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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저자 [사람들]어린 마음에 더 가까이 - 유은실 작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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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4-21 21:58 조회 12,70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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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작가가, 우연처럼 동화작가가

김혜원 처음에 어떻게 글을 쓰시게 되셨나요?

유은실 제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스물다섯에 문창과에 학사 편입을 했어요. 대학 졸업하고 요리학원 강사로 나름 열심히 일했는데 몸이 안 좋아져서 일을 못하게 됐어요. 그때 처음으로 인생이 멈춰 본 것 같아요. 깊은 밤 입원실 창가에서 밤거리를 내다보는데, 문득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걸 ‘내면의 소리’라고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퇴원하고 얼마 있다가 모교에서 반년 정도 일했어요. 그때 국문과교수님들에게 여쭤 보니까, 글을 쓰고 싶으면 문예창작과에 학사 편입을 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정말 작가가 되는 건 꿈도 꾸지 않고, 건강이 안좋으니까 요리 잡지 같은 데 글 쓰면서 프리랜서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그냥 글 쓰는 공부를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98년 2월에 사표를 내고 문창과에 편입했어요.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해서 엄청 헤맸지요. 수업을 따라가기 벅찼지만 나한테 맞는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학부모님 강연을 가면 아무리 낡은 옷이고 남루해 보여도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고 살아야 한다, 아이가 원하는 게 곧 아이가 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얘기해요. 저희 엄마도 창작은 고통스러워서 그 길은 가지 않도록 하고 싶다고 하시면서 자격증 있는 인생을, 안정된 인생을 원하셨지만, 제가 학사 편입을 할 때는 엄마가 그때 보낼 걸, 결국 네가 그 길로 가는구나, 그러시더라고요.

김경숙 어떻게 동화를 찾게 되셨어요? 지표가 되는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작품이 있으셨는지요?

유은실 문창과에 갔는데 어떤 쪽에 관심 있냐고 물어서, 저는 뭐든 다 좋다고 했어요. 어차피 작가가 될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동화는 수업도 없었어요. 근데 그때 제가 학비 버느라고 글쓰기 개인지도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가르치던 아이가 어느 날 책 한 권을 보여 주면서 너무 재미있다고 하는 거예요.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어른한테 주면서 얘기하고 싶어 하잖아요. 그래서 그걸 빌려서 읽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작가가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썼다는 거예요. 혹시 내가 어렸을 때 본 그 작품의 원작인가 궁금해서 서점에 가서 「말괄량이 삐삐」 시리즈를 읽었어요.
그때 린드그렌에게 훅 갔어요. ‘이렇게 쉬운 말로 인생을 이야기하는 게 어린이 문학이구나. 정말 멋지다.’ 싶었죠. 동화를 쓰기로 결심했어요. 문창과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말했고요. 주위에서 동화는 아줌마작가들이 쓰는 거라고, 소설 쓰라고 하더라고요. 주위에 아동문학 하는 사람이 없고, 어떻게 할지 잘 몰랐어요. 혼자서 평론집 보고, 거기 나온 작품들 찾아보고 그랬어요. 작품이 마음에 들면 그 작품을 쓴 사람 책을 다 찾아 읽고 그런 식으로 공부했어요. 문학상이 뭐가 있는지도 잘 몰랐죠. 계속 공모에 냈는데 많이 떨어졌어요. 6년을 떨어졌어요. 계속 떨어지니까 엄마가 그만하라고 하더라고요. “내 딸이 태어나서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걸 처음 봤는데, 계속 떨어지는 걸 보면 너는 소질이 없다.”라면서요. 저도 돈을 벌면서 하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 제가 혼자 살았거든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대학원에 다니면서 글쓰기 수업을 했어요. 수요일 밤에 먹을 걸 많이 샀어요. 그리고 신발을 싸서 창고에 넣었어요. 나가고 싶을까 봐요. 그 안에서 있는데 감옥에 있는 느낌도 들고, 외로웠죠. 근데 그때는 이미 식단 짜는 것도 다 잊어버리고, 이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나는 작가가 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게 안 되면 그만둬야겠다고 여기고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을 쓴 거예요. 저는 단편부터 쓰고 나중에 장편을 쓰려고 했는데 단편이 계속 떨어지니까, 할 수 없이 장편을 써서 ‘창비 좋은어린이책’에 응모한 거예요. 그랬는데 떨어졌다고 연락이 왔어요. 하지만 원고는 책으로 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이 나온 거예요.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김경숙 동화작가이기 전, 어릴 때 작가님의 독서환경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유은실 부모님이 인텔리 집안 출신이긴 했지만 전쟁을 겪어서 굉장히 가난하게 크셨어요. 엄마 아빠는 <뿌리깊은 나무>를 정기구독을 하셨던 분들이세요. 어릴 때 집이 작아서 책을 둘 데가 없는데 제가 침대를 사 달라고 하니까 책을 묶고 그 위에 합판을 얹으셨어요. 제가 <뿌리깊은 나무>를 깔고 잤어요. 그랬는데 저는 책이 싫었어요. 책보다 동네 엄마들의 수다의 세계, 그 발랄함이 좋았어요. 골목에 장판 깔아놓고 인형 눈알 붙이는 아줌마들 얘기를 들으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온갖 동네 아저씨들 바람피운 얘기, 부부싸움 얘기……. 저는 그 이야기를 엿듣는 게 너무 좋았어요. 핑계일 수도 있는데 어렸을 때 『강아지똥』 같은 책이 있었으면 저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됐을 것 같아요. 엄마가 1학년 되니까 책을 보라는데 집에 있는 게 어디서 얻어 온 계몽사 빨간 동화책이었어요. 언니는 똑똑해서 닳도록 보는데, 저는 너무너무 재미없는 거예요. 책이 더 있었지만, 책보다는 이야기를 좋아했던 아이였던 것 같아요. 그래도 좋은 독서환경이었던 게 부모가 어려움을 책으로 극복하는 걸 보고 큰 거잖아요. 어렸을 때 책을 안 읽었지만 부모가 책을 사랑하는 걸 보고 컸다는 것. 이건 특별한 환경이죠.



아이들에게 이런 동화도 필요하지 않을까?

김혜원 최근 출간되고 있는 동화를 읽다 보면 동화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잣대가 흔들리기도 해요. 동화가 교과와 연계되면서부터 ‘무엇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죠. 그런 폭풍 속에서 동화를 쓰시기가 만만치 않으실 거라 생각해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동화는 이러해야 한다. 혹은 동화는 아이들에게 이런 것을 주어야 한다.’ 하는 신념이 있으신지요?

유은실 동화쓰기에서 가장 만만치 않은 건 제가 어른이라는 한계, 그리고 저의 게으름과 집중력 부족이지, 사회적 환경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저의 글쓰기밖에 할 수 없지요. 각자 자기 세계를 이야기하는 작가들이 모여 다채로운 어린이 문학 동네를 이룬다고 봅니다. 어린 독자들을 만나는 기회가 생겼을 때, 제 글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묻곤 합니다. 『멀쩡한 이유정』의 작가 소개에 제가 초등학교 삼학년이 되어서야 오른쪽 왼쪽을 구별했다고 한 것이 제일 좋다는 얘기를 가장 많이 들었어요. ‘저렇게 쉬운 걸 모르는 어린이도 자라서 작가 같은 걸 해서 먹고 살 수 있구나.’하고 위안이 되는가 봐요. 아이들이 있는 모습 그대로 자신의 빛과 그림자를 잘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을 쓰고 싶어요. 아이들의 욕망을 많이 들어주고 싶어요. 특히 조금 어려운, 결핍이 많은 아이들 얘기를 하고 싶어서, 아이들의 애도를 도와줄 수 있는 책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 머리에 햇살 냄새』 같은 경우도, 아이들 하나하나 결핍이 있어요. 뾰족한 해결은 없고, ‘너도 힘들겠구나.’ 정도죠. 아이들이 책을 읽고 ‘맞아, 내 마음도 이럴 때가 있었는데, 여기 나 같은 사람 또 있구나.’ 그게 딱 제가 원하는 거예요.

김혜원 <학교도서관저널>에서 매달 추천도서를 선정하는 덕분에 최근 4~5년 동안 나온 우리 창작 동화를 거의 다 읽을 수 있었어요. 결론적으로 지금 우리 동화 시장이 대단히 저조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학년과 고학년을 비교해 보자면 저학년의 경우 인성동화, 학교생활 동화 같은 목적성 강한 동화들이 주류를 이루면서 좋은 창작 동화들을 만나기가 힘들어지고 있어요. 이런 시기에 작가님의 『나도 편식할 거야』, 『내 머리에 햇살 냄새』 같은 책들이 참 소중합니다. 저학년 동화는 이랬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있으신지요?

유은실 시장에서 아이들 학습에 도움이 되는 어떤 목적성이 있는 동화를 원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초등학생들까지 일제고사에 내몰리고, 엄마들도 그런 불안 때문에 더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제 책 중에서 『우리 동네 미자 씨』를 참 좋아하는데, 많이 안 나갔어요. 누군가가 그 책에 대해서 주제가 가족애도 아니고, 우정도 아니고, 왕따도 아니고 들어갈 데가 없다. 그게 안 팔리는 이유 중에 하나라고 하더라고요. 문학인데 어느 곳에도 들어가지 않아야 되는 거고, 인간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얘기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그것에 맞춰야 판매가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어느 부류에도 들어가지 않는, 분류에도 속하지 않는 동화로 가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춘다는 것
김혜원 사실 작가님의 작품을 대부분 좋아하지만 『만국기 소년』과 『우리 동네 미자 씨』는 어른들이 위로 받는 얘기가 많거든요. 아이들이 어른을 위로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학부모가 읽으면 참 좋은데 아이들도 과연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성숙한 아이들이 비루한 어른을 위로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나도 편식할 거야』를 읽으면서 이제 정말 동화를 쓰시나 보다 했어요.

유은실 동화작가는 어떻게 보면 ‘가나다 그림책’까지 내려갈 수 있어야 진짜 동화작가 같아요. 그래서 저는 아래로 향하는 욕망이 더 커요. 『나도 편식할 거야』를 쓰는데 내가 유체이탈을 해야 할 것 같은 거예요. 그때 ‘서른일곱의 유은실이 도저히 못하는 걸 내가 하고 있는 거야.’ 하고 처음으로 벽에 머리를 박고 울었어요. 『나도 편식할 거야』를 쓰고서야 나는 이제 동화작가가 된 것 같아 하고 느꼈지요.

김혜원 단편집 『만국기 소년』은 정말 놀라웠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주제는 같은데 점점 힘을 빼잖아요. 더 쉽고 재밌게요. 그런데 그런 작업이 너무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유은실 힘들기는 한데, 좋아요. 제 언어에 거품도 걷히는 것 같아요. 아이들 눈높이를 맞춰서 쉬운 말로 하려고 하다 보면, 그 거품을 걷어낼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제가 좀 나은 인간이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좋아요. 제가 어느 문창과에 강의를 하러 갔을 때, 가서 제일 중요한 건 동화는 정말 어렵다는 거, 나는 어른인데 내가 아이 얘기를 써야 한다는 좌절감, 그것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거, 그게 제일 중요한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얘기를 했어요.

김혜원 드라마를 만들 때 작가들은 ‘헌팅’이란 걸 한다고 여행을 다닌다고 하는데요, 작가님의 작품을 읽다 보면 누군가 친한 초등생 친구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은 동화의 인물이나 소재를 어떻게 구하시는 편인가요?

유은실 일단 제 안에 있는 아이겠죠. 그리고 제 어린 시절 친구들이 뿌리가 되는 것 같아요. 글쓰기 수업을 하며 만난 아이들은 제 큰 힘이죠. 아이들 일기장과 문집을 얻어서 읽어요. 필사할 때도 있고요. 버스나 전철에서 아이들이 수다 떠는 걸 엿들어요. 어려서는 어른들 얘기를 엿듣고, 어른이 되니 애들 얘기를 엿듣고. 엿듣는 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도움이 많이 됐어요. 교단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작가가 쓴 작품, 아동심리서, 어린 독자들이 보내 준 작품, 지인들의 아이, 조카들……모두에게 받은 은혜가 큽니다.

김혜원 유은실은 어떤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유은실 김근태 선생님 돌아가셨을 때 동네에서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삶을 추모합니다.”라고 쓰여 있는 플래카드를 보고 울컥했어요. 저분이 장관도 했고, 국회의원도 했는데 ‘민주주의자 김근태’라는 말이 확 오는 거예요. 시 같았어요. 저는 죽을 때 ‘성도 유은실의 삶을 추모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붙는 인생을 살고 싶어요. 늘 제가 씨름하는 건 그거예요. 끝없이 내가 인정받고 싶어지고 나를 알리고 싶고, 사실 작가라는 게 자기를 알리고 싶은 욕망도 되게 강한 사람이잖아요. 근데 어떻게 이게 사랑을 향해 갈 수 있을까. 저는 그래도 성도가 되려고 애쓴 사람, 예수를 닮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죽은 사람, 그쯤 됐으면 좋겠어요. 남편은 잘 모르니까 성도는 집사보다도 낮은 거 아니냐고 물어요. (웃음) 원래 절에서도 보살이 되는 게 어려운 거고, 교회에서도 성도가 되는 게 어려운 거라고 그랬죠. 내가 이걸 붙잡지 않으면 이 욕망의 시대를 못 건널 것 같아요. 작가로서의 길도 잃을 것 같고.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김혜원 정말 멋지시네요. 오늘 좋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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