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가벼운 책?
결코 가볍지 않은 책!
고정원, 김윤나, 최지희 구립 구산동도서관마을 사서
바야흐로 지금은 ‘밀레니얼 Z세대’의 시대다. 한 책의 제목처럼 ‘Z세대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올까? 청소년자료실에서 근무하는 사서들은 이미 예전과 다르게 ‘청소년’만을 겨냥한 시리즈가 다양하게 출판되어 나오는 것을 매일 확인한다.
전에는 비교적 성인 도서보다 적은 예산 폭에서 청소년 도서 구입에 관해 고민했다면, 이제는 많은 시리즈에서 어떠한 책을 사서 청소년들에게 제공해야 할지 고민하곤 한다. 휴대하기 좋은 작은 크기 그리고 200쪽이 채 안 되는 가벼운 분량으로 누구나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색다른 표지의 책들, 지금은 그야말로
작고 가벼운 책들의 시대다. 전에는 독서의 장벽을 느끼는 청소년들에게 비교적
분량이 적고 가벼운 책을 권했다면, 이제는 조금 다르다. 적은 분량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다채로워져 높은 독서력을 가진 청소년들에게도 충분히 고전문학을 안내할 수 있다. 외관은 작고 가벼워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가 단단한 책들을 엄선해 보았다.
『오빠는 오늘도 오케이』 사토 미사요 지음│채송화 옮김│한울림스페셜
미술을 전공한 주인공은 다운증후군을 가진 오빠와 살다 보니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졌다. 어려서는 싫은 적이 더 많았던
오빠였지만, 나이가 들어 장애를 깊이 알게 되니 그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이 책은 오빠의 하루를 길지 않은 글과 그림, 만화와 함께 소개한다. 읽다 보면 마냥 애정으로만 오빠를 표현한 건 아니어서 더 공감되고 응원하게 된다. 주인공 오빠의 행동들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가 그답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그 이유를 알아주기만 하면 된다. 이 책을 통해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사는 방식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기차를 기다리는 소년』 다니엘 에르난데스 참베르 지음│오승민 그림│김정하 옮김│양철북
한 편의 흑백영화 같은 따뜻한 책. 우표를 모으는 것이 취미인 이사벨의 아버지는 우체부다. 기차역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던
이사벨는 우연히 매일 기차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반 친구 기예르모를 발견한다. 기예르모는 먼 곳으로 여행 중인 아버지를 기다린다고 한다. 둘은 점점 가까워져 좋은 친구가 된다. 하지만 이사벨의 아버지는 기예르모가 아들의 친구가 되는 것을
싫어한다. 반 아이들도 기예르모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왜일까? 깊이 있는 이야기와 아름다운 표지에 매료된 이용자들의 손을 많이 탄 책이니 믿고 읽어 보길.
『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지음│한지윤 옮김│보물창고
고전을 읽어야 할 것 같은데 두꺼운 책을 피해 이 책을 골랐다가 ‘인생책’이 되었다는 고2 남학생의 권유로 읽었다. “하지 않는 쪽을 선호하겠습니다.” 처음 바틀비가 이 말을 했을 때 신기했다. 피고용자가 자신의 ‘선호’를 밝히는 것이 신선했다. ‘선호’는 소설의 배경인 19세기 초 산업혁명, 법률사무소에서 글을 옮겨 쓰는 직업인 필경사가 쉽게 말할 수 있는 단어는 아니었을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허점을 드러내는 부조리 문학의 최고봉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소설로, 바틀비의 “I would prefer not to.”라는 말이 오랜 울림으로 남는다.
『너의 유니버스』 조규미 지음│이로우 그림│사계절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알게 된 친구 박람. 람은 자신이 시간 여행자라고 말한다. 지훈은 헛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람의 독특한 행동에 묘하게 그의 말이 진짜인 것도 같다. 어느새 둘 사이에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러 온 람은 지훈에게 자신의 세계를 선뜻 내어 준다. 학원 가기와 공부에 지친 지훈에게 그 세계는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서로의
세계를 나눈 둘이서 함께 보낸 시간들은 또 다른 각자의 시간여행으로 남을 것이다.
『내 이름은 쿠쿠』 조우리 지음│백두리 그림│낮은산
안락사 당하기 바로 전날, 한 유기견이 새로운 가족을 얻는다. 개가 새로이 자리 잡은 보금자리에서 밥솥이 밥이 다 되었다고
알리는 소리에 심하게 짖자, 가족은 그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인다. 쿠쿠는 반려인 여름이를 깨물곤 하지만 그가 적응할 때까지 가족은 기다려 준다. 이윽고 웃음이 넘쳤던 가족에게 고난이 오고 집은 우울한 공간이 된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쿠쿠는 가족을 챙긴다. 덕분에 쿠쿠의 가족은 서로 의지하고 힘을 합쳐 무슨 일이든 이겨 낼 수 있는 의지를 키운다. 상위
1퍼센트 지능을 갖춘 쿠쿠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펼쳐져서 흥미롭다.
『엄마의 이름』 권여선 지음│박재인 그림│창비
채운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하지만 채운은 더 어린 시절부터 곧 엄마가 떠날 것을 예상했었다.
엄마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과 엄마가 떠나서 괴롭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공존했다. 이 책은 엄마를 반희 씨로, 딸을 채운 씨로 부르며 그들이 둘만의 여행을 떠난 이야기로,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지만 표현하지 못해 아팠던 상처를 보듬는
과정을 그려 낸다. 읽다 보면 두렵지만 도망치지 않고 함께 이겨 내고 더 단단해지기로 한 둘에게 힘을 보태고 싶어진다.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 존 러스킨,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유정화, 이봉지 옮김│민음사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지성인이었던 존 러스킨 그리고 그의 책을 번역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 이 독특한 제목의 책은 존 러스킨의 강연집을 묶은 것이다. 목차에서 알 수 있듯이 “참깨: 왕들의 보물” 장은 도서관 건립
기금 조성을 위해, “백합: 여왕들의 화원” 장은 학교 설립 기금 후원 강연을 위한 것이었다. 책의 가치, 독서의 의미, 교육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존 러스킨의 강연과 마르셀 프루스트의 역자 서문을 볼 수 있다. ‘쏜살 문고’ 시리즈는 휴대하기 편리한 크기에 180쪽이 안 되는 분량의 작은 총서다. 고전 완독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청소년에게 권한다.
『한 줄도 좋다, 그림책』 구선아 지음│테오리아
작가가 그동안 만난 그림책의 문장 중 오래 기억에 남는 한 줄을 소개하면서 그림책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자신만의 솔직한
이야기도 더했다. 나에게만 불행한 일이 생기는 것 같을 때, 잘하는 게 없는 것 같아 두려울 때 어떤 그림책의 한 줄이 저자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이 책이 속한 ‘한 줄도 좋다’ 시리즈는 희곡, 영화, 동요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한 줄 대사와 한 줄
가사로 나만의 한 줄을 만날 수 있게 한다. 문득 청소년들이 기억하는 나만의 책과 그 안에 스민 한 줄의 의미도 궁금해진다.
이 책들에서 자신만의 한 줄을 만나 보길!
『짧은 소설 쓰는 법』 이문영 지음│서해문집
짧은 소설을 쓰고 싶은 청소년에게 권한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 작가도 손바닥만 한 길이의 소설, 한 장
혹은 두 장 분량의 초단편소설을 썼다. 이 책을 읽고 나의 손바닥만한 분량의 소설 쓰기에 도전해 보자. “물음표를 갖고 상상을 더해 확장해 볼 것.” 등 저자는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지 글쓰기의 기초도 알려 주지만, 무엇보다 글에 자신의
감정을 풀어내다 보면 ‘위로와 공감’을 배우게 될 거라고 알려 준다. 이 안내서를 읽고 독서의 최종 단계인 글쓰기의 단계로
넘어가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