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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영상읽기] 다름을 인정하라! 차별과 편견을 깨우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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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9-01 06:36 조회 9,61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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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돈 부산국제영화고 교사, 전국영상미디어교육협의회 회원

얼마 전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구직자 10명 중 4명은 외모로 인해 차별을 받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외모가 삶의 행복 지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우리 사회 차별의 정도가 이 정도로 심각할 거라고는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 외모에 대해 느끼는 차별이 이럴진대 태어나면서부터 차별의 장벽을 안고 살아야 하는 장애인들이 느끼는 정도는 오죽할 것인가? 2008년에 그나마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어 우리 사회 장애인의 존엄과 기본적 평등권이 어느 정도는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인종이나 빈부격차, 외모 등 아직도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차별은 사회 곳곳에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각박해져도 이번에 소개할 영화들 속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따뜻한 시선으로 주위 사람들을 보듬고 함께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외모든 장애든 기타 다른 부분에서 그들을 동정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다만, 나와 조금 다를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공동체로서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차별과 편견에서 깨어나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인 것이다.

아름다워서 더욱 슬픈 샴쌍둥이에 대한 동화 <복숭아나무>

‘관객 수가 많아야 좋은 영화다’라는 등식은 너무 상업적이다. 불과 3만 명 남짓의 관객이 보았어도 그 메시지가 강렬하다면 누군가에게 그 영화는 좋은 영화로서 역할을 한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구혜선 감독의 <복숭아나무>가 그렇다. 처음 영화를 대하는 순간, 아직 여물지 않은 듯한 구성과 샴쌍둥이라는 불편한 소재에 대한 반감이 앞섰지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는 분명 아름다운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얼짱 출신이면서 작가, 화가, 작곡가, 배우까지 만능 엔터테이너의 재능을 지닌 구혜선. 그녀의 두 번째 장편 영화이기도 한 <복숭아나무>는 작품 외적인 평가가 어떻든 몰입해서 보다 보면 분명 던지는 의미는 상당하다. 샴쌍둥이가 태어날 확률 20만 분의 1. 그중 99%는 태어나자마자 사망한다. 불과 1%의 가능성 때문에 태어났을지언정 그들도 엄연히 우리와 부대끼며 살아가야 할 존재다. 그 1%의 존재로 태어난 최동현(류덕환 역)과 최상현(조승우 역)은 한 몸이면서 얼굴만 서로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다. 분리 수술을 하면 반드시 1명은 죽게 되어 있기에 아버지는 친구인 의사의 제안을 거절한다. 낳은 어머니마저 충격을 받아 정신병에 걸리고 아들인 그들을 괴물로 부르다 죽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는 30년 동안 그들을 집안에 가둔 채 키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의 전면을 볼 수 있는 동현은 숨어 지내는 공간을 벗어나 소설쓰기를 통해 외부와의 소통을 꿈꾼다. 하지만, 동현의 뒤통수이자 또 다른 자아를 지닌 상현은 묵묵히 자신의 본심을 숨긴 채 동생인 동현의 의지대로 따라간다. 동현과 상현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상징한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보는 시각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우리들은 역설적이게도 그 상대가 없으면 외로움을 느끼고 존재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 영화 속에서 아버지의 부탁으로 동현의 소설쓰기를 돕게 되는 승아(남상미 역)의 등장은 동현과 상현으로 하여금 현실과 비현실, 밝음과 어둠으로 나뉜 삶을 살도록 한다. 동현은 승아를 사랑하게 되고 승아 또한 동현에게 관심을 갖게 되지만 영원한 비밀이란 없는 법. 승아는 숨어있는 상현의 존재를 눈치채게 되고 그 충격으로 발길을 끊고 만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특이한 괴물처럼 대하는 출판사 직원이나 아무 거리낌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기자들 또한 분명 우리 안에 숨겨진 차별과 편견에 사로잡힌 심리를 대변하는 것 같아 씁쓸함과 아울러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속으로 한 걸음 내딛고자 하는 동현이 상현의 존재를 없애기 위해 복숭아나무에서 뛰어 내리는 장면은 그래서 더더욱 가슴 아프다. 수술을 통해 오롯이 혼자의 몸이 된 동현은 꿈꾸던 자유로움을 얻은 반면 동생을 위해 결국 머리만 남긴 채 죽게 되는 상현. 승아가 들고 온 목 잘린 마네킹에 얹힌 그의 주검이 그래서 더더욱 슬프면서 아름답다.

로맨스와 판타지의 경계를 허물다 <늑대소년>

로맨스 영화이면서도 700만 명 이상의 관객몰이를 하며 흥행에 성공한 조성희 감독의 <늑대소년>. 철수(송중기 역)와 순이(박보영 역)라는 두 청춘 남녀의 이루어지지 않는 로맨스와 전 세대가 품고 있는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끄집어내는 장치로 야생의 길들여지지 않은 늑대인간을 녹여내어 작품성, 흥행성에서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건축학개론> 같은 로맨스 영화나 <트와일라잇>과 흡사한 판타지 영화로 분류할 법한 이 영화를 굳이 이번 꼭지에 넣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 영화 속에는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하거나 내버려 두지 않고 더럽고 무서울 수 있는 늑대소년을 보듬어 안는 순이와 그 가족의 따뜻한 사랑이 꽤나 감동적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60년대 후반, 폐병에 걸린 소녀는 요양을 위해 엄마, 동생과 함께 시골 마을로 이사를 오게 된다. 폐병에 걸린 아픈 몸과 아무도 없는 곳에서 외롭던 소녀는 소년에게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생활방식과 글을 가르치면서 새로운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 이런 설정은 애완동물을 가족처럼 애지중지 기르면서 외로움을 탈피하고 정붙일 곳을 찾아가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반영한 감독의 의도로 읽힌다. 전쟁고아였던 소년은 한 과학자의 실험대상이 되어 길러지다 혼자 내버려진 채 빈집에서 홀로 살아왔기에 더럽고 냄새나며 모습조차 짐승에 가깝다. “기다려, 다시 올게.”라는 소녀의 명령을 따라 무려 47년이란 시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킬 정도로 자신에게 처음으로 관심을 보여준 소녀에게 소년은 더없이 순종적이다. 남과 다르다고, 조금 부족하다고 해서 차별 받고 버림받았던 소년에게 사랑과 관심, 도움을 주는 소녀는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병든 몸을 지닌 채 세상에 대한 괴리감을 느끼는 소녀에게는 아직 마음 한 구석에 따뜻한 사랑이 숨어있고, 야생에서 살아왔지만 아직 순수함을 간직한 늑대소년. 그 두 사람의 관계는 그래서 서로의 결여된 부분을 채워가는 교감의 과정으로 보인다. 그런면에서 우리들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을 목말라 하면서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 순응하고 노력하는 존재들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모두 완벽하지 못하기에 무시로 서로에게 관심을 갈구한다. 그래서 잘나고 못나고를 떠나 서로를 보듬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야생에 버려진 짐승처럼 살아야 할지 모른다. <늑대소년>은 뻔한 스토리라인과 다소 조잡한 CG로 거부감을 주면서 억지스럽게 감동을 짜내는 듯한 장면이 있어 불편하기도 하지만 점차 감성이 메마르고 남과 더불어 사는 것을 낯설게 느끼는 우리 아이들에게 훌륭한 감성 바이블이 되지 않을까 싶다.

눈물과 감동이 함께 하는 실화 <글러브>



우리 사회에 장애인 500만 명. 그들을 다룬 영화들은 많았지만 그들을 도움과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그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가야 할 대상이라는 생각을 심어준 영화는 바로 <글러브>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감독 겸 제작자인 강우석 감독이다. <투캅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등의 영화를 통해 감독 초기부터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한 풍자를 하면서 흥행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그가 이 영화에서는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려 충주성심학교 야구부의 실제 이야기를 영화로 옮겨 놓았다. 너무 뻔한 스토리와 다소 지루한 러닝타임은 실화가 주는 감동의 무게를 깎아내리기에 역부족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그 울림이 크고 깊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그들과 어떻게 어울릴 수 있는가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스포츠 영화가 그렇듯 이 영화 또한 일정한 공식을 갖고 진행된다. 잘 나가던 프로야구 선수인 LG 투수 김상남(정재영 역)은 폭력혐의로 구설수에 오르자 매니저(조진웅 역)의 제안을 따라서 자숙하는 뜻으로 뭐 하나 제대로 갖추어진 것이 없는 충주성심학교 청각 장애인 야구단의 코치를 맡는다. 그저 시간이나 때우겠다는 식으로 코치직을 억지로 맡은 그와 달리 전국대회 1승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갖고 소리를 듣지 못해도 온몸을 내던져 야구에 미쳐 사는 아이들. 김상남은 그들을 보면서 곧 야구에 대한 초심을 잊고 사는 자신을 뉘우치며 마음을 바꾸게 되고 드디어 기적 같은 결과를 이루게 된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늘 코미디적인 장치를 잊지 않았던 강우석 감독은 <글러브>에서는 작정이라도 한 듯 웃음기 싹 가신 얼굴로 꼭 필요한 장면이 아니고서는 코믹적인 요소를 자제하면서 ‘눈물과 감동’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듯 시종일관 진지하다. 스포츠는 뭐니 뭐니 해도 짜릿한 명승부를 통해 얻어진 승리를 통해 보람을 얻는다. 승리를 갈망하지만 겨우 10명인 야구부원들. 기본기도 없이 열정만 넘치는 오합지졸인 아이들을 바꾸기 위해 김상남은 그들에게 누구보다 혹독하고 잔일할 정도의 훈련을 시킨다. 이로 인해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음악 선생(유선 역)과 대립각을 세우지만, 그의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는 꺾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승리든 패배든 최선을 다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그 결과가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서로 같은 목표를 가지고 어울려 부대끼다 보면 온전히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마음의 편견을 깨는 착한 영화 <미스 진은 예쁘다>

집이 아닌 길거리나 역 따위에서 잠을 자는 사람을 우리는 노숙인이라 부른다. 한 집계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우리나라 노숙인의 숫자는 1만 2583명이었다고 한다. 역 주변이나 거리를 지나칠 때 그들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마치 더러운 짐승을 보듯 적의가 드러나거나 불쌍하다는 표정이 가득하다. 하지만, 번듯한 집을 가지고 번듯한 차를 타고 번듯한 외모로 우리와 호흡하는 사람들이 진정 그들보다 깨끗하고 행복하며 아름답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어쩌면 장희철 감독은 여기서부터 이 영화를 만들고자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상업영화도 아닌 이 독립영화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잔잔한 감동몰이를 하더니 노숙인에 대한 편견과 독립영화에 대한 편견까지 깨는 성과를 만들었다. 부산의 동래역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 속에는 철도 건널목 지킴이인 수동(하현관 역)과 대책 없이 긍정적이고 웃음을 잃지 않는 노숙인인 미스 진(진선미 역), 알코올중독자인 동진(최웅 역), 꽃돼지라 불리는 꼬맹이(박나경 역)가 어우러지면서 만들어내는 일상사가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와 물 흐르듯 잔잔한 극 구성을 따라 전개된다. 노숙자인 미스 진이 예쁘다는 반어적 표현 안에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주제가 담겨 있다. 실제 예쁜 얼굴이 아닌 미스 진은 노숙자이면서도 갈 곳 없는 꼬맹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드러나듯 세상에서 소외된 모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포용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심어주는 마음이 상당히 예쁜 사람이다. 그러나 흔히 노숙인들이 등장하는 영화처럼 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도 분명 숨겨진 이야기나 슬픈 배경사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관객들의 기대는 영화가 끝나는 지점까지 채워지지 않는다. 그저 이 영화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하루를 살아내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와 별반 다름없이 일상적인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점에 담담하게 포커스를 맞추면서 어떻게 해야 사람 사이의 관계가 아름답고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묻는다. 비루한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애써 이해하고 동정하려 들지 말고 그들의 삶 속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따뜻함과 행복, 서로를 이해하는 순수한 사랑이 있음을 깨닫고서 일상사에 찌들어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영화. 그래서 이 영화는 더 없이 아름답고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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