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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새책 깊게 읽기 - 관심 갖고 되찾아야 할 우리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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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8 15:26 조회 6,66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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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우리나라 문화재인 ‘직지심경’이 프랑스의 국립도서관에 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그리고 얼마 뒤 직지심경이 한국으로 돌아올 때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사서가 눈물을 흘리며 보내는 장면이 뉴스에 나왔다. 당시 사서였던 나는 그 프랑스 사서의 눈물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직지심경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간 경위는 자세히 모르고, 남의 것을 돌려주는데 왜 그렇게 눈물을 흘렸을까? 오히려 미안해하고 돌려주게 되어 잘됐다는 말이 나와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 뒤로 우리나라에서 잃어버린 우리 문화재에 관심이 늘면서, 잃어버린 문화재를 찾으러 다니는 TV 프로그램도 생겼다. 그 방송을 통해 많은 우리 문화재가 외국에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 문화재를 빼앗긴 과정을 알게 됐다. 그 문화재의 3분의1이라도 찾아올 때까지 그 프로그램이 종영되지 않았으면 하는 소원이 있었으나 어느새 그 프로그램은 종영되고 사람들은 또 돌아오지 못하는 우리의 문화재에 관심을 잃고 있는 듯하다.

『잃어버린 우리 문화재』는 돌아오지 못하는 수많은 문화재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반가운 책이다. 수많은 문화재 중 <수월관음도>, <몽유도원도>, 직지, 외규장각의 문서에 대해 다룬다. 이 책은 다양한 문화재에 관한 많은 지식을 주고 호기심을 유발한다. 그저 단순하게 불교의 그림이라고 여기고 있던 <수월관음도>는 그 당시 청자로만 유명하던 고려의 불화佛畵였다.

사람들은 단순히 고려의 그림이기 때문에 평가절하 하던 그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미술 연구가들에 의해 그 가치가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수월관음도>는 넉넉한 성품의 보살이 화려한 장신구와 옷을 입고 앉아 있는데, 마치 소원을 빌면 아무런 말없이 미소와 함께 들어 줄 듯해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수월관음도>는 하나같이 화려하면서 은은하고 세밀하고 섬세하며 조화롭고 아름답다고 저자는 표현하였다. 얇은 옷들은 실제로 입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고 천 년 전에 그린 그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색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런 것에는 고려 시대의 비단 짜는 기술이 숨어 있었다. 커다란 그림인데 천을 붙인 흔적이 없다. 그것은 넓은 비단을 짜는 기술이 있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투명한 비단을 사용했다는 증거도 있다고 한다. 또한 그림을 그리기 전에 밑천에 공을 들이는 것은 정말 감탄이 나온다. 갖풀과 백반으로 바탕칠을 여러 번 해서, 그림의 색을 더욱 선명하게 하고 물감이 떨어져 나가는 것도 예방할 수 있었다. 이러한 <수월관음도>는 총 170여 점 중 우리나라에 50여 점만 있고 나머지는 일본과 해외에 퍼져 있다고 한다.

<몽유도원도>에는 정치적, 역사적 비밀이 숨어 있다. 이그림은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꿈을 안견이 그린 그림이라고 이 책은 알려 준다. 안견은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그 꿈을 그림으로 나타냈고 안평대군, 박연, 김종서, 신숙주 등 22명이 시를 붙여 낸 그림이었다. 이 그림으로 안평대군은 왕자들의 정치에 대한 욕심으로 자신의 사후에 형제의 난이 일어날까 걱정하는 세종대왕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수양대군의 반란 후 강화도로 귀양을 떠났다가 그의 성품이나 학식과 리더십으로 불안해진 수양대군은 사약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후일에 안평대군이 집을 짓고 살았던 무계정사가 있던 곳은 풍수지리적으로 대대로 임금이 나올 곳이었다고 한다. 과연 그가 정치에, 임금에 마음이 없었던 것일까 의심이 되는 부분이라고 한다. 그가 죽고 그의 글씨와 그가 모았던 만여 권의 책, 안견의 그림 수십 점도 없어졌다고 한다. 몽유도원도는 일본의 덴리 대학에서 소장하고 있고, 우리의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그림을 빌려 보는 입장이 되었다.

직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책을 좋아하던 우리 선조는 한 번만 찍어낼 수 있는 목판에 이어 금속 활자를 만들었다. 활자活字란 뜻이 살아있는 글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직지는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라는 어려운 이름을 가지고 있다. 뜻은 “몸과 마음을 바로 보기 위한 요긴한 구절로, 부처님과 높은 스님들의 말씀을 백운 스님이 가려 뽑아 쓴 책”이라고 한다. 스님은 책을 쓴 뒤 바로 돌아가시고 그 제자들이 그 책을 오래 기리기 위해 활자본을 만들었다고 한다. 프랑스로 가게 된직지는 오랫동안 프랑스 도서관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창고에 있었고, 당시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던 박병선 박사에 의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직지의 가치를 알고 있던 박병선 박사는 직지를 세상에 내놓았고 세계최고最古의 활자본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주게 되었다. 지금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기록유산이 되었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의 역사책인 외규장각의 문서도 해외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병인양요 때 우리나라를 침략한 프랑스는 물러가면서 우리의 유산을 가져가고 많은 것을 불태웠다. 그 중 강화도에 있던 외규장각을 태워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에 많은 손해를 끼쳤다. 그때 강화도에 온 프랑스 군은 아무리 가난해도 집에 책이 있고, 한글 덕분에 문맹이 없었던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열등감을 느껴 그런 야만적인 일을 했다는 후문도 있다고 한다. 프랑스로 건너간 조선서지는 직지와 함께 박병선 박사의 노력으로 찾게 되었는데 발견 당시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것도 모자라 중국책이라고 표기 되어 있었다고 한다. 한 사람의 관심과 열정으로 외규장각 장서들은 빛을 보게 되었고 국내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어느 나라보다 학구열이 높지만,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이 너무 없다. 우리의 위대하고 지혜로운 선조들이 남긴 유품으로 우리는 더 많은 발전을 가져 올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어린이들이 우리의 잃어버린 것에 관심을 갖고 지식을 쌓아 우리의 훌륭한 선조들의 유품들이 더 이상 떠돌아다니지 않고 돌아올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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