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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항상 아픈 연애를 선택하는 시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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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7-07 20:17 조회 6,09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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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핸드폰 메시지가 도착했다.
“쌤, 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휴… 또 시작이다. 그 놈의 연애가 지겹지도 않은지 끝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번에 만난 오빠는 이제까지 만난 사람들이랑 달라요… 선생님도 아는 사람이에요…”
순간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그래서 “00이지?”라는 답장을 보냈다. 시내는 내가 그렇게 맞춘 것이 너무 신기해서 소름까지 돋았다며 호들갑이다.

시내도 내가 좋아하는 아이이고, 00도 내가 좋아하는 아이이다. 그런데 둘이 사귄다는 것은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에 익숙한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이 하는 사랑은 쉽게 자신들이 익숙한 방법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내에게 티를 낼 수는 없는 일이다.
빨리 잠을 자야하는데 시내의 문자는 끊임이 없다.
“사실 친구들도 다 말려요. 그런데 오빠가 착한 건 선생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저한테도 얼마나 잘해 주는지 몰라요.”
우선 “네가 좋다니 나도 좋다.”라고 보낸 후에, 친구들이 말리는 이유에 대해 같이 고민해 보고 내일 학교에서 이야기해 보자고 하며 문자를 마쳤다.

아이들에게 다가온 연애는…
교육복지실 아침은 어제 있었던 이야기로 분주하다. 어제 본 드라마 이야기, 컴백한 가수의 노래 이야기… 자세히 들어보면 모두 사랑 이야기이다. 슬쩍 시내 곁에 앉아서 아이들의 대화에 함께하였다.
시내 : 정말, 그런 남자는 없는 거겠지?

희영 : 텔레비전이니까. 니 주위를 봐봐 다 찌질한 남자들이잖아. 우린 아마 평생 그런 사람이랑 사귀진 못할 거야.
정희 : 사귀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가까이에서 볼 수만 있으면 좋겠다. 김수현이 뭘 해달라면 다 해줄 텐데… 하긴 시내는 예쁘니까 혹시 모르지만…
시내 : 외모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이제까지 만난 남자들을 보면 다들 그래. 동갑은 유치하고, 오빠들은 좀 그렇고…
희영 : 아무튼 있는 것들이 더한다니까.
나 : 하하. 그래서 현실과 이상은 다른 것이라고 하는 건가봐.
시내 : 사귀는 건 힘든 일 같아요. 좋은 건 잠시예요. 계속 신경 쓸 일이 더 많고, 감정 때문에 시간낭비하고…
나 : 그런데 계속 사귀는 것을 꿈꾸잖아.

시내 : 전 제가 먼저 좋아해서 사귀는 일은 없었어요. 다들 남자 쪽에서 먼저 사귀자고 해서 좋아진 거지.
정희 : 그건 니가 문제야. 넌 왜 그리 자신이 없어? 내가 너만큼 예쁘고 몸매 좋으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사귀겠다.
시내 : 나 뚱뚱해. 그리고 나보다 예쁜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이들의 말대로 시내는 예쁜 아이였지만 자신감이 없었다. 매번 연애할 때마다 “저 같은 걸”이라고 하며 자신을 좋아해 주는 것이 신기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끊임없이 상대에게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지 확인하려고 하였다. 나는 곁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뿐인데도 지치게 만들었다. 이번 연애도 마찬가지였다.

시에서 만난 연애
시내의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이 의외로 쉽게 아이들 사이에서 나왔다. 교육복지실에서는 간단한 문구용품을 빌릴 수 있는데, 그 대여료는 ‘마음에 드는 시 한 편 읽어 주는 것’으로 받는다. 아이들은 곧잘 읽어주고, 짧은 시는 외워서 교육복지실 문 앞에서 외치고 가위나 칼 등을 빌려간다. 그 중 한 편이 함민복 시인의 「가을」이라는 시였다. ‘당신 생각을 켜 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단 한 줄이지만 그 안에 가슴 설레는 감정이 잘 담겨 있다. 그날도 점심시간에 누군가 A4용지 한 장을 빌려가면서 이 시를 외치고 나갔다.

정희 : 그래, 진짜 사귀는 건 저런 것 같아. 저 시처럼 함부로 하지 않는 것.
시내 : 맞아. 함부로… 오빠들은 내가 자기를 좀 더 좋아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함부로 하는 것 같아.
정희 : 그치, 함부로 쓰면 시가 되지 못하잖아. 노래 가사도 마찬가지야. 뭔가 시 같은 노래 가사들이 있어.
나 : 너히들 정말 멋진데. 이런 엄청난 사실을 스스로 알아내다니.

희영 :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에는 노래 가사를 열심히 듣지 않았는데 요즘 <나는 가수다>나 <불후의 명곡> 같은 것을 보면서 가사를 자세히 듣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정말 눈물이 나는 시 같은 가사들이 많다고 생각하긴 했어. 그런데 사귀는 건 정말 귀찮은 일이야. 하하! 그래도 연애하고 싶다… 이왕이면 <연애시대> 노래 속 이승기 같은 사람으로.
그 이후에도 시내의 연애는 그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금의 변화가 있었다.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조금씩 줄여가고 있었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구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못한다’는 것은 깨달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은 내게 시 한 편을 보여주었다. 도종환의 「우리 모두 아픔에 정직합시다」라는 시였다. 시내는 그동안 자신만 아프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들과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 아픔이 나만의 아픔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형제가 없는 시내는 맞벌이 하는 부모님을 대신하여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할머니 곁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낮에는 혼자 집에 남겨졌다. 부모님은 여전히 바쁘고, 고학년이라 혼자 지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게다가 실업을 반복하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엄마는 항상 더 바쁘게 지냈다. 시내는 항상 불안했고, 든든한 누군가를 필요로 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제 시작이다. 시내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조금씩 성장해 가리라 믿는다.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하여 시인들이 마음에 드는 시어를 고르듯이 시내도 자신의 감정들을 가만가만 들여다보며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 믿어본다.

고정원 중학교 지역사회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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