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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책으로 말 걸기] 이제는 한곳에서 살고 싶은 은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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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4-08 23:35 조회 7,00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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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원 대안학교 말과글 교사
 
 
은기가 가고 싶은 고등학교에 합격했다. 남들 다 가는 고등학교에 간 것뿐인데 아무나 잡고 마구 자랑하고 싶을 만큼 좋았다.
“선생님께 제일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떨리는 은기의 떨리는 목소리에 눈물이 났다.
고등학교에 가서 잘 지낼 수 있을지, 이번에는 계속 아빠와 살 수는 있는 것인지 걱정이 되었지만 오늘 하루는 그냥 좋아하며 축하해 주고 싶었다.
 
 
첫 만남
은기를 학교에서 만난 것은 잠시였다. 교사들을 통해 소문을 먼저 들었다.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예의라는 건 들어 본 적도 없을 것 같은 입만 산 나쁜 놈.”
아이들에게 들은 이야기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은기만 있으면 재수가 없어요. 오토바이 타면 사고 나고, 가출하면 꼭 경찰한테 잡히고… 은기는 아마 커서 범죄자가 될 거예요.”
은기랑 함께 노는 아이들은 많은데 은기를 좋게 말하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은기가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 당시 매일 벌어지는 다른 사건 사고로 은기를 만날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거짓말처럼 은기가 내 앞에 나타났다. 잠깐 교무실에 다녀오니 은기가 앉아있었다.
“쌤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애들이 쌤은 좀 이상한데 괜찮다고 하더라구요.”
은기가 들어온 시간은 수업시간이었지만 교복도 입고 있지 않은 은기가 교실에 들어갈 일은 없을 듯싶었다.
“칭찬으로 듣겠다!”라며 교무실에서 받아온 떡을 주었다.
“이렇게 드시니 살이 찌지요.”
“몸매 유지하려고.”
은기가 웃었다. 오랜 가출로 냄새가 심하게 났지만 웃는 모습이 귀엽고 잘생긴 미소년이었다. 은기는 교육복지실 책꽂이에서 꺼낸 『15소년 표류기』를 읽기 시작했다.
 
아버지와의 만남
그리고 며칠 후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은기에게 돈을 빼앗긴 아이들이 학교에 신고했기 때문이었다. 피로에 잔뜩 찌든 얼굴의 은기 아버지가 교무실로 들어왔다. 아버지는 얼굴을 들지 못했고, 나를 찾았다.
“은기가 학교에 오면 선생님을 찾으라고 하더라고요. 은기 담임선생님이세요?”
“아니요. 은기랑 친해서요.”
“은기가 저런 애가 아니었어요. 엄마랑 2년 정도 살다가 저렇게 변했어요. 아주 괴물이 되어버렸다니까요. 힘들어도 엄마한테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형은 안 그래요. 공부도 아주 잘해서 지금 서울에 있는 명문대에 다니고 있어요. 저 새끼는 엄마를 닮아서…. 제가 밤을 새워 트럭 운전하며 돈을 벌면 뭐하겠어요. 지가 알기나 하겠어요.”
은기네 부모님은 은기가 2학년 때 이혼했다. 그리고 은기는 아빠와 형과 살았는데 은기네 형이 2년 전에 군대에 가면서 아빠가 야간운전을 하기 때문에 혼자 두는 게 걱정이 되어 은기를 엄마한테 보낸 것이었다. 그때 은기가 6학년이었고, 중학교에 들어오면서 어느 순간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더니 갑자기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래서 아빠가 다시 아이를 데리고 왔지만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비행이 심각해졌다고 했다. 그동안 아빠는 때려도 보고 달래도 보고 안 해본 것이 없다고 했다.
결국 은기는 전학을 갔다. 다시 수원에 있는 엄마랑 살기로 했다고 했다. 나는 은기가 잘 지낼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은기는 전학 가는 날 나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저, 자주 올 거예요. 엄마 우는 소리, 정말 생각만 해도 짜증나요.”
새벽의 질주
한 달 후 새벽 1시. 은기에게 전화가 왔다. 막 자려고 누웠다가 전화를 받았다. 합정인데 꼭 와달라는 것이다. 집에 들어가고 싶은데 택시비가 없다고 했다. 집에 들어간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소리였다. 살짝 망설였는데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옆에 다른 아이들 소리도 들렸다. 혼자 가는 것은 좀 위험한 듯하여 남자선생님께 동행을 부탁했다.
그렇게 만난 아이들은 모두 3명! 아이들의 집은 의정부, 군자역, 그리고 은기를 데려다 주어야 할 곳은 수원이다. 먼저 2명의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수원으로 향했다. 은기는 얻어 타는 차에서 말 없이 가는 건 운전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래 은기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공부 잘하는 형이 멋있어 보여 형 방에 있는 세계명작 책도 다 읽었는데 내 책상에 그 책들이 꽂혀 있어서 나를 처음 보았을 때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형은 자신을 아는 체하지도 않고 항상 아침에 나가서 밤늦게 돌아왔다. 그 이유는 은기의 엄마와 형의 엄마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형과 엄마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형은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집에서는 항상 인상을 쓰고 있었다. 은기는 술 마시고 엄마를 때리는 아빠보다, 자기를 무시하는 형보다, 항상 우울한 엄마가 더 싫었다. 이혼하면서 아빠와 살겠다고 결정한 것도 은기였다. 엄마와 살면 자신도 우울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은기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형처럼 되지 못한다는 것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깨달았다. 무식한 엄마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었다.
은기를 무사히 수원까지 데려다 주었다. 의정부와 군자역을 들러 수원까지 다녀오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은기네 집 앞 편의점에 내려 김밥과 음료수를 사서 같이 먹었다.
“선생님! 제가 성공하면 꼭 이 은혜 갚을게요.”
은기는 내가 꽤 멀리 갈 때까지 뒤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머니와의 만남
세 달 후 은기는 지나가는 학생의 돈을 빼앗고, 오토바이 사고를 내고, 편의점에서 물건을 훔친 죄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재판을 받는 날, 은기는 무섭다며 나를 찾아왔다. 재판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재판에 더 불리할 듯하여 은기를 설득하였다. 아빠도 엄마한테 자신을 버리고, 엄마도 이제 자기가 들어오지도 못하게 현관문 열쇠번호를 바꾸어 버렸다고 했다. 그러니 자기는 보호자도 없이 재판을 받으러 갈 수 없다고 했다. 은기는 떨고 있었다. 아빠에게 전화했더니 전화는 받지 않고 엄마 전화번호만 문자로 보내주었다. 일단 내가 은기를 법원으로 데리고 가면 엄마가 바로 법원으로 온다고 했다.
재판이 끝났다. 은기는 포승줄에 묶여 분류심사원으로 후송되었고, 은기 엄마는 계속 울고만 있었다.
은기 엄마는 스무 살에 은기를 임신한 후 은기 아빠랑 결혼했다. 그 후 10년 동안 한 번도 마음 편히 산 적이 없다. 은기 형은 항상 자신을 더러운 것을 보는 눈으로 쳐다보았고, 은기 아빠는 매일 술을 먹고 때렸다. 엄마는 형 눈치 보느라 은기한테 따뜻한 눈길 한 번 주지 못했다. 옷도 형 옷을 2~3벌 사주고 나서야 은기 옷 한벌을 샀다. 먹는 것도 항상 형을 먼저 주고 남은 것을 은기에게 먹였다. 그러다 우울증이 생겼고, 결국 “얼굴만 봐도 우울해진다”며 그 집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오빠네 집으로 왔는데 한 번도 잘해준 적이 없는 은기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다행히 은기와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은기는 짜증만 냈고,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은기에게서 술 마시고 때리는 은기 아빠의 모습이 자꾸 보여 너무 무서워졌다. 게다가 은기는 엄마 집으로 와서는 온갖 애들을 다 데리고 집에 와서 난장판을 만들어 놓곤 했다. 심지어 일하는 곳까지 애들을 다 데리고 찾아와서 돈을 달라고 했다. 은기 엄마는 이제 더 이상 어떤 것도 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자살 시도도 여러 번 했는데 친정오빠는 돈을 벌 것이 아니라 요양원에 들어갈 것을 권했다고 했다.
다시 시작!
은기는 한 달 후 다시 재판을 받았고, 쉼터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연락이 왔다. 검정고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쉼터에서 일등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외출도, 핸드폰도, 컴퓨터도 안 되고, 시골이라 나가도 볼 것도 없다며 투덜거리는데 목소리가 무척 밝았다. 할 일이 없어서 공부하는데 공부가 재미있다고 말이다. 책 이야기도 한참 나누었다. 은기는 내가 어떤 이야기를 좋아할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의 검정고시 선생님들께 책을 많이 읽어서 공부를 잘한다는 칭찬도 들었다고 했다. 아무도 읽지 않은 새 책을 처음 펼쳐 보는 즐거움도 있다고 했다. 자신은 크게 될 사람이라 모험소설만 읽게 된다고 너스레도 떨었다.
그렇게 은기는 검정고시를 잘 보았고, 무사히 퇴소도 했다. 그리고 엄마는 요양원에 들어가고, 은기는 아빠와 함께 살게 되었다. 검정고시를 본 후 교육지원청에 고등학교 입학요강을 알아보는 것 등을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도와주었다. 검정고시 성적이 좋아서 조금 좋은 특성화고등학교에 지원했다. 그리고 그 합격 소식을 내게 제일 먼저 알렸다. 이젠 은기가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가 쌤처럼 씩씩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쌤, 보고 싶어요! 엄마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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