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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사려 깊은 번역가의 말 걸기] 미국 그림책에서 한글을 마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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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6-03-11 14:00 조회 3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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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그림책에서 한글을 마주치다

신수진 어린이책 번역가

 
 

 최근에 번역한 미국 그림책 『사람들은 이상해』의 원서 『People

are Weird』 속에는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어

할 대목이 있다. 영어 간판이 즐비한 거리에 ‘찻집’이라고 또렷

이 적힌 한글 간판 하나가 자리해 있는 장면이다. 한글을 보고

내가 느꼈던 반가움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전해졌으면 해

서, (‘찻집’을 제외한) 그림 속 영어 간판들을 한글로 바꾸지 말고

대신 번역어를 작은 글자로 덧붙이자고 제안했는데, 출판사에

서는 고민 끝에 한국 독자들이 읽기 편하도록 간판 전부를 한

글화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어쨌든 독자들이 이 책을 만나면

그림 속 ‘찻집’ 글자만큼은 카타리나 소브럴 그림작가가 직접

그려 넣은 것임을 알아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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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시장에서 마주하는 한국의 위상
한때는 번역서에 한글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문화적 맥락을 일부러 집어넣어야 했다. 세계 여러나라의 언어, 문화, 지리 등을 소개하는 정보책에 한국과 한글은 빠져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건 일본이나 중국이어서, 우리나라에 해당하는 정보를 따로 덧붙이고 원저작권자의 허락을 받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해외 원서 안에 한글과 한국 이름이 별다른 설명 없이도 자주 등장한다. 한국어는 이제 일부러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애써야 하는 언어가 아니라 많은 사람이 배우고 싶어 하는 중요한 언어로 자리잡았다. 외국 영화에서 한국어를 쓰는 영화배우를 캐스팅할 때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배우가 더 환영받는다고 하는데, 한국어를 알아듣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캐스린 비글로(Kathryn Bigelow) 감독의 영화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2025)를 보면 미 국가안보국(NSA) 소속의 북한 전문 요원으로 한국계 미국인 ‘그레타 리’ 배우가 등장할 때 전에 없던 긴장감이 조성되고, 공군 조종사의 관물대에 평화롭게 놓여 있던 ‘뽀로로 인형’이 출동을 앞두고 굴러떨어지는 장면에서는 극의 불안감이 극대화된다. 한국계 배우, 한국의 문화상품이 영화에 등장한 이유는 이런 전지구적 위기 상황에 한국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얼마나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인지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넷플릭스에서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다. <흑백요리사>는 시즌 1과 2 모두 넷플릭스 비영어 쇼 부문 1위에 등극한 뒤 계속 상위권을 유지했었다. <솔로지옥> <피지컬: 100> 같은 연애·경쟁 프로그램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기존 장르에 새로운 규칙을 도입하는 시도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문화 차이를 넘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서사를 잘 만드는 연출이 돋보이는 것 같다.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케이팝의 인기는 새삼스럽게 언급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을 정도다. 요즘 케이팝에서는 ‘한국’의 경계를 새롭게 묻는 존재들이 등장하는 것이 흥미롭다. 2020년에 데뷔한 아이돌 블랙스완(BLACKSWAN)은 다국적 걸그룹으로, 한국계나 한국인 멤버 없이 4명 모두 외국인(인도, 미국, 브라질-독일, 세네갈-벨기에 국적이다)으로만 이루어진 케이팝 그룹이다. 최근에는 한국인 멤버 1명에 인도 국적 3명, 네팔, 미얀마, 튀니지까지 다국적 멤버 7명으로 이루어진 걸그룹이 맵시(MEPC)라는 이름으로 데뷔했다. 정작 한국인들은 ‘간지’라는 일본말을 더 많이 쓰는 시대에 ‘맵시’라는 단어를 불러들인 점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2025년에는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들의 발길도 이곳으로 분주하게 이어졌다. 전시, 콘퍼런스, 도서전 등에 참여하기 위해 키티 크라우더, 사라 룬드베리, 시드니 스미스, 아드리앵 파를랑주, 카슨 엘리스, 조던 스콧 등이 다녀갔고 우리나라 독자들과 뜨거운 공감의 시간을 함께했다. 그런데 우리는 ‘세계가 우리를 선망하고 있다’는 사실에만 머물러도 될까? 지금이야말로 우리의 시선이 어느 곳을 향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성찰할 때 같다. 우리는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 무엇을 새롭게 보여 줄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외면해 온 곳을 바라보기
나는 우리가 주변부 국가로 머물렀던 시절의 이야기와 전쟁, 디아스포라의 경험 같은 것이 특히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세계가 우리를 배우고, 우리와 교류하고 싶어 하는 지금이야말로 우리만의 경험을 새롭게 의미화하고, 주변부의 언어와 삶을 세심하게 불러들여 우리 문화를 풍부히 해야 할 시점이다. 미국 작가가 그려 넣은 한글 간판을 보면서, 정작 우리는 다른 언어로 된 간판을 얼마나 그려 넣고 있는지, 이주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우리의 풍경 안으로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는지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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