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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새책 대답을 듣기 위해 펼쳤으나 숱한 질문들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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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11-27 03:00 조회 5,49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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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지윤 인천 경인여고 국어교사


“이렇게 과거의 문장이나 발언이 모인 것을 보면 그곳에 있는 사람이 진짜 미야자키 하야오인가 하면, 그건 나도 절대 보장은 못합니다.” 후기를 대신하여 쓴 글에 담긴 감독의 말이다. 삽화나 사진이 넉넉지 않은, 권당 400~500여 쪽에 이르는 책들을 펼쳐서 읽으려는 열혈 독자라면, 당연히 일본 애니메이션의 살아있는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를 자세히 알고 싶어서거나 혹은 그의 애니메이션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일 텐데, 이건 무슨 맥 빠지는 이야긴가 싶겠다. 나 역시 이 책의 전작이라 할 수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출발점 1979–1996』을 서가에서 발견해 만지작거릴 때만 해도, 일본에서 출간된 지 스무 해가 가까워지는 책을 원화전시전을 핑계로 우려먹으려나 싶어 엇나가는 마음이 컸다. 역자가 비교적 근거리에 놓인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있는 ‘전환점’도 시작이 1997년이니 ‘낡은 책’으로 취급할 법하지만, 주인공이 미야자키 하야오니 어찌 쉽게 외면하겠는가.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그를 ‘자연친화적, 혹은 휴머니스트이자 친환경주의자’라는 시선으로 설명하고 싶어 했다. 그것은 작은 도토리알을 줍다가 숲속에 살고 있는 토토로를 발견하는 메이의 발걸음이나 커다란 비행석의 힘으로 라퓨타의 중심부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나무뿌리, 다양한 식물들과 곰팡이로 뒤덮인 부해의 숲처럼 강한 녹색 숲 모티프를 여러 작품에 걸쳐 읽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 코드로 읽는다면, 이 책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환점이라 일컫는 <모노노케 히메>의 경우, 숲을 파괴하는 인간과 자연을 지키려는 동물들 사이의 전쟁을 소년소녀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문명비판 메시지 정도로 단순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책 속의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의 성공 뒤에 관객들이 지지하는 자연친화적인 코드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자연이 선이라거나 인간과 자연의 대립으로 보는 이분법적 사고를 경계한다. “숲을 파괴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들을 악인이고 수준이 낮고 야만인들이라고 말한다면, 인간의 문제는 꽤 해결하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고 인간의 가장 착한 부분을 밀고 나아가려 한 사람들이 자연을 파괴한다는 데에 인간의 불행이 있는 겁니다.”(88쪽) 일본인의 마음속에 토토로의 숲을 만들어준 그는, 단순히 ‘자연을 보호하자’가 아니라 ‘인간이란 존재만을 생각하지 말고, 인간도 자연 속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물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점을 인식한 채 세상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아름답지만 때론 공포와 파괴의 대상으로 변하는 숲의 신 ‘시시가미’의 부조리한 변화와, 숲의 존재들에게는 반드시 죽여야 할 대상이면서도 마을 사람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여성 지도자 ‘에보시 고젠’의 양면성을 충돌 없이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을 읽기 전의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려내는 유럽풍의 마을 공동체에서 역사의식이나 사회비판적인 메시지에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순정성 혹은 순수예술의 지향을 읽었다. 그러나 “만화란 형태로 세상을 잘라낼 때 심하게 보편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즉 시간과 공간을 제한 없이 왜곡할 수 있으니, 점점 현실 세계를 보지 않게 된다.”(123쪽)라는 답변을 듣는 순간 리얼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발견했다. 특히 아이들과 만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글에서 느껴지는 그의 어조는 더욱 강경하고 예리해진다. 가령,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같은 의사체험들로 아이들을 자연과 격리시키고, 미술관을 구경시켜주겠다며 전시물 앞에서 사진 찍기에 여념 없는 시시한 어른들과 문교부(일본의 교육부)의 교육정책을 맹비난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제화되고 있다는 기자의 이야기에 젊은 층의 문화는 어디서든 모자이크화 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무수한 모자이크의 한 조각에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들어갔을 뿐이라고 일축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히트 전부터 침소봉대격으로 한류를 떠들어대는 한국의 경박한 문화선전을 부끄럽게 하는 대목이다.

이 책은 거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날것으로 들을 수 있는 구술집이자 조각퍼즐처럼 흩어져 있는 단상들의 기록물이다. 간단한 약력으로 짐작하기 어려운 대담자들도 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세계를 함께 논하는 역사가, 영화평론가, 민예사 등 대화가 거장의 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답을 듣기 위해 책을 펼쳤지만, 책을 덮는 순간 오히려 미야자키 하야오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이 가슴 속으로 쏟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거대한 숲을 한 장의 나뭇잎으로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바로 어리석은 관객의 욕심일 것이다. 책을 덮는 순간 진짜 그의 모습을 알았다는 만족감 대신 그와의 만남이 영원히 종착점에 닿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훨씬 간절해졌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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