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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활용수업 얘들아, 시랑 놀~자~ - ➊ 학교도서관 활용수업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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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20 22:28 조회 7,005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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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 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 「어릴 때 내 꿈은/도종환」, 시집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중에서

시인의 시구처럼 나는 자라서 선생님이 되었다. 첫 발령지였던 경기도를 떠나 굳이 강원도를 찾아 시골학교에서 보냈던 10여 년은 늘 내 곁에 아이들이 있었고, 국어시간마다 행복한 시 읽기로 만남을 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 건물의 가장 햇살 바른 자리엔 아이들의 꿈과 지혜를 모아 땀 흘려 만들었던 아늑한 도서관이 있었다. 아이들이 자신의 방처럼 드나들던 도서관에서 하모니카와 오카리나, 통기타 선율도 지루하면 가끔은도서관의 시집을 들고 학교 뒷동산에 올라 새들의 지저귐과 나무숲 바람결에 온몸을 맡기고 우리들만의 수업 공간에서 아이들이 읊조리는 시를 감상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강원도에서 다시 시작한 10여 년은 나에게 학교도서관지기라는 소명을 안겨준 기간이기도 했다. 2002년 디지털도서관이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강원도에선 처음 시작했던 홍천 양덕중 책사랑 도서관 개관을 시작으로, 2005년 동화중 글빛나래 도서관, 2008년 춘천중 꿈나눔터 도서관을 거쳐 2010년엔 남춘천중 백림(잣나무숲) 도서관지기가 되었다. 학교도서관 리모델링 사업을 맡을 때마다 좀 더 나은 도서관을 찾아서울로, 경기도로, 인천으로 발품을 팔아가며 견학을 하고 설계에 직접 참여하고 공사기간 내내 함께 했었다. 전교생과 교직원, 학부모들까지 관심을 이끌어 공모를 통해 도서관의 작은 공간마다 이름을 짓고 도서관이라는 존재를 온전히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했다.

혼자서도 너끈하게 산속 생활을 즐긴 소년
2010년 현재, 학교도서관 활성화 사업에 힘입어 강원도 내 모든 초중고, 특수학교 등 640개교의 도서관 설치율은 100%이다. 그러나 도서관을 도맡아 운영하고 독서교육을 이끌어 갈 사서교사는 고작 24명으로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며, 2010년 6월부터 희망 학교에 계약직 전담인력(240명)을 배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학교마다 도서관은 설치되었으나 도서관을 활성화시키고 교과교사의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원할 수 있는 도서관의 운영체계 마련도 미흡하다. 그러니 학교도서관과 연계한 교수·학습의 저변 확대는 아직도 미미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갈수록 옭죄어 오는 학교 구조의 현실은 교사들에게 수업의 변화를 모색하는 기회조차 엄두를 낼 수 없게 하며, 많은 학교에서 도서관 설치 자체가 학교 건물의 구석진 복도 끝 부분, 심지어는 맨 꼭대기 층 복도 끝에 설치되어 수업의 접근성 자체가 매우 힘든 것도 현실이다. 학교도서관은 교수·학습 활동의 심장부라는 말이 참으로 무색할 따름이다. 그나마 일부 교과에서 수행평가 과제 선정으로, 혹은 극히 일부 수업에서 소집단의 과제 해결을 위해 도서관 자료를 활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도서관은 아이들이 언제든지 찾아와 자유롭게 책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탐색하고, 문화를 즐기며 위안이 되는 아늑한 쉼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상적인 교수·학습의 공간이어야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도서관의 자료를 찾아 탐구하고, 활용하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터득해 간다면, 훗날 세상에 나가 살아가며 부딪치는 온갖 삶의 문제들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학기 초, 우리 아이들에게 도서관이 진정한 삶의 공간이 되어야 함을 거듭 당부하면서, 도서관 이용 교육과 함께 읽어주는 책의 한 대목이 바로 『나의 산에서』(진 크레이그헤드 조지)이다. 주인공 소년이 혼자서 집을 나와 산에서 생활하며 마을로 내려와 유일하게 도움을 얻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다. 소년은 도서관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고 탐색하여 혼자서도 너끈하게 산속 생활을 즐긴다. 소년에게 도서관은 삶을 지탱하게 하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그래도 도서관 탐구수업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학교를 옮길 때마다 소박한 바람 중 하나는 사서교사가 있는 학교에서 함께 협력수업을 제대로 해보는 것이었다. 사서교사가 도서관을 운영하고 수업자료를 지원해주고, 가끔은 협력수업을 멋지게 함께 하는 꿈. 그러나 나의 작은 꿈은 매번 무너져 내렸다. 아니, 늘 발령 난 학교마다에서 도서관을 새로 만들고, 운영하며, 때로는 담임교사에, 국어수업까지 몸이 당해내지 못할 지경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해마다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어려운 여건에서라도 매 학기마다 1회 이상 본격적인 도서관 탐구수업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보통 10차시 정도로 진행하며 매년 맡는 학년에 따라 주제는 다르게 정했지만 중학교 1~3학년 모두에게 해당되는 내용은 ‘시 수업’이었다. 학년에 따라 내용의 차이를 두고 수업을 진행하지만 반복되는 도서관 시 수업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가 매년 시 감상의 깊이와 넓이를 더해갔다. 생각해보면 중학교 3년 동안 아이들은 300~400여 편의 시를 정성스럽게 읽고 친구들의 시 감상까지 온전하게 간접 경험하며 미래의 시 독자로서 저변을 탄탄히 다지는 셈이었다.

‘시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리라’는 믿음이 내가 이토록 시 수업을 유별나게 챙기는 또 다른 이유일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이 훗날 세상에 나가 각자의 몫을 하며 살아갈 때, 어느 순간 힘들고 지쳐 나락에 빠져들 때, 그 순간 청소년기에 읊었던 시 한 구절이 불현듯 떠올라 다시 솟구치는 힘이 되리라는 믿음 말이다.

하여, 교과서에 소개된 시들은 가능한 신속하게 개인별 혹은 모둠별 탐구학습과 발표학습, 정리학습으로 마무리한 후, 도서관에 있는 모든 시집을 대상으로 교과서 밖의 시 세계를 찾아 떠나는 시 여행! 자유롭게 탐구하고, 낭송하고, 비평하고, 감상하며 정말 즐겁고 감동적인 시 수업을 아이들은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참여했다.
아이들의 활동은 수행평가에 반영하며 참여를 격려했는데 수업의 전체 활동 과정에 성실하게 참여했는가의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 평가에 역점을 두어서 평가에 대한 부담은 최소화했다.

시읽기생활화, 함께 낭송하면 암송도 거뜬
아이들과 함께 하는 도서관 활용 시 수업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진행했다.

◆ 1차시: 자유롭게 시집 읽기 - 시집 제공
◆ 2차시: 내 마음을 울린 시와 시구 찾기- 활동지
◆ 3차시: 모둠시와 학급시 정하고 암송하기- 활동지
◆ 4~5차시: 시 낭송회 및 비평회, 시화(시구)전시회 - 상호감상 활동지, 음악CD
◆ 6~7차시: 시인과의 만남, 그 아름다운 소통과 향기
◆ 8~9차시: 길 따라 떠나는 시낭송 독서기행
◆ 10차시: 나만의 애송시집 만들기

물론, 본격적인 도서관 시 수업이 펼쳐지는 5월, 혹은 10월(매 학기 중간고사 직후가 적절) 이전부터, 사실은 3월 학년 초부터 아이들이 이미 시 읽기를 생활화하며 자연스럽게 시와 친해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더불어 국어과 교과협의회와 나아가 학년협의회를 통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 읽기의 생활화를 적극 제안하고 협조를 구했다. 먼저 아이들과 국어시간의 만남은 언제나 짤막하고 경쾌한 시를 함께 읽으며 마음을 열었다. 국어수업의 시작과 끝 인사로 시를 함께 낭송하고, 더러는 조·종례 시간에도 시를 함께 읽는 시간을 갖도록 했다. 어느 날은 시노래를 음반으로 들려주며, 영상시를 감상하며 흥미를 북돋우고, 아침독서 15분 실천 활동 시간에도 가끔 읽기 자료로 시를 소개하고 감상하는 여백을 마련해 주었다.

시 읽기의 생활화는 혼자 읽기, 더불어 함께 낭송하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암송으로 까지 이어지도록 했다. 국어시간마다 시작과 끝 인사로 두 번씩만 함께 시를 낭송해도 1~2주면 웬만한 시 한 편은 거뜬하게 암송할 수 있는데, 아이들은 보통 한 달에 2~4편을 암송할 수 있었다. 월초에 매주 함께 읽기 시 자료를 인쇄하여 미리 나눠주고 매달 지정시 1편과 자유시 1편은 꼭 암송하도록 격려(수업상자에는 언제나 레모나C나 천연왕사탕이 준비될 일이다)하면 최소한 한 달에 두 편, 학년말엔 20~40여 편의 시를 암송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이럴진대 어찌 도서관수업을 접으랴
시 암송하기는 아이들이 더불어 함께 리듬을 타는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했다. 단순 암기가 지극히 개인적인 활동이라면 암송은 소리를 통해 몸의 안과 밖이 소통하며 개인의 앎이 모두가 함께 하는 광장으로 나아가는 활동이었다. 또한 자기 안의 타자를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무심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학습 진도가 따로 없이 누구든, 언제든 다 함께 지혜의 바다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학급원 모두가 소리를 맞춰 시를 암송하다보면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흥에 겨워 소리소리 외치며 마음을 열어가는 국어시간!
아이들이 함께 암송한 시들은 매년 달라지고 가끔은 아이들이 적극 추천하기도 하지만 작년에 아이들과 함께 암송한 시는 다음과 같다.

◆ 3월: 처음처럼, 봄길, 봄비, 풀꽃
◆ 4월: 강철 새잎, 진달래꽃, 우리나라 꽃들에겐, 꽃
◆ 5월: 눈감고 간다, 흔들리며 피는 꽃, 산, 끝없는 강물이 흐르네
◆ 6월: 풀, 감자꽃, 바위, 만일 통일이 온다면 이렇게 왔으면 좋겠다
◆ 7월: 빗방울 하나가, 이 바쁜 데 웬 설사, 폭포
◆ 9월: 하늘, 서시, 귀천, 묵화, 웃음에 바퀴가 달렸나봐
◆ 10월: 사랑/김남주, 가을, 오매 단풍 들것네, 소년
◆ 11월: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낙엽, 꽃 진 자리에, 너에게 묻는다
◆ 12월: 편지/윤동주, 겨울사랑, 절정, 겨울밤

이렇듯 시 읽기와 시 암송을 생활화하다보면 10월 말쯤 펼치는 시암송대회도 아이들은 부담 없이 거뜬하게 도전할 수 있었다. 평소 암송한 시에 애송시를 보태어 몇 아이들은「별 헤는 밤」(윤동주), 「님의 침묵」(한용운)도 멋지게 암송하곤 했다.
“얘들아, 다음 주부터 도서관 수업이야.”
“야호~”
아이들은 답답한 교실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환호를 내지른다. 이러할진대, 아무리 바쁘고 힘들더라도 도서관 수업을 어찌 접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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