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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책으로 말 걸기] 거미를 좋아하는 혜진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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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11-25 14:21 조회 9,65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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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원 대안학교 말과글 교사


거미를 키우는 소녀와의 만남
북아트 방학 특강, 다른 아이들은 내가 미리 만들어 온 예시작품을 보며 빨리 만들기를 시작했으면 하는 눈치인데 뚱한 표정의 여자아이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이 수업은 무료인 데다가 신청자만 받았기 때문에 억지로 오라고 해서 온 것도 아닐 텐데 무척이나 조그만 그 여자아이는 핸드폰만 바라볼 뿐 얼굴도 들지 않는다. 혜진이라고 했다. 표정도 없는 데다 목소리도 작고 질문을 해도 짧게만 답해서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수업은 시작되고, 아이들은 기본 팝업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 3개를 그려 기본 팝업 카드에 붙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혜진이는 뭘 하나 그려놓고 계속 핸드폰만 힐끔거리고 있다. 다가가 보니 종이 위에 ‘?’만 하나 그려져 있다.
“와! 넌 질문을 좋아한다는 것이구나. 멋지다!”
“아닌데요. 그냥 뭘 할지 몰라 한 건데요.”
같은 말을 해도 이렇게 예쁘지 않게 하다니….
“미안~ 힘들면 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래? 핸드폰 사진첩에 들어 있는 좋아하는 것을 찍은 사진을 생각해보면 좀 더 쉽지 않을까?”
이렇게 이야기하고 돌아서려는데 혜진이의 핸드폰에서 무척이나 커다란 ‘거미’를 본 것 같다.
혜진이는 거미를 키우고 있다. 그것도 털이 부숭부숭 나 있는 ‘타란튤라’라는 거미이다. 털에는 약간의 독이 있어서 손이 간질거리기도 한다. 혜진이는 첫 탈피를 기다리고 있는데 탈피하고 난 다음 껍질을 쭉 모아 간직하는 것이 소원이다. 혜진이는 거미를 무척 귀여워 한다. 털도 부드럽고, 긴 다리로 기어 다니는 모습도 귀엽단다.
‘거미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해충이 아니다’, ‘지구 상에 거미가 3일만 없어도 지구는 벌레때문에 멸망할 것이다’ 혜진이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거미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는 것은 싫기 때문이다.


거미소녀에게 거미 이야기를 듣다
북아트 특강은 사흘 동안 이어졌다. 혜진이는 중학교 들어와서 첫 방학에 만들기를 좋아하는 친구와 북아트 수업을 듣기로 약속했고, 첫째 날 그 친구는 오지 않았다.
첫째 날, 나는 혜진이의 거미를 사진으로 처음 보았다. 차마 귀엽다는, 예쁘다는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수업을 듣는 다른 아이들도 모두 인상을 찌푸렸고 거미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다. 나는 혜진이에게 독은 없는지, 먹이는 무엇을 먹는지, 다른 가족들은 싫어하지 않는지 등 거미에 대해 물어보았고, 혜진이는 정성껏 대답해주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다른 아이들이 거미의 먹이 ‘밀웜’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거미에게 살아있는 먹이를 주기 위해 ‘밀웜’이라는 애벌레를 주는데, 그중 ‘슈퍼밀웜’은 거미를 공격할 수도 있으니 주기 바로 직전에 죽여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마치 공포영화 이야기를 듣듯이 혜진이에게 거미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아이들과도 금세 친해져서 만들기를 하면서 소소하게 이야기도 나누었다. 나는 첫째 날 수업을 끝내고 혜진이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에 도서관에 가서 거미와 관련된 책을 찾았다.


거미 관련 책을 함께 보다
둘째 날, 아이들에게 책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들어서 ‘북트레일러’ 대회에 내보자고 했다. 주제는 ‘거미’로 어제 도서관에서 찾아온 거미 관련 책 10권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유아용 책부터 전문서적까지 다양한 책을 보여주었다. 처음에 몇몇 아이들은 사진이 징그럽다며 책을 펼치는 것마저 싫다고 했다. 혜진이는 책들을 꼼꼼히 보았다. 그리고는 『파브르 곤충기4 : 전갈의 전투』에 나오는 ‘나르본늑대거미’를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귀여운 거미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내용도 무척 재미있었다. 혜진이는 내게 처음으로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좋은 책 많이 골라 오셨네요. 왜 사람들이 고전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줄 알겠어요. 다른 책도 좋지만 역시 어린 시절 읽었던 파브르 곤충기가 최고인 것 같아요.”
아이들과 책을 살피면서 동영상 제작을 위한 스토리를 함께 짜고 역할분담을 하였다. 처음에는 거미가 싫었으나 거미소녀가 등장하여 책을 소개해주니 거미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약간은 식상한 내용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가 거미소녀를 그리고, 거미의 좋은 점, 거미에 대한 오해에 대한 자료를 찾고 혜진이는 다양한 거미 모습을 인터넷에서 찾기로 하였다. 대상도서는 파브르 곤충기보다 사진이 잘 나와 있는 『거미박사 김주필의 거미 이야기』로 하였는데 품절되어서 『거미야 놀자』라는 좀 더 쉬운 책을 선택했다.
자료도 찾고, 함께 설정 사진도 찍고 하면서 우리는 혜진이를 거미소녀라고 불렀다. 아이들은 한 학기를 혜진이와 같은 학교에서 지내면서 혜진이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다 대답해 주는 혜진이가 정말 박사님 같은 존재였다.


거미소녀의 가족 이야기
셋째 날, 북아트 수업을 하면서 우리는 가족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혜진이에게 남동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동생과 11개월 밖에 차이 나지 않고, 덩치도 혜진이 두 배라고 했다. 올해 혜진이는 동생이 입지 않는 교복을 입고, 동생이 다니지 않는 학교에 다니는 것이 참 좋았는데 내년이면 같은 중학생이고, 그때가 되면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을 때와 분명 다를 것이라는 게 살짝 걱정된다고 말했다. 누군가 동생이 ‘너’라고 부르지 않은지를 물었다.
“그런 적 없어. 어렸을 때부터 동생한테 져본 적이 없어. 지금도 말로 이기니까. 그리고 동생은 거미나 밀웜을 풀어 놓을까봐 내 방에 들어오지도 않아. 그리고 학교에서도 내 인터넷 홈페이지를 보고 엽기적인 아이라고 소문나서 그런지 건드리지 않는 것 같아.”
혜진이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보여주었다. 각종 벌레들이 홈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이제 조금 적응될 만한 거미도 총천연색으로 보니 무척이나 징그러웠다.


거미소녀의 변화
마지막 날, 혜진이가 거미를 데리고 왔다. 동영상에 쓸 사진도 같이 찍고, 궁금해 하는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수업 시간 내내 거미가 긴 다리로 내게 튀어오를 것 같아서 불안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무서워하던 아이들이 가까이 가서 관심을 보이니 혜진이는 무척 기분이 좋아보였다. 게다가 우리 모두는 3일 동안 함께 동영상을 만들면서 이제 거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졌다. 특히 거미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를 알았다. 그래서 집에서 본 거미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고, 거미도감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애들이 착해요. 한 학기 동안 몰랐어요. 그냥 학교가 다 맘에 안들었는데… 선생님들도 저만 싫어하는 것 같고… 아무튼 선생님, 꼭 다시 오세요!”
우리는 완성한 동영상을 함께 보며 한껏 시사회 분위기를 냈다. 이제 상을 받고 못 받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거미 덕분에 나는 혜진이와 친해지게 되었고, 혜진이는 모르는 아이들과 빨리 친해지게 되었다. 첫날보다 혜진이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둘째 날부터 함께한 학교에서 유일한 혜진이 친구라는 아이도 혜진이가 학교에서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처음 봤다며 놀렸다.
그때 첫날부터 거미 사진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던 아이가 소리쳤다.
“거미가 다리를 버둥거리며 애교 부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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