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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스스로 도서관이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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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8-04 16:02 조회 5,78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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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다. 겉모습이 이렇게 수수한 책을 만난 게 말이다. 종이봉투가 생각나는 얇은 겉표지. 코팅조차 안 되었고, 흰 바탕에 달랑 제목과 지은이 정도만 간략히 적혀 있다. 그마저 다소 촌스러운 보라와 녹색의 2도 인쇄. 아마도 내용이 실한 책일 것이다. 요즘 세상에 이런 얼굴의 책을 만나다니 반가움이 앞선다.

『살아 있는 도서관』이라는 제목보다도 부제가 더 끌린다. ‘천천히 오래도록 책과 공부를 탐한 한국의 지성 23인, 그 앎과 삶의 여정’.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그들의 이름이 가나다 순으로 작게 적혀 있다. 주로 학자들이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이름도 꽤 들어 있다. 고전 열풍을 몰고 온 고미숙,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김형태, 간디학교 교장 양희창, 이슬람을 한국에 다시 소개한 역사학자 이희수 등 각 분야에서 대가의 반열에 오른 이들이다(중간에 두 사람은 OOO으로 이름이 없다. 누굴까? 궁금한 이들은 책을 찾아보기 바란다).

당대 독서가들의 삶을 읽다
북칼럼니스트 장동석은 진보적 성격의 월간 종교잡지 <기독교사상>에 ‘이 사람의 서가 그리고 삶’ 코너를 연재하며 이들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글을 모아 정리하여 책으로 냈다. 작가는 “어려서부터 주변 사람들의 책이 무척 궁금”했고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의 책이 궁금하다”고 하니, 작가와 책의 기획 의도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지성인의 책 이야기가 한데 모여 있다니, 책 좀 읽는다 하는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하다.

주목할 점은 단순히 그들의 서재를 엿보는 일에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책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라는 느낌이랄까? 유명 인사가 추천한 ‘훌륭하신’ 책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그 자체의 이야기가 중심으로 그려져 있다. 고은 시인의 『만인보』가 그토록 긴 수감 생활 끝에 탄생했는지도,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의 한국형 평전이 얼마나 꼿꼿한 역사의식 위에 서 있는지도 예전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앎과 삶의 여정’이라는 부제의 표현이 안성맞춤이다.

목차를 펼치고 어떤 이의 삶을 먼저 엿볼까 행복한 고민에 빠져보아도 좋겠다. 한 명의 인터뷰 분량이 5~7장 정도. 부담 없이 15분 가량 짬 내서 읽을 수 있는 양이다. 하지만 여운은 오래간다. 대가들의 인생 여정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데,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생각거리가 한두 가지겠는가. 양희창 교장의 대안학교를 넘어선 마을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읽을 때에는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옛말이 가슴에 다시 살아난다. 이현우 서평가의 “인생은 책 한 권 따위로 변하지 않는다”는 대목에서는 키득키득 웃음도 나오고, 김찬호 교수의 놀이터가 죽어 있다는 지적은 참으로 신선하다. 또 김용석 교수의 “예수의 죽음은 신을 죽인 우리의 모습을 고발한 것”이란 대목은 잠시 숨을 고르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책과 함께 걷는 삶의 기쁨
한 가지에 대한 다양한 관점 엿보기도 숨은 재미이다. ‘고전’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고미숙 평론가는 고전의 진가를 강조하고, 김용석 교수는 고전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김찬호 교수는 고전은 인류 공통의 관심사이며, 정진홍 교수는 되읽음이라는 고전의 성격을 말하며 고전 읽기의 문화를 강조한다. 이렇듯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온 이들의 고민과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겠다.

내용뿐 아니라 가독성을 높인 편집도 눈에 띈다. 인물의 핵심적인 사상과 추천 책은 보라색으로 표시하여 한눈에 확 들어온다. 오른쪽 페이지 쪽수 아래에는 누구의 인터뷰인지를 다시 밝히고 있다. 수십 명을 담다 보니, 혹시 독자가 지금 누구 인터뷰를 읽고 있는지 헷갈릴 것을 염려한 세심함이 엿보인다. 중간 중간에 들어 있는 인물 사진 역시 표정이 참 살아 있다. 사진 참 잘 찍었다. 마치 내가 그를 직접 만나는 듯, 생생함이 전달된다.
본문을 다 읽었다면, 책 뒷부분의 부록 ‘책꽂이’도 꼭 살펴보자. ‘한국의 지성이 사랑한 책 7권’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뷰 가운데 중복 언급된 책을 담고 있다. <사상계>,

<기독교사상>, 『뜻으로 본 한국역사』 등이 그 주인공.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낯선 책도 있지만, 이런 게 진짜 책이구나 싶다. 찾아보기는 또 얼마나 꼼꼼히 작성되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겉모습이 아니라 내용이 진짜인 책을 읽고 싶다면 주저 말고 『살아 있는 도서관』을 펼쳐 볼 것. 단, 메모지와 연필을 준비하고 읽어야 한다. 한국의 지성 23인과 함께 읽고 싶은 책들이 자꾸자꾸 생겨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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