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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교사들의 저항과 희망의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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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7-07 20:01 조회 7,29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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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일본에서 일어난 후쿠시마 지진 및 원전 사고를 사고중심으로 봐야 하는가 혹은 사람중심으로 봐야 하는가? 나에게 익숙한 시선은 사고중심이서 그동안 ‘후쿠시마 지진·원전’ 사고로 기억할 뿐이었다. 그러나 사람중심으로 보니 그 사고로 인해 2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2만여 건의 사고’였다. 끔찍하고 처절함의 강도가 더 심하게 다가온다. 왜일까? 2만여 명의 각각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삶 속에서 그 사고를 만났고 서로 다른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에선 그때 사고가 있었던 곳에서 발견된, 주인을 잃어버린 27만 장의 사진이 전시됐다. 사고로 사라진 줄 알았다가 돌아온 사진은 단 한 장도 같은 게 없고 모두 소중한 삶의 흔적들을 담고 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학교를 고민한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어도 그 안에는 수백의 다른 심장이 뛰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은 서로 다른 난제이고, 서로 다른 과업이며, 서로 다른 염려와 관심을 베풀어야 할 대상입니다.” 폴란드 교육자 야누슈 코르착은 「각각의 심장이 품고 있는 서로 다른 난제들이 똑같은 교복에 갇혀 있습니다」라는 글에서 아이들은 각각의 서로 다른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만나야 할 대상이라고 이야기한다.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이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고 있을까? 교사들의 이야기인 『나는 왜 교사인가』를 펼치면서 교사는 학생과의 관계에서 학생 개개인을 만나고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저자인 윤지형 교사는 지난 2002년부터 2010년 사이에 걸쳐 전국을 돌아다니며 인터뷰한 교사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더불어 길게는 10여 년이 흐른 지금, 당시 인터뷰이였던 교사들은 자신들의 열정적인 삶의 모습이 어떻게 전개되어 변화, 성장했는지를 편지글로 직접 이야기하고 있다. 책은 교사들의 이야기를 3부로 나누어 들려주고 있다. 이 땅에서 교사로 사는 것은 ‘어쨌든 아이들이 좋’아서라고 한다. 아이들의 삶에 깊이 들어가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야기를 1부에 담았다. 2부 ‘교사로 산다는 것’으로 들어가면 교사들의 좀 더 치열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마지막 3부에서는 ‘바람에 맞서기도 하고 바람이 되’어 그들의 절실한 몸짓으로 교육 불가능의 현실에서 래디컬radical해질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 교사는 교직을 사람의 삶을 어루만지는 일이라고 한다. 그것이 강요와 억압이 아닌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학교가 우리 아이들의 몸을 다루고, 또 학교 일과 중에 아이들이 자신의 몸을 해방시킬 수 있는 시간을 보면 참담하다. 자신의 몸과 시간을 쓰는 것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인권이 교문 앞에서 멈춘 이상 삶이 건강할 수 있다는 게 요원한 일이지 싶다. 그럼에도 교사들은 ‘선생님과 학생들의 행복한 만남이 있는 공동체로서의 학교’를 고민한다.

학교는 교사들에게도 인권 사각지대
“교직사회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기적이고 가장 편안한 월급쟁이 집단으로 전락해버린 건 아닐까요?”라고 자문하는 한 교사는 ‘세상과 교육문제에 얽힌 모순과 악을 보고 마땅히 분노’해야 함을 강조한다. 한때 폭력으로 일관한 어느 교사, 한 졸업생이 찾아와 “선생님, 아직도 애들을 무자비하게 때리세요?” 했다는데, 그전까지 동료교사들이 잘한다고 해서 그저 자신이 잘하는 줄로만 알았던 그는 그 졸업생의 말에 머릿속이 하얘지고 온 몸이 굳었다. 미안한 마음에 한없이 울었다고 한다. 교사들은 이렇게 ‘세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딛으며 아이들과 함께 또 다른 성장을 하고 있었다. 전문계고에서는 학생의 현장실습을 ‘노예노동’이라고 부른다. 장시간 노동에 저임금, 인권침해가 일상적으로 이뤄지기 때문. 정부의 ‘전문계고 취업기능강화 사업’은 노동조건을 더 열악하게 만들고 있다. 결국 한 교사의 삶은 학교 안뿐 아니라 밖에서의 청소년 인권, 나아가 청소년 노동인권 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지방 작은 학교의 한 가정교사는 ‘가정선생을 가정부로 생각하는 학교’에서 하루하루 고통과 좌절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다른 선생들이 밤참을 먹은 날이면 다음날 학교 밖 우물까지 나가 그릇을 씻어야 했고, 추석에 선생들에게 줄 떡을 교장의 지시로 가사 실습 때 만들어야 했을뿐더러, 운동을 마친 남자 선생들의 술안주 요리 요구 등 학교는 가히 폭력적이었다. 학교의 이런 풍토에서는 아이들 삶을 시험이라는 올가미로 목 졸라 망가뜨리고, 교사의 모든 자발적 교육 활동조차 점수 매기는 교원평가가 현실화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학교는 아이들에게도 교사들에게도 인권의 사각지대임이 틀림없다. 그래서일까, 교사들은 ‘래디컬한 인문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지 싶다. 교사들은 반인권적이고 비합리적인 학교 운영에 대한 저항을 멈출 수 없다고 한다. 사람다운 삶의 공동체를 향한, 우리 교육을 위한 교사들 희망의 몸짓에 절실함이 묻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육용희 어린이책시민연대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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