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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교실풍경]나무를 심은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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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12-09 17:49 조회 5,65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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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에서 중학교 1학년 여학생들과 ‘글을 통해 만나는 내 마음’이란 글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그 과정 중 하나로 「나무를 심은 사람」이란 단편 애니메이션을 보고 난 후 느낌을 쓰는 순서를 가졌다. 다음은 중1 여학생들이 쓴 글과 그에 대한 나의 답글이다.

도토리를 고르는 노인
엘자르 부피에라는 노인이 도토리를 고르는 장면이 나는 가장 인상 깊었다. 수많은 도토리에서 한 번 고르고, 또 고르고 난 뒤 완벽한 도토리 100개를 고를 때까지 침묵하며 자신의 일을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하는 노인에게 나는 관심이 갔다. 처음에는 그 노인이 왜 저렇게 신중할까? 심지어 다른 사람은 손도 대지 못하게 하고 고르는 모습을 보고 이해를 할 수가 없었으나 나중에 도토리가 나무가 되어 울창한 숲을 이루는 것을 보고 노인의 생각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노인을 보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어도 열심히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 언젠가 다른 사람이 알아주는 기쁜 날이 오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꼼꼼하게 지내면 언젠가 다른 이들이 알아줄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고 힘이 들더라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미현 파이팅! 그랬구나. 미현이는 노인이 도토리를 고르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구나. 열심히 하면 다른 사람이 알아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구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면 미현이는 기쁨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그런데 선생님은 이 글을 보면서 마음이 조금 불편해지는 것은 왜 그럴까? 굳이 이런 글을 쓰지 않더라도 미현이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친구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말이야.

그리고 미현아. 엘자르 부피에라는 노인의 표정, 기억나니? 그저 무심한 듯한 그 표정 말이야.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건 말건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그 표정 말이야. 그게 진짜 행복한 표정이 아닐까? 내가 좋아서 그 일을 하는 것. 그래야 남에게 칭찬을 받는 것과는 상관없이 일을 하게 되고, 다른 사람이 비난을 해도 그리 마음 쓰지 않는 평온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언젠가 미현이가 나에게 울먹이며 피아노 선생님이 너에게 소질이 없다고 말한 것을 하소연했던 것 기억나니? 그때도 너는 더 열심히 연습해서 선생님의 말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했지. 그런데 사실은 그 이야기를 하기 일주일 전에 너는 나에게 피아노를 치기 싫다고 말을 했었잖아.

그리고 열심히 피아노를 치겠다고 결심한 지 열흘도 되지 않아 손가락을 다쳐서 피아노를 못 치게 되었잖아. 그때 피아노를 치기 싫은 네 마음이 손가락으로 나타난 것이란 내 이야기 기억나니? 미현아. 자신의 감정에 때론 솔직할 필요가 있단다. 너무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지난번에 친구들이랑 박태환 선수 이야기할 때, 다른 친구들은 박태환 선수의 수영 실력이나 외모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할 때 너는 주로 박태환 선수가 연습할 때 노력하는 장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단다.

아! 혹시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열심히 살지 말라는 것이 아니란다. 열심히 살다가 지친 날, 가끔 자신에게 ‘많이 힘들구나. 일단 오늘은 좀 쉬자.’ 하고 다독거리는 미현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는 말이란다.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과 쉬고 싶은 마음, 두 가지 모두 미현이에게는 소중한 것이니까 잘 다독거리면서 함께 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이야. 분명한 것은 미현이는 현재도 충분히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고, 따라서 쉴 권리도 충분히 있다는 거야. 그리고 그 선택은 다른 이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미현이 자신이 하는 것이고 말이야.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나는 노인(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이 혼자 나무를 심는 장면이 무척 외로워 보였다. 혼자서 나무를 심는데 황무지가 있고 바람이 부는데 혼자서 말없이 나무를 심는데 왠지 외로울 것 같았다. 오랜 세월 혼자 살아 현재 우리보다 더 외로울 것 같았다.

아름이가 ‘현재 우리보다 더 외로울 것 같다’고 말한 부분에서 너를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중학교 1학년인 아름이가 이야기하기엔 너무나 많이 외로운 표현들을 이 짧은 글에 써 놓았구나. ‘혼자, 무척 외로워, 황무지, 말없이 왠지 외로울 것, 혼자 살아…’. 그래서 그 외로운 노인이 불쌍해서, 아니 생각하는 게 싫어서 ‘엘자르 부피에’라는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았구나. 수십 번 이상 반복되어서 나온 이름인데도 말이야.

아름아. 사람이 외로운 것이 아니라 외로운 것이 사람이란 말을 너에게 해주고 싶구나. 그러니까 아름이가 외로움을 깊게 느낄수록 하나의 인간으로 잘 성장하고 있는 것임을 말해주고 싶다. 몇 가지만 내가 이야기를 하자면, 아름이는 동생들이 많잖아. 그래서 어쩌면 어릴 때 부모님께 어리광을 부리지 못해서 더 외로움이 깊어졌는지도 몰라. 오늘 집에 가서 부모님과 그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전에 말야. 애써 피하지 말고, 아름이 자신에게 ‘너외롭니? 그랬구나. 많이 외로웠구나. 외로워서 많이 힘들었겠다.’ 하고 속삭여주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 ‘아름아, 아름아’ 하고 조용히 너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한 방법이고 말이야. 그때 속에서 올라오는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야. 울고 싶으면 울고, 소리 지르고 싶으면 소리 지르고, 웃고 싶으면 웃고, 그저 아무 느낌이 없으면 조용히 그냥 멈춰 있는 것도 좋고 말이야. 애써 외롭지 않으려고, 외로움에서 도망치려 하지 말고, 외로움과 만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런 과정이 끝나면 주변에 있는 친구들에게 외로운, 그래서 아픈 네 마음을 내보이렴. 어쩌면 아름이가 힘들어서 땅만 보고 걸어다니던 습관 때문에 옆에 있는 친구가, 또 그 친구가 내미는 손을 못보았을지도 몰라. 그게 힘들다면 조용히 기도를 해보는 것도 좋구 말이야. 그리고 선생님은 ‘정아름’이란 이름을 잘 기억하고 있을 거라는 약속을 할게. 선생님처럼 아름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많다는 사실을 늘보석처럼 소중하게 간직하는 아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늙은 양치기가 만들어 놓은 숲을 보고 사람들이 와서 마을을 만들고 서로 눈치 보지 않고, 춤추고 즐기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우러져서 지내는 모습을 보는 동안 내 마음이 따뜻했다. 마음에 멍울진 것들이 없이 마음 편하게 노는 것이 참 좋았다. 나도 그런 곳에 가서 저렇게 살고 싶다. 그랬구나. 연우는 그런 곳에 가서 마음에 멍울진 것들 다 풀어내면서 살고 싶었구나. 연우의 마음에 답답한 것들이 참 많이 쌓여 있나보다. 우선 그런 연우의 마음에 위로를 보낸다. ‘토닥토닥, 우리 연우. 토닥토닥, 우리연우 마음’.

그런데 말이야. 선생님은 연우가 쓴 글에서 ‘서로 눈치 보지 않고’라는 부분이 마음에 자꾸 걸리는구나. 평소에 선생님이 연우를 보면 언니처럼 친구들을 참 잘 챙겨주거든. 그러면 혹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느라고 마음답답한 것을 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단다. 만약에 그렇다면 말이야. 나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단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표현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잘 알 수가 없단다. 왜 그런 말 있잖아. ‘말을 해야 알지!’ 만약에 연우가 답답하고 힘든 마음을 어떤 방법으로든 표현한다면 조금은 덜 답답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단다. 또 이런 생각도 해본단다. 혹시 연우가 ‘완벽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이에게 무조건 충분히 잘해야 하는 완벽한 ‘남연우’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야. 난 완벽한 사람인데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아닐까? 음… 또 이런 생각도 해본단다. 혹시 연우가 다른 사람에게 한 것만큼 다른 사람도 연우에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기대하고 있는데, 그렇지 못해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선생님 이야기를 듣다보니 더 답답해진다는 생각이 드니? 그럼 나에게 와서 답답하다고 말을 해보렴. 그것도 일종의 연습이 될 테니까 말이야. 연우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서 가만히 바라보면서 알아차리는 시간이라고 선생님은 생각한단다.

내가 사는 세상은 내가 만들어 간다
30분 동안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고 세 친구는 각각 다른 각도에서 자신의 마음을 풀어놓았다. 자신의 삶을 영화에 ‘투사’해서 바라본 것이다. 학교나 집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은 각각 다른 시선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세상을 바라본다. 그런데 어른들은 너무나도 자주 이들에게 한 가지 시각만 강요하고 한 가지 길로만 가기를 강요한다. 그것도 모두 함께 그렇게 가기를 강요한다. 그렇지 않다. 그들의 마음에는 각각 저마다 넘어야 할 산이 있고, 건너야 할 강이 있다. 강을 건너기 위해 준비를 하는 친구들에게 등산화를 선물하는 일이 현실 속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벌어질 때가 있다. 심리학에서는 자신이 사는 세상은 자신이 바라보는 대로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청소년들이 솔직하게 아름다운 세상과 만나면서 그 세상을 자신의 삶으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어른들은 그들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는 그날 세 명의 친구들과 오랜 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영상으로 보았던 「나무를 심은 사람」의 내용이 담겨 있는 같은 이름의 책을 건넸다(『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지음). 그들은 한 뼘 정도 깊어진 시각으로 그 책과 만나게 되었음을 그 다음 시간에 글을 통해 보여주었고, 그래서 나는 도토리를 고르던 노인의 마음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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