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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교사 함께 읽는 사람들 - 『나쁜 어린이표』 100만부 판매와 상벌점제가 있는 사회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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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07 21:56 조회 9,74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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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그곳에선 지금 무엇이 필요할까?
: : 박정해 공진중 교사,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 서울 모임원 상벌제란?
제각기 다른 가치관과 기질을 가진 학생들이 함께 지내고, 세대가 다른 교사와 학생이 함께 생활하는 학교는 여러 욕구가 충돌하여 삐거덕거리기 일쑤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개개인의 욕구와 기호를 학교에서 일일이 추어 주기는 힘들다. 그러다보니 규칙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편을 택하게 된다. 그리고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벌을 주려고 한다. 예전에는 ‘벌’이라면 으레 몸에 직접 고통을 주는 ‘체벌’을 의미했지만 체벌의 폭력성과 인권 침해 요인이 문제가 되어 ‘체벌’보다는 ‘상벌제’가 학교 내 질서를 유지하는 대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상벌제는 좁은 의미에서는 동화 『나쁜 어린이표』에서처럼 한 학급의 교사가 학급 내 학생들에게 행동의 잘잘못을 따져 상과 벌을 주는 형태로 시행된다. 먼저 학급 내에서 교사가 혼자서 혹은 아이들과 함께 지켜야 할 규칙을 정한다. 그리고 규칙을 잘 지킨 사람에게는 상점이나 칭찬스티커를 주고, 규칙을 어긴 사람에게는 벌점이나 벌점스티커를 준다. 보통 이 상벌점은 일정한 기한을 정해 놓고 그 결과를 정산해 상이나 벌로 바뀌게 된다.

넓은 의미의 상벌제는 학교에서 전체 교사가 학생들의 행동에 상점과 벌점을 주어 벌점이 누적된 학생들에게는 여러 가지 징계를 내리는 형태로 시행된다. 상점이 벌점을 상쇄할 수 있고, 벌점이 일정 한도가 되면 교내징계나 사회봉사의 순을 밟고, 어느 한도가 넘으면 퇴학 조치를 내리는 순으로 상벌제가 시행되고 있다. 상벌제로 올바른 학교문화 조성할 수 있을까? 상벌제가 체벌을 대신하여 학생들의 학습 및 생활태도를 바로 잡아 올바른 학교문화를 조성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까?

우선, 상벌제가 시행되고 있는 사례를 살펴보면 답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나쁜 어린이표』와 같은 예를 현실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상점과 벌점을 골고루 받지 않는다. 상점을 받는 아이는 계속 해서 상점을 받고, 벌점을 받는 아이는 계속 해서 벌점을 받게 되는 경우가 많다.

벌점은 상점과 상쇄해서 충분히 없앨 수 있는 점수의 의미가 아니라 ‘나쁜 어린이’ ‘문제학생’으로 낙인이 찍히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문제 학생들의 행동이 벌점으로 인해 쉽게 교정되지도 않고 벌점을 상쇄할 만한 상점을 얻기도 힘들다보니 벌점이 많이 쌓여, 정학이나 퇴학, 강제전학 등의 징계를 쉽게 받게 된다. 또한 친구의 문제 행동을 신고하면 상점을 받는 경우도 있어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벌점을 잘 주는 교사에게 걸리느냐, 벌점을 주지 않는 교사에게 걸리느냐에 따라 혹은 어떤 학생이냐에 따라 벌점을 받을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는 불공정한 면이 있다고도 한다.

이런 사례 외에도 ‘상’과 ‘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징을 살펴보더라도 상벌제는 그 자체로 문제가 많아 보인다. ‘상’이나 ‘칭찬’이 가진 교육적인 기능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칭찬이 어떠한 것인가이다. 좋지 않은 칭찬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벌제’에서 주는 ‘상’은 대부분 ‘과정’이 아닌 ‘결과’에 대한 상이다. 그런 상은 주면 줄수록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또 잘못된 행동에 내리는 ‘벌’은 잘못된 행동을 한 즉시 내리는 것이 문제행동 교정에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벌점을 차곡차곡 모아서 한번에 징계를 내리는 방식은 행동 교정에도 효과가 적고, 쌓이는 벌점만큼 자긍심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문제 학생 돕는 상담·교정 프로그램, 교권 보호 필요상과 벌로 사람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은 어렵다.
좋은 결과를 이루어내지 못한 사람에게 패배자라는 낙인을 찍기보다는 좋은 결과를 얻으려 노력했으나 안타까이 실패한 경험을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보며 용기를 북돋워주는 일이 더욱 필요하다. 문제 행동을 자꾸 일으키는 사람을 문제아라 낙인찍어 밖으로 내쫓기보다는 그런 문제 행동을 왜 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상담하고 치료하여 안으로 품어주는 일이 더더욱 필요하다.

그래서 체벌과 상벌제보다는 학교 안에 전문상담사를 배치하고, 성찰교실을 운영하여 문제 학생의 상담과 행동 교정을 돕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서울시의 경우에는 2010년 11월 전면적으로 체벌 금지를 시행하면서 성찰교실과 전문상담사 배치를 병행해서 운영하고 있는 학교들이 많이 늘어났다. 성찰교실은 일시적으로는 수업 시간에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학생을 수업에서 격리시키는 역할도 하고, 장기적으로는 지속적인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학생에 대해 집중적인 상담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성찰교실에서도 지도가 어려운 학생은 외부 기관과 연계해서 상담을 하거나 사회봉사를 실시할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마련되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이런 외부 기관이 적어서 적절한 시기에 도움을 받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다.

아이의 문제 행동은 학교에서만 생겨난 것이 아니다.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의 속을 들여다보면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아이의 문제 행동을 교정하고 심리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부모님이 함께 상담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 행동을 일삼는 아이들 중에서는 가정에서 방치되거나 학대 당해서 가정으로부터 도움을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들을 품어주기 위해서는 사회가 나서야 한다. 위기에 처한 청소년을 돕기 위한 기관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져야 하고, 이런 기관과 학교나 지역사회를 긴밀히 연결시켜 줄 수 있는 고리를 복지사나 전문상담사를 통해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아이의 문제 행동을 학교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학생이나 그런 학생의 부모 중에는 학생의 문제보다는 그것을 문제 삼는 교사를 비난하는 경우도 많다. ‘체벌’이나 ‘상벌제’와 같은 통제 수단을 놓아 버린 교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무엇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권리를 지킬 수 있을까? 그 해답은 교사의 권위를 높이 세우는 데 있을 것 같다. 교권은 내부적으로는 교사 개인이 전문성 신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학생들과의 교감을 바탕으로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을 때 세워진다고 본다. 외부적으로는 교권을 보호하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 정당한 지도를 하는 교사에게 불손한 언행을 하는 학생이나 학부모에게는 불이익을 주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 전혀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음을 깨닫게 해야 한다. 사회에서도 교사에게 불손한 언행을 하는 것이 비도덕적인 일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를 향한 비난이 난무하는 이 시대, 학교와 교사를 지켜보는 따뜻한 지지어린 시선이 그립다.



『나쁜 어린이표』 백만부 판매의 의미
:: 이선주 어린이책 공룡트림(인권교육센터‘들’ 어린이책 소모임)
이번 토론회가 던진 질문, “『나쁜 어린이표』가 100만부 넘게 팔렸는데, 왜 상벌점제는 강화되고 있을까?”라는 문제를 풀어볼까 한다. 이 질문이 포함하고 있는 몇 가지 전제를 풀어 보면, (1)『나쁜 어린이표』는 상벌점제에 대한 문제의식과 비판의식 속에 만들어진 책이다, (2)10년 동안 100만부가 팔릴 만큼 꾸준히 읽혀왔다는 것은 그만큼 상벌점제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이 높아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줄 수 있다. (3)어린이책은 어린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적 기능을 갖는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어린이책’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고려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지 않고, 단지 어린이들이 읽을 추천도서 목록 속에서만 자리하고 있다는 것으로 볼 때, 『나쁜 어린이표』 100만부 판매는 기뻐할 일이 아닐지 모른다. ‘『나쁜 어린이표』가 오랜 시간 현실성을 갖고 읽힐 수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로 질문을 바꿔 보면 어떨까. 어린이들은 왜 건우가 선생님의 나쁜 어린이표를 변기에 넣고 눌러 버리는 순간 통쾌함을 느끼는지. 그 통쾌함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하다는 의미가 말하는 현실은 무엇인가를 살펴볼까 한다.

1. 『나쁜 어린이표』가 던진 질문
얼마 전 열 명이 넘는 어린이들과 ‘폭력’에 대해 대화를 나눈 일이 있다. ‘폭력’하면 떠오르는 단어를 말해보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주저 없이 내뱉은 말은 ‘학교’, ‘공부’, ‘선생님’, ‘교과서’ 등이다. 어린이들은 일상적으로 자기 자신과 학교, 교사, 교과서 사이에 큰 간극을 인지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매일 느끼며 살고 있다. 주로 어른이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그 말을 따라야 하는 것을 매우 부당하게 여기고 있으며, 그것을 ‘폭력’이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나쁜 어린이표』가 의미 있는 점은 어린이와 교사 사이에 느끼는 갈등과 대립을 과감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 건우의 일인칭 시점이 어린이의 입장을 보여주는데 매우 효과적인 장치였다. 어른들은 ‘문제’라고 보고 있는 행동을 건우 입장에서 보면 ‘문제’가 아니라 그만한 ‘사정’이 있는 일이다. 이 책이 가진 강점은 어린이 입장에 서서 현실을 보여주고 교사의 그릇된 점을 지적하여 고쳐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나쁜 어린이표』 백만 부 판매는 학교와 교사가 어린이에 대해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쁜 어린이표』 백만 부 판매는 그만큼 사회의식이 높아질 수 있는 계기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변함없이 어린이를 구속하고 통제하고 있다고 읽어낼 수 있는 코드일지 모른다.

2. 『나쁜 어린이표』가 던지지 못한 질문
『나쁜 어린이표』가 상벌점제에 대한 문제의식과 비판의식 속에 만들어진 책인가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나쁜 어린이표』는 벌점제도에 대해서는 비판의식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칭찬스티커 등 어린이 행동을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상벌점제’ 전체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교실에서 유일하게 권력을 쥐고 있는 존재가 교사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일수도 있다는 지점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칭찬을 하거나 벌을 준다는 것은 힘을 가진 누군가가 그렇지 않은 누군가에게 부여하는 일방향적인 것이다. 교사의 일방적인 판단에 따라 ‘나쁜 어린이표’를 주기도 하고 ‘착한 어린이표’를 주기도 하지 않는가. 어린이들은 그런 교사의 판단과 규칙에 따르도록 결정되어 있기만 하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불균등 문제를 탐색하고 있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교사가 어린이에게 온정을 베푸는 식의 훈훈한 스토리로 끝나고 말았다. 그런데 난 이런 문제의식이 가진 한계를 『나쁜 어린이표』에 돌리고 싶지는 않다. 『나쁜 어린이표』가 나온 후 10년 동안 새롭고 도전적인 작품이 나오거나, 혁신적인 어린이관이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것이 더 문제적이라 보인다. 어린이책 작가뿐 아니라 평론가, 시민활동가가 모두 함께 도전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된다.

3. 어린이책이 사회성을 갖기 위해서
문학, 소설이 벗어남의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볼 때 어린이책 그 중에서도 아동문학은 지금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가 물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쁜 어린이표』를 열 번 넘게 읽었다는 어린이는 어른이 권장도서라고 추천하는 이유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읽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나쁜 어린이표』가 어린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해방감을 선사한 것이 사실이지만, 적당한 타협점을 찾고 있는 스토리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작’이 되지는 못했다는 한계도 있다. 어른들이 모두 적극적으로 동의하여 추천도서로 올리는 책보다도, 모든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읽히기를 거부했던 『삐삐롱 스타킹』이 세상의 관점을 바꿔 놓는 역할을 했다는 것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상벌점제는 어린이관과 관련이 깊다. 어린이는 미성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통제가 필요하며, 교사의 지시에 따라 학교 수업에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전제가 있는 한 온갖 통제 수단이 개발될 수밖에 없다. 어린이가 겪는 감정적 어려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입장은 숨겨져 있고 고려되지 않는다. 어린이책이 어린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성을 갖기 위해서는 어린이 입장에 서서 스토리를 전개할 수 있는 과감한 도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 한 권이 세상을 모두 바꿀 수는 없지만 어린이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조금씩 바꿔내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착한 선생님’과 ‘괜찮은 교사’ 사이, 가축과 학생사이
: : 둠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학생들에게 강요되는 ‘착함’은 문제가 없을까?
참 오랜만에 다시 『나쁜 어린이표』를 읽고 나서 내가 처음 느낀 감정은 분노였다. 책장 넘기기가 버거웠다. 학교이기 때문에, 그것도 초등학교이기에 더욱 더 심한 인권침해의 풍경들이 줄곧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책에 나오는 건 아주 전형적인 초등학교의 풍경이다. 그나마 자기가 좀 괜찮다고 생각하는 교사가 어렵게 어렵게 아이들을 때리지 않겠다고 결심하고는 상벌점을 부과한다. 학생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상벌점의 노예가 돼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때리지 않는 게 어디냐, 감지덕지 하면서. 상벌점의 이름도 참 어이없다. 착한 어린이표, 나쁜 어린이표. 그저 실수 한 번 하고, 숙제 한번 깜빡한 학생을 ‘나쁜 사람’으로 취급한다. 그저 주의력이 조금 부족하고 기억력이 안 좋은 사람을 우리 사회에서는 ‘나쁜 사람’이라고 하던가? ‘나쁜 놈’이 요즘세상에 욕의 범위 안에 들어가던가? 학교가 아닌 곳에서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게 보이지만 초등학교에서는 일상이다. 학생에게 강요되는 그런 편집증적인 ‘착함’에 대한 강박은 인권침해이다.

교 사 는 교 실 의 절대자, 학 생 은 ?
내가 더욱 화나는 것은, 이 초등학교의 교실이라는 공간이, 학생들이 교사와 대등한 인간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움직인다는 것이다. 착하고 나쁨은 이미 상관없는 것이고, 권력자의 말을 듣는 건 착한 행동, 권력자의 비위를 거스르는 것은 나쁜 행동인 것이다. 이런 상벌점제를 통해서 학생들은 선과 악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를 내면화한다. 때리거나 욕하는 건 나쁜 행동, 숙제나 발표를 잘 하는 건 착한 행동. 착한 것 아니면 나쁜 것.

덤으로 누군가를 권력자에게 고자질해서 남이 잘 되지않기를 바라는 것을 습관처럼 만든다. 진짜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일을 했다고 해도, 그 반성은 공동체에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공부라는 개인적인 징벌로 이루어진다. 결국 학생들에게는 잘못한 내용이 중요한게 아니라 남아서 공부해야 하는 괴로움이 중요한 것이 되고 만다. 그곳에는 각자의 고민과 선택과 이유가 사라져있다. 아무도 맥락과 이유를 묻지 않는다. 어린 학생들은 같이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아니라 교정하고 바로잡아주어야 할 어린 아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왜 건우는 나쁜 어린이표를 버린 다음, 살인이라도 저지른 것 마냥 공포에 떨었을까? 스티커 한 뭉치 갖다버린 걸로 ‘학교에 다닐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보통 사회에서 자신들을 억압하는 물건이나 제도를 없애는 것은 저항이고 혁명인데. 교사와 학생의 하늘과 땅 같은 권력관계 때문일 것이다. 어떤 게 착한 행동인가? 진정 내가 한 행동은 나쁜 행동인가? 이런 질문은 필요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걸 정하는 건 교실의 절대자인 교사이기 때문이다.

나는 줄곧 교사의 자의적 기준에 의해 ‘나쁜 어린이’로 낙인찍히고 괴로워하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그것마저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나쁜 어린이표’를 찢어버린 것을 용서받고 기뻐하는 그 기분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건우에게도 교사는 할 수만 있다면 친해지고 싶은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건우의 ‘나쁜 선생님표’는 서로서로 점수매기고 평가하는 교실 속에서 그 이외의 탈출구를 찾지 못해서 결국은 똑같은 식으로 권력자가 되고 싶은 약자의 슬픈 흔적이다.

교사는 학생들을 자기 마음대로 평가하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한 것에 대한 어떤 공식적 사과도 없이, 잘못을 한 건우를 용서하고 어린이의 상처받은 마음도 이해할 줄 아는, 아량 넓은 착한 교사로 승격한다. 학생의 저항을 ‘우리끼리의 비밀’로 만들어 잠재우는 것. 그렇게 이 이야기는 ‘잔혹사’에서 ‘감동적인 동화’가 된다.



교사와 학생, 대등한 관계가 되어야
이 책은 상벌점제가 나쁘다고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교사의 입을 빌려 ‘나쁜 어린이표가 없어졌으니 애들가르치기가 더 어려워 질’ 거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학생도 교사와 동등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그저 가축에 가까운 지위의 학생에게 좀 더 ‘착한’ 대우가 필요하다는 정도에 불과하다. 학생을 어떻게 지도하는 것이 올바른가를 고민하기 전에,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생은 어떤 존재인지 먼저 물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당장은 좀 더 융통성 있고 학생들을 배려하는 착한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말할 시기는 이제 지났다. 이제 학생과 청소년을 대등한 인간이라 생각할 줄 아는, 아주 기본적 상식을 갖춘 괜찮은 사람, 괜찮은 교사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 과격한 발제를 참 많이 불편해 할 많은 어른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하지만 어른들이 생각하는 ‘좋은 마음에서’ 하는 많은 행동들은 많은 경우 학생과 청소년의 인권을 너무도 쉽게 침해할 수도 있다. 그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부터 앞장서서 이제는 ‘학생과 청소년에게도 좋은 지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 나누기’를 요구한다.

상벌제에 대한 문제 제기에 그친 『나쁜 어린이표』
:: 박순혜 서울 영일초 사서교사
『나쁜 어린이표』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하게 팔리고 읽힌 스테디셀러의 자리에 올랐다. 그만큼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를 주제로 다루고 있으며, 다양한 상벌제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또한 책에서 제기한 문제는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었고 교실 현장에 대한 반성으로도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어린이표의 또 다른 형태인 상벌제가 학교에, 교실에 여전히 남아있다. 그 원인을 책 안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1. 작가의 시선
『나쁜 어린이표』는 작가가 초등학교 시절 만났던 선생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학생이 집에 가겠다고 나설 때까지 말없이 기다려주고, 학생을 믿고 교실과 책꽂이를 맡겼던 선생님 이야기이다. 선생님께서 주신 열쇠(기다림과 믿음)로 아이가 성장하고, 세상의 다른 문을 열 수 있었으며 아직도 그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덧붙여 작가는 교사라면 기다림과 믿음으로 아이를 가르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작가는 왜 책 속의 건우 선생님과는 상충되는 선생님 이야기로 시작 했을까? 오늘날의 교사들은 기다림과 믿음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작가는 출발선에서부터 교사에 대해 신뢰가 부족한 채 부정적인 시선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2. 문제제기를 위한 극단적인 장치
-교사로서 고민 하지 않는 선생님
이야기 속에 건우는 있지만 선생님은 없다. 그리고 건우의 눈에 비친 선생님은 선생님으로서의 어떤 역할도 하고 있지 않다. 아이에 대한 관심이나 상황파악에 대한 의지는 전혀 없고, 자의적으로 판단함으로써 공정하지도 않으며, 규칙이나 기준도 마음대로인 절대 권력자일 뿐이다. 아이들에게 나쁜 어린이표로 낙인을 찍어 상처만 주고 아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스티커를 남용하고 있는 괴물 같은 선생님만 있을 뿐이다.

선생님은 정말 건우가 본 것처럼 교사로서 아무 고민 없이 자신의 편의만을 위해 나쁜표를 남용했을까? 나쁜표 제도의 시작은 체벌을 절대 하지 않겠다는 선생님의 의지에서부터였으며, 나쁜표를 받게 되는 기준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생각도 들어 있다. 그러나 이 동화 속 선생님은 한 가지 모습만 가진 아주 평면적인 인물이다. 선생님은 건우의 눈에 비쳐진 모습이 전부이고, 건우의 입장에서만 풀어내고 있기에 선생님의 생각과 고민은 스쳐지나가듯 한두 줄로만 나타나고 있다.

고민 없는 절대권력자로만 그려진 선생님은 상벌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위해 이용한 극단적인 장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극단적인 장치로 인해 문학작품으로서의 완성도는 떨어졌다. 게다가 상벌제 운영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교육관계자들의 공감과 반향을 불러일으키기에는 부족했다.

3. 개연성이 부족한 급반전과 마무리
나쁜 선생님표가 적힌 수첩과 스티커를 모두 버린 건우로 인해 바로 반성하는 선생님의 모습은 적잖이 실망스럽다. 아이들이 쉽게 읽게 하려고 축약해 놓은 명작이나 고전을 읽는 느낌이었다.

건우가 화장실에 숨어있었던 4시간과 선생님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모습들이 있기는 했지만 선생님은 너무 빨리 반성하고 이야기는 너무 빨리 마무리 된다. 교사로서 고민하지 않던 절대 권력자가 심경의 변화 없이 갑작스럽게 반성하는 모습에 공감할 수 없었다. 선생님이 인간적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조금 더 보여 주었다면, 통쾌함만 있는 반전이 아니라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결말이었다면 이 작품이 사회적으로 더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나쁜 어린이표』 누가 읽어야 하나?
:: 변춘희 어린이책시민연대 강사팀
1999년에 쓰인 나쁜 어린이 표가 10여 년 동안 100만부가 팔렸다. 10년 동안 꾸준히 읽히고 있는 데는 좋은 어린이책을 알리는 여러 단체의 활동과 학교의 권장도서목록이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권장도서목록은 교사나 어린이 책을 읽는 어른이 어린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말하는데 어른들은 『나쁜 어린이표』에서 아이들과 어떤 공감을 하고 싶었을까?
작가는 건우의 입을 빌려 나쁜 어린이표가 나쁘다고 말하고 있다. 나쁜 어린이표를 사용하는 것은 어른이고 아이들은 나쁜 어린이표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데, 어린이에게 『나쁜 어린이표』를 권하고 있다. 나쁜 어린이표를 받더라도 나쁜 아이가 아니라고 꿋꿋이 견디라는 것인지 선생님에게 나쁜 선생님표를 줘서 선생님들이 나쁜 어린이표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인지 이 책을 읽은 어린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나쁜 어린이 표는 나쁘다. 그러나…
책에서 선생님은 건우가 나쁜 어린이표를 화장실에 버린 일을 ‘남의 물건에 손대는 일’이라며 진짜 나쁜 일이라고 했다. 건우가 나쁜 어린이표를 가져간 일이랑 선생님이 나쁜 선생님 표를 받은 일을 비밀로 하자고 했고 그 말에 건우는 기분이 좋아졌다. 건우는 나쁜 어린이표를 훔친 일을 비밀로 하고 싶고 선생님은 나쁜 선생님표 받은 걸 비밀로 하고 싶은가 보다. 선생님은 건우에게 나쁜 선생님표를 받고서 비로소 나쁜 어린이표가 나쁘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건우가 나쁜 선생님표를 쓴 것도 잘못이고 건우가 스티커를 버린 일도 잘못이라면 선생님은 나쁜 어린이표가 나쁘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선생님은 나쁜 어린이표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건우 덕분에 애들을 가르치기가 더 힘들어졌다며 2학기 때는 반장이 되어 반을 이끈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아보라고 한다. 나쁜 어린이표를 받을까봐 나쁜 어린이표 받는 친구와 놀지도 않고, 선생님이 나만 미워하는 것 같아 학교가기도 싫어지고, 친구를 고자질하고, 준비물을 가져다 달라고 엄마에게 화를 내고, 엄마와 관계를 비틀고,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게 하는 나쁜 어린이표는 정말 나쁘다. 이렇게 나쁜데 나쁜 어린이표 없이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힘들다니 무슨 아이러니인가?

나쁜 어린이표 없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가능해야 한다
건우는 나쁜 어린이표를 생각해 낸 사람이 분명 끔찍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금세 상벌 스티커에 맞추어 생활하려고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상벌의 기준으로 판단하게 된다. 건우는 나쁜 어린이표를 받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나쁜 어린이표와 착한 어린이표를 받을 만한 일을 적어 놓기까지 한다. 나쁜 어린이표가 늘어나자 혼자만 나쁜 어린이표를 받는 게 억울해서인지 고자질한 친구나 엄살 부리는 친구도 나쁜 어린이표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선생님의 행동에도 나쁜 선생님표를 주기 시작한다. 사람의 행동을 좋고 나쁨으로 평가하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자신1999년에 쓰인 나쁜 어린이 표가 10여 년 동안 100만부가 팔렸다. 10년 동안 꾸준히 읽히고 있는 데는 좋은 어린이책을 알리는 여러 단체의 활동과 학교의 권장도서목록이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권장도서목록은 교사나 어린이 책을 읽는 어른이 어린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을 말하는데 어른들은 『나쁜 어린이표』에서 아이들과 어떤 공감을 하고 싶었을까?

작가는 건우의 입을 빌려 나쁜 어린이표가 나쁘다고 말하고 있다. 나쁜 어린이표를 사용하는 것은 어른이고 아이들은 나쁜 어린이표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데, 어린이에게 『나쁜 어린이표』를 권하고 있다. 나쁜 어린이표를 받더라도 나쁜 아이가 아니라고 꿋꿋이 견디라는 것인지 선생님에게 나쁜 선생님표를 줘서 선생님들이 나쁜 어린이표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인지 이 책을 읽은 어린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나쁜 어린이 표는 나쁘다. 그러나…
책에서 선생님은 건우가 나쁜 어린이표를 화장실에 버린 일을 ‘남의 물건에 손대는 일’이라며 진짜 나쁜 일이라고 했다. 건우가 나쁜 어린이표를 가져간 일이랑 선생님이 나쁜 선생님 표를 받은 일을 비밀로 하자고 했고 그 말에 건우는 기분이 좋아졌다. 건우는 나쁜 어린이표를 훔친 일을 비밀로 하고 싶고 선생님은 나쁜 선생님표 받은 걸 비밀로 하고 싶은가 보다. 선생님은 건우에게 나쁜 선생님표를 받고서 비로소 나쁜 어린이표가 나쁘다는 걸 알게 된다. 하지만 건우가 나쁜 선생님표를 쓴 것도 잘못이고 건우가 스티커를 버린 일도 잘못이라면 선생님은 나쁜 어린이표가 나쁘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선생님은 나쁜 어린이표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건우 덕분에 애들을 가르치기가 더 힘들어졌다며 2학기 때는 반장이 되어 반을 이끈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아보라고 한다. 나쁜 어린이표를 받을까봐 나쁜 어린이표 받는 친구와 놀지도 않고, 선생님이 나만 미워하는 것 같아 학교가기도 싫어지고, 친구를 고자질하고, 준비물을 가져다 달라고 엄마에게 화를 내고, 엄마와 관계를 비틀고,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게 하는 나쁜 어린이표는 정말 나쁘다. 이렇게 나쁜데 나쁜 어린이표 없이는 아이들을 가르치기 힘들다니 무슨 아이러니인가?

나쁜 어린이표 없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가능해야 한다
건우는 나쁜 어린이표를 생각해 낸 사람이 분명 끔찍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금세 상벌 스티커에 맞추어 생활하려고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상벌의 기준으로 판단하게 된다. 건우는 나쁜 어린이표를 받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나쁜 어린이표와 착한 어린이표를 받을 만한 일을 적어 놓기까지 한다. 나쁜 어린이표가 늘어나자 혼자만 나쁜 어린이표를 받는 게 억울해서인지 고자질한 친구나 엄살 부리는 친구도 나쁜 어린이표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선생님의 행동에도 나쁜 선생님표를 주기 시작한다. 사람의 행동을 좋고 나쁨으로 평가하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자신을 맞추게 되는 상벌 스티커에 건우도 익숙해진 것이다.

교육이 선생님의 상벌로 이루어지게 되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 싸움을 하고서 벌을 받으면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어진다. 잘못에 대해 이미 벌을 받았으니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 잘못에 비해 벌이 과하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상대를 원망하게 된다. 상도 잘한 일에 대해서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는데, 상으로 보상 받다보면 다른 사람의 칭찬이나 대가가 없으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또 대가가 없는 일을 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상벌점제로 평가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아를 실현하는 교육 건우는 나쁜 선생님표 수첩을 선생님에게 들키자 선생님이 어떤 벌을 줘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이 남의 것을 마음대로 없애는 진짜 나쁜 일(나쁜 어린이표 스티커를 변기에 버린 일)을 이쯤에서 그만 두자고하자 자신이 용서 받았다고 좋아한다. 선생님이 나쁜 선생님표를 받아 수첩에 끼우는 걸 보고 선생님께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고, 선생님이 자신의 드라이버를 사용한 걸 뿌듯해 한다. 좋은 어린이표와 나쁜 어린이표를 통해 선생님은 학생에게 절대적인 권위자가 되어 있다.

교육은 남과 더불어 살면서 주체적으로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지 남의 잣대에 자신의 행동을 맞춰야 하는 수동적 자세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규칙에 대해 친구와 선생님과 얘기하면서 더 나은 규칙을 찾고 새로운 규칙을 제안하는 일은 학생도 가능한 일이어야 한다. 그러나 상과 벌로 학생들을 규제한다면 적극적으로 자기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자율적으로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따라서 상벌점제로 평가하지 않는 교육을 해야 한다.

『나쁜 어린이표』는 선생님과 어른들이 읽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나쁜 어린이표』를 어린이에게 좋은 책이라고 권하고 있다. 초등학생 때 『나쁜 어린이표』를 읽은 아이들은 중·고등학생이 되었다. 초등학교 때는 나쁜 어린이 표가 나쁘다고 배웠는데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나쁜 어린이표의 연속인 상벌점제가 강화되고 있다. 어린이에게 이 책을 함께 읽자고 권한 어른들이라면 학교 현장의 상벌점제를 그저 묵인해서는 안 된다. 초등학교 3학년 건우에게만 나쁜 어린이표는 나쁘니까 네가 어떻게든 나쁜 어린이표를 없애도록 꿈틀거리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는가?

체벌 금지 이후 학교에서는 새로운 대안적 벌을 찾으려 한다. 체벌금지는 단지 때리는 걸 하지 말자는 제안이 아니라 벌이라는 교육적 방법에 대한 새로운 교육적 대안을 찾으려는 제안이다. 벌을 피하는 방법을 찾으려하지 말고 더불어 생활하는 공간을 가꾸어 나갈 방법을 주체적으로 찾자는 제안이다.

『나쁜 어린이표』가 새로운 교육에 대한 제안을 하지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나쁜 어린이표가 나쁘다는 공감은 널리 퍼뜨렸다. 이런 공감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에게 필요하다. 앞으로 『나쁜 어린이표』는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들이 읽어야 한다. 어린이에게 책을 권하는 어른들이 어린이 책을 읽는 일은 중요하다. 또한 현실을 책 속의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 가는 일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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