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0주년을 맞이해 드리는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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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0-02-27 09:39 조회 19,274회 댓글 0건본문
창간 10주년을 맞이해 드리는 약속
한기호 학교도서관저널 발행인
“대학 졸업장이나 석박사 학위보다도 어떤 역량을 실제로 갖췄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한 번의 직업 선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직업을 선택해도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만 한다. 정보에 대한 접근 능력이 아무런 경쟁력이 되지 않는 시대에는 정보를 끄집어내 주관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가치를 발생시킬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여야 시대를 주도할 수 있다. 이런 능력 또한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으며 중요한 부분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망각하는 능력, 즉 콘셉트를 뽑아내는 훈련을 제대로 한 사람만이 갖출 수 있다.”
10년 전 <학교도서관저널> 창간호의 창간사에서 이렇게 썼다. 당시에는 교육부가 일제고사를 만들면서 학교 교육을 시험 성적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몰았다. 독서운동이 활발했는데 좋은 책을 골라주고 책을 읽는 일을 열심히 할수록 양극화가 심해졌다. 심하게 말하면 상위 5%를 위한 독서운동이고 독서교육이었다.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교육정책을 비판하면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했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열심히 책을 읽고 역량을 갖추게 만들려면 학교도서관이 필요했다. 그래서 잡지를 창간했다.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한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교육의 전부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학교도서관이야말로 평등 교육의 요체였다.
이런 취지를 살려서 학교도서관 활성화에 이바지하기 위해 창간한 <학교도서관저널>에는 열렬히 독서운동을 벌이던 이들이 자원봉사자로 대거 참가했다. 창간호 발행과 동시에 교육 현장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전국의 초중고뿐만 아니라 공공도서관 등에도 무료로 배포한다고 하니 광고가 밀려들었다. 한 출판사가 할 수 있는 광고의 한도를 정해야 할 정도였다. <학교도서관저널> 창간호와 발간 기념 별책 단행본인 『2010 추천도서목록』에는 230쪽의 광고를 게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광고가 너무 많이 게재돼서 반발도 심했다. 일부에서는 상업 잡지라는 비난을 공개적으로 쏟아냈다.
나는 책임을 져야 했다. 이후 나는 <학교도서관저널> 창간 1주년 기념호에 머리말을 쓴 것 이외에는 어떤 글도 쓰지 않았고, 편집 회의나 추천도서 회의에도 절대 참가하지 않았다. 부족한 자금을 메우는 것에만 관여할 뿐, 책을 만드는 모든 권한을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사와 독서운동가에게 넘겼다. 전국의 교사와 활동가 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했고, 함께 무수한 책을 검토하고 추천했다. 한 독서운동가는 멍석을 깔아놓고 마음껏 놀게 만들었기에 <학교도서관저널>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학교도서관저널>을 발행하며 여러 부침을 겪었지만 운이 작용하기도 했다. 2016년 3월에 알파고가 이세돌과 바둑을 둔 이벤트 이후 학교 현장은 학력이 아닌 학습력을 키워야 한다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후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점차 확산되면서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매 호마다 주제별로 150여 권의 책을 큐레이션해 주고 70여 권의 신간 서평도 싣는 <학교도서관저널>의 인기는 자연스럽게 높아 갔다. <학교도서관저널>에 실리는 교사와 활동가의 다양한 경험이 담긴 글들은 교육 현장에 녹아들었고 독자들에게 생각의 차이를 전하며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래서 <학교도서관저널>을 찾는 독자들이 점점 늘어났다. <학교도서관저널>의 반응이 좋아지면서 단행본 사업도 점차 활기를 띠었다.
<학교도서관저널>이 10년을 맞는 사이 현장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그렇다면 이후 <학교도서관저널>의 과제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OECD에 가입한 나라에서는 모두 <학교도서관저널>과 유사한 성격의 책이 간행되고 있는데, 그 발행 주체가 공공기관이 아니라 개인인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사적 이익보다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잡지임에도 사기업이 간행한다는 한계가 있다. 물론 지난 10년간 함께한 기획위원과 추천위원 외 많은 선생님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공성이 원천적으로 확보되려면 개인이 아닌 공공 조직이 잘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항구적인 생명력을 갖는 잡지가 될 것이다. 나의 유일한 희망은 그런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뒤로 물러나는 것이다. 그날이 빨리 올 수 있도록 헌신할 것을 독자들에게 약속드린다. 앞으로도 <학교도서관저널>에 많은 애정을 부탁드린다.
::: <학교도서관저널> 2020. 3월호(창간 10주년 기념호) 32~33쪽 ‘발행인이 독자에게 드리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