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활용수업 시 읽어 주는 대호 이야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3-17 14:21 조회 7,978회 댓글 0건본문
일주일째 벌로 청소 중인 대호가 대걸레를 끌고 교육복지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한 달 전부터 교육복지실에서 ‘교복수선’과 ‘간단한 학습준비물 대여’를 시작했다. 교육복지실 앞에 홍보문구도 붙여 두었다. 대호도 그것을 보고 들어온 모양이다.
“저 교복 단추 떨어졌는데 이거 달아줘요?”
“물론, 그런데 대여료가 있어. 돈은 아니구…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 시 한 편 읽어 주는 거야.”
“읽기만 하면 해줘요?”
“그럼.”
귀찮아서 읽지 않는다고 할까봐 빨리 옆에 있던 시집을 찾아 시 한편을 골라 주었다. 대호가 대걸레를 옆에 낀 채 시를 읽기 시작한다.
요샌, 아무 말도 하기 싫다/ 엄마랑 아빠가 뭘 물어봐도/ 대답은커녕 그냥 짜증부터 난다/ 이게 사춘기인가?
엄마 말이 안 들리니? 들려요/ 너 요새 무슨 일 있지? 없어요/ 너 요새 누구랑 노니? 그냥 놀아요/ 너 요새 무슨 생각하니? 아무 생각 안 해요/ 쉬는 날 식구들끼리 놀러 갈까? 싫어요/ 너 요새 진짜 왜 그래? 뭐가요/ 엄마랑 말하기 싫어? 고개만 끄덕끄덕/ 대충대충 설렁설렁 대답하고는/ 내 방으로 휙 들어가 버린다/ 제발 신경 끄고 내버려 두라고/ 신경질을 내기도 한다/ 엄마든 아빠든 다 귀찮아서/ 방문도 틱 잠가버린다
넌 안 그러니?
– 「사춘기인가?」, 박성우(『난 빨강』 중에서)
“야! 너 시를 너무 잘 읽어. 감동인데… 이 시 재밌지?”
“그냥요”
대호는 뭐가 그리 쑥스러운지 성급하게 교육복지실 문을 닫고 나갔다. 대호가 나가자마자 숙제를 하고 있던 아이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선생님, 저 아이 어떻게 알아요? 정말 사고치는 걸로 유명한 애에요. 와! 쟤가 시를 읽다니… 충격이에요.”
퉁명스럽게 읽어 내려가던 대호의 목소리와 이 시는 정말 잘 어울렸다.
그날부터 대호는 매일 방과 후에 청소를 하면서 나를 찾아왔다. 와서는 뭐하냐며 내 옆에 잠시 앉아 있다가 시집을 뒤적거린다. 마침 색연필을 빌리러 온 아이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국어시간에 시 읽기1』 시집을 펼쳐서 시를 읽기 시작했다.
한 대 맞으면
눈물 나오고
두 대 맞으면
코피 나오고
세 대 맞으면
별이 보이고
네 대 맞으면
눈에 뵈는 게 없다
– 「마빡맞기」, 박상욱(『국어시간에 시 읽기1』 중에서)
시를 읽고 읽는데 또 한 명이 들어왔다. 내 책상 위에 가위를 들고는
“샘샘… 급해요… 급해… 가위 가위… 책은 안주셔도 되요. 가을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함민복… 됐죠?”
그러고는 다시 뛰어나갔다. 대호가 웃었다.
“그게 시예요?”
웃는 모습이 참 귀여운 아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멋있지? 시가 그런 거 아닐까? 몇 가지 단어로 감정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거.”
다음 날 점심시간 대호가 찢어진 교복바지를 들고 들어섰다. 친구 바지인데 자기가 대여료는 내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한참 시집을 뒤적였다. 윤동주를 들어본 적이 있다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들었다.
눈 위에서
개가
꽃을 그리며
뛰오
– 「개」, 윤동주(『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중에서)
“이 시 맘에 들어요. 어린 시절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았는데 겨울 아침에 마당에 나오면 우리 집 개가 마당에 이렇게 해놨어요. 우리 개 참 멍청했는데…”
그러고는 다시 시집에서 「무얼 먹고 사나」를 펼쳐 내 앞에 놓는다.
“이 시 알아요? 이거 노래도 있는데… 아세요?”
시를 그대로 노래로 부르려니 아니었다. 음은 생각이 나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래서 대호랑 같이 인터넷에서 노래를 찾았다. <태양을 사랑하는 아이들아>란 제목으로 동요를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은 이래도 저 어린 시절 귀여웠어요.”
“너, 지금도 충분히 귀여워. 그러고 보니 나 초등학교 때 주일학교에서 이 노래 배운 것 같아. 유치원 땐가? 너 유치원 때 기억나니? 난 초등학교 저학년 때 기억은 전혀 안 나는데… ”
“유치원 때… 그땐 집도 우리 집이었고, 아빠도 괜찮았어요. 그냥 그때는 행복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이야기하고는 갑자기 가야한다며 일어났다. 자기도 이야기하고는 놀란 모양이다.
대호와 내게는 아직 시간이 있다. 대호가 더 내게 다가올 수 있도록 기다려 줄 생각이다. 성급하게 다가가 대호의 아픈 이야기를 듣고 싶은 생각도 없다. 시집을 들춰 보며 행복해 하는 아이의 얼굴이 참 좋다. 그때만큼은 학교 아이들에게 무서운 얼굴을 할 필요도, 교사들에게 반항기 가득한 표정을 지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한 달 전부터 교육복지실에서 ‘교복수선’과 ‘간단한 학습준비물 대여’를 시작했다. 교육복지실 앞에 홍보문구도 붙여 두었다. 대호도 그것을 보고 들어온 모양이다.
“저 교복 단추 떨어졌는데 이거 달아줘요?”
“물론, 그런데 대여료가 있어. 돈은 아니구…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 시 한 편 읽어 주는 거야.”
“읽기만 하면 해줘요?”
“그럼.”
귀찮아서 읽지 않는다고 할까봐 빨리 옆에 있던 시집을 찾아 시 한편을 골라 주었다. 대호가 대걸레를 옆에 낀 채 시를 읽기 시작한다.
요샌, 아무 말도 하기 싫다/ 엄마랑 아빠가 뭘 물어봐도/ 대답은커녕 그냥 짜증부터 난다/ 이게 사춘기인가?
엄마 말이 안 들리니? 들려요/ 너 요새 무슨 일 있지? 없어요/ 너 요새 누구랑 노니? 그냥 놀아요/ 너 요새 무슨 생각하니? 아무 생각 안 해요/ 쉬는 날 식구들끼리 놀러 갈까? 싫어요/ 너 요새 진짜 왜 그래? 뭐가요/ 엄마랑 말하기 싫어? 고개만 끄덕끄덕/ 대충대충 설렁설렁 대답하고는/ 내 방으로 휙 들어가 버린다/ 제발 신경 끄고 내버려 두라고/ 신경질을 내기도 한다/ 엄마든 아빠든 다 귀찮아서/ 방문도 틱 잠가버린다
넌 안 그러니?
– 「사춘기인가?」, 박성우(『난 빨강』 중에서)
“야! 너 시를 너무 잘 읽어. 감동인데… 이 시 재밌지?”
“그냥요”
대호는 뭐가 그리 쑥스러운지 성급하게 교육복지실 문을 닫고 나갔다. 대호가 나가자마자 숙제를 하고 있던 아이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선생님, 저 아이 어떻게 알아요? 정말 사고치는 걸로 유명한 애에요. 와! 쟤가 시를 읽다니… 충격이에요.”
퉁명스럽게 읽어 내려가던 대호의 목소리와 이 시는 정말 잘 어울렸다.
그날부터 대호는 매일 방과 후에 청소를 하면서 나를 찾아왔다. 와서는 뭐하냐며 내 옆에 잠시 앉아 있다가 시집을 뒤적거린다. 마침 색연필을 빌리러 온 아이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국어시간에 시 읽기1』 시집을 펼쳐서 시를 읽기 시작했다.
한 대 맞으면
눈물 나오고
두 대 맞으면
코피 나오고
세 대 맞으면
별이 보이고
네 대 맞으면
눈에 뵈는 게 없다
– 「마빡맞기」, 박상욱(『국어시간에 시 읽기1』 중에서)
시를 읽고 읽는데 또 한 명이 들어왔다. 내 책상 위에 가위를 들고는
“샘샘… 급해요… 급해… 가위 가위… 책은 안주셔도 되요. 가을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함민복… 됐죠?”
그러고는 다시 뛰어나갔다. 대호가 웃었다.
“그게 시예요?”
웃는 모습이 참 귀여운 아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멋있지? 시가 그런 거 아닐까? 몇 가지 단어로 감정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거.”
다음 날 점심시간 대호가 찢어진 교복바지를 들고 들어섰다. 친구 바지인데 자기가 대여료는 내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한참 시집을 뒤적였다. 윤동주를 들어본 적이 있다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들었다.
눈 위에서
개가
꽃을 그리며
뛰오
– 「개」, 윤동주(『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중에서)
“이 시 맘에 들어요. 어린 시절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았는데 겨울 아침에 마당에 나오면 우리 집 개가 마당에 이렇게 해놨어요. 우리 개 참 멍청했는데…”
그러고는 다시 시집에서 「무얼 먹고 사나」를 펼쳐 내 앞에 놓는다.
“이 시 알아요? 이거 노래도 있는데… 아세요?”
시를 그대로 노래로 부르려니 아니었다. 음은 생각이 나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래서 대호랑 같이 인터넷에서 노래를 찾았다. <태양을 사랑하는 아이들아>란 제목으로 동요를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은 이래도 저 어린 시절 귀여웠어요.”
“너, 지금도 충분히 귀여워. 그러고 보니 나 초등학교 때 주일학교에서 이 노래 배운 것 같아. 유치원 땐가? 너 유치원 때 기억나니? 난 초등학교 저학년 때 기억은 전혀 안 나는데… ”
“유치원 때… 그땐 집도 우리 집이었고, 아빠도 괜찮았어요. 그냥 그때는 행복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이야기하고는 갑자기 가야한다며 일어났다. 자기도 이야기하고는 놀란 모양이다.
대호와 내게는 아직 시간이 있다. 대호가 더 내게 다가올 수 있도록 기다려 줄 생각이다. 성급하게 다가가 대호의 아픈 이야기를 듣고 싶은 생각도 없다. 시집을 들춰 보며 행복해 하는 아이의 얼굴이 참 좋다. 그때만큼은 학교 아이들에게 무서운 얼굴을 할 필요도, 교사들에게 반항기 가득한 표정을 지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