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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이 만남에 책갈피] 충남 청양 교사독서모임 ‘간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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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3-12 12:55 조회 9,72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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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대로 ‘책만 읽는 바보’라는 뜻의 ‘간서치’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에게 그의 친구들이 붙여 준 별명입니다. 이덕무의 독서량과 깊이를 따라갈 수 없는 저희에게는 과분한 이름입니다.

최은숙 청양 정산중 교사


월요병을 사라지게 한
모임의 시작

청양중학교에서 책 읽는 모임을 시작한 것은 2006년 3월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청양으로 발령을 받아 온 교사들을 환영하는 회식자리에서 옆에 앉은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뭔가 신 나는 일이 없을까? 다시 한 번 긴장을 느껴 보고 싶어.”
“월요일 방과 후에 재미있는 모임을 하면 월요병이 사라져요.”
월요병을 사라지게 한 모임이 무엇이냐고 물으셔서 ‘독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다음 주 월요일 아침 회의 때 선생님이 일어서시더니 대뜸 우리 학교에 교사 독서모임을 하나 만들 것인데 관심 있는 분은 이름을 써내라면서 A4 종이를 한 장 돌리셨습니다. 무슨 일을 그렇게도 빨리, 간단히 시작하는지 놀랍고 신선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독서모임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모임에 대해 질문을 받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해 보고는 싶은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난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 저희의 경험으로는 별 생각 없이 ‘그냥’ 시작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두 명의 회원이 생기면 두 명이 하고, 세 명이 들어오면 세 명이 가볍게 첫발을 떼는 것입니다.


모임의 진행



독서모임은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주 월요일에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진행되었습니다. 저희가 근무하는 곳은 앞뒤로 산이 휘감고 있는 충남 청양입니다. 골짜기마다 아름다운 청양의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독서토론을 했습니다. 봄엔 벚꽃터널을 지나 장곡사 아래 산채밥집에서 모였고 보름달이 뜨는 밤엔 달빛이 푸른 칠갑산을 걸어 올라가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를 이끌고 다닌 분은 청양 토박이 김종학 선생님입니다. 독서 모임에 가면 ‘무식이 드러날까 봐’ 겁이 나서 못 온다기에 모임을 할 만한 장소와 맛있는 식당을 매달 여쭤 보았더니 안내해 주느라 따라 나섰다가 독서모임이란 게 별 거 아니라는 것을 알고 안심하여 회원이 되셨습니다. 자연의 풍성한 시계를 따라가는 것 또한 시골학교 교사들이 누릴 수 있는 지복 중의 하나입니다.


살아 있는 책, 저자와의 만남

독서모임에선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저자를 초청하기도 합니다. 저희가 처음 만난 작가는 자연농법을 실천하는 농부 최성현 선생입니다. 그분이 번역한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나무에게 배운다』라는 제목으로 2013년 상추쌈 출판사에서 복간)을 읽고 감이 붉게 익은 장곡사 산채밥집에서 만났습니다. 최 선생은 제천에서부터 최고 시속 70킬로미터인 트럭을 타고 반나절을 달려와 주셨습니다. 그분의 트럭엔 우리에게 선물로 줄 메뚜기 묶음이 실려 있었다는데 극진한 환영에 놀라 메뚜기 내리는 것을 깜빡 잊고 도로 싣고 가셨습니다. 이처럼 회원 중 한 명과 친분이 있어 저자와의 만남이 수월한 경우도 있고, 전혀 인연이 없더라도 출판사를 통해 연락을 취하고 저자를 정중히 초대할 수도 있습니다. 고맙게도 저희에겐 ‘충남교육연구소’라는 조력 기관이 있어 연구소의 인문학 강좌 기획에 참여하면서 만나고 싶은 분들을 공식적으로 모실 수 있는 혜택도 누리고 있습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 만나게 되든지 그분들의 가치관에 동의하여 만남을 주선한 만큼 그의 삶을 응원하는 지지자로서 마음을 열고 배우고자 합니다.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의 저자인 서현 선생은 초대를 받아 오면서 도대체 청양 산골짜기에서 어떤 사람들이 대중적이지도 않은 건축 책을 읽고 저자를 부른단 말인가, 참으로 궁금했다고 합니다. 저희는 그의 책에 매료되었고 그의 말대로 대중적이지 않은 건축 관련 책이어서 궁금한 부분이 많아 직접 설명을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독서여행을 통해 얻는 것들

독서모임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독서여행입니다. 일 년에 두 번,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하는 여행은 우리에게 새로운 방향을 열어 줍니다. 강화도 도장리 생활학교의 황덕명 선생을 찾아갔다가 알게 된 강화학파의 이건창 선생을 공부하는 기쁨, 옥천의 김성장 선생과 조만희 선생을 만나면서 알게 된 송건호 선생에 대해 공부하는 즐거움, 순천을 지나는 길에 평화학교(현 사랑어린 학교)에 들렀다가 김민해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햇빛과 같은 교사상. 여행지에서 좋은 선생님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에게 누군가 찾아온다면 우리는 그분에게 무엇을 내어드릴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함께 읽을 책 선정

시작할 때는 일곱 명이었던 회원이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 지금은 스무 명에 가까운 선생님들이 함께하고 있는데, 선생님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고백은 처음엔 책 읽기가 고통스러웠다는 것입니다. 모임에서는 베스트셀러, 가벼운 자기계발서를 제외하고 우리가 선 자리를 균형 있는 안목으로 바라보게 해 줄 책들을 골라 읽었습니다.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크게 광고된 적도, 서점의 가판대를 차지한 적도 없는 책들 중에 귀한 책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책들은 읽는 사람의 가치관을 흔들고 당황하게 했습니다.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게 하고 삶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그동안 치우친 독서를 해 왔다는 반성, 독서를 통해 균형 있는 성장이 가능할 것 같다는 희망, 책의 메시지를 삶에 조금씩 적용해 보면서 생기는 기쁨이 우리 모임을 이끌어 갔습니다.


지역신문에 책 소개글 연재

청양 지역의 교사들이 독서모임을 재미있게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청양신문사에서 책 소개를 해 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컸지만 중앙일간지보다 독자가 많은 지역신문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가 읽는 책을 학생, 동료교사와 학부모, 지역주민 들이 읽을 수 있다면, 제목이라도 기억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자 의무이자 기회라고 여겨졌습니다. 글을 쓸 차례가 돌아오면 몸살을 앓다시피 하며 책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생각이 정리되고 심화되는 글쓰기는 독서모임의 교사들을 한 걸음 더 성장시켜 주었습니다. 학생들이 학교에 배달되어 오는 신문을 보고 그 책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우체국에 일 보러 갔는데 일하시는 분이 신문에서 글을 읽었다며 말을 걸어 올 때 보람을 느낍니다.




단행본 출간

우연한 기회에 신문의 글을 읽은 출판사에서 단행본 출간 제의를 했습니다. 독서모임의 교사들이 작가는 아니어서 글은 서툴지 모르지만 독서모임을 해 보고 싶은 분들에게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선생님들은 지역신문에 글을 연재하자고 했을 때보다 열 배쯤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으나 이번에도 역시 이 일로 우리가 경험하게 될 새로운 세상에 대하여 한 발 내딛는 마음으로 책을 내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썼던 글을 모아 정성껏 교정하고 교육, 생태, 문학, 철학, 치유, 건축, 청소년 7개 분야로 나누어 100편의 글을 묶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친구 셋이 100권의 책을 나누어 사진을 찍어 주었습니다. 책을 싸들고 사진 찍는 곳에 따라다니는 일도 즐거웠고 모임에 와 주셨던 선생님들께서 추천사를 써 주셔서 더욱 기뻤습니다. 방학 한 달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더니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꼬박 일 년이 지난 뒤에야 책이 나왔습니다. 잘 몰라서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두 번 다시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누가 혼자 한 일이 아니고 시시때때로 모여 웃고 떠들며 함께 만든 책이라서 소중합니다.




모임 선생님들의 건강한 모습

50여 명의 전교생을 이끌고 해마다 지리산, 설악산을 누비는 선생님, 학생들과 노래모임을 만들고 공연을 위해 월급을 털어 악기를 사서 세대 차이가 없는 노래를 공유했던 그 학생들과 지금도 가끔 모여 작은 공연을 하는 선생님, 책 읽기를 싫어했으나 아내의 손에 이끌려 독서모임에 들어온 뒤 인생의 나침반이 될 만한 책들을 만난 후 책에서 배운 대로 살겠다고 마음먹은 선생님, 일주일에 한 번씩 학생들과 마을길을 걸으면서 장터에서 호떡과 떡볶이도 사 먹고 도시락을 준비하여 들밥도 먹는 선생님, 학생들에게 별자리를 보여 주느라 차에 늘 천체망원경을 싣고 다니는 선생님, 아내가 마을 성당에서 인문학 강좌를 기획하고 마을도서관을 꾸리는 일에 외조를 빙자하여 잔소리하는 재미로 사는 선생님, 아파트의 이웃들이나 학교와 교회에서 만나는 벗들과 더불어 독서모임의 전도사가 되는 것이 꿈인 선생님, 자연에서 얻은 먹을거리들을 꾸러미로 만들어 여기저기 퍼 나르느라 손톱 밑이 늘 까만, 마을이 그대로 학교이길, 마을 구성원이 모두 선생님이자 학생이길 바라는 선생님….


그동안 치우친 독서를 해왔다는 반성, 독서를 통해 균형 있는 성장이 가능할 것 같다는 희망, 책의 메시지를 삶에 조금씩 적용해 보면서 생기는 기쁨이 우리 모임을 이끌어갔습니다.

책을 나침반 삼아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나누려는 회원들의 모습입니다. 완전한 학생이 교사라고 하지요. 함께 공부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도반이 있다는 것은 생의 큰 축복입니다.
간서치의 든든한 오라비 역할을 하시는 김종학 선생님의 사모님께서 어느 날 회원들을 전부 초대하여 밥을 차려 주셨습니다. 남편이 독서모임을 한 후 아주 멋진 분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너그럽고 이해심이 깊어지셨다고 합니다. 늙어 죽을 때까지 모임을 지속하라고 당부하시는, 잊을 수 없을 만큼 맛있고 따스한 밥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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