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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도서관 사서의 대화법

다문화도서관 사서의 대화법




어떤 공간이 편안하게 다가오려면 그곳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소통에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다양한 문화권 출신의, 다양한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도서관에 오기 때문에 다문화도서관에서는 소통의 불편함을 줄이려는 노력이 더욱더 필요하다.

- 정은주_ 『즐거운 다문화도서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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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장 바꿔 시뮬레이션 해보기

사람들이 다문화도서관을 찾는 이유와 목적은 각양각색이다. 가까운 동네 도서관도 있지만 모국어로 된 책을 보러 먼 지역에서 오는 이용자, 태어나 처음으로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 책에는 관심이 없지만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는 친구, 이웃을 만나기 위해 도서관에 오는 지역 주민,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는 사람, 다문화거리에 왔다가 나름 ‘핫스폿’인 이곳에서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들르는 사람까지.


원래 도서관이라는 곳이 다양한 책과 사람이 모이는 문화의 집합체라지만, 언어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이용자가 대부분인 도서관 근무는 처음이었기에 초기에는 걱정과 어려움이 많았다.


그럴 때 내가 외국, 특히 그 나라 언어를 전혀 모르는 곳에 가서 안정을 느끼는 공간을 찾는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하고 수도 없이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가동시켰다. 나에게 그 대답은 항상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에서 한국어로 되어 있는 책을 먼저 찾을 것 같았다. 혹 같은 언어의 책을 보고 있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반가운 마음에 낯선 나라에 있다는 두려움이 깡그리 없어질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문화도서관이 더욱 더 중요한 곳이라고 느껴졌다. ‘내가 타국에 이주해 도서관에 다닌다면 무얼 기대하게 될까?’ 생각하자 다문화도서관 사서로서 이용자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가 점점 선명하게 그려졌다.



상대방의 속도를 존중하며 다가서기


먼저, 도서관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낯설게 느끼지 않도록 마음을 담아 환대해야 한다는 생각에 목소리를 한 톤 올려서 인사했다. 하지만 그다음 내 앞에 펼쳐진 현실은 시뮬레이션과 자꾸만 다르게 흘러갔다. 한참을 열심히 설명했는데 알고보니 하나도 못 알아들었던 사람도 있었고, 다가서기만 해도 뒤로 물러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데도 계속 말을 붙이려 노력한 ‘나’도 있었다.


결국에는 도서관에 들어서는 사람들이 자기 방식대로 장소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속도가 아니라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의 속도에 맞춰 다가선다면 자연스럽게 간격을 좁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법칙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용자들에게 먼저 관심을 가지면 천천히 체화된다. 우리에겐 원래 지닌 습관이 있고 그것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니 처음에는 사서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나는 그랬다. 한국어가 조금 서툰 이용자가 오면 또박또박 천천히 이야기하고 그들이 답할 때까지 눈을 맞추며 기다리자고 다짐하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거나 이용자의 이야기 속에서 반짝거리는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한국인 친구들과 대화하는 빠르기로 돌아갔다. 하지만 우리가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을 때 그 자리에서 올라타 다시 출발하면 되는 것처럼, 그럴 땐 상대의 속도로 돌아가 이야기를 이어나가면 된다. 진심으로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고자 다시 한번 마음을 먹는 것이다.



언어의 벽 때문에 미리 겁먹지 않기


실제로 다문화도서관에서 처음 일하는 선생님들이 나에게 이주민과 만나서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물어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언어가 다른 사람들을 처음 만나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기란 어렵다. 한쪽이 상대방의 언어에 꽤 익숙하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나는 대화를 나누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일이 우선이라고 이야기한다. 소통에 관해서는 사서의 두려움보다 도서관 이용자의 두려움이 더 클 것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면 나의 두려움을 없애는 일보다 이용자를 배려하는 일에 자연스럽게 무게가 실린다. 소통은 ‘언어’로만 주고받는 게 아니라 눈빛, 몸짓, 상대를 향한 존중 등 복합적인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서로가 상대의 모국어에 능숙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완벽한 언어적 소통을 기대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도 한국어를 제외한 모든 언어에 서툴고 아예 모르는 언어가 대부분이지만 언어적 한계 때문에 대화가 되지 않는다든지, 책을 빌려주고 일을 처리하는 데 힘든 적은 없었다. 언제나 옆에 계시는 세계명예사서들과 이용자들의 도움 덕분이기도 하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통하지 않는 것은 없기 때문이었다.


만약 다문화도서관 사서를 처음 맡아 아직 친한 이용자가 없거나 세계명예사서단 없이 한국어가 서툰 이용자를 만났다면 ‘발전된 기술’에 의지해도 좋겠다. 온라인 번역에 오역이 많다고는 하지만 간단한 말 정도는 거뜬히 번역하는, 업그레이드된 번역 어플이 많기 때문이다!



그 외 소소한 TIP


이제 앞 이야기를 요약하면서 몇 가지 사항을 조금 덧붙이고자 한다. 첫째, 방문객이 낯선 장소에 적응하는 시간을 허용하자. 도서관에 왔을 때는 그들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장소에 익숙해지고, 스스로 움직일 때까지 열린 마음으로 기다리는 일이 소통의 시작이다.


둘째, 장소에 익숙해진 이용자는 내부를 둘러보고, 사람을 찾을 것이다. 이때 쉬운 말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어보자. 처음 온 사람에게는 ‘처음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자료를 찾는 사람에게는 ‘어떤 책을 찾고 있나요, 도와드릴게요.’라고 간단한 대화를 시작한다. 몇 마디 대화에서 이용자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 편안하게 느끼는 대화의 속도, 한국어에 익숙한 정도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셋째, 되도록 관용 표현이나 어려운 한자어를 쓰지 않도록 한다. 처음엔 이 부분에서 실수가 많았다. 우리가 흔히 쓰는 속담이나 관용어구는 한국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국어가 서툰 이용자는 당연히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다문화도서관에서 이용자에게 무조건 ‘쉬운 말’, ‘간단한 말’을 쓰길 권하지는 않겠다. 다른 나라에서 왔다고 한국어가 서툴 거라는 무조건적인 생각 또한 하나의 편견 아닐까? 이용자와 간단한 대화를 해보고 한국에 얼마나 거주했는지, 한국어 책에 어느 정도 익숙한지 등을 파악한다면 이용자의 눈높이에서
함께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가끔씩 어떤 용어에서 누구를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고민해 봐야 한다. 사서가 자연스럽게 쓰는 말이지만 누군가는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다. ‘다문화’라는 용어도 그렇다. 한국에서 쭉 살았든 다른 나라에서 왔든 결국 같은 지역, 같은 동네에 사는 도서관 책이웃인데 ‘다문화’라는 말을 붙이는 것 자체로 누군가를 구별하고 배제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주민과 선주민’이라는 용어도 조심스럽게 사용하길 바란다. 다양성을 품을 수 있는 말을 찾아내는 것도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다섯째,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사서가 되도록 한다. 다문화도서관에서 일하며 알게 된 즐거움 중 하나가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알아가게 되었다는 점이다.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은 문화의 수혜자로 머물지 않고 자신의 문화 다양성, 여기까지 걸어온 삶의 히스토리를 나누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분들이다. 그들의 삶에 관해 묻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에 호기심을 가지면서부터 누가 도서관을 운영하고, 누가 도서관을 이용하는가 하는 경계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도서관 곳곳에 이용자들의 출신국으로 통하는 ‘단서’를 만들어 놓으면 환영의 마음을 공간으로까지 확장시킬 수 있다. 나는 러시아, 인도네시아 등 네 나라의 시간을 표시하는 시계를 나란히 두었고, 서가마다 여러 언어로 안내문을 붙여 놓았다. 그것만으로도 이용자들은 모국에 대한 정취를 느껴, 도서관을 좀 더 편하게 느낄 수 있다. 그다음은? 이제 서가에서 책을 꺼내 읽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다문화도서관 #사서 #학교도서관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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