주인(어르신)에게 답이 있다는 태도로 일관합니다. 이런저런 반응에 대해 민감하게 살핍니다. 결국 어르신을 도울 때 당사자가 그 일의 중심이 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에게 집중하고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책에서는 팀으로 접근하기도 하고 한 분에 관해 관련된 여러 사람이 충분히 논의합니다.

채송아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시종일관 ‘존엄’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존엄이 무엇일까? 내가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의 존엄이란 무엇일까? 우연히 지하철 화장실에서 이런 문구를 읽었습니다. “어르신들 목욕은 아이 다루듯 하면 된대요.” 자원봉사자가 한 어르신 거주시설에서 봉사할 때 그곳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가 들려준 이야기라고 합니다. 이 글을 읽고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정말 어르신이 당신을 아이 다루듯 하면 좋아하실까? 어르신의 인격, 그리고 삶! 어르신의 삶이 녹아있는 세월이 있는데 어르신을 아이 다루듯 하는 것이 괜찮을까요? 존엄을 생각하는 것일까요?



아무나 노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질병과 전쟁과 사고에서 살아남아야 노년을 맞을 수 있다. 같이 중년을 보내고 있는 배우자와 친구들, 선후배들 가운데 과연 몇 사람이 살아남아 노년을 함께 보낼 수 있을지 생각하면 나이 듦 자세가 얼마나 무겁고 엄숙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그러니 꽃만 생각하지 말 일이며, 꽃 진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푸른 잎들에 눈을 돌릴 일이다.
나이 먹으면 도로 아이가 된다고들 한다. 그래서 노인복지현장에 가보면 젊은 직원들이 어르신을 완전히 어린아이 다루듯 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보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아이 같은 행동을 하고 반응을 보이셔도 어르신은 어르신이다. _『마흔에서 아흔까지』 (유경, 서해문집)

마침 유경의 책이 떠올랐습니다. 어르신은 이미 그 자체로 매우 귀한 존재입니다. 누구나 노인이 되고 그런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끝까지 그 사람으로 섬겨야 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갑자기 아이가 될 수 있겠습니까? 나이 들어감이 병이 아니지 않습니까? 추한 것이 아니잖아요. 저도 현장에서 아이들 만날 때, 아이들을 아이 취급하면 싫어합니다.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상대가 아이이든 장애인이든 어르신이든, 나와 같은 인격체로 대할때 그를 존중했다, 사람답게 대했다 할 수 있습니다.
태다미 이 책을 읽으며 매우 솔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존엄을 생각하는 케어’를 실천하려고 한다면 도움을 주는 사람의 존엄성도 지켜져야 한다. 경영자나 관리자, 직원, 고령자, 가족 그리고 지역주민들 모두의 존엄이 지켜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에서는 ‘존엄을 생각하는 케어’를 이야기할 때 아무 생각 없이 극단적으로 고령자 편에 서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약자는 항상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되기 때문에 약자의 편에 서서 이야기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모든 사람의 인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적 철학을 기반으로 ‘존엄을 생각하는 케어’가 실천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_21쪽

최근 가정도우미 업무를 새로 맡았는데, 그분들을 보면서 어르신들이 함부로 대하는 것에 상처받고 힘들어 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책을 통해 존엄이라 했을 때에는 어르신뿐 아니라 수발하는 사람, 행정가 등 모두의 존엄이 세워졌을 때 진정한 존엄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습니다. 나아가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존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한 어르신이 갑자기 쓰러지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을 도우면서 어르신 주변에 가깝게 왕래하는 이웃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원봉사자의 이름으로 도울 수도 있겠으나 그것보다 가급적 평범한 이웃으로 찾아뵙고 살피는 이웃이 많다면 이 또한 어르신이 보통의 삶을 살게 돕는 것입니다. 특별한 자원봉사의 대상, 후원의 대상이 아니게 섬기는 존엄을 생각하는 도움입니다.

어르신답게 돕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태다미
어르신을 어르신답게 돕는다 할 때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생각했어요. 이 책에서 누워 지내는 어르신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기 위해 직원들이 직접 기저귀를 차고 배변해보고, 남이 떠주는 밥도 먹어보면서 그 기분이나 느낌을 알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이런 노력으로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존엄을 생각하는 도움, 돕는 사람 입장에서 쉽게 대하고, 주는 사람 입장에서 쉽게 이야기하지 않을 때 가능합니다.
박상빈 이 책에서 ‘갓난아기도 훌륭한 케어직원일 수 있다?’라는 부분이 와 닿았습니다.

한 직원이 공동 그룹홈에 일을 하러 오면서 같이 데리고 온 한 살짜리 어린아이의 존재도 N씨의 생활에 예상하지 못한 변화를 만들어냈다.…어린아이를 양육하고, 손자손녀의 성장을 지켜보았던 N씨에게는 손자손녀와 같은 존재인 젊은 장애자나 어린아이와의 동거 생활이 가정에서의 역할을 다시 회복시켜 주었고, 그 생활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던 것이다.
_161~162쪽

예전 노인병원에서 잠시 일할 때, 한 간호사가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야근할 때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왔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아이가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이방 저 방 기웃거렸는데, 오히려 아이로 인해 그곳 분위기가 밝아졌습니다. 어르신들이 아이를 잘 대해주셨고, 어떻게 대할지 잘 아셨습니다.

김세진 그 사람의 역할, 사회적 역할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가 잘해왔던 일, 잘할 수 있는 일로 역할 하시게 거드는 것입니다. 우리 생활에서도 살펴봅시다. 우리 부모님이자녀의 어떤 태도에 기뻐하실까요? 부모님께 가만히 계시라, 내가 알아서 즐겁게 해드리겠다며 내가 계획한 멋진 곳 구경하고 멋진 음식 대접해드리면 좋아하시겠지요.

그런데 인생의 선배인 부모님께 진지하게 삶에 대해 여쭈고 조언을 구할 때, 즉 부모님답게 역할 하시게 했을 때 부모님은 더 기뻐하지 않으실까요? 이럴 때 의미 있는 존재로 느끼실지 모릅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신 한 끝까지 부모님이게 섬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에 실린 단편 중 「황혼의 반란」이 이런 어르신의 역할을 잘 설명합니다. 끝까지 사회에서 역할을 인정받고 싶어 하시지요.



우리를 존중해 주십시오. 우리를 사랑해 주십시오. 노인들은 아기들을 돌볼 수 있고 뜨개질을 할 수 있습니다. 다리미질이나 요리도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젊은이들이 싫어하는 모든 일을 우리는 아직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_『나무』 중 「황혼의 반란」 (베르나르 베르베르, 열린책들) 그렇게 당신의 경험과 지혜로써 그가 속한 공동체와 함께 할 수 있게 돕는 일, 이것이 어르신을 어르신답게 돕는 일입니다. 어쩌면 입고 먹는 일을 거들기보다 중요할 수 있습니다.

일에 앞서 가치와 철학, 즉 기준이 먼저다
최진열
책 읽으며 예전 대학시절 노인 단기보호 시설에서 두 달 정도 연수할 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때 그곳에 계신 어르신은 모두 같은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모두의 식사시간과 메뉴는 동일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눈에 띄지 않았는데, 이 책을 통해 그런 돌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일본의 한 케어센터가 변화할 수 있었던 계기가 호주의 시설을 견학한 뒤였습니다. 내가 지금 상황을 문제라고 인식할 수 있다면 그에 대한 노력이 따라옵니다. 그렇게 상황을 바로 볼 수 있는 관점이 중요함을 깨달았습니다. 책 속 이야기 중 튜브로 식사하던 분을 다시 입으로 먹을 수 있게 도왔던 예가 있습니다.
우선 식사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회복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본인이 좋아할 만한 것을 가족에게 가지고 오도록 해서 입으로 섭취하게끔 유도하기 시작해서 2개월쯤 지나자 “그런건 필요 없어, 다른 사람과 같은 음식을 줘”라고 말을 꺼낸 것이다. … _59쪽

사실 K씨는 자신이 보고, 설명 듣고, 스스로 납득이 가는 메뉴가 아니면 손도 대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식을 제공하기로 한 판단은 틀리지 않은 것이다. …누구든지 인생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입으로 자기 손으로 먹고자 한다. _61쪽



존엄을 생각하는 케어에 대해 바로 이해하고 있다면 당사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듣고 기다립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복지사에게는 기술을 습득하는 일보다 관점을 바로 세우는 일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사람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하고 이를 존중하는 실천이 무엇인지 궁리해야 합니다. 이것이 먼저입니다.

박상빈 지금 우리의 일하는 방식 속에서 이렇게 도우려는 노력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당사자가 자신에게 묻고 부탁하는 일을 부담스러워 하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전에 있던 직원은 그러지 않았는데 왜 당신은 자꾸 나에게 하라고 하는가, 알아서 하지 왜 나에게 묻느냐며 귀찮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기준, 관점이 명확하게 세워져 있다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런 공부가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무엇이 마땅한지, 어르신을 도울 때, 약자를 도울 때 어떻게 도와야 할지 알게 해줍니다.

태다미 기준에 대해 이야기할 때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내용은, 자기 혼자 좋은 직원이 되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시설 직원이 다른 직원보다 일찍 출근해서 용품실에서 조금이라도 더 하얀 기저귀를 골라 자신이 담당하는 호실로 옮기고 있었다. …이용자들은 그 직원을 마음에 들어 했고, 따라서 평판도 좋았다. 그러나 이는 자신만 좋자고 하는 일일 뿐이다. 정말 이용자를 생각한다면 모든 기저귀를 더 깨끗하게 세탁하든가, 기저귀 상태를 청결하게 유지하는 대책을 생각해야만 한다. 자기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이용자에게는 오히려 불편한 일이 될 뿐이다. _24쪽

어느 사회복지사가 나를 만난 주민이 다른 사회복지사가 아닌 나를 만나길 잘했다고 생각하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열심히 일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나에게만 국한된다면 오히려 시비거리가 될 수 있고, 결국 일 전체를 그르치게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기준이 있다면 내가 속한 조직과 시스템에도 반영될 수 있게 힘쓰는 일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엄태인 리 호이나키의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를 보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좇아 비틀거리며 걸어갑니다. 거친 길이어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책 읽으면서 이를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직은 대학생이라 책의 내용이 깊이 있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준이 무엇인지, 무엇이 마땅함인지, 그래서 사람들을 도울 때 어떤 가치와 철학으로 도와야 할지를 생각했습니다. 대학생으로 사회에 나가기 전 이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두 가지 궁리해보고 싶은 내용이 생겼습니다.

하나는 사회복지기관은 공적인 자금을 받아 운영되는 특수한 체계라고 책에서 말했는데, 지역사회의 인정과 나눔, 당사자의 강점 등으로 일을 풀어갈 경우 이런 공적자금의 지원과 배치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둘째, 늘 사회복지사는 좋은 이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요양병원에서 조리사로 일하시는데, 어머니를 보면 어디를 가나 만나는 분과 친밀하게 지내고 주변 이웃과 가깝습니다. 어머니가 바로 좋은 이웃입니다. 어느 곳에서든 그 속에 속한 이들의 관계를 이어주고 생기를 돌게 하십니다. 책을 통해 어머니를 다시 생각했고, 어머니처럼 좋은 사회사업가, 직업인으로서도 뜻 있는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습니다.

김세진 복지국가 논쟁이 한참입니다. 진보진영에서도 살기 바쁘고 어려워 개인이 효도하는 건 시효를 다했다고 합니다. 절대다수 중산층과 서민은 효도를 못하기 때문에 사회적 효도, 제도적 효도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편주의 복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효도, 제도적 효도가 보편주의 복지를 의미한다면 다시 깊이 생각하고 싶습니다.

보편주의 복지가 어떤 모습이든, 어울려 사는 사람살이 참모습에서 멀어지면 제게는 의미 없습니다. 개인이 효도하는 것이 어렵다면 다시 개인이 효도하게 도와야 합니다. 부모 입장에서도 가족 속 어른으로, 살아있는 한 끝까지 가족 구성원으로 삶을 마감하고 싶지 않을까요? 마땅함을 좇는, 사람다운 사람, 사회다운 사회를 꿈꾸는 사회복지사로서 이 점이 조심스럽습니다. 이것이 제 일의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사회복지사는 꺼져 가는 심지를 돋우고 상한 갈대를 일으켜 세우는 사람입니다. 약해지는 것을 막고 세우고 회복시켜 주는 사람입니다. 가족이나 이웃과의 인정과 나눔이 자원봉사활동과 복지제도로 치환되는 세상이 복지국가라면 다시 생각하고 싶습니다. 공적자금으로 운영되는 일들이 인정과 나눔을 훼손한다면 받고 싶지 않습니다. 신자유주의 논리로 오해받기 좋은 이야기 같지만, 보수든 진보든 그 정책과 제도의 결과가 사람사이 자연스러운 관계를 왜곡한다면 조심스럽습니다. 『노인이 말하지 않는 것들』에서도 볼수 있듯, 최신 시설과 첨단 장비로 극진히 보살피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삶이었습니다. 끝까지 자신의 삶을 살게 돕는 일입니다. 제 기준이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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