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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새책 깊게 읽기 - 인간의 탐욕, 파괴와 절망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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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02-12 13:19 조회 6,454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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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은 왜 일어날까? 바이러스라고들 한다. 보통 우리는 여기까지만 생각한다. 그럼, 좀 더 근본이유는 무엇일까? 더 근본적인 이유라! 환경오염? 항생제 남용? 아니면? 우리는 ‘?’를 잘 쓰지 않는다. 그건 한 주교가 말한 것처럼 바로 인간의 탐욕 때문이다. 예전에 가축은 집에서 필요한 만큼만 혹은 한 마을이 필요한 정도만 길렀다. 자연은 자정 능력이 있어 일정 공간 안에 있는 오염원들을 모두 없애 준다. 그러나 가축도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처럼 대량 사육되다 보니 자연의 정화 능력이 그 한계를 넘어서서 각종 오염 물질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탐욕은 지속적으로 인류를 파괴하고 있는 셈이다.

방房이 하나 있다. 그리 반갑지 않은 죽음의 방이다. 그방은 나일 솜너의 할아버지와 엄마가 죽은 방이다. 그런데 그 방에 또 다른 죽음이 있다.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로 방사능에 피폭된 한 아이의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 그저 방사능에 피폭된 것으로만 생각하는 아이들 그리고 일부 어른들. 이제 우리가 그 방에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올해 3월 일본에 강진이 일어나면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났다. 당시 일본이나 우리나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해 그야말로 가차 없이 떠들어 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 정부는 관련 정보를 덮기에 급급했고 우리는 머릿속에서 원전 사고를 점점 잊어버리고 있다.

캐런 헤스은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난 뒤, 1986년 20세기 최악의 사고로 기록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일어나자 사람들에게 핵의 위험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옮긴이 역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뒤 또 다시 잠잠해진 사람들의 무관심을 걱정했다.

나일은 할머니와 함께 한 평화로운 양떼 목장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이 평화로움은 쿡셔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로 인해 파괴되어 간다. 나일과 할머니는 매일 방사능계측기를 사용하여 방사능을 측정하며 생활한다. 그런데 원전 사고의 피해 가족이 나일의 집으로 오면서 나일은 원전 피해를 더 가까이에서 보게 된다. 그리고 나일이 방사능에 피폭된 에즈라를 돌보면서 가장 친한 친구인 먼시와의 관계도 좋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방사능에 피폭된 사람을 ‘괴물 인간’이라 한다.

해스킨스 선생님은 원전 사고가 우리 모두에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 선생님이 맞았다. 장 보는 방식이나, 먹는 방식, 일하는 등 많은 것이 변했다. 세상에 대한 생각도 변했다. 더 이상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눈먼 믿음은 더욱 없었다. 모두 쿡셔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단절되어 있지 않다. 먹는 물, 숨 쉬는 공기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170~171쪽)

죽음의 방에 기거하던 에즈라는 나일의 헌신적인 간호로 점점 생기를 되찾고 바깥 출입도 가능하게 된다. 그러면서 둘은 우정보다 진한 사랑의 감정도 싹 틔우게 된다. 그러나 이웃 리플리의 폭력으로 에즈라는 위급한 상태가 되어 병원으로 실려 간다. 리플리의 폭력 원인도 결국 원전 사고와 관련 있다. 사랑하던 개를 잃은 리플리는 분노에 차 있다. 에즈라는 이미 방사능에 암이 유발되었고 죽음이 예고되어 있었다.

넌 특별한 상황에 처한 평범한 소녀였어. 너의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네가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잊지 않게 만들고 있어.
“자 어떻게 생각해?”
에즈라는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에즈라가 내가 읽는 걸 한마디라도 들었는지 궁금했다.(226쪽)

나일이 학교 과제로 ‘안네 프랭크’에게 쓴 편지다. 죽음의 방에서 에즈라는 죽은 셈이다. 그러나 나일의 편지처럼 에즈라가 죽으면 우리가 에즈라가 무엇 때문에 죽게 되었는지 잊지 않을까? 그것은 미지수다. 원전 사고에 대한 기억은 이미 망각의 늪을 건너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일과 그의 할머니의 말 없는 외침은 우리들 폐부 깊숙한 곳까지 찾아온다.

방이 또 승리하고, 에즈라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겨우 며칠 전이었을까?
“있잖아, . 나 그 새처럼 느껴져. 불새 말이야. 다 타 버린 다음에 자기 재에서 다시 일어나잖아.”
에즈라가 말했다. 나는 에즈라를 바라보며 듣고 있었다. 나는 그런 새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잊어버릴 것 같지 않았다.(101쪽)

나일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용기는 에즈라 대신 불새가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원전 사고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 우리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전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의 탐욕이 부른 처참한 사고를 우리는 아직도 실수나 자연 재앙이라 부른다. 언제쯤 순리에 따른 삶의 방식이 우리들 곁으로 찾아올까! 아니, 인간이 인간이기를 바란다면 파괴와 절망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버리지 못하는 탐욕, 그것을 그대로 남겨둔다면 질병과 치료는 계속될 것이다. 미래에 더 큰 절망이 인류를 덮어버릴지도 모른다. 거대한 인간의 탐욕을 치료할 사랑도 그 빛을 바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원전 사고의 근본 이유를 더듬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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