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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합니다! 1인칭으로 존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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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2 16:50 조회 5,838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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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데 사나흘 걸린 것 같다. 한 번에 읽을 만큼 시간이 넉넉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보다 한 번에 읽기에는 너무 숨이 찼기 때문이다. 전체 여섯 마당으로 구성되었는데 글이 쉰 편 가량 되는, 별로 많은 분량은 아니었지만 그의 눈길과 발길을 따라잡는 일이 내게는 녹록하지 않았다. 학교 얘기, 교육 문제 등에서 출발하지만 이내 발걸음은 새만금과 천성산, 용산 참사 현장으로 이어지고, 촛불 집회장에 섰다가 다시 4대강 사업 현장으로, 후쿠시마로 이어진다(후쿠시마까지 갔다는 얘기는 아니다). 본인 스스로 “데모란 데모는 다 쫓아다녔다.”고 했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 길을 따라잡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의 비관에서 허무주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까닭
그는 “시골 접장에 불과한 내가 왜 이렇게 세상일에 손을 놓지 못하는지,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며 스스로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는 건 유행가 가사에도 흔하게 나오는 얘기지만 이건 경우가 좀 달라 보인다. 문득 그는 공감 능력이 특별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아픔을 함께 아파할 정도의 공감 능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데 그의 공감이 단순한 연민에 그치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는 스스로 비관주의자라고 했다. 그는 ‘집요한 욕망’이 오늘날 한국 사회의 모든 논리와 도덕을 압도하고 있다고 본다. 이 집요한 욕망은 논리와 도덕을 벗어던지고도 번영을 구가하는 삼성 같은 절대 강자를 선망하는 현실을 만든다. 그리하여 “한국인의 정신세계에는 안락에 대한 희구와 그것을 잃었을 때의 공포밖에 없다.”고 그는 진단한다. 그러니까 그의 비관주의는 현실주의가 판을 치는 이 현실을 비관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비관에는 허무주의의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연민에 머물지 않고, 허무주의에 젖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가 분명한 전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인문학’과 ‘농업’에서 전망을 찾고 있는 것 같다. 인문학은 사람이 어떤 물적 조건과 상황에 놓이더라도 대세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며, 농업은 인간 생존의 물적 기초이기에 그 가치를 새롭게 조명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가 “폐허 위에 서 있으면서 또한 출발선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스스로 확실한 전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연히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다음날 양철북출판사에서 보내온 신간 한 권을 받았다. 『교사로 산다는 것』(조너선 코졸 지음, 김명신 옮김, 양철북, 2011)이라는 책이었는데 이 책의 해제를 이계삼 선생이 썼다. 그리하여 우연히 그와 관련된 책 두 권을 동시에 읽게 된 것이다.

세상의 중심에 서서 자신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교사
『교사로 산다는 것』 2장은 ‘1인칭으로 말하기’이다. 조너선 코졸은 여기서 교사들이 학생들을 대할 때 1인칭으로 말할 것을 주문한다. “1인칭으로 학생들을 대하는 이런 방식이야말로 우리 학생들에게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울고 숨 쉬고 살아가고 사랑하고 투쟁할 능력과 권리가 있음을 가르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교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신봉하는지 정직하게 드러내자는 제안이다. “자신이 일인칭으로 존재하고 살아가고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자는, 외국의 민간인 마을에 폭탄과 네이팜탄 발사 버튼을 누르는 완벽한 일꾼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교사가 자신의 생각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정치적 중립에 발목 잡히고, 몇 년 그런 시간을 지내다 보면 스스로 자기 검열에 익숙해지게 된다. 그리하여 수업 시간에 정치 사회적 쟁점을 거론하는 것을 피하거나, 혹은 거론하더라도 ‘이런 주장과 저런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고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역할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학생들이 당면하고 있는 고통이 교사인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발뺌하며 위안하게 된다. 요즘 내가 그렇다.

그러나 이계삼 선생은 적극적으로 자기 견해를 드러내는 모양이다. 그는 “아이들의 삶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제들을 중심으로 수업을 준비한다.”고 말한다. 고향으로 돌아와 터를 잡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지역 공동체 모임을 꾸리기도 하고, 풀무학교 같은 학교를 마련하는 꿈을 꾸며, 이곳저곳 데모 현장을 쫓아다니는 자신의 사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죄다 드러내 놓고 있는 모양이다. 『변방의 사색』, 이 책은 그러니까 ‘1인칭으로 존재하는’ 교사의 삶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래서 책을 읽다 보면 변방에 있는 그가 아니라,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그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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