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도서관에 천국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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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1-05-20 09:53 조회 14,586회 댓글 0건본문
학교도서관에 천국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
서현숙_ 삼척여고 국어교사
『학교도서관 리모델링』은 초·중·고 열세 개 학교가 도서관을 재단장하거나 새로 만든 사례를 담고 있다. ‘예산 확보부터 설계, 시공, 재개관까지. 초·중·고 학교도서관 리모델링 안내서’라는 부제는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잘 표현하고 있다. 주로 학교 또는 도서관과 관련 맺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펼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나’를 생각했다. 학교에서 나의 정체성은 사서교사 아닌 국어교사다. 그럼에도 학교도서관과의 인연은 오래되었다. 도서관 리모델링 네 번, 새로 짓는 건물에 도서관 만들기 한 번, 국어교사로서 흔치 않은 경력을 가지고 있다. 2002년 이후 근무해 온 여섯 개 교육기관 중, 내가 도서관을 손보지 않고 근무한 기관은 단 하나였다. 그 학교는 중·고 병설학교였고 나는 고등학교 소속이었다. 고등학교는 중학교 도서관을 빌려 쓰는 처지라 도서관 환경을 바꿀 기회가 없었다.
학교도서관이 어떻게 나에게 왔더라. 지금은 스무 살이 된 딸이 첫 돌을 맞이하던 해였다. 지역 교사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독서 모임이 있는 날은 아침부터 두근거렸다. 마치 데이트 약속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살아오면서 가장 설레는 일을 만난 해였다. 그 모임에서 ‘학교도서관’을 만났다. 내가 만난 ‘학교도서관’은 교육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었다. 어떤 학생도 차별하지 않는 평등한 곳, 아이들의 공부뿐 아니라 삶을 지원하는 곳, 어떤 추운 영혼도 보듬어줄 수 있는 곳이었다. 마침, 창고 같은 학교도서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폐가식 서가를 가진 어두침침한 도서관, 점심시간 외의 시간은 절대로 문을 열지 않는 도서관, 먼지가 도톰한 이불처럼 내려앉은 도서관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2003년이었다.
『학교도서관 리모델링』 박영혜 외 지음, 학교도서관저널, 2020
“‘아휴, 거기 난방기도 없고 사람이 있을 수가 없는데.’ ‘난 학교 온 지 2년 차인데 도서관에 가본 적이 없어요.’ (중략) 하루 30분 정도 점심시간에 잠깐 개방했던 학교도서관은 시설뿐만 아니라 모든 게 멈춰 있고 휑뎅그렁했다. (중략) 하루 대출권수가 평균 1.06권인데, 이건 거의 아무도 오지 않는 도서관이었다는 뜻이다.”(190쪽∼191쪽, 이현애 횡성여고 사서교사) 2019년의 학교도서관 풍경이다. 놀라웠다. 2003년과 다를 바 없었다. 사회의 어른들은 ‘학교에 도서관이 이제 어지간히 갖춰져 있으려니.’ 생각할 것이다. 이 책은 대체로 2015년 이후의 사례를 싣고 있는데, 한국사회에 뜻밖의 학교도서관이 참 많다. 화성 비봉초 오송희 선생이 발령 받았던 송화초등학교는 전교생 1000명이 넘는 규모였는데 도서관이 교실 두 칸 크기였다. 서가는 뒤판이 떨어지고 바닥은 변색되고 전등은 몹시 어두워 비 오는 날은 책 정리가 불편했다. 열람 책상은 저학년용 교실 책걸상이었다. 도서실 한 가운데는 매트 두 장(유아용 놀이 매트)에 좌식 탁자(68쪽)가 놓인 모습이었다. 나는 이 도서관의 모습을 책에 실린 사진으로 봤다. 믿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오송희 선생은 가슴이 다 먹먹했다고 한다.
통상적으로 교사들은 어떤 공간을 리모델링하는 일에 문외한門外漢인 사람들이다. 인테리어나 설계에 대한 전문 지식, 경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리모델링 과정이 늘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관리자의 생각과 맞지 않거나 예산이 부족한 갈등 상황이 일어나기도(30쪽) 한다. 공사하는 사람들이 비닐을 깔지 않고 페인트 작업을 하는 바람에 도서관 바닥에 수천 개가 넘는 페인트 점이 생겨 보수 요청을 하다가 욕설을 듣기도(109쪽) 한다. 교사들은 공사 감독이 아니라 수업과 학생지도가 주된 업무다. 그럼에도 누군가 매일 들여다보고 진행상황을 점검하면 공사를 진행하는 분들도 더 작업에 신경을 써줄 듯하여 날마다 도서관에 들러 공사 과정을 확인하고 살펴보기도(160쪽) 한다.
학교도서관의 기능대로 교수학습 지원센터, 독서교육 지원센터, 레크리에이션 센터를 기계적으로 조성만 하면 된다면, 교사들이 ‘지나친’ 애를 쓸 필요가 있을까. “표준대로 만들어 주세요”라고 하면 될 것을 말이다. 이 책에 글을 쓴 교사들은 어떤 도서관을 만들고 싶었을까. 서울 금북초 양소라 선생은 도면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책과 함께 빠질 수 있는 수영장 같은 공간”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한다. 완성된 도서관의 사진을 책에서 보니, 자그마한 수영장처럼 하늘색의 움푹한 공간이 생겼다. 어린이들이 ‘수영장’에 푹 빠져서 책을 보고 있었다. 춘천여고 임다희 선생은 “건강에 좋은 친환경 자재를 쓰면서도 여고생의 감수성에 딱 맞는 세련되면서도 아늑한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행복한 기분이 드는 도서관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도서관을 만들었다. “모둠 토론실에서 학생들의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웹 프리존은 컴퓨터를 이용해 과제를 하고 인터넷 강의를 듣는 학생들로 가득하다. 창가의 햇살 카페에는 독서동아리 학생들이 함께 읽은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2인 스터디룸에서는 공부에 열중하는 학생들의 뒷모습이 보이고 햇살 카페의 폴딩 도어를 열고 나가면 육각 정자인 ‘마음서재’에 둥글게 모여 앉아 담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 리모델링된 춘천여고 꿈너머꿈 도서관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들이다.”(167쪽∼170쪽, 임다희 춘천여고 국어교사)
그들은 도서관 환경을 조금 낫게 바꾸려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들은 학교도서관에 천국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 아니었을까. 아이들이 찾아와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곳, 어떤 학생도 차별하지 않고 반기고 안아주는 곳, 학생들의 책읽기, 우정, 휴식을 모두 허용하고 응원하는 곳, 이런 곳이 천국의 모습 아닐까. 이 책에 도서관을 만든 사례를 쓴 교사 중,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내 친구 임다희 역시 도서관에 천국을 만들려는 사람이었다. 지구의 모든 학교가 천국 같은 도서관을 지니게 되는 것, 이것이 ‘도서관의 맛’을 알게 된 우리의 바람일 것이다.
고등학교 국어교사. 알고 보면 뼛속 깊이 재미주의자다. 공무원 사회에서 지루한 얼굴로 살 뻔 했는데, 가슴 설레는 재미난 일을 만났다. “이 책, 같이 읽을래?”라는 말로 아이들을 책의 세계로 이끄는 일이다. 덕분에 직업이 삶이고 삶이 직업인 즐거움을 알아버렸다. 지은 책으로 『소년을 읽다』(사계절), 『독서동아리 100개면 학교가 바뀐다』(공저, 학교도서관저널)가 있다.
::: <기획회의> 536호_ 2021.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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