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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교실 풍경]행동 아래 있는 마음을 바라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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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1-06 18:39 조회 5,98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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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진 아들, 그러니까 슬픈 아들
성혁이 어머니의 얼굴에 모처럼 환한 웃음이 돌았다.
“소장님. 요즘 우리 성혁이가 얼마나 착해졌는지 몰라요. 아직도 조금 짜증을 부릴 때도 있지만 예전에 비하면 천사가 되었다니깐요. 아침에 학교 갈 때는 저를 꼭 안아주기도 하고 그래요. 이젠 저도 남들처럼 대학 진학을 고민하게 된 것이 가끔 믿기지 않을 정도예요.”

성혁이는 순한 아이였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 때 성혁이 아버지가 가출하는 일이 발생했다. 누가 봐도 성혁이 아버지가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남겨진 성혁이는 어머니 탓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가 헤어지는 경우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의 옆에 남겨진 한 사람이 다른 부모를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했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자신을 떠나가버린 어머니나 아버지는 자신을 버린 것이고, 자신을 그렇게 버림받게 만든 것은 지금 자기 옆에 있는 어머니나 아버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일상생활에서 직접적으로 부모님께 표현하기는 너무나 두렵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자신과 함께 살고 있는 부모가 자신마저 버릴 것이라는 두려운 생각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두렵고 화가 나는 생각들을 억누르고 억누르다보면 어느 날 엉뚱한 방향에서 터지거나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리게 된다.

성혁이가 그랬다. 어느 날 심한 몸살감기로 앓아누워있는 어머니를 폭행한 것이다. 물론 그 전에도 이런저런 돌발 행동을 해서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을 예상할 수 있는 폭력적인 행동들을 했다. 그러나 사람에게 폭력을, 그것도 어머니에게 가하지는 않았었다. 성혁이 어머니는 어이가 없었다. 아버지가 다시 집으로 들어왔고 집안은 비교적 평안해졌는데 성혁이는 왜 그렇게 난폭해지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그것에 대한 답을 내놓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온 것은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으나, 몇 년 동안 버림받았다는 느낌으로 살아간 성혁이 자신의 마음은 치료받을 길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현실은 해결되었으나 마음속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어 아직 아물지 않은 것이다. 그 상황에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강하게 잔소리를 시작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이성을 제어하기 어렵게 된 성혁이 마음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라 행동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성혁이 어머니는 어이없기도 하고, 화도 나고, 자신이 비참해지기까지 했다. 집안의 힘겨운 일은 자신이 다 감당했는데 결국 돌아온 것은 아들에게 매를 맞는 엄마가 되었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픈 몸을 이끌고 집을 나가버렸다. 가족들 모두에게 가슴 아픈 시간이 한 달쯤 흐른 후 성혁이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혁이는 온순한 양이 되어서 어머니 말을 잘 듣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더 성숙한 부모로 성장한다는 것
나는 어머니에게 차분히 말씀을 드렸다.

“어머니. 환한 웃음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어머님께서 마음의 힘이 생기고 여유로워지신 것 같아서 이런저런 말씀을 드릴게요. 제가 드리는 말씀 잘 받아주셨으면 감사하겠어요. 우선 성혁이가 어머니를 때린 것은 화가 나기도 하시겠지만 이젠 다른 각도에서 바라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엄마에게 풀고 싶었던 것을 방법은 아주 좋지 않았지만 풀어낸 것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어머니도 성혁이를 많이 억눌렀다고 하셨으니까 무슨 말씀인지 아실 거예요. 그런데요, 어머니. 왜 하필이면 어머니가 편찮으셨을 때 어머니를 때렸을까요? 그건 어머니께서 자신을 두고 떠나갈까봐 성혁이가 겁이 나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주세요.

그날 보험증권이 화장대 위에 있었고, 그것을 성혁이가 본 다음부터 일이 벌어졌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성혁이는 그 보험증권을 보는 순간, 엄마가 혹시라도 세상과 이별할 정도로 몸이 아픈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 생각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전에 두려움이란 감정과 만나버린 것 같아요. 그래서 무서워서 자기도 모르게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했을 확률이 높아요. 어머니는 몸과 마음이 아프셨겠지만, 그 못지않게 그때 성혁이 마음이 무척 아팠을 것이라는 생각이 저는 드네요. 이제 제가 걱정하는 마지막 이야기를 하나 할게요. 지금은 집안도 안정되셨고, 성혁이 마음도 풀어졌으니 다행인데요. 성혁이가 앞으로 힘겨운 세상 문제와 만나서 또 마음이 힘들어질 때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요즘 어머니에게 잘하는 것은 사실은 어머니가 자신을 떠날까봐 겁이 나서 하는 행동으로 해석할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자신의 힘겨운 문제를 부모님과 상의하고 싶어도 부모님은 힘들어하시게 되고 그러다보면 자기하고 멀어질까봐 성혁이는 문제를 혼자 풀려고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이제 성혁이에게 먼저 말씀하지 마시고 성혁이의 말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대화를 주로 해주세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성혁이가 부모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먼저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세요. 그 상황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서는 아버님과 함께 의논해보시고 다음 상담 때 저랑도 이야기해 보시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그날 상담은 매듭지었다. 더 성숙한 부모로 성장하기 위해서 깊은 생각에 잠기고 계신 성혁이 어머니의 얼굴이 환한 웃음을 지을 때보다 더 환하게 느껴졌다.

저 아이의 장애는 나에게 무엇일까?
수혁이가 흐뭇한 표정으로 내가 준 쌀과자 두 개를 바라보고 있다. 지적장애를 겪고 있는 수혁이와 상담이 끝나면 5분동안 치르는 의식 중 하나다. 그리고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수혁이는 상담실을 나선다. 나는 벌써 3개월 넘게 수혁이와 상담을 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 수혁이와 만난 것은 수혁이가 학교에서 여선생님들을 뒤에서 껴안는 돌출 행동을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에는 수혁이가 겪고 있는 장애를 생각해서 여선생님들이 잘 참아주고 대처도 잘해주셨지만 임신을 한 여선생님을 껴안는 행동을 한 것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다. 수혁이와 상담을 하면서 나는 수혁이가 자신의 어머니와 비슷하게 머리가 길고 원피스를 입는 여선생님만 껴안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혁이 어머니와 상담을 하면서 수혁이가 일곱 살 때 집안사정 때문에 어머니가 수혁이를 친척집에 맡겨 놓을 수밖에 없던 일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수혁이는 친척집 형들에게 구박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 이후로 엄마가 안 보이면 몹시 불안해한다고 했다. 심지어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지금도 잠을 잘 때면 엄마의 여행가방을 꼭 껴안고 잔다고 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수혁이의 마음이 이해된다고 말씀 드렸다. 어머니는 더 죄송해하면서 임신한 여선생님에 대해 걱정을 하셨다. 혹시라도 뱃속의 아이에게 영향을 끼쳤을까봐 걱정이 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수혁이를 바라보시는 그 눈길이 참 슬퍼 보였다. 그런데 옆에서 별 관심 없이 우리들의 대화를 듣던 수혁이가 놀란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엄마, 나 때문에 선생님 뱃속에 있는 아가가 다칠 수 있어?”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수혁이는 당황하고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어, 안 되는데. 아가가 아프면 안 되는데”라는 말을 수혁이가 계속 반복하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수혁이의 손을 잡으면서 내가 무엇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냐고 말했다. 수혁이는 가만히 있다가 임신한 여선생님을 뵙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수혁이 어머님과 함께 교무실에 계신 그 여선생님께 갔다. 그 여선생님은 크게 놀라진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 때문에 야단을 맞고 있는 수혁이 걱정을 나에게 하셨던 분이었다. 우리는 수혁이가 여선생님께 사과를 하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 적어도 수혁이가 그 선생님 앞에서 무릎을 꿇을 때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수혁이가 만나고 싶어 했던 사람은 선생님이 아니었다. “아가야, 괜찮니? 미안해. 놀라게 해서 미안해. 아프지 마. 너 아프면 나 싫어. 절대 아프지 마. 응?”

울면서 어눌한 목소리로 선생님의 배를 바라보며 수혁이는 말했다. 그런 수혁이를 바라보는 우리들 모두는 웃음이 터져 나오고 저마다의 목소리로 수혁이를 위로했다. 그리고 수혁이 어머니를 보면서 왜 수혁이가 여선생님들을 뒤에서 껴안았는지를 짐작하게 되었다. 물론 그다음부터 수혁이가 여선생님들을 껴안는 버릇은 없어졌다. 왜냐하면 여선생님들께서 수혁이를 만날 때마다 ‘아들~’ 하고 불러주셨기 때문에 학교에 오는 동안 엄마가 떠날까봐 불안해했던 수혁이의 마음이 안정을 취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바라볼 줄 알아야 어른이다
그날 이후 나는 수혁이와 주기적으로 상담을 하게 되었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사탕이나 과자를 함께 먹으면서 상담을 할 때가 있는데 수혁이는 꼭 한 개를 더 갖고 가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집에 있는 일곱 살짜리 동생에게 과자를 가져다주면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왜 너는 동생이 좋아하는 일을 하냐는 나의 질문에 수혁이는 아주 진지하게 대답했다.

“선생님, 어린아이들은 누군가가 챙겨줘야 해요. 특히 일곱 살 때는 더 그래요.”
아! 수혁이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나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보살핌을 절실하게 받고 싶었던 외롭고 힘겨웠던 그 일곱 살을 지금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서 그 힘들었던 일곱 살 수혁이를 다독거리면서 성장시키기 위해 자신의 동생에게 정성을 다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채우고 싶었지만 채우지 못한 것을 남에게 베푸는 것을 통해 기쁨을 얻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이타주의’라고 한다. 수혁이는 비록 지적장애를 안고 살아가지만 나보다 훨씬 성숙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나는 했다. 나는 아직도 내가 받은 과거의 상처들과 건강하게 이별하지 못하고, 상처를 입힌 사람들과 사회에 대해 비판하기에 급급한데, 수혁이는 성숙하게 남을 위한 행동으로 그 아픔들을 승화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수혁이가 겪고 있는 장애가 수혁이에게 선물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수혁이의 돌발 행동 밑에 숨어 있는 마음을 바라보는 눈, 그것은 어른이 아이들과 만날 때 필요한 것이란 생각을 한다.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서는 기준을 제시할 필요도 있지만 한 호흡 정리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가만히 바라볼 줄 아는 사람, 그 사람들을 세상은 ‘어른’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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