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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쇼펜하우어 평전: 염인주의자의 인생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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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우물이있는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6-11-21 12:52 조회 9,89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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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철학자 칸트의 메타자연학(metaphysics)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인디아의 베단타 철학 및 불교사상과 종합하여 독창적인 의지철학으로 발전시킨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쇼펜하워)는 리하르트 바그너, 에두아르트 하르트만, 프리드리히 니체, 레프 톨스토이,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유럽의 쟁쟁한 지성인들에게 의미심장한 영향을 끼친 “철학계의 위대한 반항아”였다. 그런 쇼펜하우어의 일생과 전기적 사실들을 주목한 헬런 짐먼Helen Zimmern(1846~1934)의 《쇼펜하우어 평전: 염인주의자의 인생과 철학》은 쇼펜하우어 철학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드러내고 그의 인생여로에 남겨진 의지철학의 흔적들을 조명한다.
쇼펜하워 평전(소).jpg
“제1장 출생과 성장, 제2장 학생시절, 제3장 발전하는 정신, 제4장 드레스덴 생활, 제5장 쇼펜하우어의 대표저서 《세계는 의지이고 표상이다》, 제6장 이탈리아 여행, 제7장 불만스러운 시절, 제8장 프랑크푸르트 생활, 제9장 쇼펜하우어를 비추기 시작한 명성의 서광, 제10장 쇼펜하우어의 윤리학과 미학, 제11장 쇼펜하우어의 명성과 죽음”으로 구성된 이 평전은 1876년에 출판되자 바그너와 니체의 주목을 받았다.
이 평전을 집필한 헬런 짐먼은 독일계 브리튼의 작가이자 번역가이며 여성참정권 운동가로서 유명하다. 그녀는 1846년 3월 25일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1850년 부모와 함께 브리튼 노팅엄으로 이사했고 이듬해에 브리튼인으로 귀화했다. 출중한 언어감각을 타고난 그녀는 1860년대 말엽부터 브리튼의 주간문예지 《원스 어 위크Once a Week》에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작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1869~1873년에는 《보석 이야기Stories in Precious Stones》를 포함한 여러 아동도서를 출판했다.
1873년부터 특히 독일문학을 주로 다룬 문학비평들을 브리튼의 주간문예지 《익재머너Examiner》에 발표하기 시작한 헬런 짐먼은 《프레이저스 매거진Fraser's Magazine》, 《블랙우스 매거진Blackwood's Magazine》, 《아테네움Athenaeum》, 《스펙테이터Spectator》, 《월드 오브 아트World of Art》 같은 잡지들, 이탈리아의 신문《라세냐 세티마날레Rassegna Settimanale》, 독일의 여러 일간지에도 유럽의 문학과 예술에 관한 글들을 다수 기고했다. 평전작가 겸 전기작가로서도 탁월한 필력을 발휘한 그녀는 《쇼펜하우어 평전》(1876)을 위시하여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1878)과 《마리아 에지워스Maria Edgeworth》(1883) 같은 평전들을 집필했다.
그녀는 1880년대 중반에 스위스에서 만난 독일의 철학자 니체와 친구가 되었고 니체의 저서들인 《선악을 넘어서》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최초로 영역(1909년)하는 발군의 번역능력도 발휘했다.
그리고 그녀는 인생후반기에 이탈리아를 자주 여행하면서 《이탈리아인들의 이탈리아The Italy of the Italians》(1906), 《현대 이탈리아의 지도자들Italian leaders of today》(1915), 《새로운 이탈리아The New Italy》(1918) 같은 저서들을 집필했고, 브리튼과 독일에서는 이탈리아 예술을 강의하면서 이탈리아의 극작품, 소설, 역사서를 영역하여 소개하기도 했다. 1920년대 중반부터 이탈리아 피렌체에 정착하여 말년을 보내던 그녀는 1934년 1월 11일 별세했다.
브리튼의 작가 프랜시스 윌리엄 베인Francis William Bain은 “헬런 짐먼의 《쇼펜하우어 평전》은 … 쇼펜하우어의 향기를 선연하게 포착하여 표현하므로 특별한 가치를 지녔다”고 평가했다.
스위스 베른Bern 대학교의 철학교수 데일 자케트Dale Jacquette는 《쇼펜하우어 평전》은 “가장 신뢰받는 권위를 갖춘 쇼펜하우어 평전들 중 하나”로 평가했다.
《컨티뉴엄 브리튼 철학백과사전The Continuum Encyclopedia of British Philosophy》에서는 《쇼펜하우어 평전》이 다음과 같이 소개된다.
“이 책은 헬런 짐먼의 가장 중요한 저서이자 영어로 집필된 최초의 쇼펜하우어 평전이다. 19세기말엽 브리튼의 여성교양인들이 쇼펜하우어 철학에 공감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이 책에서 헬런 짐먼은 쇼펜하우어의 전기적 사실들을 주목함으로써 ‘쇼펜하우어 철학의 주요한 면면들이 생성된 경위’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 책에서] 헬런 짐먼은 위대한 철학자의 때로는 친절하고 명랑하면서도 확실히 진지한 면면들을 생생하게 효과적으로 묘사하는 데 성공했다.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상투적으로 해설하지 않는 헬런 짐먼은 쇼펜하우어의 윤리학을 그의 예술철학보다 더 중요시하면서 나름대로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비판은 오히려 ‘쇼펜하우어 철학의 근본적 의미는 본질적으로 미학적인 것이다’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해석자들과 독자들을 유도하는 효과를 발휘했다. 19세기말엽 유럽 문화의 몇몇 측면과 완벽하게 화합하는 이런 미학적 의미는 쇼펜하우어 철학을 비전문가들에게나 문학적 독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접근시켜주는 효과를 대단히 강력하게 발휘했다.”
그리고 미국의 철학자 월터 카우프만Walter Kaufmann이 전하듯이, 니체는 헬런 짐먼을 “쇼펜하우어를 잉글랜드인들에게 소개한 … 지극히 총명한” 여인으로 호평했다. … 니체의 여러 저서를 영역한 스코틀랜드의 번역가 겸 평론가 토머스 커먼Thomas Common이 전하듯이 “니체는 헬런 짐먼의 중요한 저서 《쇼펜하우어 평전》을 읽고 그녀를 주목했으며 개인적으로도 그녀와 교분을 나누었다. 니체는 자신의 저서(《선악을 넘어서》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를 영역(英譯)할 번역자로 그녀를 마음에 두었다고 편지에 썼다.”
《옥스퍼드 인명사전Oxford 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에 소개된 대로라면, 헬런 짐먼은 일찍이 니체를 감동시켰던 명랑성과 지성을 끝까지 유지했다. 그녀는 여든 살일 때에도, 오스카 레비Oscar Levy(영어판 니체 전집을 최초로 펴낸 독일계 브리튼의 의사 겸 학자)가 말했듯이, “풋풋한 청춘의 미소”와 “지성의 광채를 내뿜는 해맑은” 표정을 간직했다.
《쇼펜하우어 평전》에서 헬런 짐먼의 이런 총명한 지성은 쇼펜하워는 염세주의가 아닌 염인주의자였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이 평전의 번역자 후기에 곁들여진 다음과 같은 간략한 부연설명은 이런 사실을 재확인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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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작가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y(1828~1910)는 장편소설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를 탈고하기 직전인 1869년 여름에 쇼펜하우어의 저서를 탐독했고 8월 30일에 자신의 친구이던 러시아 시인 아파나시 페트Afanasy Fet(=셰쉰Shenshin: 1820~1892)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이번 여름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당신은 아시겠습니까? 나는 쇼펜하우어를 읽으며 끝없는 황홀경을, 일찍이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정신적 희열감들을 연달아 만끽했습니다. 나는 그의 저서들을 (칸트의 저서들처럼) 모조리 구입해서 읽었고 아직도 읽습니다. 그의 강의를 수강한 여느 학생도 내가 이번 여름에 배우고 발견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지도 발견하지도 못했으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앞으로 나의 견해가 언제 바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내가 확신하기로는, 쇼펜하우어야말로 인간들 중에 가장 위대한 천재입니다. 언젠가 당신은 쇼펜하우어가 철학적 주제들을 다룬 뭔가를 썼다고 말했지요. 당신이 말한 ‘뭔가’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경이롭도록 생생하고 아름답게 성찰되는 온전한 세계입니다. 나는 벌써부터 그의 저서를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도 번역작업을 함께하고프지 않습니까? 우리는 번역서를 함께 출간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의 저서들을 읽은 나는 그의 이름이 어째서 아직도 전혀 알려지지 않을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그가 그토록 자주 토로했듯이, 세계에는 백치가 아닌 인간이 거의 없다는 것뿐이겠지요.…”
이런 톨스토이의 편지는 쇼펜하우어가 ‘비관주의자’라는 호칭을 처음에는 심하게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받아들인 사연을 암시한다. 왜냐면 쇼펜하우어가 염오(厭惡)한 것은 세계자체가 아니라 맹목적 자연의지나 무분별한 삶의지와 그런 의지에 얽매이고 휘둘려 진실과 진리를 도외시하고 기만하는 인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쇼페하워의 비관주의는 ‘염세주의’와 동의어일 수 없다. 왜냐면 염세주의는 인간들뿐 아니라 세계자체마저 염오하는 심리적 습관이나 성향이기 때문이다. 만약 쇼펜하우어가 염세주의자였다면, 그러니까, 세계자체마저 염오했다면, 세계에서 최선을 다하여 진지하게 살면서 진리를 정직하게 탐구하는 철학에 매진하기보다는 차라리 세계를 일찌감치 저버렸을(죽거나 아니면 죽을 때까지 완벽하게 은둔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으리라. 그가 문제시한 것은 세계자체가 아니라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무분별하고 맹목적인 의지, 그런 의지에 사로잡힌 인간들, 그런 인간들의 의지가 재현(=표상)하는 인간세계였다.
쇼펜하우어가 비록 니르바나(열반, 해탈)를 꿈꾸었더라도, 그것은 그가 죽어서 가야 할 저승이나 천국 같은 것이 아니라 세계에 살아가면서 진리의지로써 탐색하고 추구했으되 도저히 실현할 수 없었던 ‘비관적 이상(理想)’ 같은 것이었다. 요컨대, 쇼펜하우어를 괴롭힌 것은 세계가 아니라 세계를 참담하게 만드는 불합리하고 불길한 맹목적 의지, 자신들을 얽매어 휘두르는 그런 의지를 무분별하게 재현하는 인간들, 그들의 그런 의지로써 재현되는 인간세계였다. 이런 의미에서 쇼펜하우어의 비관주의를 규정하는 것은 염세(厭世)가 아닌 염인(厭人)이었고, 그는 염세주의자가 아니라 염인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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