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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사서의 소리] 아이들이 행복한 도서관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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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12-23 15:19 조회 8,916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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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광주 신암초 사서


학교도서관을 꿈꾸다
대학 때, 전공과목 중 ‘도서관 실무용어’라는 수업이 있었다. 담당교수님께서 만드신 자료로 수업을 하셨는데, 20년이 다 된 지금도 그 자료를 지니고 있을 만큼 소중히 여긴다. 어느 날이던가… 수업 전, 가볍게 책장을 넘기다 마주하게 된 단어. 사. 서. 교. 사. ‘그래, 이거구나’ 마치 그 단어를 기다렸단 듯 강한 끌림과 함께 심장이 쿵쾅쿵쾅 뛰면서 대책 없이 행복한 기분에 ‘유레카’를 외쳤다. 아이들을 좋아했던 터라 ‘학교도서관에 들어가면 꼭 초등학교로 들어가서 아주아주 상냥하고 예쁘고 따뜻한 미소로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최고의 선생님이 돼야지’라는 희망을 품으면서.

떨림의 수업시간이 지나고 고대하던 쉬는 시간. 교수님께 사서교사에 대해 물어보니 그건 외국의 경우이고, 우리나라에선 사서교사가 되기 어렵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운 좋게도 그토록 어렵다던 학교도서관이 빗장을 풀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공공근로처럼 학교도서관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 당시 자격은 사서보조였을지 모르나 사서에 대한 자부심과 의욕은 새로 발령 받은 도서관장 못지않았으리라.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짧은 계약기간 동안 열심히 배우고 익혔던 기반을 바탕으로 후반기에는 그토록 원하던 초등학교 도서관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이들과 만나다
가장 눈에 띈 건 도서관 곳곳에 있는 2단짜리 서가들이었다. 어찌나 귀엽던지…. 그동안 학부모들이 돌아가면서 일정시간에만 개방했던지라 늘 열려있는 도서관이 신기했는지 아이들이 자주 고개를 빼꼼 내밀곤 했다. 가끔은 문을 못 열고 밖에 서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유리창에 비취기도 했다. ‘드르륵~’ 하며 열리는 그 문을 열기란 쉬운 일은 아닐 터. “들어와도 돼” 하면 후다닥 도망가는 아이들을 몇 번 겪고 나서야 먼저 문을 열고 “들어 와”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만난 아이들이 마냥 예뻐서 저학년 아이들은 무릎에 앉혀 놓고 그림책도 읽어 주고, 쉬는 시간에 놀러 오는 아이들과는 그들만의 일상을 공유했다. 발바닥에 가시가 찔려 찾아오면 빼주고, 방과 후에 걱정거리 안고 오면 편안한 쉼터의 역할도 해 주었다.

더러는 집에 혼자 가기 싫다며 일부러 내 퇴근시간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걷곤 했다. 교문을 나설 땐 양쪽으로 펴졌던 날개가, 한 명 한 명 집으로 보내면서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면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작별인사도 못하고 헤어졌지만 그때의 추억은 가끔 나태해지고 사무적인 내 모습을 자각할 때, 나를 다잡을 수 있게 다그치는 소중한 회초리로 남아 있다.


그래야만 하는데



이후 지금의 초등학교에서 10년째 일을 하고 있다. 관련 업무를 전혀 모르던 사람이 도서관 일을 하다가 몸살이 났는데, 병가가 길어져 그만둔 곳에 내가 오게 된 것이다. 일만 했다. 일밖에 없었다. 그래도 고맙게도 선생님 힘들겠다며 수시로 도와주고 청소해 주시는 학부모님들이 계셨고, 제 집 드나들 듯 수시로 들락거리던 옆 반 아이들이 있어서 지쳐도 여유로울 수 있었다.

후관 5층이었던 도서관이 리모델링 사업으로 본관 2층으로 자리를 옮길 때도 만 권 정도 되는 책을 십시일반으로 나누어 머리에 이고 내려주던 아이들 덕에 지금의 안락하고 편안한 도서관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좋아서 학교도서관을 택했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하는데, 업무가 힘들면 아이들에게 소홀하게 되고 얼굴 표정이 굳게 된 적도 많다. 또, 다양한 책을 읽고 아이들과, 선생님들과, 학부모들과 대화하며 좋은 책 소개도 해줘야 하는데, “글쎄요. 제가 안 읽어 본 책이라….”라는 어정쩡한 대답을 해야 할 때면 누군가 “사서 맞아?”라고 하며 쳐다보는 것 같아 한없이 작아져버린 기분이었다. 근무 중엔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가 없고, 집에서는 책을 펼치지도 못하는 두 아이의 엄마라는 근사한 핑계 덕분에 나날이 나태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위해서
9월이면 독서캠프를 진행한다. “선생님. 밤이 되면 도서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책 속에서 주인공들이 나와서 토론할까요? 아님 여고괴담처럼 귀신이? 깜깜한 밤에 도서관에 있고 싶어요.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같이….” 그래서 시작했다. 저녁 6시부터 9시까지. 안전상의 문제로 어렵다며 왜 꼭 밤에 하려고 하느냐는 윗분들의 물음에 “아이들이 원해요.” 한마디면 족했다.

올해로 3년째다. 호응이 너무 좋아서 작년부터 두 번 하라며 예산도 넉넉히 지원해주셨는데 난 죽겠다…. 에고에고…. 캠프 한 번 진행할 때 소개되는 책이 30권이 넘는다. 두 번 진행 하려면 혹시 모를 노파심으로 중복은 피해야겠기에 60권은 완파해야 한다. 물론, 그 60권의 책을 선정하기까지 100권도 넘는 책들이 내 손을, 내 눈을 거쳐 갔으리라. 읽었던 책도 다시 본 후 문제를 출제하고, 이번 기회에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이 있으면 몰래 끼워 넣기도 한다.

독서캠프 후 아이들의 도서관 출입은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그리곤 “선생님, 그때 문제 냈던 책 제목이 뭐였지요?”라며 살갑게 묻는다. 끼워 넣기의 위력. 그리고 그 책들을 진짜 재밌게 읽는 친구들의 위력으로 한동안 도서관은 싫지 않은 캠프 후유증에 시달린다.

‘올해는 작년과는 다른 무언가를 해야지….’ 하며 벌써 머릿속은 복잡한데, 2학기 방과 후 지역사회 개방사업과 복도 환경정리, 46학급에 보낼 권장도서 선정 등 먼저 처리해야 할 일들이 쳐내고 쳐내도 그대로인 것 같은 가시넝쿨처럼 가로막고 있다. 거기에 일의 흐름을 깨뜨리는 공문처리, 장학자료 배부 및 관리, 아직도 이해 못할 교과서 업무, 도서관 활용수업 후 여기저기 던져지고 숨겨지고 버려진 책이며 쓰레기 정리에 일의 순서는 뒤죽박죽이고 속도는 제자리인데 시간은 훌쩍 지나가 버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이지고 있다.

웃자. 그래도 웃자. 그래야 아이들도 날 보고 웃을 테니까. 오늘은 복도 환경정리에 필요한 사진을 찍을 예정이다. 예쁜 모습들을 많이 담아서 볼 때마다 미소 짓게 해야겠다. 아이들이 행복하고 나도 덩달아 행복한 도서관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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