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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부모 교실풍경]함경도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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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9-05 21:28 조회 6,72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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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깊어가던 그 무렵
민식이. 북에서 온 친구. 함경도 지방에서 살다가 배가 너무 고파 중국에서 일을 해서 쌀을 구해오려고 단순하게 국경을 넘었다가 남한까지 흘러들어온 친구. 열여섯 살의 나이에 중국 뒷골목에서 꽃제비 노릇을 하던 민식이는 이제 스물두 살의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되었다. 워낙 말수가 적고 신중한 친구여서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지만 짧게 나눈 이야기만으로도 그 친구가 건너온 아리랑고개 쓰리랑 산은 아리고 쓰렸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의 길 위에서 민식이와 나는 학생과 담임교사로 만났다. 그것은 겨울이 깊어가던 그해 2월 말이었다.

봄 깊어가던 5월, 그 오월
5월은… 그랬다. 5월은 가정의 달이었다. 그래서 어린이날도 있고, 어버이날도 있다. 그래서 아픔 속에 살아가는 자식을 둔 부모들은 슬픔이 더 깊어지기도 하고, 어버이와 만날 수 없는 상황이 된 자식들은 어버이들이 더 그리워지는 달이다. 민식이가 그랬다. 함경도에 몸이 안 좋으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어린 여동생을 두고 떠나온 지 벌써 6년. 사춘기 시절, 6년의 무게는 어른들의 6년과는 비교가 안되게 참 많은 것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그리고 민식이에게는 그 경험만큼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눈물이 쌓여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마 5월이 시작되던 날이라고 기억을 한다. 중간고사를 다 마치고 아이들이 돌아가고 난 교실에서 민식이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시험을 보는 내내 밤을 새워 공부한 것이 틀림없을 민식이가 자는 것을 보고 나는 반 친구들에게 조용히 하고 운동장으로 나가라고 했다. 그리고 운동장에서 종례를 했다. 그것은 외롭게 공부하는 민식이에게 반 친구들과 내가 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교실에서 민식이가 깨어날때까지 책을 읽으려고 책상에 앉았다. 그렇지만 결국은 책을 읽지 못했다. 왜냐하면 민식이가 계속 큰소리로 잠꼬대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 잠꼬대는 계속해서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여동생에 관한 것이었다.

미안하다는 말과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제발 살아 있으라는 말이었다. 나는 멍하니 자그마한 체구의 민식이를 보면서, 그 스물두 살 청춘의 가슴에 있는 사무친 마음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어쩌면 저 친구가 평소에 무서울 정도로 집중력을 보이는것은 그러한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에서 벗어나기 위한 필사적인 몸짓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민식이가 그런 슬픈 기억을 잊어버리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그런 슬픔을 해결하고 싶어서인지는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어느 쪽이든 무척이나 힘겨울 민식이가 안쓰러울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민식이가 깨어날 때까지 그냥 그 자리에 앉아서 마음 저미는 슬픔을 함께한 것뿐이었다. 절벽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제자 앞에서 그저 함께 한숨만 쉬는 못난 스승의 역할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너 시간이 지난 후 민식이와 아주 매운 짬뽕을 말없이 함께 먹었다. 고춧가루가 귀해졌다는 이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땀과 눈물을 함께 섞어가며 우리 두 사람은 허겁지겁 짬뽕을 먹었다.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 중간 즈음
토요일이었다. 퇴근을 하기 전에 교실을 한번 둘러보러 갔다가 교실에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민식이를 보았다. 아무 말없이 민식이 옆에 서서 나도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어릴 때 북한에서 축구선수까지 했던 민식이였다. 왜 친구들이랑 축구를 함께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려다가 눈물이 그렁그렁 달려 있는 민식이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 보고 싶냐?”
민식이는 어색하게 씩 웃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버지도 보고 싶습니다. 누이도 보구 싶구요.”
가슴이 콱 막혀왔다. 심호흡을 하고 나서 민식이에게 말했다.
“민식아. 서울에서 너네 집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 뭘까?”
“글쎄요. 아무래도 뱅기가 가장 빠르지 않겠습니까? 착륙할 장소가 있다면 말입니다.”
나는 잠시 침묵을 하고 난 뒤 조용히 혼잣말을 하듯 민식이에게 말을 건넸다.

“영국 어느 신문사에서 이런 질문을 내고 가장 현명한 답이 무엇인지 공모한 적이 있어. ‘맨체스터에서 런던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무엇인가?’ 맨체스터는 너도 잘 알지? 축구로 유명한 도시야. 그곳에서 영국의 수도 런던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 무엇인지를 물어본 거야. 참 뚱딴지같은 질문이었지.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서 다양한 생각들을 적어 보냈어. 열기구를 타고 가면 된다고도 했고, 지름길을 찾아서 지름길로만 가면 된다는 의견도 있었어. 그 많은 의견 중에 일등을 차지한 것은 이런 거였어.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다.’였어. 사람들은 처음에는 조금 놀랐지만 나중에는 모두 감탄하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지. 민식아. 내 생각엔 말이야, 민식이가 함경도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좋은 친구랑 함께 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민식이는 조용히 내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참 현명한 대답입니다. 친구는 정말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친구를 만나기도 힘들구요.”
나는 씩 웃으면서 민식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말이야. 선생님이 민식이랑 친구하고 싶은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민식이는 흠칫 놀란 듯한 표정을 짓더니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사실 나는 조금 웃음이 나왔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말하면 고등학교 남학생들은 씩 웃으며 ‘그러죠, 뭐!’ 하거나 ‘에이, 선생님!’ 하고 해맑게 웃는다. 그리고 그저 자기 마음 알아줘서 감사하다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데 민식이는 그렇지 않았다. 내 예상을 뛰어넘어 신중하게 나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 순수함이 나를 웃음 짓게 만들었다. 그건 어쩌면 민식이가 친구하고 싶은 내 참마음을, 그래서 민식이가 고향에 가는 날까지 함께하고 싶은 내 마음을 소중하게 받아들인 민식이의 결 고운 마음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이르니 저절로 웃음이 배어나왔다.

나의 소원은 통일
토요일에 민식이와 대화를 나누고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학급 조회를 마치고 교무실로 들어서는데 민식이가 손에 자그마한 꽃바구니를 들고 따라왔다. 그리고 내 책상 위에 꽃바구니를 올려 놓고 큰절을 넙죽 하고는 수줍은 듯이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워하며 꽃바구니에 꽂혀 있는 자그마한 카드를 펼쳐 보았다.

“선생님께서 친구하자는 말씀. 참 고마웠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스승과 제자가 친구가 됩니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제 아버지와 같은 분이십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선생님을 아버지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아버지, 늦었지만 어버이날 축하드립니다. 저를 잘 길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옆자리에 앉아 계시던 여선생님이 카드의 내용을 보고 하염없이 우셨다. 나도 이를 악물었지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 그날 이후 나의 소원은 통일이 되었다. 내 제자, 아니 내 아들, 아니 내 새끼 민식이가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서 나는 반드시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는 데 한몫을 담당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겨울 깊어가던 그날
졸업식. 민식이가 드디어 졸업을 했다. 대입 결과도 아주 좋았다. 명문대학 사회학 계열에 입학하게 되었다. 힘겨운 과정을 겪는 속에 사람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 심리학을 전공해보고 싶다고 하였다. 졸업식 무렵 민식이가 나에게 편지를 썼다.

“아버지. 좋은 대학에 가게 되어서 참 기분이 좋습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쉬엄쉬엄 공부하라고 말씀하신 것 참 고마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함경도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생님. 제가 아버지 말을 듣지 않은 못된 놈이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제 방법대로 고향을 가는 길을 찾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늘 제 옆에 계셔 주셨으면 좋겠다는 염치없는 부탁을 드립니다. 제가 아버지 말을 듣지 않더라도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은 그대로입니다. 아버지를 만난 것은 정말 제 인생에 행운이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그리고 낯간지럽지만 여기 아이들처럼 말씀드려봅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나는 졸업식 날 민식이에게 편지 한 통과 책 한 권을 선물했다. 그것은 내가 쓴 교단수필 『흔들리며 피는 꽃』이었다.

“민식아. 내 아들아. 많이 아프고 힘들었지. 그러나 나는 눈물을 참고 이를 악물고 너에게 말한다. 더 많이 흔들리고, 더 많이 아프길 바란다. 그것이 너를 더 보석으로 만들어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정말 힘들 때면 나를 찾아와라. 그날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매운 짬뽕 먹고, 목욕하고 푹 자자. 그리고 다시 세상과 만나면 되지 뭐. 네가 힘들어하는 그 일들보다 민식이 네가 훨씬 더 큰 존재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왜냐하면 그게 사람이거든. 민식이 너도 분명 사람대접받을 정도로 멋진 내 아들이고 말이야. 이 책에는 힘들어했던 내 제자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어. 참 약해보였지만 지금 제 몫을 아주 멋있게 감당하고 있다. 아! 빨리 함경도에 너랑 함께 갈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너랑 함경도 순대 왕창 먹고 싶다. 너의 앞날에 행운이 함께하길 빈다. 나도 너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고, 너를 사랑한다. 정말 많이 많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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