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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다양성이 존중받는 공간, 다문화도서관

::: 『즐거운 다문화도서관』 여는 글




문화 다양성이 존중받는 공간,


다문화도서관






다양한 나라에서 서로 다른 사연을 안고 온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안산 원곡동, 이주민과 선주민이 바삐 오가는 어느 거리에 아기자기한 초록색 나무문이 있고, 그 문을 열면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나옵니다. 계단을 내려가면 ‘안산다문화작은도서관 | 고맙습니다’라고 적힌 팻말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다문화특화작은도서관인 안산다문화작은도서관을 만나게 되지요.


23평의 작은 공간이지만 한국, 중국, 러시아, 캄보디아, 인도 등 23개 언어권의 책 1만 3천여 권을 가지고 있어 국내 다문화도서관 중 원서를 가장 많이 보유한 곳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도서관 이용자의 90퍼센트는 외국에서 온 이주민입니다. 시베리아 벌판에서 부모의 등에 업혀온 아기부터 여든이 훌쩍 넘은 길림성 할아버지까지, 국적은 물론이고 언어와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책을 읽기 위해 모입니다. 나라별 커뮤니티도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격주로 만나는 인도네시아 선원노동자 모임,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우간다 노동자들, 중국, 베트남, 태국 등에서 온 결혼이주민 모임 등 80여 개 국적을 가진 도서관 이용자들이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한국살이에 필요한 정보를 얻고 서로의 안부도 챙기며 향수를 달랩니다. 저는 이 도서관에서 6년여의 시간을 사서로 지냈습니다. 사서의 시선에서도, 제 개인의 시선에서도 우리 도서관은 참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1998년, 대구에 있는 한 대학 도서관 사서로 일을 시작한 저는 서울을 거쳐 안산으로 이주하며 2014년, 이 도서관에 둥지를 틀게 되었습니다. 저 또한 긴 시간을 이주민이라는 정체성 안에서 살아온 셈입니다. 하지만 이곳 다문화도서관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습니다. 노동을 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온 사람들의 존재를 실감했고 중국 동포와 고려인에 대해서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지요.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고 했던가요. 다문화도서관 사서로 살아가는 동안 여기에서 만난 이용자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저를 진심으로 아끼는 이용자들의 마음 또한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뜻 시작하지 못하고 계속 불안해하며 걱정하는 저에게 도서관 책이웃들은 늘 ‘잘한다, 잘한다’ 하며 용기를 북돋아주었습니다. 그분들 앞에서라면 어떤 질문, 고민, 의견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도서관의 진정한 주체, 주인공이 된 책이웃들은 저의 고민을 자기 이야기처럼 듣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함께 궁리했습니다. 힘겨울 법한 아침 출근길에도 그저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은 이곳이 처음이었습니다.


이 책은 그 마음을 소중히 간직하며 써 내려간 기록으로, 월간 『학교도서관저널』에 3년간 연재한 우리 도서관 이야기를 새로 쓰고 다듬어 엮은 결과물입니다. 다문화도서관이자 작은도서관인 이곳의 여러 활동과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아주 특별한 도서관 이야기’이기도 하고 먼 곳을 걸어 비로소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들의 여행기이기도 하며, 사서로서 좌충우돌한 과정을 담은 성장담이기도 합니다.


국적, 언어, 겉모습을 초월해 상대방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존중하는 이용자들을 떠올리며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이 책이 우리가 관계 맺는 과정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장에서는 이용자들과 함께 만들어간 ‘도서관 축제’,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과 행사에 관해 먼저 풀어냈습니다. 2장부터는 사람들의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인 ‘만남과 연결’에 초점을 맞췄고 3장에서는 그 의미 있는 만남이 ‘친구와 이웃’으로 확장되는 이야기들을 엮었습니다. 4장에는 친구가 된 사람들과 함께 더 넓은 곳으로 나가 활동한 이야기, 해외 도서관 탐방기 등을 담았습니다.


서랍 속에서 잠자던 제 글을 깨워주었고, 긴 연재 기간 동안 애정으로 원고를 매만지며 귀한 조언을 건네준 최문희 기자와 제 책의 첫 독자가 되어준 편집부에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함께 만들어간 것처럼 이 책을 만드는 과정도 즐거운 잔치 같았습니다. 함께 내용을 읽고 표지를 고르면서 책으로 이어진 우리의 인연이 공간을 넘어 서로를 아우르고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다문화도서관에서만큼은 외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도서관에서 인연을 맺은 독서동아리 회원에게 얼마 전 들은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마주한 도서관은 상대방이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어디 출신인지보다 사람이 지닌 여러 모습과 정체성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만남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이었나 봅니다.


타인의 작은 이야기들도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오는 곳, 서로 닮아가기도 하고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는 곳, 삶을 풍요롭게 하는 책을 만나는 곳, 책을 함께 읽으며 한 인간으로 존중받는 법을 알아가는 곳! 저는 아직 이러한 공간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도서관이 피부색, 국적, 언어를 초월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도서관에서 함께 같은 꿈을 꾸었고, 그 바람이 완성되는 순간에도 같이 있어줄 책이웃, 책친구 들이 있기에 머지않아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요?


2020년 11월, 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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