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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지구별 사서의 오늘] 한 번의 즐거운 독서 경험이 삶을 변화시킨다
<학교도서관저널 , 2018년 11월호> 18-11-06 14:13
조회 : 1,351  


한 번의 재미있는 독서 경험
 
이따금씩 우리 도서관에서 9개국의 결혼이주민들이 한 달에 한 번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날개 달린 도서관 프로그램’, ‘책놀깜놀 고려인 어린이 독서교실’ 등등 도서관에서 여러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독서 프로그램 참여자 중 꼭 몇 사람은“어?! 책을 읽으니 재미있네.”라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중 몇몇은 프로그램이 끝난 후 도서관에 와서 책을 추천해 달라거나, 책을 빌려가기도 하면서 도서관의 이용자가 된다. 이미 독서의 마법에 빠진 사람들은 능동적으로 도서관을 찾는다. 그래서 책과 거리가 먼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읽는 즐거움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오랫동안 고민을 해왔다. 나 또한 중학생이 되기 전에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열혈 독자였지만 그 뒤 책 읽는 즐거움을 잃게 되면서, 책을 다시 가까이하게 되는 데는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대학에서 한국사 수업 과제로 『태백산맥』을 읽게 되었는데, 이 한 번의 경험이 나에게 다시금 책 읽기의 즐거움을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첫 직장이던 대학도서관에서 일하면서 다시 책과 멀어졌다. 이후 또 한 권의 책을 만나면서 다시 열혈 독자가 되었다. 그 책은 바로 『연을 쫓는 아이』다. 이렇듯 한 번의 즐거운 독서 경험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은 내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아직 독서 경험이 없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떻게 한 번의 즐거운 독서를 하게끔 할 수 있을까?’ 하고 골똘히 고민을 한다.
 
‘헬스장에서 책 읽기’ 프로젝트 실패담
 
어떤 일을 할 때 욕심을 과도하게 부리면 실패를 하거나 재미있는 무용담을 남기기도 한다. 2016년 여름, 나의 약해진 체력을 보완하고자 다니던 댄스 학원의 위층은 헬스클럽이었다. 내 담당 강사에게 독서의 필요성을 여러 번 이야기했고 마침내 공감을 얻어, ‘운동하는 자의 인생 책’이라는 프로젝트를 해보기로 했다. 그땐 ‘책 읽기, 특히 문학책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들은 누굴까? 아무래도 운동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우선 헬스클럽 트레이너들에게 그들의 인생 책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 인생 책과 사진을 찍어 도서관에 전시를 할 생각이었다. ‘자신들의 인생 책을 들고 헬스장 광고지에나 나올 법한 근육 자랑 사진을 찍는다면?’ 생각만 해도 신선하고 재미있는 사진이 될 것 같았다. 이 사진들을 청소년들에게 보여 주고, 그들의 인생 책을 권해 볼 생각이었다. 분명 아이들은 반응을 보일 것 같았다. 그리고 트레이너들에게는 각자의 취향에 맞는 책들을 한 권씩 권해 볼 생각이었다. 생각만 해도 재미있어서, 제안을 하러 3층에 처음 갔던 날은 설렘으로 잠을 설쳤다.
처음 만났던 2명의 트레이너들은 자신들에게 ‘인생의 책’ 같은 건 없다고 했고, 다음 날 만난 2명은 모두 자기 계발서를 인생의 책으로 추천했다. 그리하여 새로운 약속을 하게 되었다.
기한은 한 달! 마음에 드는 문학책을 읽고, 그 책과 함께 ‘내 인생의 책 사진’을 찍기로! 처음에는 이러한 요청에 모두들 의아해했지만, 평소 일면식이 있는 댄스 강사님의 요청을 냉정히 거부할 수가 없던 터라 우리의 약속은 체결되었다.
마음에 드는 문학책을 한 권씩 정하고, 그들이 책을 다 읽기로 한 한 달 동안, 도서관의 많은 사람들이 나만큼이나 이 프로젝트의 진행사항을 궁금해했다. “언제 그 사진들은 볼 수 있느냐”, “그 헬스장이 어디냐, 참가하는 사람들이 궁금하다.” 등 말이다. 제안을 한 지 한 달 쯤 되던 어느 날, 3층으로 올라가는 나를 피해 빛의 속도로 도망가는 트레이너들의 뒷모습을 보고 말았다. 그 뒤로도 그들은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다 읽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프로젝트 기간이 1개월 더 연장되었지만, 책을 다 읽었거나 이 책을 내 인생 책으로 소개하겠노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하여 겨울이 되기 전에 프로젝트는 막을 내렸다. 지금 생각해도 약간 아쉽다. 그때 프로젝트를 성공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우리 노마가 달라졌어요~
 
우리 도서관 가까이에 고려인들이 많이 사는 마을이 있어서인지 매주 고려인 아이들이 책을 읽으러 도서관에 온다. 아나스타샤나 빅토리아처럼 원래 책을 좋아하고 책 속 주인공들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에, 끼릴이나 노마처럼 그냥 친구들을 따라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도 있다. 이 아이들은 책 읽기에 집중하기보다는, 서가 사이에 있는 새로운 장식품, 물구나무 서 있는 곰 인형 등에 더 관심을 가지고 또래들과 장난치기에 바쁘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 아이들부터 한 명씩 그림책 읽는 재미를 알게 해 보자.’

먼저 개구쟁이 노마를 도서관이 가장 한가한 수요일 오후 5시에 초대했다. 미리 학교 선생님과 부모님께도 이 사실을 전달 드렸다. 도서관에 가면 재미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엄마와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은 노마는 5시가 채 되기 전에 도서관에 달려 왔다. 노마가 앉고 난 뒤 사서인 나, 우즈베키스탄에 온 율리아 선생님, 청소년 봉사단 인영이, 독서동아리 형이 앉았다. 노마는 말 그대로 눈이 동그래졌다.
전날, 우리는 노마에게 어떤 책을 읽어 줄 것이고 각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마가 평소 사탕을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여, 백희나 작가의 『알사탕』(백희나)으로 책을 정했고, 내가 한 줄씩 읽으면 그 부분을 율리아 선생님이 러시아로 통역하여 읽어 주기로 했다. 청소년 봉사자는 사물의 이야기를, 독서동아리의 형은 아빠의 잔소리 부분을 맡았다.
한 명의 어린이를 위해 4명의 도서관 사람들이 책을 읽어 준다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날 도서관은 오롯이 노마를 위한 공간이었다. 사실은 노마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그림책 한 권과 한 어린이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형과 누나, 도서관 선생님들이 나를 위해 책을 읽어 주고, 제 질문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대답해 줘서 너무 좋아요!”

책 읽기가 끝나고 율리아 선생님이 한국어로 통역해 준 노마의 소감이다. 그 뒤로 노마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도서관에 올 때마다 『알사탕』을 찾아 다시 읽었고, 백희나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서 읽어 달라고 하더니, 꽤 글이 많은 러시아 동화책도 읽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책을 소리 내어 읽거나, 질문을 할 때 목소리가 커졌다.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여기! 책 읽는 즐거움을 아는 아이 하나, 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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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배기 아이를 위한, 한 할아버지를 위한 프로젝트
 
중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엄마가 한 살이 된 아기 이름으로 프로그램을 신청한 일이 있었다. 시작에 앞서 나는 말도 못하는 아이에게 한국어와 중국어로 그림책을 읽어 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의외의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나를 포함하여 함께 책을 읽어 준 사람들이 새로운 그림책을 발견하게 되었고, 아기의 엄마가 완전히 집중하여 그 책을 함께 읽게 되었으며, 엄마와 아이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아빠와 함께 도서관을 찾는 가족 이용자가 되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자신의 친구에게 책을 읽어 주고 싶다고 신청을 하셨다. 당신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지만, 친구는 그렇지 않아서 책을 읽어 주고 싶으시다는 것 이었다. 친구 할아버지는 도서관에 매일 오시지만, 책은 읽으신 적이 없다. 아침마다 일찍 오셔서 신문과 주간지를 읽고, 다른 할아버지들과 이야기 몇 마디 나누시고는 가신다. 당장 ‘한 할아버지를 위한 도서관’ 프로젝트가 가동되었다. 친구 할아버지가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이야기를 하시는 걸 여러 번 들었던 기억을 떠올려, 읽어 드릴 책으로 안녕달 작가의 『메리』를 정했다. 우리 도서관의 일등 이용자이신 할아버지 두 분께 부탁드려, 신청하신 할아버지와 나, 이렇게 네 사람이 책을 읽어 드리기로 했다.
이번에는 책을 읽어 드리는 세 분의 할아버지들의 변화가 놀라왔다. ‘영달 할아버지’ 프로젝트 2주 전부터 읽어 주기를 하실 할아버지께선 『메리』를 매일 읽으셨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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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때 틀리면 어떡해! 친구도 보는데.”

할아버지가 열심히 하시는 모습에 빙그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사투리도 연습하시고, 책이 재미있다고 작가의 다른 책들도 찾으시길래, 『할머니의 여름휴가』도 소개해 드렸다. 그러자 “할매가 수영복을 입는고? 이건 좀 안 맞는거 같아.”라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프로그램이 열리는 수요일, 친구 할아버지는 “내가 애들도 아닌데 웬 그림책이냐.”라고 토라지셔서 처음에는 똑바로 앉으시지도 않았다. 할아버지 세 분과 내가 정성을 다해 읽어 드리자, 그때서야 못이기는 척 들으셨고, 할머니가 밥상을 들고 나오는 부분에서는 “나도 그랬어.”라고 하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생각보다 재미있지?”라고 묻는 신청자 할아버지께 이렇게 소감을 남기셨다.
“그래도 나는 애가 아니니깐, 다음에는 이야기책이나 읽어 줘.”

그 뒤로 우리 도서관에서는 영달할아버지께서 중국 소설책을 읽으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 있지만,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속담은 우리 도서관에서만큼은 틀린 이야기다. 우리는 그들이 스스로 물을 마실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한 번의 즐거운 책 읽기 경험! 어려울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적의 마중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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