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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합니다! 새로 만나게 된 지연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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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2 15:18 조회 5,90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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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우려했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교실에서 돈이 없어질 때마다 교육복지실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되긴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제까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기에 약간 방심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사건(?)은 방학 동안 진행된 요리교실 중에 발생했습니다. 방학이 되면 끼니를 챙겨 먹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지역아동센터와 인근 중학교 선생님들과 요리교실을 준비하고 진행하게 되었고, 진행 중에는 여러 가지 재료 준비로 교육복지실 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육복지실에 가방을 놓아두신 선생님의 지갑에서 12,000원이 없어진 것입니다. 요리교실은 다른 학교 학생들도 함께 와서 참여했는데 교육복지실에 온 학생은 우리학교 학생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돈을 잃어버린 선생님이 내게 정확하게 지연(가명)이를 지적하셨습니다. 요리교실 진행 중에 자신과 계속 눈을 마주치지 못했고, 교육복지실에 그 학생이 있었다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이 사건을 꼭 처리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돈을 잃어버린 것보다는 교사 가방에 손을 댔다는 것에 꼭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말입니다. 게다가 그 돈이 없어서 수업을 마치고 톨게이트에서 무척 고생하셨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듣고 물증이 없고 심증만 있는 상황에서 지연이를 불러 다그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에 회의를 소집하기로 했습니다.

그날 교육복지실에 왔던 학생은 모두 6명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6명을 다 불렀습니다. 지연이는 자주 교육복지실을 이용하는 학생이 아니었고 친구를 따라 온 것뿐이었습니다. 워낙 얌전하고 자신의 의사도 잘 표현하는 학생이 아니어서 지연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학생1 교육복지실에서 돈이 없어졌어. 그것도 다른 학교 선생님 가방에 있던 돈이라는데 어쩌지?
학생2 교실에서도 돈이 자주 없어지잖아. 그때마다 별 수 있었어? 그냥 돈을 잘 간수하지 못한 사람들 책임으로 돌려버리고 끝냈잖아.
학생3 나도 돈 잃어버린 일 있을 때 한 번도 제대로 해결한 걸 못 봤어. 그 샘이 잘못한 거지. 왜 여기다 가방을 놔두고 가. 그냥 아무도 없는 거 그 샘도 알았잖아.
학생4 그럼 우리 회의 결과는 “샘이 잘못한 것이에요.”라고 전해야 하는 거야? 그건 아니잖아. 그것도 다른 학교 샘인데… 우리 학교 샘이라면 몰라도…

학생3 그렇기도 하다. 그럼 우리 2,000원씩 걷어서 드리는 건 어떨까?
학생1 돈을 내는 건 어렵지 않을 수 있지만 돈이 없어질 때마다 나눠서 낼 수는 없어. 개학하면 교육복지실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하루에 50명에서 100명 정도 될 것 같은데 그때마다 그러면 어떻게 해?
학생3 나도 반대야. 2,000원도 없을 뿐더러 앞으로 그런 일 없을꺼야. 이제까지 없었는데… 그리고 우리 학교 학생인 건 확실한 거야? 그날 다른 학교 애들도 있었는데…
학생2 그럼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돈으로 드리는 거 말고 뭔가 피해보상을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
학생1 그러자. 선물을 드리는 거야. 뭐가 좋을까?
……

학생4 여기가 교육복지실이니 우리의 ‘복지’를 양보하는 건 어때? 그러고 보니 뭔가 근사하다. 도난 사건은 ‘복지’를 잘 누리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니 우리의 복지를 줄이는 거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
학생2 그럼 책은 어때? 요즘 교육복지실에 재미있는 책들 많이 있으니… 우리가 좋아하는 책들로 해야 해. 그리고 마침 그 선생님이 있는 학교가 남학생들만 있으니 재미있고 유익한 책으로 보내자. 뭔 책으로 보내지? 참, 고쌤 괜찮아요? (힘차게 끄덕여 주었습니다.)
학생3 뭔가 반성의 표시를 해야 하니 이왕이면 예쁘게 포장하고 앞에 글도 써서 보내자. 예쁜 표장지 찾아볼게.

갑자기 아이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몇 명은 책꽂이에서 책을 골랐고, 몇 명은 종이상자에서 예쁜 포장지를 골랐으며, 또 몇 명은 이면지에 예쁜 글씨로 사과의 말을 써보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자원봉사를 할 때 만든 책갈피도 함께 넣었습니다.

저는 이 회의를 열기 전에 대안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을 잃어버린 선생님께서 몇 번의 연락을 주지 않으셨다면 그냥 넘겼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참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책을 고르고 있는 아이 중 한 명이 “그 학교 선생님께서 책으로는 안 받는다고 하시면 어쩌죠?”라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이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습니다. 먼저 피해 선생님이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리고 제게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피해 선생님과 통화를 했고 허락을 얻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지연이는 조용히 책상에 앉아 포장지만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나와는 눈이 전혀 마주치지 않았고 아이들의 웅성거림에도 그저 배경처럼 같이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분주하게 글을 쓰고, 포장을 마치고는 분주하게 교육복지실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때 지연이가 조용하게 내 옆으로 다가왔습니다.
“선생님… 여기 이 포장지에… 리본을 달면 예쁠 것 같아요… 혹시 리본이 있나요?”
나는 빨리 일어나 리본을 찾아 주었습니다. 지연이는 다시 그 자리에 앉아 여러 번 고민을 하며 리본으로 장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수줍게 제가 들고 왔습니다.

아직도 정말 지은이가 돈을 가지고 갔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제게 친구가 한 명 생겼습니다. 그 일 이후에 지은이는 제게 거의 매일 찾아왔고, 처음에는 거의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여기저기 어질러 놓은 책들을 정리하기도 하고, 조용히 쓰레기를 치우기도 합니다. 교육복지실을 이용하는 아이들은 이제 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더 자주하기 시작했고, 교육복지실을 찾아오시는 손님들께 지갑 조심을 시키기도 합니다. 돈을 잃어버리신 선생님께는 정말 미안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좋은 공부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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