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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

<이기적인 착한 사람의 탄생> 닫는 글_ 유범상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
 
 
 
포드 님과
유한계급
 
자본주의의 주인공은 천국이 예정된 이기적인 착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 노동 윤리에 따라 열심히 살면 행복하고 이웃과 인류에도 도움이 된다. 이들의 기본 윤리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것이다. 이는 영국의 작가 새뮤얼 스마일스의 《자조론》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말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치열한 세상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자기 자신에게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고, 자신의 성장을 위해 온 힘을 쏟아부어야 하며, 자신의 약점을 찾아내 그 부분을 강화하고자 전력을 다해야 한다. 스스로를 강화시키는 작업을 하지 않고서는 사회라는 경기에서 마음껏 활약할 수가 없다. 자신을 돕는 작업을 잘 해야만 다른 사람도 도울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에너지는 무엇을 위해 쏟아부어야 할까? 직업을 소명으로 알고 의무를 다하는 금욕적이고 근면, 성실한 노동이다.
 
인간의 재능은 일을 통해서 완성된다. 인간이 이룩한 문명도 노동의 산물이다. 인간이 일을 하지 않거나 그만두었다면, 아담의 자손들은 한순간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 게으름은 인간을 타락시킨다. 게으른 자가 국가나 사회적으로 이름을 얻은 예는 없다. 게으른 자는 언덕을 애써 오르려고 하지 않는다. 어려움과 맞서려고도 하지 않는다. 게으른 자는 아무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음울한 불평만을 늘어놓는 가엾은 인간이며, 사회에 있어서는 짐스럽고 거추장스럽기만 한 존재일 뿐이다.
 
이런 노동이 안정적으로 재생산되는 곳은 가정이다. 가정은 금욕적인 노동의 고향이자 충전소이다. 따라서 노동 윤리와 함께 가족 윤리는 자본주의의 또 다른 윤리이다. 가족은 최초의 인격 형성의 마당이고 최고의 도덕 교육을 받는 곳이다
 
남성은 두뇌와 판단력과 힘을 가르치고 여성은 정조와 감각, 상냥함, 마음의 위로 등을 가르친다. 이와 같이 남성은 아이의 지성을 신장시키나, 여성은 아이들의 감정을 연마해 준다. (…) 우리들이 미덕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힘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 가족과 가정의 관리는 이와 같은 의미에서 가게나 회계 사무실을 경영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모두 질서, 정확성, 조직력, 근면성, 검약, 통제력, 기지 등 올바른 수단을 선택하는 능력 등이 요구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장사의 기본이 된다. 따라서 이것은 바로 여성이 가정을 잘 꾸려 나가기 위해 가게나 공장 경영, 또는 무역업에 종사하는 남성에 못지않을 만큼 경제관념을 몸에 익히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자본주의 부적응자는 게으른 자들이다. 문제는 이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고, 실제로 노동 윤리와 가족 윤리에 따라 열심히 살아도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노동 윤리에 기반한 자기 계발은 ‘거대한 사기극’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그것은 근면한 노동이 찬양되는 노동 윤리 때문이다. 더 솔직히는 노동이 먹고살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을 주창하며 노동자들에게 이 윤리를 강요한 부르주아지는 정작 이 윤리를 오래전에 버렸다는 점이다. 베블런은 자본가를 유한계급으로 묘사하는데, 이 계급은 노동하지 않고 자신을 과시하는 데 몰두한다. 과시적인 소비를 통해 타인과 자신을 구별 짓는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이것을 비판하기보다 부러워하면서 자신도 닮아 가려고 한다.
이러한 관념과 제도는 ‘포디즘Fordism’으로 구체화되었다. 이 용어는 헨리 포드의 이름에서 유래했는데, 컨베이어 벨트 조립 라인을 통해 노동 과정의 세분화, 부품의 규격화로 표준화된 제품의 대량 생산을 통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자들은 이제 기계의 속도에 자신의 몸을 맞추기 시작했다. 기계는 자신에게 일을 시키는 주체이고 노동자는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기계가 문제의 원인일까? 문제는 기계가 아니라 기계를 소유한 사람이다. 인간과 기계가 만든 생산물을 소수가 포식하고, 노동자들은 멋진 신세계에 살고 있는 듯이 규율한다. 이 자가 즉 포드 님이다. 《멋진 신세계》는 포드 님이 지배하기 시작한 시기를 ‘FORD’라는 책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는 자본가는 물론 노동자도 맘몬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주체가 아니라 자본과 임금의 노예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다른 책력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인류 형제애 BOM과
축제
 
《강철군화》는 1908년, 즉 산업화가 무르익고 독점 자본의 시대로 접어들 쯤에 출간되었다. 그런데 책이 가리키는 시점은 먼 미래인 BOM 419년, 아디스라는 나라이다. ‘BOM’은 기원전이라는 의미의 ‘BC’처럼 달력을 표시하는 책력법의 일종인데, BC가 ‘Before Christ’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면, BOM은 ‘Brotherhood of Man’의 약자로 ‘인류 형제애’를 의미한다. BOM419년은 서기로 치면 2623년이며, 자본주의가 망한 후 아디스라는 이름의 세계국가인 새로운 체제가 만들어진 후 419년이 지났음을 의미한다.
BOM은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선 우리가 따져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자본주의가 만든 어마어마한 생산량은 어디로 갔을까? 1:99 사회를 감안한다면 과도한 부가 1로 넘어갔다. 그런데도 우리는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남성노동자와 여성 노동자 사이의 불평등만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99 내에서의 불평등이다. 더 큰 불평등은 1과 99 사이의 불평등이지 않을까? 따라서 BOM 책력은 우선 1:99 사이의 불평등을 극복해야 가능해진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조금 게을러도 되지 않을까? 임금 노동만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되지 않을까? 폴 라파르그는 《게으를 권리》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꿈을 소개한다.
 
다이달로스의 걸작이 저절로 움직이거나 불카누스의 삼각대가 신성한 작업에 맞게 저절로 설치되듯이 모든 도구가 저절로 적절하게 작동한다면, 예컨대 직조기의 북이 저절로 움직인다면 노역장의 십장이나 노예 소유주들은 더 이상 일손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정확하게 이 일을 했다. 1차 산업혁명이 기계를 만들었다면, 2차, 3차를 거치면서 이 기계는 더 세련화되었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고 있다.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인간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더 일해야 하고 더 불안정해야 하고 더 경쟁해야 할까? 기계 때문일까, 기계의 소유와 과실이 소수에게 집중되어서 그런 것일까?
BOM이 가능하려면 잉여 생산물은 노동 시간을 단축하는 근거가 되어야 한다. 인간은 정규직이 아니어도 먹고살 수 있게 되고 일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 그리고 임금 노동 외에 무가치한 노동으로 치부되어 온 그림자 노동, 예를 들어 가사 노동에도 사회적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더 나아가 탈노동이 가능할 수 있게, 사회 임금이나 사회적 지분 급여 같은 것이 주어져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자본주의가 임금 노동 외에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한 인간의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자.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우리의 행동은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labor과 보다 창조적인 작업work이 있다. 그러면서 그는 공동체에 나와서 개성과 고유성을 드러내는 행위를 해야 인간의 조건이 갖춰진다고 주장한다. 잉여 생산물은 인간이 인간다운 일, 즉 말하는 행위의 인간적 조건이 되어야 한다. 사회권을 넘어 탈노동, 그리고 게으를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
왜 게을러야 할까? 그동안 노동 윤리는 게으름을 죄악으로 단죄해 왔다. 그러나 게으르면 우리는 마을 만들기에도 갈 수 있고, 읽고 싶었던 책도 읽고, 공동체에 자원봉사도 할 수 있다. 특히 과도한 작업과 경쟁으로 지친 몸을 돌보면서 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도 있다. 인간은 말하는 존재가 될 것이고, 이 말하는 존재들은 공동체를 토론하는 광장으로 만들 것이다.
이런 사회는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인류 형제애에 기반해서 누구나 다 생각할 권리를 축제로 실현해야 한다. 모든 시민은 광장에 나와 조직되어야 한다. 《강철군화》는 다음과 같이 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여자들이야말로 파업의 가장 강력한 추진 세력임이 입증되었다. 그들은 전쟁에 대해서 한사코 반대 의지를 굳혔다. 그들의 남편들이 전쟁터에 나가서죽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또 그 총파업이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사람들의 기분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대중의 유머 감각에 적중했다. 그 아이디어는 전염력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학교에 걸쳐서 어린이들까지도 수업을 거부했으며, 학교에 오는 교사가 있더라도 텅빈 교실로부터 집으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총파업은 거대한 국가적 야유회의 형태를 취했다. 그리고 노동 계급의 총단결이라는 생각도 그처럼 확고한 증거로서 나타나고 나니까 모든 사람들의 상상력에 호소하는 바가 컸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대대적인 놀이판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위험도 없어졌다는 점이 있었다. 모든 사람이 유죄인 판에, 어떻게 어떤 사람들만 처벌할 수가 있겠는가?
 
이처럼 가족 윤리에 의해 그림자 노동을 당연시하고 있었던 주부들과 모든 사람이 축제로 광장에 나올 때 형제 인류애가 발휘된다. 따라서 이상이 일상이 되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광장, 새로운 실천이 필요하다. 협동조합, 기본 소득, 사회적 경제 등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제부터 시작해 보자.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
 
FORD
BOM
가치
경쟁, 노동윤리
인류애, 게으를 권리
주체
고독한 나
함께하는 우리
행복
맘몬/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차이가 편안히 드러나는 광장
변화
위로부터 주도
아래로부터 주도
 
인류는 FORD를 책력으로 쓰는 것을 거부하고 BOM 책력으로 바꿀 수 있을까? 현실은 암울하다. 인공지능이 점차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지만 인류는 소수 외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인공지능은 모든 인류를 위해 쓰여지기보다는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 인간의 경쟁을 심화시키고 맘몬의 지배를 더 강화하는 데 활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구석구석까지 청소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 많은 자본을 들여 청소기를 개발했는데 값이 비싸 사기 어렵다고 가정해 보자. 사람들은 청소기를 사기보다 임금이 싸서 돈이 덜 드는 청소부를 고용할 것이다. 따라서 이 인간에게 필요한 기계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고 나쁜 일자리는 하층 노동자의 몫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탈리아의 혁명가 그람시가 옥중에 언급한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오늘날의 현실은 절망적이다. 한국은 더욱이 그렇다. 그런데 모든 변화가 일어나기 전의 현실은 늘 비관적이었다. 즉 현실이 되기 전까지,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었다. 이제 의지로 낙관해 보자. 이성적으로 비관적인 것은 현실에 비판적인 것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비판이 모일 때 한쪽에선 새로운 상상이 스멀스멀 피어날 것이다. 마치 봉건제에 부르주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맘몬을 향해 의지로 낙관할 때 프랑스혁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현실에서 실천했던 이들은 상퀼로트, 즉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오늘날 상퀼로트가 “이만큼 참았으니 이제 우리 차례이다”라고 의지로 낙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기적인 착한 사람 표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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