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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읽을래? - 서현숙, 허보영

프롤로그



우리, 같이 읽을래?




홍천여고 재직 시절, 문학 수업 시간에 2학년 7반 학생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혼자 책 읽고 개인적인 독서 기록을 남기는 것과 함께 읽고 독서토론 하는 것 중에 뭐가 더 좋아?”
이 아이들은 1년 반 동안, 수업 시간, 독서동아리, 독서 프로그램 등에서 ‘함께 읽기와 독서토론’을 지속적으로 해 왔다.
“함께 읽는 거요.”
“함께 읽고 독서토론 하면 혼자 읽는 것보다 어떤 점이 좋아?”
“기억에 더 오래 남아요” “혼자 읽을 땐 생각지 못했던 걸 생각하게 돼요” “독서토론 모임에 가야 해서 더 열심히 읽어요”, “똑똑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함께 읽으면 즐거워요” “친구들과 친해져요”
아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외치는 말을 수첩에 받아 적었는데, 그중에서 유독 두 가지 답변이 흥미로웠다. ‘함께 읽으면 즐거워요’ ‘함께 읽으면 친구들과 친해져요’
우리를 포함해 대부분의 교사들은 독서토론을 지도할 때 주로 지적인 성장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다. 독서토론을 통해 아이들의 독해력이 향상되고, 생각하는 힘과 표현력이 길러지길 기대한다. 그런데 독서토론 수업, 독서동아리 활동, 학교 독서 프로그램을 연계해 1년 동안 전면적인 독서토론 교육을 실행했더니 아이들은 독서토론을 “사랑받는 가장 완벽한 대화” “체육활동 없이 우정을 기르는 방법” “친구를 이어주는 끈”이라고 표현했다.
1년 동안 함께 읽기를 경험한 아이들은 지적인 성장보다는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고, 교우관계가 친밀해졌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 함께 책 읽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마음과 생각에 공감하고 지지하면서 사랑받고 인정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책대화 하는 시간이 학교 생활 중 유일하게 친구들과 진지한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며, 그래서 함께 읽고 독서토론 하는 것이 정말 즐겁다고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 아이들이 처음부터 함께 읽기를 좋아한 건 아니었다. 갓 입학했을 때만 해도 국어 시간에 독서토론 하자고 했더니 ‘말을 잘 못 한다’ ‘나중에 싸우게 돼서 싫다’ ‘혼자 읽는 게 더 좋다’ ‘말 잘하는 친구들이나 하는 거 아니냐’ 등의 이유를 들며 요리조리 피하려 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후 학생들 대부분이 함께 읽기가 더 좋다고 한다. 1년 동안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이들이 독서토론을 사랑한 이유


우리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함께 책 읽고 토론하며, 글 쓰는 과정에서 성장하길 바라며 독서토론교육을 해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우리가 지난 3년 동안 홍천여고의 독서토론교육을 진행하면서 나름대로 지켜온 원칙이 있었다.
첫째, 비경쟁 독서토론. 우리는 디베이트 성격의 독서토론은 하지 않았다. 오직 비경쟁 독서토론만 했다. 독서토론은 자신의 독서를 더 풍부하게 하기 위한 활동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비판할 이유도, 내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관철시킬 이유도 없다. 비경쟁 독서토론은 정답 없는 솔직한 말하기였고, 평가받지 않는 말하기였다. 아이들은 이길 필요 없는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 안에서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서로 응원하며 지지할 수 있었다. 내 의견을 존중받으니 자연히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삶과 세상에 질문 던지기. 비경쟁 독서토론에는 현란한 기술이 없다. 오로지 읽은 책에 대해서 내가 토론하고 싶은 질문 만들기만 있다. 한 가지 방법만 있는데도 질리지 않는다. 하면 할수록 더 재밌고, 심화된 읽기로 나아가게 된다.
책을 읽은 후, 자신과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고 질문하는 연습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사고의 틀을 스스로 만드는 주체적이고, 혁명적인 공부이다. 누군가가 만든 문제를 이용해 생각하고 토론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서 토론하는 공부는 수동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연습이다. 비경쟁 독서토론의 질문 만들기를 몇 번 경험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중학교 때 경험했던 토론은 찬반토론 형식이 대부분이어서, 상대방의 입론을 들으며 논리적으로 맞지 않거나, 부족한 부분을 찾아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경쟁하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비경쟁 독서토론은 내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고 경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 서로가 하나의 질문을 만들기 위해 ‘협력’한다는 점에서 재미있습니다.”
셋째, 누구나 즐기는 것. 아직도 많은 학교에서 독서토론은 일부 학생들만 참여하는 활동이거나 ‘해야 해서 하는’ 활동인 경우가 많다. 영화를 보고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책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독서토론은 책을 읽고 옹기종기 모여서 누구나 나눌 수 있는 대화, 한번 맛보면 누구나 그 즐거움을 알게 되는 매력적인 유희이다. 그래서 일부 학생들만 배워서는 안 되며, 모든 학생이 그 방법과 즐거움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전교생에게 독서토론 방법을 가르쳤고, 최대한 많은 학생이 와서 놀 수 있는 독서토론의 놀이판을 여러 개 만들었다.
넷째, 독서토론에 대한 엄숙주의 버리기. 성인이고 학생이고 독서와 토론에 너무 무겁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학생이 독서토론은 진지한 얼굴로 참여해야 하고, 날카로운 질문과 생각을 말해야 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독서토론 방법을 배우는 시간도 있지만, 독서토론으로 파티를 열거나 친구와 놀 수도 있으며, 좋아하는 선생님과 추억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독서토론 할 때는 엄숙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벗게 된다. 배움과 놀이가 한 지점에서 만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독서토론은 재미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원칙을 바탕으로 학교 전체의 독서토론 교육을 세 바퀴(세 가지 체계)로 나눴다.



독서토론 교육의 세 바퀴


세 바퀴라고 하니 뭔가 체계적으로 독서교육을 진행한 것처럼 들릴 수 있는데, 사실 우리는 정신없이 이것저것 했다. 둘 다 계획적이고 주도면밀하기보다는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즉흥적인 성향이 강했다. 그런데 학교에 두어 번쯤 오셨던 독서교육 전문가 김은하 선생님이 우리의 산만한 활동을 세 바퀴로 정리해서 말씀해 주셨고, 그것을 듣는 순간 머리에 형광등이 반짝 켜졌다. “아, 이렇게 세 개의 범주로 나누어질 수 있는 활동이구나!”프롤로그_독서동아리-100개면-학교가-바뀐다-4.jpg

 

첫 번째 바퀴는 ‘수업시간에 배우다’이다. 학생들은 모두 수업 시간에 독서토론을 배웠다. 국어 교과를 이용해서 1주일에 1회 독서토론 수업을 했다. 1학년은 한 학기에 한 권 읽기로 시작하면서 독서토론 하는 것을 배우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하나의 주제에 영화 한 편과 도서 2종이 세트로 묶인 주제통합 독서토론을 배우고, 더 올라가면 자기 인생의 길을 찾는 인생 독서토론을 배운다. 전교생이 모두 수업 시간에 책을 함께 읽은 후 어떻게 감상을 나누고 토론 주제를 정하며, 토론한 내용을 어떻게 정리하는지 익히는 것이다.

두 번째 바퀴는 ‘선생님과 언니가 끌어주다’이다. 학교의 좋은 점은 선배와 후배, 선생님과 학생이 있는 것이다. 때로는 언니들이, 때로는 선생님이 멘토가 되어 독서토론을 끌어준다. 언니들이 학기 초에 ‘언니들의 북토크’로 후배들을 책읽기의 세계로 유혹한다. ‘언니의 독서토론 워크숍’을 열어서 동생들을 함께 읽기의 신세계로 끌어들인다. 선생님들은 계절마다 펼쳐지는 5人의 책친구에서 학생들과 팀을 이루어서 특별한 추억을 만든다.
세 번째 바퀴는 ‘친구들과 놀다’이다. 독서토론 수업에서 배운 것들이 기본기가 되어서, 학교의 모든 독서 활동에 써먹을 수 있다. 함께 읽으며 놀 수 있는 다양한 ‘스테이지’가 배치되어 있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독서 동아리에서 책대화를 하고 우정을 쌓으면서 논다. 또 인문학 독서토론카페에 한껏 멋을 내고 가서 친구와 독서토론을 하며 논다. 지역 친구들과 독서토론파티에서 만나서 진지하고도 흥겨운 독서토론을 한다.
이렇게 세 바퀴를 갖추면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독서토론을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친구와 놀고, 가끔 선생님·언니와 추억을 만든다. 배우기만 하면 즐기지 못한다. 그냥 진지한 배움의 경험에 그친다. 놀이만 있는 학교는 학생들이 오래오래 지속적으로 놀 수 없고, 제대로 놀기 힘들며, 놀이가 깊어지기 힘들다. 멘토가 끌어주기만 하면 언니들도 제대된 경험이 없어서 알차게 동생들을 끌어주기 힘들다. 그래서 세 바퀴가 참 좋다. 학교의 독서 활동이 안정적으로 굴러갈 뿐더러 자체적인 동력이 생겨서 저절로 신나게 굴러가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더군다나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을 가지고 이렇게 놀 수 있다니! 학교의 문화가 바뀌는 것에 미치는 힘이 대단하다.



일의 보람과 삶의 보람이 일치했던 3년


홍천여고에서 보낸 3년은 이제 지나간 추억이 되었다. 우리는 독서토론 교육을 업무라기보다 친한 동료 교사와 모의하고 작당해서 재미있는 일을 벌이는 마음으로 했다. 우리가 마련한 놀이판에 아이들이 햇살 같은 얼굴로 와서 웃으며 놀아주어 더 신바람이 났다. 점심시간에도 교무실에서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독서동아리 일지를 가지러 오는 아이들에게 “오늘은 모여서 뭐해?” “요즘 동아리 잘 돼?” 하면서 말을 걸었고, 퇴근 시간 이후에도 머리를 맞대고 수다를 떨면서 뭐 더 재미있는 일 없는까 궁리했다.
남들이 보면 매일매일 업무회의 하는 사람들이었고, 영혼의 퇴근이 없는 이상한 사람들이었을지 모르지만, 영혼의 퇴근 없는 3년이 몹시 즐거웠다. 심지어 꿈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읽기와 관련된 판을 벌였다. “선생님, 우리 외국 도서관처럼 북토크 해볼까?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선생님, 작년에 열심히 했던 2학년 아이들을 독서토론 리더로 키워볼까?” “언니들이 독서토론 워크숍 하면 동생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등의 엉뚱하고 이상한 제안도 흔쾌히 받아들이는 동지(同志)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몰입의 3년이었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게 “나는 일의 보람과 삶의 보람이 일치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멋진 경험이었다.
이왕 독서교육을 할 생각이라면 교실 수업에 머물지 않고 전면적으로 할 때, 큰 상승효과가  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을 수업 외의 시공간에서 활용할 일이 많아진다는 것, 그래서 아이들의 일상이 조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교사에게 근사한 일이다. 교사가 학생에게 할 수 있는 ‘원체험’으로서의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몸과 영혼, 기억 속에 함께 읽기의 든든함과 즐거움이 각인될 것이고, 이는 삶의 여러 줄기에서 다시 뿜어져 나오고 이어지게 될 것이다.




2019년 6월
서현숙, 허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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