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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활용수업 [책으로 말걸기] 먹을때만 즐겁다는 서영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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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06-18 03:23 조회 8,363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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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원 중학교 지역사회교육전문가

서영이의 식탐

처음 만난 서영이는 불편했다. 중학교 1학년인데도 마치 대여섯 살 아이처럼 자기만 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과도하게 내게 잘 보이려고 했고, 아이들에게도 상냥하게 대하려고 했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무조건 관심을 보이며 끼어들려고 했다. 그러다가 면박도 많이 당했고, 내게 혼도 났다. 하지만 서영이는 그때뿐이었다. 조금도 서영이가 노력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서영이는 아이들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기 바빴다. 내가 하고 있는 것에도 무척 관심이 많았는데 아이들과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 수 있는데도 서영이는 해맑게 웃으며 다가왔다.

처음 사건은 급식시간 때 일어났다. 서영이와 같은 반 아이가 급식을 먹고 내게 와서는 일렀다.

“선생님, 서영이 때문에 난리 났어요. 서영이가 급식당번인데 맛있는 반찬을 자기만 잔뜩 받은 거 있죠. 그리고 밥은 정말 산더미 같이 쌓았어요.”

처음에는 서영이가 먹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보다 조금 많이 받는 정도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아이의 설명으로는 반찬은 6배 정도 많이 받았고, 밥은 정말 쌓을 수 있는 최대라고 했다. 급식판에 그렇게 많이 담을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하며 말이다. 문제는 남자 아이들이 서영이가 밥을 먹는 것을 보며 심하게 놀렸는데도 서영이는 끝까지 밥을 먹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말을 전하는 아이의 말로는 서영이가 마치 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걸식증 환자 같았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다 끝나갈 무렵 서영이가 내려왔다. 울었는지 눈이 빨갰다. 모르는 척 서영이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다.

“남은 음식이었다고요. 제가 급식당번이라 제일 마지막에 뜨잖아요. 버리는 것보다 낫지 않아요? 저 아침도 못 먹었는데… 더 많이도 먹을 수 있다고요. 엉엉…”

큰소리로 이야기하는 바람에 주변에 있는 아이들이 듣고 말았다. 서영이는 우는데 아이들은 “더 많이 먹을 수 있다고 우는 거야?” 하면서 웃었다. 나도 살짝 어이가 없었다.
점심시간 끝나는 종이 울렸다. 서영이는 울음을 멈추고 내 책상 위에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아침에 누군가가 준 떡이 놓여 있었다. 혹시 먹을지를 물었더니, 서영이는 울었더니 배가 고프다며 들고 갔다.

음식을 해주지 않는 엄마

그 이후로도 서영이의 식탐은 계속 되었다. 아이들이 무언가 먹고 있으면 민망할 정도로 쳐다보며 결국 얻어먹었고, 자신이 들고 있는 음식은 절대 나누어 먹지 않았다. 저녁은 어떻게 먹는지 물어보았더니 집 근처 지역아동센터에서 먹는다고 하였다. 그곳에 다닌 지는 5년도 넘었는데 요즘 가장 큰 걱정은 중학교 졸업하면 고등부가 없어서 걱정이라는 것이었다. 서영이에게 전화번호를 물어서 지역아동센터 선생님과 통화를 해보았고 선생님은 나를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

서영이에게는 3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자폐가 심한데 엄마는 동생이 태어난 이후 서영이에게는 신경을 쓸 수 없었다고 했다. 초등학교 특수반에 다니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해서 항상 동생 근처에 있고, 학교가 끝나면 복지관에 가는데 그곳에도 엄마가 따라다닌다. 엄마는 항상 동생 옆에만 붙어있고 서영이 차지가 되는 일은 없다고 했다. 게다가 엄마가 우울증세가 있어서 그런지 집안 정리를 전혀 하지 않고 음식을 하는 일도 거의 없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알게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났다. 아침 조회가 끝나고 서영이가 울면서 들어와서는 향수를 찾았다. 아이들이 서영에게서 냄새난다고 놀린 것이다. 그날은 교육복지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냄새가 났으니 좀 심하기도 했다.

“엄마가, 엄마가요… 제 교복을 세탁기에다 넣어버린 거예요. 아침에 발견해서 빨 수도 없고, 그냥 밖에 널어놓으면 이렇게 냄새 안 나는데… 엉엉…”

너무 심하게 울어서 교실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좀 진정시킨 다음에 교실에 들여보내겠다고 했다.

서영이는 자기가 생각나는 가장 오래 전 기억은 설거지를 하는 것이었다. 그때는 엄마가 집에서 뭔가를 해주었다. 그러면 꼭 설거지를 시켰다고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빨래도 했다.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이렇게 집안일을 한 아이는 자기밖에 없을 거라면서 또 울었다. 엄마는 점점 동생을 닮아간다고 했다. 한 번도 웃지 않고 자신이 말하는 것도 듣지 않는다. 칭찬이나 꾸중도 하지 않는데 그게 예전에 짜증내고 화내는 것보다 더 무섭다고 했다. 펑펑 울면서 그 이야기를 하는 동안 서영이의 시선이 머문 곳은 역시 내 책상 위에 놓인 빵이었다. 슬쩍 밀어주니 울면서 먹으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서영이는 되고 싶은 것이 생겼다고 했다. 교육복지실에서 아이들과 음식을 만들어 먹은 적이 있는데 음식을 만드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알고 싶은 음식도 많아졌다고 했다. 예전에는 동생이 밉게만 느껴졌는데 언젠가 엄마 없을 때 라면을 끓여줬는데 잘 먹는 모습을 본 후부터 동생이 예쁘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교실에 있는 아침독서 책 중에 『음식잡학사전』을 무척 재미있게 보았다. 언니들이 선생님과 책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그런 책 못 읽어서 선생님이랑 책 이야기는 나누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선생님이랑 하고 싶은 이야기도 생각났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다 읽지는 못해서 다 읽으면 꼭 이야기하자고 했다.

서영이의 편지

그날 이후 서영이는 점점 반 아이들과 멀어져 갔다. 급식시간에 식탐을 내는 것은 점점 더 심해졌고 급기야 아이들이 서영이의 급식판을 빼앗는 일까지 생겼다. 담임선생님께 말씀드려 급식지도가 시작되어서야 좀 줄어들긴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지역아동센터 선생님과 상의하여 신경정신과 검사를 받아보았는데 섭식장애라는 진단이 나왔고 모래놀이치료와 함께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었다.

엄마가 좋아지지 않고서 서영이만 좋아질 수 없다. 하지만 서영이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자기를 보고 웃지 않는 엄마와 동생을 가진 슬픔이 어떤 것인지는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가족을 가지지 않아서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조절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조금만 잘해주면 오버한다고 지적을 받는 서영이가 안쓰러우면서도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막상 여유가 없을 때면 나 역시 짜증을 내게 되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저 학교 졸업할 때까지 다른 학교 가시면 안 돼요.”

언젠가부터 서영이가 내게 자주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서영이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게 되었다. 서영이가 3학년도 되기 전에 나는 학교를 그만 두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서영이에게 편지를 받았다.

“선생님이 안 계시니까 너무 심심해요. 요리도 선생님이랑 할 때 되게 즐거웠는데…”

나 역시 오랜 시간을 내며 서영이의 이야기를 들어 준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른 아이들에게 지적 받게 하는 것이 싫어서 먼저 혼낸 적도 많았다.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을 때도 마음껏 먹을 수 없게 했고, 남은 것도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싸가지 못하게 했다. 난 항상 서영이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한 번도 서영이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서영아! 네가 졸업할 때까지, 아니 그 책을 다 읽을 때까지만이라도 기다려 줬어야 했는데 먼저 학교를 떠나게 되어 미안해. 그리고 항상 네 이야기 끝까지 들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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