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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은하의 현장에서 만난 질문들] 정독과 다독 중에 무엇이 더 좋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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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4-04-08 23:21 조회 10,11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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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하
독서교육 강사 및 프로그래머, 『영국의 독서교육』 저자
 
◆ 아이가 책을 훌렁훌렁 빨리 읽어요. 대강 읽고 다 읽었다고 하는 것 같은데, 정독을 못하는 건 아닌가 싶어요. 정독하는 법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 아이가 정독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지요? 물어보면 줄거리는 대충 아는 것 같은데, 꼬치꼬치 세밀한 걸 다 물어볼 수도 없고요. 아이가 좋아하지도 않고요.
◆ 아이가 글을 워낙 꼼꼼하게 읽어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더 읽지를 못해요. 계속 어른들에게 물어보고 뜻을 알려 달라고 합니다. 도움이 없으면 금방 책을 덮어 버리고요. 매번 단어 뜻을 알려 주기 귀찮은 건 둘째 치고, 뜻풀이를 남에게만 의존하는 게 좋지 않을 것 같아요.
 
 
아이들이 글을 스스로 읽기 시작하면, 읽기 활동의 주도권이 읽어 주는 어른에서 아이로 넘어가게 됩니다. 책을 고르기 위해 제목과 목차 읽기, 읽는 속도 조절하기, 읽기를 그만두기, 특정한 단어와 문장에 눈길을 더 주기, 그림이나 도표를 자세히 살펴보기, 뜻을 헤아리거나 기억하려고 잠시 멈추기, 뒷장으로 건너뛰거나,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기, 밑줄을 치거나 동그라미로 표시해 두기 등의 활동 말이지요. 누군가 글을 읽어 줄 때는 대부분 읽어 주는 사람에게 맡겨져 있던 활동들입니다. 독립적인 독자가 된 아이들은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자신의 통제 하에 구사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읽기 방식
읽기의 방식은 여러 가지입니다. 우선 우리가 자주 쓰는 정독(精讀)이라는 읽기부터 시작해 보지요. 정독의 사전적 의미는 ‘뜻을 새겨 가며 자세히 읽는 것’입니다. 글을 읽는 데에 많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는 슬로 리딩(Slow Reading)이나 같은 글을 여러 번에 걸쳐 읽는 반복 읽기(Rereading)는 정독을 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지요.
정독의 요소 중에서 ‘천천히 자세히’라는 측면에 주의를 집중하면, 그 반대 지점에 빨리 읽는 속독(Fast Reading)이 있습니다. 또한 자세히 읽다 보면 적은 쪽수의 글을 읽을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정독의 ‘적게 읽기’라는 측면을 강조하면, 그 반대 지점에 많은 글을 읽는 다독(多讀)이 있게 됩니다. 또한 정독이 읽으려는 글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읽는다는 면을 강조하면, 그 대척점에 훑어 읽기(Scanning and Skimming)가 있습니다.
이 중에 어떤 읽기가 바람직한가를 묻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다독이냐 정독이냐? 학계의 결론을 미리 알려드리면, 그것은 ‘읽기의 목적에 따라 다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독, 다독, 훑어 읽기 모두 현대의 정보 미디어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읽기의 방식입니다. 각각의 읽기 방식이 어떤 경우에 가장 적절한지를 배우고 연습하여 적절히 구사할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캐나다 캘거리대학의 마이자 맥클라우드 교수◆1가 정리해 놓은 읽기의 양식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지요.
 
◆1 MacLeod, M.(n.d.). Types of Reading, Retrieved December 15, 2013,
from
http://fis.ucalgary.ca/Brian/611/readingtype.html
 

정독에 대하여
영미의 독서교육계에서, 우리말의 정독을 가리키는 용어는 ‘Intensive Reading’입니다. 집중하는 읽기라고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정독은 글의 표면적인 의미뿐 아니라 함축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어휘나 표현, 문법적인 구조, 문장 부호 등을 자세히 살펴보며 읽는 것을 말합니다. 정독하는 글은 한 번에 쉽게 읽히는 글이기보다는 다소 어려운 글일 경우가 많습니다. 글에서 쓰이는 어휘와 표현, 개념이 어려운 경우가 그렇지요. 이를 위해 사전을 찾거나 아는 사람에게 묻거나 혹은 앞뒤의 문맥으로 뜻을 유추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주요 어휘와 문장의 의미를 파악해야 합니다.
정독은 글의 의미가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다양한 문학적 장치들에 숨겨져 있을 경우에도 필요합니다. 일본의 작가인 히라노 게이치로는 『책을 읽는 방법』(문학동네)에서 아주 미미한 듯 보이는 조사나 조동사가 문장의 의미를 얼마나 다르게 만드는지 보여 줍니다. ‘나는 사과를 좋아하기는 한다.’라는 문장은 ‘나는 사과를 좋아한다.’와는 확연히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전자는 후자처럼 단언적이지 않고 뭔가 석연찮지요. 이후의 문장에서 무언가 이어질 것 같은 암시를 주고 있습니다. 작가마다 독특한 글의 리듬과 개성은 이러한 문장의 세부적 요소들에 기인한다고 게이치로는 이야기합니다. 장면전환, 첫 문장, 대화체 속의 의문문, 특정한 장면의 삽입, 특정한 인물의 등장, 주어의 생략 등의 문학적인 장치들의 효과는 천천히 정독해야 읽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지요. 그리고 그러한 장치들을 알아차릴 수 있을 때 글에 대한 풍부하고 깊은 이해와 창의적인 해석이 가능해진다고 합니다.
정독이 아니면 그 뜻에 도달하기 가장 어려운 글은 아마도 시일 겁니다. 시인은 단어 하나, 어미 하나에 사력을 다하며 가장 정제된 언어를 쓰기 때문이지요. 또한 촘촘한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는 글, 예를 들어 철학서나 인문고전 에세이 등도 정독을 요구합니다. 앞서 전제한 논리를 이해하지 않고 건성으로 건너뛰다가는 이후에 전개하는 논리를 제대로 따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글의 시대적 맥락을 따져 읽거나, 저자와는 다른 시각으로 비판적으로 읽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정독이 더 적절합니다.
어휘와 표현, 문장의 구조, 문학적 장치, 장르의 특성, 작품의 배경에 대한 이해 등 위에서 밝힌 정독에 필요한 열쇠를 수업에서 가르치려 할 때에도 정독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보통 수업에 쓰이는 글은 이 열쇠를 가르치기에 가장 적절한 짧은 글입니다. 교사는 가르치려고 하는 요소(예를 들어, 논설문)가 가장 잘 담겨 있는 글(신문 사설 등)을 선택해서 학생들과 함께 꼼꼼하게 읽습니다. 학교의 국어 수업은 정독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국어 교과서는 정독을 잘 할 수 있는 읽기의 기술들을 담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옛 선비들의 읽기는 대부분 정독입니다. 유학자들의 공부는 윤리적 측면이 강했기 때문에, 읽기의 제재와 목적, 방법이 모두 삶과 관련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글을 머리로 깊이 이해하는 읽기에 멈추지 않고, 마음으로 외워 새겨 두는 것, 궁극적으로는 행위를 바꾸는 데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정민의 『오직 독서뿐』(김영사)에서는 허균부터 홍길주에 이르는 9명의 문인들이 독서에 대해 쓴 글을 소개하는데, 문인들마다 약간의 강조점이 다르지만 공통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모두 정독의 기술들과 태도를 가지라는 겁니다. 한 가지 책을 집중해서 읽기, 여러 번에 걸쳐서 두고두고 읽기, 외울 정도로 마음에 담고 내 것으로 만들기, 깊이 생각하며 읽기, 메모하며 읽기, 의문을 가지면서 읽기, 읽은 내용을 삶에서 실천하기 등이 그것입니다.
윤리적 가치와 삶의 양식이 비교적 단일했던 시대에는 중요한 몇 가지 경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지요. 경전과 그 밖의 글들에 대한 위계가 분명했고, 사회적 삶에 필요한 글과 정보의 양도 매우 한정적이었습니다. 만인이 모두 각자의 취향과 가치관을 가진 ‘개인’으로 존재한다는 관념도 없었지요. 그래서 옛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글들이 지금도 따라 읽어야 할 중요한 책이라거나, 정독만 가치가 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나름의 좋은 삶을 위한 읽기가 개인마다 다양해졌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성경책을, 누구는 불경을, 누구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삶의 경전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또한 개인의 행복한 여가를 위해 연애소설을 읽는 것, 여행 안내서를 읽고 여행 계획을 짜는 것, 내가 원하는 정보를 잘 담은 책을 고르려고 관련된 리뷰를 읽는 것, 신문에서 주요 뉴스를 훑어 읽는 것 또한 현대인의 삶을 위한 중요한 읽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환경에도 불구하고, 옛사람들의 정독이 현대인에게 주는 중요한 함의는 바로 글과 자신을 반추하는 태도입니다. 나의 생각과 행동을 윤리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글 읽기, 글의 공명을 삶에 투영하려고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태도가 아닐까요.
 
 
다독에 대하여
두 번째 읽기 방식은 다독입니다. 다독은 ‘Extensive Reading’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정독이 ‘좁지만 깊은’ 읽기인 데 비해, 다독은 ‘얕지만 넓게’ 읽는 것을 말합니다. 정독이 ‘깊은’ 읽기를 강조한다면, 다독은 ‘넓게’ 읽기를 강조합니다. 다독은 정독의 완전한 반대말이라기보다는 읽기의 강조점을 달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독은 글의 일반적인 의미를 파악하는데 중점을 둔 읽기입니다.
다독의 대상이 되는 글은 길고 쉬운 글일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여가 시간에 즐거움을 위해 읽을 때, 우리는 세부사항을 꼼꼼히 확인하며 읽기보다는 일반적인 의미를 따라가며 읽습니다. 따라서 모르는 어휘나 표현이 나오면 유추해서 뜻을 가늠하고, 주요 부분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모르는 채로 넘어가기도 합니다. 다독은 특히 독립적으로 읽기를 시작한 아이들, 그리고 제2외국어를 익히는 아이들에게 효과가 높은 읽기 방법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데이비드 에스키는 글 읽기를 수영에 비유합니다. ◆2 정독이 영법에 맞는 팔과 다리의 움직임을 정확히 배우는 것이라면, 다독은 수영을 많이 연습하는 것과 같답니다. 수영을 잘하기 위해서는 정확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물속에서 수영을 하면서 감을 익히고, 손발의 움직임을 자동화하고, 물을 즐기는 과정이 필요하지요. 수영 연습에 해당되는 읽기가 자기의 수준보다 비슷하거나 약간 쉬운 글을 스스로 많이 읽는 것입니다. 특히 읽기 발달의 과정에 있는 아이들은 다독을 통해서, 사용 빈도가 높은 단어와 표현들을 저절로 자주 접하게 됩니다. 또한 글을 낱글자 단위가 아니라 단어나 문구로 묶어서 큰 덩어리(Chunk)로 읽을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유창성이 높아지고 같은 이해에 도달하는 데에 걸리는 속도도 조금씩 빨라집니다. 다독을 통해서 혼자 읽기가 유창해지면 아이들은 책을 다 읽었다는 성취감과 잘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지요. 이러한 성취감과 자신감은 읽기의 동기와 읽기 태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다독하기에 적절한 글은 아이들이 스스로 읽기에 어렵지 않은 쉬운 책의 범위 내에서, 읽는 흥미와 동기를 높이도록 아이들이 스스로 고른 책, 표현과 이야기의 구조가 비슷한 시리즈물 등이 좋습니다. 교사와 사서는 여러 아이들의 읽기 수준과 흥미를 반영한 다양한 수준과 장르, 주제의 책을 구비해 놓을 필요가 있지요.
 
◆2 Eskey, D. (2005). Reading in a Second Language. In Hinkel, E. (Ed.), Handbook of Research
in Second Language Teaching and Learning. Lawrence Erlbaum Assoc Inc, p. 572.
 
 
훑어 읽기에 대하여
즐거움을 위한 독서가 아니라, 배움을 위한 읽기에도 정독이 아닌 다독의 기술이 요구될 경우가 있습니다. 훑어 읽기가 바로 그것인데요. 스캐닝Scanning은 글에서 세부사항을 찾기 위해 훑어 읽는 것을 의미하고, 스키밍Skimming은 개략적인 글의 요지를 훑어 읽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사전에서 모르는 단어를 찾거나, 역사책에서 연도나 인물의 이름을 확인하거나, 서가에서 원하는 책을 찾기 위한 읽기는 스캐닝입니다. 빠르게 글을 읽으면서 원하는 세부적인 정보만 찾아내는 읽기이지요. 이러한 읽기를 위해서는 원하는 정보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고, 그 정보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정보가 통상적으로 어디에 어떻게 위치해 있는지 찾아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참고문헌에 대한 정보는 통상적으로 글의 맨 뒤나, 주석을 살펴야 알 수 있지요. 책의 출판연도를 알고 싶다면 책의 맨 앞이나 뒷부분에서 서지사항을 살펴봐야 합니다. 책의 제목과 목차를 읽으면서 찾고자 하는 세부정보가 책의 어디쯤에 위치해 있을지 가늠해 보고 본문을 찾아보는 것도 스캐닝입니다.
스키밍은 글을 빠르게 읽으면서 글의 대략적인 개요를 알아내는 읽기입니다. 글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파악하고 저자의 의도를 알아내는 데 초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읽고 있는 이 글을 대강 훑어 읽으면, 글의 구성이 ‘현장의 질문–각각의 읽기 방식에 대한 설명(정독, 다독, 훑어 읽기)–제안’으로 전개됨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세부사항에 주의를 기울이기보다 제목이나 글의 서두, 장의 제목, 소제목, 문단의 첫 문장, 결론이 되는 마지막 부분을 읽어 보면 글의 개요를 대강 파악할 수 있지요. 이런 읽기 방식은 이 글을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판단할 때,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을까를 판단할 때, 어떤 부분을 정독하면 좋을지 등을 판단할 때 유용합니다. 특정한 상세 사항을 찾기 위한 훑어 읽기보다는 개요를 파악하기 위한 훑어 읽기가 더 어렵습니다. 후자는 유창하게 글을 읽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읽는 목적에 따른 읽기 방식
이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는 읽기의 목적에 따라 때로는 정독으로, 때로는 다독으로, 때로는 훑어 읽기로 글을 읽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한 책을 골라 읽는 과정에서도 여러 가지 읽기 방식을 병행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음악 수행평가로 음악가에 대한 책 한 권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아이를 상정해 봅시다. 아이는 책을 고르려고 도서관을 찾습니다. 제목을 스캐닝하면서 음악가와 관련된 책을 빼놓습니다. 한 권씩 목차 부분을 스캐닝하며 내용을 짐작해 보고, 목차에서 관심이 가는 장과 서문, 결론을 스키밍하면서 저자의 의도와 내용을 대강 파악합니다. 그러고는 독후감을 쓰고 싶은 책을 골라 찬찬히 정독합니다. 글의 의미를 깊고 풍부하게 파악하기 위해, 해당 음악가의 음악도 들어 보고, 관련된 다른 책들과 인터넷 정보도 찾아봅니다. 이 학생의 읽기에는 정독과 훑어 읽기가 함께 이루어지고 있지요.
하나의 책이라도 접근하는 목적에 따라 읽기의 방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해리 포터』를 재미로 읽는 아이는 다독의 방식으로 시리즈를 죽 읽어 나갈 수 있습니다. 『해리 포터』와 『홍길동전』을 비교해서 발표하라는 과제가 있다면 세부사항뿐 아니라 주제 의식, 문학적 장치, 시대적 문화적 배경에도 주의를 기울이면서 두 책을 정독해야겠지요. 또 어떤 이는 영어로 된 『해리 포터』를 읽다가 이해가 잘 가지 않아, 한글판에서 번역된 부분만을 스캐닝해서 읽을 겁니다.
 
 
읽기 방식과 관련된 국내 연구
그렇다면, 아이들은 여러 가지 읽기의 방식을 책을 읽는 목적에 맞게 구사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러한 방법들을 제대로 연습할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주고 있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읽기 방식과 관련된 국내의 연구는 별로 많지 않습니다. 아이든 성인이든 생활 속에서 정독과 다독, 훑어 읽기를 모두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정독이나 다독만 주로 하는 샘플을 찾기 어렵고 따라서 연구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손혜숙◆3은 유아를 두 집단으로 나누어 8주 동안 한쪽은 정독을 다른 한쪽은 다독을 위주로 글을 읽어 주었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 연구했습니다. 연구자는 매번 같은 책을 계속해서 읽어 달라고 하는 아이들과 매번 새로운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아이들 간에 창의성이나 이야기 구성력에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다독 집단은 다섯 권의 책을 하루에 한 권씩 읽어 주어 총 40권을, 정독 집단은 한 권의 책을 5일 동안 읽어 주어 총 8권을 읽었습니다. 같은 책 여러 번 읽어 주기와 다양한 책 읽어 주기 사이에는 유창성, 창의성, 이야기 구성력에는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조미아◆4는 초등학교 2학년, 4학년, 6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읽기 방식이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학습에 대한 개방성, 자아 개념, 책임감, 창의성 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독서방식을 다독, 정독, 발췌독, 통독의 기준에 맞추어 척도로 표시하게 했습니다. 다독은 대충 훑어본다, 정독은 꼼꼼히 읽는다, 발췌독은 읽고 싶은 부분만 골라 읽는다, 통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다로 조작적으로 정의했습니다. 연구결과 자기주도적인 학습능력에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읽기 방식은 2학년의 경우 통독, 4학년과 6학년의 경우 정독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다독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연구자도 정독과 다독의 구분이 어렵다고 밝히고 있듯이, 다독의 조작적 정의가 다독의 장점인 ‘넓게 읽기’보다 한계인 ‘얕게 읽기’를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한 번에 많은 양을 읽는다거나 다양한 책을 읽는다로 조작적 정의를 했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복희◆5는 학교 성적은 우수하나 읽기 부진인 5학년 남아에 대한 사례 연구에서 읽기 부진의 원인 중 하나로 정독하지 않는 습관을 지적합니다. 사례 아이는 학습에 매우 열성적인 부모 곁에서 자라 책을 많이 읽지만, 주로 만화책을 읽었고 일반도서는 반납 시간에 쫓겨 제목과 내용만 대강 읽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책의 줄거리는 대강 알지만 세부사항은 기억하지 못하거나, 급하게 읽은 여러 가지 책의 이야기를 혼동하기도 했습니다. 연구자는 ‘보여주기 식’ 읽기의 한계점과 정독의 필요성을 부모와 아이에게 설득하고, 정독하는 여러 가지 읽기 기술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읽고 난 후에는 줄거리와 세부적인 사항을 나누어 이야기하고, 느낌과 생각을 이야기하고, 새로 알게 된 어휘는 기록하도록 했습니다.
 
◆3 손혜숙(2004). 동화의 반복 들려주기가 유아의 이야기 구성 능력에 미치는 효과. 열린유아교육연구, 8(4), 53–67. 손혜숙(2007). 교사의 동화 제시방법이 유아의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 미래유아교육학회지, 14(1), 1–28.
◆4 조미아(2007). 학년별 독서방식이 어린이의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한국문헌정보학회지, 41(4), 251–271.
◆5 한복희(2003). 초등고학년의 독서부진아에 대한 독서치료 사례연구. 한국문헌정보학회지, 37(2), 303-318.
 
 
읽기 방법을 읽기 목적에
맞추는 교육
앞서 설명한 대로 읽기의 방법은 읽기의 목적과 글의 난도에 맞추는 것이 가장 적절합니다. 그런데 위의 사례에서처럼 독서에서 ‘교육과 지도’보다 ‘검사와 평가’가 강조될 때 읽기의 목적은 왜곡됩니다. 읽기의 목적이 ‘좋은 평가 받기’가 되는 거지요. 아이들은 평가의 기준에 최적화한 읽기 방식을 선택하게 됩니다. 몇 권 읽었느냐가 평가의 기준이 되면, 권수를 늘리는 읽기를 선호하게 됩니다. 그래서 얇고 쉬운 책을 주로 골라 빨리 줄거리만 읽는 습관이 들기 쉽지요.
‘읽었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한 ‘퀴즈’가 평가의 기준이 되면, 숨겨진 의미에 대한 ‘해석’보다는 드러나 있는 ‘사실’에 치중하는 읽기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강아지똥을 만난 동물이 병아리가 아니라 다람쥐여도 되지만, ‘병아리’를 기억하는 것을 우선하게 됩니다. 오히려 강아지똥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자가 우체부나 가게 주인이 아니라 하필이면 ‘농부’인지, ‘왜 그런지’가 중요하지만, 이는 드러나 있지 않기에 주의를 잘 기울이지 않게 됩니다.
또한 읽고 활동지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 평가의 기준이 되면, 활동지의 질문을 제외하고는 다른 질문을 던지거나 다른 상상력을 갖기 어렵습니다. 고르지 못하고 골라 준 것만 읽어야 하면, 스캐닝과 스키밍을 제대로 연습할 기회도 잃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정보를 얻고자 하는 읽기, 자기가 정독하고 싶은 책을 고르기 위한 읽기의 기회를 잃습니다.
읽기 독립이 막 시작되어서 더듬더듬 읽고 있는 아이, 쉬운 읽기를 많이 연습해야 할 1학년 아이에게 정독해야만 겨우 읽어 낼 수 있는 위 학년대의 책을 읽으라고 한다든가,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에게 정독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책 위주로 골라 준다든가, 정독해야 읽을 수 있는 책을 빨리 많이 읽어 내라고 독촉하는 것, 모두 읽기의 목적과 방법이 잘 맞지 않는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까요? 정독의 경우, 정독을 확인하는 방법이 ‘교과서 글에 대한 시험’에 국한되다 보니, 아이들의 관념 속에 정독의 기술들은 교과서와 시험지를 읽을 때로 한정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독의 읽기 기술을 다른 책 읽기에도 응용해서 연습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겠지요. 교사들이 사서교사와 협조하여 현재 가르치고 있는 특정한 정독의 기술들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적절한 책들을 소개해 준다면 좋겠지요. 시의 해석을 가르친다면 시집을 소개할 수 있겠지요. 초등 단계라면 교사가 교과서 외의 한 편의 시를 읽어 주고, 교사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과 느낌을 말로 들려줌으로써 정독의 모델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수업에서 글 해석의 주도성을 아이들에게 좀 더 열어 놓는 것도 아이들의 정독을 촉진합니다. 책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이야기, 토론, 발표, 글쓰기, 책 만들기, 연극 등 다양하게 ‘표현’하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도움이 됩니다.
마이자 맥클라우드는 다독을 촉진하는 활동으로 아침독서와 같은 자유로운 읽기 시간을 마련해 주는 것, 각자 읽은 내용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활동, 책을 교환해서 읽거나, 독서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독서기록장에 간단히 기록해 두는 것 등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교사는 가능하면 아이가 단어의 뜻을 알고 있는지 검사하거나 일일이 설명하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다독에 적합한 쉬운 책을 읽는다면, 아이는 앞뒤의 문맥에 비추어 스스로 의미를 유추하고 사건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사는 아이들이 혼자 읽기를 할 때, 앞에서 똑같이 자신의 책을 읽음으로써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읽을 수 있는 책을 교사가 흥미 있게 소개하고 (등장인물, 배경, 주제 등) 첫 장을 읽어 주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검사와 시험’보다 ‘교육과 지도’의 비중을 높이는 것은 읽기의 목적을 타인이 아닌, 아이들이 정할 수 있도록 돌려주는 가장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독과 다독, 훑어 읽기를 목적에 맞게 즐길 수 있는 교육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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