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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독자가 만난 작가] 설흔 작가와의 만남
<학교도서관저널 , 2014년 07+08월호> 14-10-28 23:41
조회 : 6,064  


역사 속 인물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들 사이사이에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만든다. 그 대상은 우리가 알 법한 유명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던 스쳐지나가는 사람이기도 하다. 전자는 평범한 아버지나 친구와 같이 친근한 이미지로 바꾸고, 후자는 비범한 인물로 바꿔놓기도 한다. 상상력과 필력만으로 역사 속에서 잊혀져 가던 인물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다. 그가 바로 설흔 작가다.
 
인터뷰
강애라 서울 대치중 국어교사
양일규 서울 단대부중 국어교사
예주영 서울 숙명여고 사서
이찬미 인천 부개어린이도서관 사서
사진・정리
김주희 기자
 
 
소설과 역사 속에서 사람을 이해하다
강애라 안녕하세요. 작가님의 책을 학생들에게 추천하곤 했는데 이렇게 실제로 만나게 되니 반갑습니다.
설흔 제 작품을 재밌게 읽어 주셨다니 고맙습니다.
이찬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것에 비해 출간한 책이 많습니다. 올해에만 3권이나 출간하셨습니다. 아무래도 책이 너무 자주 나오면 작품의 기복이 심할 법도 한데, 작가님의 작품은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점점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요?
설흔 출간일 순서대로 작품을 쓴 것은 아닙니다. 『조희룡과 골목길 친구들』은 출판사에 원고 넘긴지 1년 만에 나왔고, 『내 아버지 김홍도』는 한 달 만에 나왔습니다. 저는 아무리 많아도, 1년에 한 편 반에서 두 편 정도 씁니다. 출판시장이 어렵다 보니, 이렇게 꾸준히 쓴다고 해도 먹고사는 것은 여전히 힘듭니다. 결국 많이 쓸 수밖에 없는 환
경인 셈이지요. (웃음) 그렇다고 돈 때문에 억지로 쓰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소설로 쓰고 싶은 소재들이 많이 있어서, 빨리 쓰고 싶은 욕구가 저를 재촉하기 때문이지요. 자료를 찾을 때는 외출도 잦고 사람도 많이 만납니다만, 글을 쓰기 시작하면 몇 달 동안 방에 틀어박혀 아침부터 저녁까지 글만 씁니다. 이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일까요?
강애라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하셨나요?
설흔 저와 다른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심리학과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심리학과는 이과적인 부분이 더 강했습니다. 전공에서 제가 기대한 답을 얻지 못해서 대학에서는 소설을 많이 읽었습니다. 제가 심리학과에서 알고자 했던 사람에 대한 궁금증은 소설과 역사책을 통해 풀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남들처럼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재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아침 일찍 출근해서 하루에 두세 시간씩 소설을 썼습니다. 이때부터 역사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출판사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역시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만뒀어요. 결국 소설 쓰는 일만 남았는데, 다행히 창비에서 주관하는 ‘제1회 창비 청소년도서상’에서 대상을 받아 자신감을 얻었어요. 아마 이 상이 없었다면 소설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역사 속 불우한 인물, 소설에 담다
양일규 소설을 쓰시는 것을 비롯해 인문 책도 쓰시고 번역도 하시는 등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단순히 소설이라고만 하기엔 인문교양의 성격이 강하게 드는 책들이 있습니다. 특히 『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가 그렇지요. 그렇게 쓰시는 이유가 있나요?
설흔 저의 작품이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사료를 많이 이용하는 편이라 논픽션의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책을 역사 분야로 분류하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제 작품은 소설입니다. 저는 입맛에 맞는 자료를 선택적으로 사용하고, 왜곡된 사실을 제 나름대로 해석하고 표현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기존의 소설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저는 소설을 쓴다고 생각합니다.
강애라 작가님의 소설 속 인물들이 주로 옛사람입니다.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설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다 죽어서 아무도 시비를 걸 수 없기 때문에 주로 그들을 대상으로 글을 쓴다고요. (웃음) 과거에 대한 자료와 연구가 많이 있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이 옛날 사람들보다 그 시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부분에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보다도 옛날 사람들의 고민이 저와 비슷하고 오히려 더 현대적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점들이 참 매력적이라, 저 혼자 알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역사 속에는 소설화하기에 좋은 소재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죽고 사는 일들이 흔했기 때문에 지금보다 좀 더 파란만장한 일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그렇겠죠. 그래서 과거의 이야기를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주영 역사를 다룬 작가님의 작품에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물론 그들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지만, 분명 여성의 역할도 컸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살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도 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옛날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을 쓸 계획은 없으신지요?
설흔 시대의 속성상 남자의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 또한 여성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니 그 시대 여성들에 대해 관심이 없겠습니까. (웃음)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주인공이 여성입니다. 아직 원고를 마무리 짓지 못해서 언제 출간될지는 모르겠지만, ‘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청나라의 조공을 위해 효종의 양녀로, 공주가 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이찬미 소설 속 인물들은 어떻게 찾으시는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탐구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작가님은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인물, 약자에 관심을 두시는 것 같아서 교사로서 작가님의 소설을 아이들에게 권하곤 했는데요, 어떤 점에서 인물들의 어떤 점이 작가님을 매료시켰나요?
설흔 저는 사람, 그중에서도 약간 불우한 사람들이 가장 궁금합니다. 조선의 많은 왕 중에 인종에 관한 『왕의 자살』을 쓴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인종은 8개월 동안만 왕으로 있었던 인물이잖아요.제가 다루는 인물들은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기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사건이나 인물을 설명하기 위해 사례로 한 번 정도 언급되는 정도죠. 제가 관심을 가지는 인물은 덜 알려지고 어떻게 보면 시답잖은 인물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인물들에게 끌립니다. 큰 그림에서 보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사람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의미는 누군가에겐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사자에게도 그럴까요? 저는 그것을 드러내고 싶습니다. 잘 안 될 때가 많지만요.(웃음)
『조희룡과 골목길 친구들』을 예로 들겠습니다. 저의 소설에서 다루는 인물들의 계보를 잇죠. 조희룡은 유명하지도 않고, 대단한 뜻을 가진 인물도 아닙니다. 나쁘게 말하면 돈도, 시간도 많아서 예술 활동을 하는 중인입니다. 이것이 그에 대한 겉모습입니다.하지만 저는 약간 생각이 달랐습니다.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으니까 오히려 예술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신분 때문에 정치에 뜻을 둘 수도 없으니 오로지 그림 그리고 글 쓰는 일만 남은거죠. 조희룡을 통해 조선의 한량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나 인물의 기록’입니다. 결국 역사는 기록하는 사람에 의해 선택된 기록인 셈이죠. 저는 글과 글 사이의 기록되지 않은 그 이면을 읽는 것이 재밌습니다. 그리고 그 틈을 문학적 상상으로 채운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현재 고민과 일치하는 인물을 찾아보고 이 사람은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질문을 던지며 접근하면서 작업합니다.
 
소설을 쓰게 하는 힘
이찬미 저는 『멋지기 때문에 돌아왔지』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작가님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작품 속에 녹아 있는 같아 읽은 후에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작가님이 글을 통해 닿고자 하는 지향점이 궁금합니다.
설흔 제 책의 공통점은 ‘성장’이라는 겁니다. 인물이 어떻게 성장하고 깨달음을 얻는지에 주안점을 둡니다.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는 당시 저의 고민이 녹아 있습니다. 저는 등단을 했지만 그 후로 잘 안됐습니다. 몇 번 글도 게재해 봤지만 연락이 없었습니다. 자신감이 떨어졌지요. 그 당시에는 이렇게 소설을 쓰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회의감이 들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때 역사에 대해 써 보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몇몇 인물들을 떠올렸는데 그리고 그중에 하나가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에 등장하는 ‘이옥’이라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생각만 하고 쓰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배경도 까다롭고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아서였습니다. 한동안 공백 기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수렁에서 펜을 들게 만든 인물이 이옥의 아들이었습니다. 전에 책을 읽을 때는 인식하지 못했는데, 아들의 존재를 깨닫는 순간, 써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이옥의 아들이 저와 비슷하게 글쓰기에 대해 회의를 가지고 있던 ‘김려’에게 깨달음을 주었듯이, ‘글을 쓰면 뭐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라고 생각했던 저를 치유했습니다.
양일규 『우정 지속의 법칙』,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등을 보면, 우정이 작품의 공통분모라고 생각합니다. 우정과 관련해서 청소년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설흔 청소년에게 뭔가를 알려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글을 쓴 적은 없습니다. 저는 소설을 쓸 때, 제가 부족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쓰기 때문입니다. 『우정 지속의 법칙』도 제가 우정을 잘 지속하지 못해서 저에게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에 썼습니다. (웃음)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하고요.
강애라 청소년 책을 계속 쓰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설흔 에릭슨의 발달이론에 따르면 청소년 기의 과제가 자아정체성 확립에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이 단계를 제대로 거치지 못하면 그 다음 단계를 못 넘어간다고 합니다. 저는 그 단계를 벗어나지 못해서 청소년 책을 계속 쓰는 겁니다. (웃음) 농담이 아니라,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제가 탐구하는 것도 스스로가 다 어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는 많지만 아직까지 덜 자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굳이 청소년을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갖추지 못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계속 쓰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청소년과 통했던 것뿐이죠. 서로 부족하니까요. 사실 대한민국 어른들이 거의 저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이것은 인정하고 안 하고의 차이겠지요. 예주영 그렇다면 『우정 지속의 법칙』은 실제 작가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가님만의 우정을 지속하는 방법인가요?
설흔 책대로 하면 우정이 지속된다? 그건 저도 잘 몰라요. 저는 학창시절에 우정을 잘 지속하지 못했지만,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쓴 소설이니까요. 학교로 강연을 갈 때마다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이건 내 법칙이니 도용하지 말라고요. 나쁜 뜻이 아니라, 자기만의 법칙을 찾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정을 지속하는 데 어떤 법칙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제 소설을 통해 독자들이 각자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일규 작가님께서 청소년소설을 쓰면서 염두에 두는 철학이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설흔 저도 못 사는데 아이들에게 잘 살라고 할 순 없습니다. 저는 학교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했고, 좋은 학교를 다녔고 졸업한 뒤에는 일류기업에 취업해서 오래 다녔어요. 그런데 지금은요? 그게 어쨌냐는 것이죠. 지금 돌아보면 제가 하고 있는 일과 관련이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여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알지만 아무리 급해도, 스스로 생각하면서 조금씩 하라고요. 몇 년 뒤쳐진다고 큰일 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소설은 허구, 거짓말이죠. 소설이 없다고 굶어 죽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소설은 세상에 필요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소설의 맛입니다. 철저하게 쓸모없는 것. 소설이 쓸모 있다, 실용적이다 하면 사람들이 정색을 하고 달려들 텐데, 그렇지 않죠. 젊었을 때는 많이 읽지만 나이 들면서 점점 읽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나이 들수록 소설을 더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쓸모없으니까요. 그 쓸모없음은 살면서 가장 필요한 덕목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설흔_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고전의 매력에 빠져 정신없이 독서를 하다가 그것을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소망을 품은 뒤로 고전 속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쓰는 데 몰두하고 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유독 ‘나’와 ‘너’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깊은 공명을 일으키며 고전의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책의 이면』, 『퇴계에게 공부법을 배우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공저), 『소년, 아란타로 가다』,
『살아 있는 귀신』, 『내 아버지 김홍도』 등을 지었으며,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로 2010년 제1회 창비청소년도서상 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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