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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눈 맞추는 성교육 Q&A] '예쁘게' 사귄다는 건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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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6-10-06 15:39 조회 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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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게' 사귄다는 건

어떤 모습일까요?


올해 여름, 지독한 번아웃을 겪었습니다. 온몸 구석구석 뻐근하지 않은 곳이 없고, 소화가 안 돼서 배가 딱딱하게 뭉쳤었어요. 급기야 운전하다가 숨이 쉬어지지 않고 눈앞이 캄캄해져 119를 부르는 상황까지 겪었죠. 다행히 큰 사고는 나지 않았고 응급실에서 시행한 피검사는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서현주 전 초등 교사, 폭력예방교육 전문 강사



 

긴장, 몸이 비상 상태라는 증거

그러다가 신경과에서 근육 문제일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의사선생님이 놔 주신 근육 이완 주사를 맞자마자 소화가 되고 눈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가슴 뛰는 불안감도 사라졌고요. 몸이 편해지자 스르르 마음도 편해졌습니다. 스트레스 받으면 뒷목이 딱딱해지는 경험, 누구나 해 보셨죠? 복식 호흡을 하고 차분하게 몸을 쉬게 해 주면 불안이 가라앉는 느낌도요. 인간은 몸과 마음이 완전히 연결돼 있습니다. 어쩌면 몸은 곧 마음일 수 있고요. 만원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던 어느 때였습니다. 멍 때리며 사람들 틈에 끼어 있는데 한 손길이 등장했어요. 인파 속에 숨어 제 겨드랑이 쪽을 만지작거리는 나쁜 손이었습니다. “뭐하는 거예요?” 소리치고 싶었지만, 손의 주인이 험상궂은 아저씨인 것을 확인하고는 굳어버렸습니다. 온 머리카락이 삐죽 서는 느낌이 들면서 화가 치밀었어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다들 삶의 무게를 견디느라 피곤했고, 저는 별다른 조치를 못 취했습니다. 이렇듯 우리 몸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면 긴장합니다. 온몸에 돌던 피가 대근육쪽으로 퍼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며 동공이 확장되죠. 호흡도 가빠집니다. 이것은 도망가거나 싸우기 위해 몸이 비상 상태에 돌입하는 것입니다. 바로 교감 신경의 자동적인 반응이에요. 영화 <스파이더 맨>에서 MJ로 등장하는 젠 데이아의 인터뷰가 떠오릅니다. 젠 데이아와 톰 홀랜드는 영화 속에서 커플로 연기하다가 실제 연인이 되어 화제가 되었죠. 젠 데이아는 톰 홀

랜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내 사람이라는 것

을 금방 느낄 수 있었어요. 그 사람 앞에서는 전혀 긴장되지 않

고 평온해지거든요.”

예쁘게 사귄다는 모습은 무엇일까 골똘히 생각하다 보니, 이

렇게 긴장과 이완의 모습을 논하게 되었네요. 김다노 작가의 동

화 『최악의 최애』는 어린이의 본격 연애 이야기 모음집입니다.

옴니버스로 연결된 이야기 속에는 여러 관계가 등장합니다. 서

로 좋아하는 커플도 나오고 사랑의 작대기가 엇갈린 아이들 에

피소드도 있어요. 그중 수민이 이야기를 먼저 소개합니다. 수민

이는 6학년 어린이입니다. 어느 날부터 수민이네 집 우편함에는

선물이 쌓여 갑니다. 예쁘긴 한데 발신인을 알 수 없었죠. 작은

액세서리를 받으니 처음엔 설렜지만 계속 받다 보니 부담스러워졌어요. 급기야 선물을 왜 착용하지 않냐는 문자까지 받습니다. 익명으로 선물을 보냈던 사람은 같은 반 덕형이었습니다. 평소 덕형이와 연결 고리도 없던 수민이는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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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에 들어서자 시선이 느껴졌다. 실수로라도 민덕형과 그 친구들이 있는 곳을 보지 않으려고 목에 힘을 줬다.”
- 『최악의 최애』(김다노) 중에서
 
민덕형과 친한 남자애들이 “쟤가 너 좋아한대.”라고 말하자 수민이는 생각합니다. ‘누군가 날 좋아한다는데 나는 왜 그게 불편할까.’ 자꾸만 엮이는 상황이 불편한 수민이는 거절하고 싶어도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 자신이 답답합니다. 수민이는 교실에 들어설 때마다 긴장했을 겁니다. 수민이는 덕형이와 짝을 하고 싶지 않아서 선생님께 거짓말로 둘러댔을 때 ‘체한 것처럼 속이 답답했다’고 표현했으니까요. 좋아하는 마음과 고백은 늘 핑크빛일 수만은 없습니다. 당사자가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어두컴컴한 회색빛 마음일 수밖에 없죠. 어린이·청소년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말로 자세하게 설명하기 힘들더라도 움츠러드는 그 느낌, 어딘가 ‘쎄’ 하고 편치 않은 몸의 감각이 관계의 핵심입니다.


서로의 속도를 존중하면 찾아오는‘ 눈맞춤’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습니다. 청소년 시기, 어떤 남자아이가 저를 좋아한다며 소문을 냈어요. 수민이와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싫진 않았지만 딱히 친하게 지내고 싶지도 않았어요. 그 아이가 어떤 성격인지, 뭘 좋아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에요. 어쩌다 그 아이의 친구들과 제 친구들이 함께 노래방을 갔습니다. 그 아이는 사랑 고백 노래를 불렀어요. 친구들은 일제히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아, 정말 불편했죠. 형편없는 그 아이의 노래 실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마음은 전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데 혼자 앞서간 그 아이의 속도, 우리 사이의 거리, 그것이 그 노래를 거슬리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그 아이와 저는 친구도 되지 못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아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함께 한 달 이상 짝꿍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아이. 그 친구는 대화할 때 눈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맞출 수 있는 배려심이 있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에 집중하는 예의 바른 모습이 멋져 보였던, 좋아하는 책과 음악을 공유하고 서로 추천할 수 있는, 대화가 가능한 그런 아이였습니다. 누군가에게 연애 감정이 먼저 생기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호의를 받아들이는 입장을 생각하지 못하는 덕형이와 수민이 같은 관계는 깊어지기가 힘들죠. 수민이와 같은 반인 무지와 미지의 이야기는 어떨까요. 무지는 6학년 남자애들 중 가장 키가 작고 미지는 6학년 여자애들 중 가장 큽니다. 학기초 미지가 무지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했는데, 무지는 쑥스러워 ‘키 큰 여자는 싫다’며 공개적으로 거절하고 맙니다. 사실 미지는 성격도 좋고 멋있는 아이예요. 무지는 미지를 자꾸 생각하다가 점점 좋아지고 맙니다. 그렇게 무지는 미지에게 다시 다가갈 기회를 엿보는데, 체육 시간에 사건이 터집니다. 무지가 발야구를 하다가 넘어져서 다리를 다치고 만 거예요. 그때, 미지는 몸을 숙이고 무지에게 업히라고 합니다. 보건실로 가며 미지가 “내 목을 더 꽉 잡아볼래? 네가 떨어질까 봐 그래.”라고 말하자, 무지는 편안해집니다.

​“무지는 쑥스러워 뒤로 쭉 빼고 있던 몸을 앞으로 숙인 뒤 팔로 미지 목 주변을 둥글게 감쌌다.”
- 『최악의 최애』(김다노) 중에서

이번 호에선 저의 경험과 『최악의 최애』 동화를 얘기하며 몸의 긴장과 이완을 이야기했습니다(편집자 주: 두 어린이의 이후 이야기는 올봄 출간된 동화, 『무지와 미지』에 담겨 있다). 우리는 흔히 교육의 중요한 목표를 ‘지덕체’로 설명하지만 최근 학계는 몸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라고

 합니다. ‘체덕지’의 순서로 바꾸자는 거죠. 그 지점에

서 해외 성폭력 예방 교육의 핵심어가 ‘몸의 긴장’입

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식은땀, 소화 불

량, 어깨 긴장, 움츠림이라는 변화를 느꼈다면 그건

명백히 불편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건 낯선 사람

과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내가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

구나 애인, 동료 그 누구와 있더라도 나의 몸 상태를

살펴야 하고 긴장감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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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선 긋기'로 사랑을 지켜요!
그런데 한국의 성폭력 예방 교육에서는 주로 인지적 상황 판단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행동이 도덕적으로 법적으로 잘못되었냐를 따지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아이가 “제가 말로 설명은 못 하겠는데 느낌은 별로거든요. 이게 지금 올바른 상황인가요?”라며 제3자에게 상황 판단을 묻기도 하죠. 남에게 “나 지금 불편해도 되는 상황 맞아?”라고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내 몸이 굳었다면 그것이 곧 불편함의 증거입니다. 예쁘게 연애하는 것에서 몸의 편안함은 1순위입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연애를 할 순 없죠. 두 번째로 중요한 건 신체적 접촉의 합의입니다. 오늘부터 ‘우리 사귀자 1일’이라고 해서 바로 스킨십을 하면 안 되겠죠. 서로에게 분명한 경계와 한계가 있어야 합니다. 흔히 말하는 스킨십 진도를 빼기 위한 동의가 청소년들에게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니 서로를 알아가는 관계에서 미리 선을 긋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는 그 누구와도 손잡는 것 이상은 안 할거야. 내가 완전히 책임질 수 있는 성인 이후에 결정할 거야.” 이런 언어를 자연스럽게 보여 주는 사람은 어떤가요. 멋있고 주체적으로 보입니다. “네가 하자면 하고 아님 말고…” 이건 진짜 건강한 관계가 아니겠죠. 어린이·청소년에게 연애는 절대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성도 없을뿐더러 잘못된 호기심과 반발심만 불러일으킵니다. 대신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이 편안한 사람을 찾아내기를, 자신의 경계를 확실하게 주장하고 지킬 수 있는 연애를 하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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