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교육 진로교육]직업과 학과 선택을 위한 본격적인‘진로 독서’④ 패스파인더를 활용한 초·중·고 진로지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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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10-06 16:45 조회 11,639회 댓글 0건본문
진로 독서 후기 패스파인더 활용 방법
필자는 현재 인문계 고등학교에 재직 중이다. 가장 처음 패스파인더 개발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삼척여고 이해정 선생님과 현장에서의 힘든 점을 이야기하다 나온 생각이었다. 현재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진로 진학과 관련된 독서 활동을 고3 때 하느라고 학생들이 죽을 지경이다. 왜냐하면 입시제도가 바뀌면서 각 대학에서는 해당 학과를 학습해 나갈 어느 정도 준비가 된 학생을 뽑으려고 면접의 비중을 높이고 또한 입학사정관제도를 통해 학생을 다각도로 분석해서 보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부의 독서 활동 상황은 입시제도의 또 하나의 히든카드로 부각이 되면서 그동안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들 때문에 발등에 불이 붙은 고3이 되어서야 자신이 진학하려는 학과에 대한 책을 꺼내 읽거나, 주변 지인의 도움을 받아 난관을 헤쳐나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사실 주변에 학원이나 도와줄 사람이 넉넉한 도시의 학생들에 비해 평창 산골의 아이들에게는 이와 같은 상황은 감당해 낼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문제다. 여기서 학교도서관과 사서교사가 ‘빛나는’ 상황이 온다.
시골의 학생들은 사교육 시장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학교 교육에만 의지해야 한다. 물론 인터넷도 있지만 가깝게 손을 뻗을 수 있는 곳을 찾게 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학교도서관에 온 학생들은 대부분 고3들. “선생님, 제가 내일 면접을 보러 가야 하는데요, 작년 기출 문제를 보니까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있는데요… 저 사실 읽은 책이 없어서요. 그리고 학과와 관련된 책을 읽었다고 하면 좋은 점수를 받을 것 같은데요….” 또는 원서를 들고 와서는 “선생님, 학과와 관련된 독서 활동 상황을 적으라는데 뭘 적어야 하나요? 읽은 책이 없는데… 전기, 기계 쪽으로 원서 쓰는데 어떤 책을 읽고 써야 되나요?”
답은? “네가 해야지, 그걸 왜 나한테 와서 물어.” 이렇게 대답은 했지만 어느덧 학생과 같이 서가에 들어가 고민하고 지도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해주지 않고는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의 미래가 걸려 있는데 어떻게 외면을 하고 돌아서 버리겠는가? 물론 알아서 척척 준비해 왔다면 아무 걱정이 없겠지만,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곳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서 바로 이 연구에 대한 고민이 출발한 것이다. 그래, 이러한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체계적으로 독서를 해 나갈 수 있겠구나! 다양한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직업을 독서 활동을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체험해 나간다면 인생을 건 도박을 고3에 와서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만약 체계적으로 학교도서관에 사서교사가 배치되고 학교도서관에서 진로 직업 패스파인더 활용이 충분히 잘된다면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원서 쓰기 전날 결정하는 말도 안 되는 현상을 더 이상 보지 않게 될 수도 있다.
1단계. 직업 선택 및 마인드맵 활동
실제 사례를 기초로 이야기하겠다. 고등학생이 된 17세 김재호 학생.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 다 계시지 않은 상황이지만 어려운 형편을 탓하지 않으며 중학교 때 줄곧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평창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이다. 조금 소심하고 소극적인 편이나 교우 관계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 처음 이 학생이 도서관을 찾아왔을 때 물었던 질문은 바로 이거였다. “사서선생님이세요? 저와 상담 좀 해주실 수 있나요?” 평창고에 부임해 온 지 2년 됐을 때였나, 신규 교사로 사실 학생지도에 자신이 있을 때도 아니었고, 더구나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학생이 상담이라니…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그 아이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결론인즉 자신은 시인을 꿈꾸는 국어교사가 되고 싶은데, 국어교사는 되기가 힘드니 책과 함께할 수 있는 사서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일단 기분이 나빠졌다. 사서 되기는 쉽다고 생각한 이 아이의 발상이 재밌기도 했지만, 그 말을 사서교사 앞에서 하고 있다니! 그래서 나는 “근데 뭐가 문제니?
그걸 왜 나한테 와서 말하니?”라고 했더니 일단 주변에 사서가 없고 내가 무섭게 보이기는 하지만 말을 들어 줄 것 같아 그랬다고 했다. 한참 동안의 상담을 마치고 이 아이가 사서가 되고 싶은 이유를 다 듣고 나니 도와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문헌정보학과에 진학하기를 권유했고 학생은 문헌정보학과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놀라워했다. 우선 목표가 생겼으니 같이 준비를 해보자 했다. 그렇게 수시로 문헌정보학과와 사서라는 직업에 대해서 상담을 한 이 학생은 자신의 책상에 희망 직업을 사서, 희망 학과를 문헌정보학과로 붙여 놓고 생활하기 시작한다. 산골에서 외롭게 자란 아이에게 일단 꿈이란 것이 생긴 것이다.
이후 나는 학교에서 창재(창의적 재량활동) 수업(이후 창체. 창의적 체험활동)을 통해 독서 수업을 진행해 나갔다. 체계적인 독서 활동을 하기 위해 독서 포트폴리오를 제작했고, 이를 수업시간에 활용해 나갔다. 그중 가장 의미 있던 것이 마인드맵mind map 활동이었는데, 마인드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교육적 시너지 효과를 가져온다. 평창고 학생들은 독서 활동을 하기 전 반드시 마인드맵 활동을 한다. 물론 김재호 학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마인드맵 활동을 통해 자신의 꿈과 미래를 체계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고 진로 직업을 선택하는데 이유와 근거를 스스로에게 알려주는 역할도 하게 된다.
2단계. 본격적 진로 직업에 대한 독서
보통 아이들이 사서라는 직업 또는 문헌정보학과로의 진학을 꿈꾸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학교에 사서교사가 있었기에 가능할 수도 있는 선택에 나는 책임을 져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학교도서관에 문헌정보학과와 관련된 도서들을 많이 비치해 두는 것이었다.
김재호 학생은 체계적인 독서 활동으로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내가 갖고 있던 전공 서적도 관심 있게 보려 했으며, 자신이 그냥 사서가 아니라 공공도서관의 사서 공무원이 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사서교사도 권유해 보았으나, 자신의 성격과는 잘 맞지 않을 것 같다며 사서 공무원이 되야겠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경우 부모님들이 공무원이 되라! 라고 말할 경우 행정학과를 진학해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한다. 그들의 꿈은 그냥 공무원이다. 공무원의 종류가 어떤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다만 안정적인 직업이 공무원이라 하니 대학 졸업 후 공무원 시험이나 봐야지 생각하는 것이다. 이 아이들과 비교해 봤을 때 재호의 진로와 진학은 이미 많이 구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재호는 문헌정보학과 진학을 준비하며 『위대한 도서관 사상가들』, 『유럽도서관에서 길을 묻다』,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 『지상의 위대한 도서관』, 『청춘의 독서』, 『학교도서관 교육의 실제』, 『학교도서관에서 책 읽기』,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 등의 책을 읽었다.
필자는 매년 입시철이 되면 학교도서관에 학생들의 학과 선택에 도움을 주는 서가를 따로 만들곤 하는데 2011년에는 패스파인더를 연구하던 차라 학생들이 선호하는 과를 대상으로 전공별로 체계적으로 나누어 관리를 했다. 이에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전공에 해당하는 도서가 있는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원서와 면접 준비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다. 물론 1, 2학년 학생들 또한 학교도서관에서 고3 수험생을 보며 전공 선택과 전공에 대한 독서가 중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배우는 살아 있는 교육의 장소가 되었다.
3단계. 학과 및 대학 선택
학기초 고3이 된 재호. 많은 아이들이 재호를 부러워한다. 특히 한 학년 4개 학급뿐인 작은 시골학교에서는 재호가 장차 공공도서관의 사서가 될 것이란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반면 아직 진학할 학과를 결정하지 못한 학생들이 반 이상이다.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체계적인 독서 활동으로 다져진 학과와 직업에 대한 상식이 많은 재호에게 오히려 상담을 하는 친구들까지 생긴 실정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각종 출판사에서 나온 수백 수천가지의 직업 목록 책을 펼쳐들고 있을 때 재호는 각 대학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고3 학기초 재호는 형편상 국립대에 진학할 것을 결정했다. 수시가 시작됐다. 학생들이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재호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다. 자신에게 적합한 입학 유형이 1차에는 없기 때문에 2차를 기다린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에 대해 파악도 되지 않은 채 눈에 잘 보이는 과와 대학에 원서를 밀어 넣는다. 원서비도 만만치 않아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수시 2차. 재호는 자신이 준비한 대로 국립대 문헌정보학과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학교에 원서를 넣는다. 물론 원서를 넣어 놓고는 누구나 그렇듯 합격이라는 글자를 보기 전까지 긴장하는 모습을 감출 수는 없다. 2012학년 인천대학교 문헌정보학과 합격! 모두들 재호가 합격할 것이라 생각했다. 재호는 인천대면접을 가기 전 이미 우리나라 출판사에서 도서관과 문헌정보학과를 다룬 고등학생의 수준에 적합한 책을 섭렵한 상태였고, 하다못해 나도 아직 다 읽지 못한 랑가나탄의 도서관학 5법칙까지도 다 읽은 후였다. 다소 소극적이고 소심한 재호였지만 면접이 두렵지는 않았다. 내 생각으로는 학부생들보다 오히려 더 많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 정도였으니! 면접에서는 예상대로 문헌정보학과와 관련된 질문이 많았고, 재호는 지난 몇 년간준비한 대로 이야기를 잘 풀어 나갔다. 몇 년동안의 체계적인 진로 독서 활동이 빛을 본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입시가 끝나고 재호가 후배들을 위해 문헌정보학과와 관련된 패스파인더를 작업한 것을 보면 고3 학생의 실력이라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한 것을 볼 수 있다. 학교별로 만들어서 도서관에 비치하는 것도 좋겠지만, 학교 간의 협력 활동으로 패스파인더 작업을 해본다면 정보 공유와 함께 지금보다는 훨씬 더 완성된 형태의 패스파인더가 완성될 것이라 생각한다.
패스파인더를 활용한 체계적인 진로 독서 교육이 가능하려면 학교도서관이 있어야 하고 사서교사가 있어야 한다. 사서교사의 업무가 늘어나 현장에서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예전부터 상황별 독서 목록을 만들어 배포하고 게시해 왔다. 그러나 그 작업에 조금 변화를 주어 진로 지도에도 도움되는 것을 만들자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연구 초기 단계에 있어 부족한 점도 많다. 이번에 두 차례에 걸쳐 제시한 패스파인더 활용 기법 또한 많이 개발되고 연구되어야 할 부분이다. 아마도 현장에서 필자보다 더 훌륭한 방법으로 학생을 지도하고 있는 선생님이 많으시리라 생각된다. 학생들의 미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연구 활동에 함께하는 선생님과 제자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또한 학교도서관에서 패스파인더를 활용해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자신의 꿈과 미래를 열어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