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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라! 이 시대 인문학자의 외침을

<기획회의> SPECIAL REVIEW




들으라! 이 시대 인문학자의 외침을


명로진 인디라이터




​2019년 5월의 어느 날 저녁, 책을 소개하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던 필자는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협심증이었다. 일주일 전 이미 한 번 쓰러진 경험이 있었고, 다음 날 정밀 검사를 앞두고 있던 날이었다.


생방송 중이었다. PD에게 “음악을 내보내라”는 사인을 보내고 스튜디오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노래가 끝나 갔지만 방송을 진행할 수 없었다. 그때 초대 손님이 김경집 선생이었다. 이런 나를 대신해 그날 김경집 선생이 임시 DJ 역할을 맡아주었다. 하필 그는 전해에 심장 수술을 받았다(동병상련).


방송이 끝나고 바로 나는 병원에 후송되었다. 스탠스 삽입을 위해 수술대에 올라갔다. 잠시 뒤 “당분간 약물치료로 상황을 보자”는 집도의의 말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한 이후, 나는 심장에 대해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김경집 선생에게 연락을 했다.


내 걱정은 위중했으나 선생의 대응은 간단했다. “등산해도 되는가?” 물으면 “해도 된다. 아무 문제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약은 평생 먹어야 하는가?” 물으면 “평생 먹으면 된다.” 비타민 먹듯 매일 먹으라는 허탈한 대답을 받았다. “사랑해도 되는가?” 묻자, 선생은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죽기까지 사랑하든가. 사랑하다 죽든가.” 선문답을 꺼내고는 뭐가 문제냐는 듯 티 없이 맑은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눈치챘을 것이다. 이하의 글은 인상비평이 되리라는 것을. 저자와 평자의 친분을 앞세운 평가가 나오리라는 것을. 맞다. 이 글은 편견에 사로잡힌 한 독자가 쓰는 ‘팬밍아웃’이다. 그러나 묻고 싶다. 과연 아무런 선입견 없는 평점이 있을 수 있는지.


『중용』에 있는 말이다. “그 사람이 있으면 그 정치가 행해지고 그 사람이 없으면 그 정치가 그칩니다.” 노무현이 있으면 노무현 정치가 행해지고, 박근혜가 있으면 최순실 정치가 행해진다. 김경집이 있으면 김경집의 글이 나온다. 글과 인간을 분리할 수 없기에 이 비평은 김경집의 고전 3부작에 대한 리뷰이자 인간 김경집에 대한 칼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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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 묻다』 김경집 지음, 학교도서관저널, 2020



스스로 답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고전
 
2016년부터 김경집 선생은 『고전, 어떻게 읽을까?』 『다시 읽은 고전』 『고전에 묻다』를 펴냈다. 한 권의 책 안에 30권 가까운 고전을 소개하고 있다. 집필 의도에 ‘청소년을 위한 안내서’라고 밝혔지만 나는 오히려 성인에게 권하고 싶다.


“삶의 강을 건너는 데에 크고 멋진 배가 능사는 아니다. 그런데도 다들 그런 배만 선망한다. 힘들고 매운 삶과 세상의 강을 건너는 나만의 배를 건조할 수 있어야 한다. 고전은 삶의 강을 건너는 나만의 배를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건 청소년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다. 지금 내게 하는 말이다.


『고전, 어떻게 읽을까?』에서 선생은 “고전은 세상의 보편적 가치를 대가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삶은 고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렇듯 고통과 절망은 대가라고 피해가지 않고 성인聖人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중요한 건 삶의 폭풍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서거나 피하는 노하우다. 고전의 주인공들에겐 그들만의 방식이 있다. 우리는 그 방식을 배우면 된다.


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아이디어는 ‘비틀어 보기’다. 선생은 고전이 주는 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기존의 역자나 학자들이 풀이한 해석보다는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한 독자만의 질문’을 강조한다. “고전은 엄청난 답을 갖고 있지만 묻는 사람에게만 그 대답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군자의 삶을 권했지만, 김경집 선생은 소인의 삶을 옹호한다. 오랫동안 『논어』에 천착해 왔던 나로서는 『고전에 묻다』 속 이 대목을 읽고 무릎을 쳤다(아래 네 가지 항목 가운데 위에 있는 문장은 기존의 해석, 그 뒤에 온 문장은 김경집 선생의 탁견, 괄호 안 문장은 필자의 첨언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군자가 아닌가?
→ 소인은 어차피 남이 알아주길 바라면서 살지 않는다.


군자는 배부르게 먹는 걸 추구하지 않는다.
→ 소인은 배부르게 먹는 걸 아예 좇을 수 없다. 살기 위해 먹지 먹기 위해 살지 않는다.


군자는 사람을 두루 후하게 대하고 편애하지 않는다.
→ 도무지 용납하기 어려운 놈에게까지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 그런 군자, 노 땡큐다(이쯤 되면 유머의 수준은 태풍급이다).


군자는 행동을 먼저 한 뒤에 말이 그 뒤를 따르게 하는 사람이다.
→ 말보다 행동을 먼저 보여주는 게 솔선수범일 수 있지만 때론 그게 오만이고 독선일 수 있다(뒤통수를 때리는 말이다. 저자의 소인을 위한 변명을 읽다 보면 군자는 완전 꼰대의 전형이다).


​『춘향전』에 대한 해석도 기발하다. “이몽룡은 사대부의 자제지만 현실은 수험생 신분이다. (중략) 그래서 그들은 그날 밤에 만났다. 지금도 이런 진도(?)는 흔치 않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중략) 그리고 마침내 몽룡은 장원 급제했다. 요즘으로 따지면 고시에서 수석으로 합격한 것이다.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그런데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장원급제가 곧바로 고위직 임명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몽룡은 요즘으로 치자면 사법연수원생의 신분일 뿐이다.”


선생은 몽룡이 어사가 되고 나서 파락호의 모습으로 옥중 춘향을 찾아간 것을 두고 “내가 알기로는 어느 작품에서도 이렇게 교활한 사랑을 본 적이 없다. 그것도 그 어린 나이에!”라고 풀이한다.


와, 듣고 보니 그렇다. 장원 급제한 이몽룡을 사법연수원생으로 치환하는 시각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건 머리가 말랑말랑한 청소년이나 장착할 수 있는 비기祕技인데 아무래도 김경집 선생은 고전을 통해 비기祕記를 전수받은 듯하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선생의 외모적 특징이 혹시 그의 본성을 숨기는 변장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흰머리는 젊은 상상을 가리기 위한 위장이요, 동그란 안경은 열린 사고의 창을 보호하기 위한 설정이며, 가벼운 발걸음은 진중한 철학의 무게를 덜기 위한 꾸밈 아닐까(사진을 싣지 못해 안타깝다).


우리는 그동안 고전을 아무 생각 없이 읽었다. 김경집 선생의 변칙 해설을 듣다 보니 이전에 읽은 책을 다시 펼쳐 보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했다. 선생은 특유의 산파술로 독자를 이끈다.


이를테면 『삼국유사』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밑밥을 깐다. “대한민국 국보 1호는 숭례문(남대문), 보물 1호는 흥인지문(동대문)이다. 그럼 사적 1호는 무엇일까?”


아는 사람? 나도 잘 모르겠다. ‘사적 1호가 뭐지?’ 하며 궁금해 하는 순간 저자는 ‘포석정’이라는 답을 내놓고는 “이렇게 지정된 문화재들은 모두 식민사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특히 사적 1호가 포석정이 된 데에 (일제에 의해) 『삼국유사』가 악용되었다면 믿겨지는가?”라고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정말? 첫 번째 잽과 두 번째 펀치가 다 첫 문장 다섯 줄 안에 들어가 있다. 여기까지 읽고는 진도를 더 안 나갈 재간이 없다(답은 『고전, 어떻게 읽을까?』 43쪽과 44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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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은 고전』 김경집 지음, 학교도서관저널, 2019



고전은 늘 현대성을 갖는다


<뉴욕 헤럴드 트리뷴> 기자였던 윌리엄 진서는 미국의 저널리스트들이 금과옥조로 여긴다는 책 『글쓰기 생각쓰기』(돌베개)에서 이렇게 말했다. “첫 문장에서 즉시에 독자를 사로잡아 계속 읽게 만들어라. 새로움, 진기함, 역설, 유머, 경이, 창의적인 아이디어, 흥미로운 사실과 질문으로 그를 꼬드겨라. 독자의 호기심을 건드리고 소매를 부여잡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다.”


진서의 말대로 쓰인 글을 읽는다면 독자로서는 대만족이 아닐 수 없다. 고전 3부작의 독자는 꼭지마다 새로움, 진기함, 역설, 유머, 경이, 창의적인 아이디어, 흥미로운 사실을 접하게 된다. 나는 한 사람의 독자로서 고전 3부작 중 어느 것이든 “섣불리 읽기 시작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한번 시작하면 멈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는 어려운 어휘나 현학적 설명이 드물다. 쉽고 단순하며 명쾌하다. 그럼에도 심오한 사상과 명확한 방향을 제시한다. “민주주의를 망가뜨리고 정의를 짓밟은 권력을 끌어내린 촛불 시민들은 역성혁명의 주역들이었다. 이제 다시 『맹자』를 읽으며 스스로를 경계하고 사회가 타락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할 때다. 우리에게는 명예혁명보다 훨씬 더 멋진 역성혁명을 이룬 역사가 있지 않은가. 역성혁명은 언제나 가능하다.”


『어른은 진보다』(레드우드)에서 보수주의자로 자처한 저자는 이렇게 ‘훅’ 들어온다. 본인은 보수주의자라 했으나 내가 보기에 그는 누구보다 과격한 아나키스트다. 최근 우리 국민은 좀비처럼 활개 치는 일부 개신교 관계자들로 인해 코로나 위기 상황이 가중되는 경험을 했다. “죽어도 대면 예배는 포기 못 한다”며 광신적 배타성을 드러내는 배경에는 ‘죽어도 포기 못 하는’ 십일조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빔 벤더스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에서 “재물에 희망을 두는 교회에는 예수님이 없습니다”라고 갈파했다.


​교황님은 참 군자답게 유하게 말씀하시네. 내가 알아듣기 쉽게 말해 주겠다. “돈 밝히는 목사 놈아, 나 예수가 장담하는데 넌 지옥 간다!” 김경집 선생은 2017년 11월 <가톨릭일꾼>에 게재된 칼럼에서 독일의 실천적 목회자인 디트리히 본회퍼의 평전을 소개하며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지경이 되었으니 하느님 보기에 어떨지 참 민망한 노릇”이라고 한탄한다. 이게 현재 우리 개신교의 모습이다. “세습에만 골몰한 (중략) 싸구려 은혜를 팔면서 세력의 확장에만 힘쓰면서 뻔뻔하게 복음을 운운하고 신의 뜻을 팔고, 오히려 ‘예수가 하지 말라는 짓을 예수의 이름으로’ 저지르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이게 일 년 전 글이다. 어째 최근의 상황을 예언하는 듯하다. 저자는 자본도 들이받고 교회도 들이받는다. 어쩌자고 이러는가? 팬으로서 걱정된다. 정녕 그는 펜 하나 달랑 들고 이 사회의 불의와 부정에 맞서겠다는 것인가?


살다 보면 일이 꼬일 때가 있다. 그럴 때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꼬인 매듭이 풀리곤 한다. 내게는 김경집 선생이 그 ‘누군가’다. 고민하던 주제가 그의 몇 마디에 해결된다. 괴롭히던 아이템이 그의 조언 하나에 빛을 본다. 나만 그럴까? 내가 아는 부지런한 출판평론가 김모 씨(빵떡 모자를 쓰고 안경을 썼으며 쌍꺼풀 있음)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는 아예 한 달에 한 번 김경집 선생과 만난다. 내가 아는 어떤 PD 역시 그렇게 느낀다며 종종 미팅 시간을 갖는다. 어떤 편집자는 수시로 그를 불러 조언을 구한다(김경집 선생이 그에게 혹시 재정적으로 낚여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저자는 매일 책 한 권 이상을 읽고 집필을 하면서도 지인들의 부름에 응한다. 그리고 지혜를 나눈다. 정확히 말하면 전수한다. 그러니 만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고전은 늘 현재성을 갖는다. 고전은 그 책이 나온 연도의 오래됨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2000년 전에 썼어도 보편적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며 반세기 전에 기록했어도 21세기의 모습이 투영된다. 그래서 고전은 오늘의 우리가 읽고 사색하고 다시 읽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문제는 쉽지 않다는 거다. 고전 읽기가 그리 만만치 않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김경집 선생과 같은 노련한 가이드가 필요하다.


학교도서관저널에서 펴낸 김경집 선생의 고전 3부작 『고전, 어떻게 읽을까?』 『다시 읽은 고전』 『고전에 묻다』는 고전古典을 읽고는 싶지만 고전苦戰하는 독자들에게 훌륭한 나침반이다. 인문학의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면 이 책들을 강권한다.


저자와 친해서 권하는 거냐고? 안 그러면 이렇게 긴 글을 쓰겠나? 김경집 선생은 늘 솔직담백하다. 나는 그저 그를 본받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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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어떻게 읽을까?』 김경집 지음, 학교도서관저널, 2016




<기획회의> 520호 2020.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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