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드로잉] 자유 드로잉, 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5-13 21:46 조회 7,635회 댓글 0건본문
그간 중학교에만 있다가 몇 년 전 인문계 고등학교인 서산여고로 자리를 옮겼다. 언뜻 보기에 학생들은 밝고 쾌활했지만 마음 한편에 대학입시에 대한 걱정과 압박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1년에 두어 차례 있는 체육대회, 체험학습 등의 행사를 제외하면 학교 일과는 아침부터 밤까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생각도 수동적으로 바뀌는 것 같았다. 게다가 학생들은 입학사정관제 준비 등 여러 측면에서 창의력을 발휘하길 요구받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의 교과수업 시간을 살펴보면 창의력이 길러질 만한 상황은 많지 않다. 오히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장난칠 때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면 재미있고 창의적인 것들이 많다.
3월 첫 수업을 시작한 지 두어 달이 지나고부터 아이들에게서 미술에 대한 선입견을 걷어내는 일을 시작했다. 미술은 어느 정도 범주화된 재료와 기법으로 사람을, 정물을, 풍경을 그리거나 만든다는 생각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표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 주려 노력했다. 그 일환으로 시작한 것 중 하나가 자유 드로잉 수업이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재료와 기법과 내용에 구애받지 않고 드로잉 작품을 제작하기로 했다. 내용이 무엇이든 두 달 동안 100장씩의 드로잉을 제출하게 했다. 지구라는 별에 나 혼자만 있다면, 즉, 내 작품을 보여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나는 어떤 그림을 그릴까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보기도 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재료나 기법으로 표현된 유명 작가의 작품을 보여 주기도 했다. 십수 년 이어져 온 미술에 대한 의식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쉽지 않지만 아이들은 조금씩 바뀌었다. 부모님께 갖다 드려야 할 가정통신문에 물을 묻혀 그것이 말라가는 과정을 작품화하거나 귤껍질, 씹던 껌을 붙여 드로잉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엽기적이라 할 만큼 독특한 표 현들도 많았는데 적어도 미술시간엔 그런 것들이 허용되었고 오히려 칭찬 을 받았다. ‘잘 그린 그림’에서 ‘내가 하 고 싶은 그림’으로의 전환이 점점 이루 어지고 있었다. 좋은 것은 위대한 것의 반대쪽에 있다 했던가? 아이들은 이제 주변의 모든 것이 미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꼭 잘 그린 그림 이 아니어도 다른 사람에게 당당히 보 여줄 수 있는 자신감도 갖게 되었다. 미 술 성적이 대학교 들어가는 데 별 상관 이 없다는 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앞으로 다달이 지면을 통해 학생들 의 개성 있는 표현들을 펼쳐 보일 것이 다. 학교도서관에서도 드로잉에 취한 아이들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 도 가져 본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종이에 무언가를 붙여서 만든 드로잉
그물 모양의 과일 포장재는 물고기의 비늘이 되었고 강아 지풀은 강아지의 꼬리로, 색색의 금속 집게는 핸드백이 되 었다.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자신만의 눈과 생각으로 보는 것, 그것이 창의력 신장의 출발점이다. 그리고 작품이 모두 창의적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아이들의 작품이 다 훌륭한 것은 아니다. 미술시간에 ‘허용된 낙서’를 하기 시작했고 그 것을 권장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최소한 그 시간만큼은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작품을 한다. 내 작품으로 친구가 즐거워하고 친구의 작품을 보고 내가 웃을 수 있다면 미술 시간은 적어도 입시에 지친 아이들을 잠깐이나마 놓여나 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은 이제 수업시간이 아닐 때 도 드로잉을 하고 그걸 가져와 보여 준다. 자신의 작품에 스스로 위로를 받기도 하는 모양이다. 힘든 학창시절을 보 내며 우리는 교과서에 공책에, 연습장에, 시험지에 얼마나 많은 낙서를 해왔던가! 그 낙서들이 우리를 견뎌 내게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서산여고 학생들의 드로잉 작품
<니모> 과일을 싸고 있던 하얀 그물 포장이 물고기 비늘처럼 생겼다는 느낌이 들어서 ‘니모’를 만들게 되었다. 그냥 지나칠 법한 물건도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다르게 보인다. 잃어버린 나의 상상력을 찾은 거 같아 기분이 좋다.
<바다의 기억> 어릴 적 바다에 다녀온 날의 느낌을 회상하며 그렸다. 바닷가에서 받은 시원하고 맑은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구멍 뚫린 조개껍데기를 쓴 이유는 구멍 속에서 마치 소라고동의 입구처럼 시원한 파도소리가 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악어> 안 쓰는 지갑의 겉 표면이 악어가죽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악어를 그리게 됐다. 그리던 중에 악어 이빨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지퍼가 맞물리는 모습이 악어 이빨을 연상케 해서 지퍼를 이빨로 사용했다.
<스테인드글라스> 다른 작품에 쓰다 남은 종이가 보여서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생각 없이 그 종이에 구멍을 뚫고 있었는데, 구멍 난 종이에 셀로판지를 붙이면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효과가 나올 것 같아서 그렇게 했더니 색깔도 선명하고 마음에 들었다.
<양> 화장솜으로 손톱에 바른 매니큐어를 지우다가 화장솜이 해어진 모습이 양털 같았다.
<강아지> 강아지풀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강아지가 꼬리를 흔드는 것 같았다.
<3교시에 얼굴> 버리려던 파일 겉표지에 구겨져서 선이 생긴 것을 보고 자화상을 그리기로 했다. 선만 그어진 투명한 파일을 얼굴에 대어 보면 색칠되는 기분이어서 재미있다.
<코스모스 요정> 드로잉 수업 중 무엇을 그릴지 생각이 나지 않아 답답하고 심심해 교장선생님 텃밭으로 토마토를 따먹으러 갔다. 그런데 그 근처에 코스모스 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무심코 꽃을 따 가져와 책상 위에 한 잎을 따서 올려놓고 보니 꼭 요정이 떠올랐다.
<명품가방> 우연히 드로잉 할 종이들에 꽂아놓은 집게의 모양이 손가방을 닮은 것을 발견했고, 마침 집에 여러 가지 색깔의 집게들이 많아서 잡지에서 신상 손가방을 광고하는 걸 따라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