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새책 내가 불편할수록 아이들은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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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12-28 20:38 조회 6,206회 댓글 0건본문
이호은 의정부 경민여중 전문상담교사
학교에서 학부모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3년째 하고 있다. 첫 해에는 책을 읽어 와야 하는 부담감을 덜어드리기 위해 주로 그림책을 중심으로 독서토론을 하였다. 그때 처음 여는 책으로 선택한 것이 『점』(피터 레이놀즈, 문학동네)이다. 그림을 그릴 줄 모르는 ‘베티’가 홧김에 찍은 점을 커다란 액자에 걸어 준 선생님. 그리고 자신이 그린 점을 보고 도전을 받아 다양한 점을 그리기 시작한 베티. 결국 베티는 창의적인 점 그림으로 자신의 꿈을 성취하게 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먼저 학부모들은 점 그림을 인정하지 않는 학교의 제도교육을 성토했다. 다양성을 인정할 수 없는 교육환경과 창의성이 짓밟히는 아이들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나는 학부모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어머니들은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는 아이를, 점을 찍어 놓고 화를 내고 있는 아이를 용납하고 격려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나요?”
그림책은 원래 아이들에게 읽히고 아이들이 좋은 영향을 받기를 기대하며 만들어진 책이다. 그림책은 유아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주 독자가 된다. 그래서 그림책 속에 담겨 있는 교훈과 스토리는 간결하면서도 분명하다. 그리고 그 교훈들은 인생을 경험하는 첫 걸음에 있는 아이들에 걸맞게 아주 기본적인 인성을 함양하는 내용들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림책에서 아이들에게 향하고 있는 교훈을 가만히 돌려 놓고 보면 어른들의 마음을 따끔하게 하는 내용이 제법 있다. 처음에 그림책으로 독서토론을 한다고 했을 때 학부모들의 반응은 “무슨 그림책으로 토론을 해? 수준이 있지.”였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한 권의 그림책으로 2시간을 훌쩍 넘긴 토론을 하였다. 자신들의 교육방식과 아이들의 창의력에 대한 획일화된 교육, 부모의 욕심이 아이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등에 대해서 논의했다.
그림책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많은 생각거리를 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림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른들을 향한 날카로운 질책이 곳곳에 숨어 있다. 아이들의 시각으로 표현한 말을 어른들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뽑히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 아이에게 뽑히는 그림을 그리라고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틀리면 큰일 나고, 경쟁에서 탈락하면 괴물에게 잡아먹힌다고 아이들을 겁주고 있지는 않은지, 모든 것을 이해한다면서 어른들의 방식대로 아이들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그림책 속에 담긴 아이들을 위한 교훈은 어른들에게도 ‘그래서 너는 그렇게 잘하고 있니?’라고 되묻고 있다.
이 책은 교사와 부모를 위한 책이다. 작가는 오랫동안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는 작업을 해 왔다. 그림책 독서를 통해 아이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경험하고 책으로 펴내기도 하였다. 언제나 교사의 가르치는 눈으로 그림책을 보던 작가의 시선이 자녀의 방황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책은 자녀를 기르면서 아이들 마음 읽기에 소홀했던 엄마로서, 아이들을 향한 가르침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점을 깨달은 교사로서 그림책을 통한 자기반성과 성찰을 담은 독서일기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수없이 그림책을 되풀이해 읽으면서도 보지 못했던 작은 한 구절, 한 장면 속에 담긴 칼날 같은 교훈들을 통해 철저하게 자기를 내려놓는 아픈 과정을 겪어 낸 생생한 경험담이다. 그래서 작가는 불편하다. 남에게 향하던 손가락의 다른 끝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신이 가리키고 있는 세 개의 손가락이 불편한 것처럼. 그래서 작가는 자기개방과 고백을 통해 아이들의 세계에 더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자신의 감추고 싶은 치부를 아낌없이 보여 주며 ‘조금 덜 죄짓는 교사, 조금 덜 나쁜 엄마, 조금 덜 그악스러운 사람’이 되자고 우리에게 말한다.
얼마 전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짐을 싣기 위해 남편이 차 가져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한 엄마와 아이가 카트를 모으는 곳에 자신들의 카트를 밀어 넣었다. 아이가 앞 카트의 고리를 꽂아 동전을 빼려 하자 엄마가 날카롭게 말했다.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너는 공부나 해!”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동전을 뽑는 것과 공부가 무슨 상관이지? 카트를 사용하고 나서 동전을 뽑아드는 것은 공부가 아닌가? 우리가 점을 찍는 아이를 격려해 주기는커녕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그림책에 투영된 나의 모습이 불편하면 불편할수록 아이들을 더 행복하게 해 주는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학교에서 학부모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3년째 하고 있다. 첫 해에는 책을 읽어 와야 하는 부담감을 덜어드리기 위해 주로 그림책을 중심으로 독서토론을 하였다. 그때 처음 여는 책으로 선택한 것이 『점』(피터 레이놀즈, 문학동네)이다. 그림을 그릴 줄 모르는 ‘베티’가 홧김에 찍은 점을 커다란 액자에 걸어 준 선생님. 그리고 자신이 그린 점을 보고 도전을 받아 다양한 점을 그리기 시작한 베티. 결국 베티는 창의적인 점 그림으로 자신의 꿈을 성취하게 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먼저 학부모들은 점 그림을 인정하지 않는 학교의 제도교육을 성토했다. 다양성을 인정할 수 없는 교육환경과 창의성이 짓밟히는 아이들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나는 학부모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어머니들은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는 아이를, 점을 찍어 놓고 화를 내고 있는 아이를 용납하고 격려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나요?”
그림책은 원래 아이들에게 읽히고 아이들이 좋은 영향을 받기를 기대하며 만들어진 책이다. 그림책은 유아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주 독자가 된다. 그래서 그림책 속에 담겨 있는 교훈과 스토리는 간결하면서도 분명하다. 그리고 그 교훈들은 인생을 경험하는 첫 걸음에 있는 아이들에 걸맞게 아주 기본적인 인성을 함양하는 내용들로 되어 있다. 그런데 그림책에서 아이들에게 향하고 있는 교훈을 가만히 돌려 놓고 보면 어른들의 마음을 따끔하게 하는 내용이 제법 있다. 처음에 그림책으로 독서토론을 한다고 했을 때 학부모들의 반응은 “무슨 그림책으로 토론을 해? 수준이 있지.”였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한 권의 그림책으로 2시간을 훌쩍 넘긴 토론을 하였다. 자신들의 교육방식과 아이들의 창의력에 대한 획일화된 교육, 부모의 욕심이 아이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등에 대해서 논의했다.
그림책은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많은 생각거리를 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림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른들을 향한 날카로운 질책이 곳곳에 숨어 있다. 아이들의 시각으로 표현한 말을 어른들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뽑히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 아이에게 뽑히는 그림을 그리라고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틀리면 큰일 나고, 경쟁에서 탈락하면 괴물에게 잡아먹힌다고 아이들을 겁주고 있지는 않은지, 모든 것을 이해한다면서 어른들의 방식대로 아이들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그림책 속에 담긴 아이들을 위한 교훈은 어른들에게도 ‘그래서 너는 그렇게 잘하고 있니?’라고 되묻고 있다.
이 책은 교사와 부모를 위한 책이다. 작가는 오랫동안 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는 작업을 해 왔다. 그림책 독서를 통해 아이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경험하고 책으로 펴내기도 하였다. 언제나 교사의 가르치는 눈으로 그림책을 보던 작가의 시선이 자녀의 방황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책은 자녀를 기르면서 아이들 마음 읽기에 소홀했던 엄마로서, 아이들을 향한 가르침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는 점을 깨달은 교사로서 그림책을 통한 자기반성과 성찰을 담은 독서일기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수없이 그림책을 되풀이해 읽으면서도 보지 못했던 작은 한 구절, 한 장면 속에 담긴 칼날 같은 교훈들을 통해 철저하게 자기를 내려놓는 아픈 과정을 겪어 낸 생생한 경험담이다. 그래서 작가는 불편하다. 남에게 향하던 손가락의 다른 끝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자신이 가리키고 있는 세 개의 손가락이 불편한 것처럼. 그래서 작가는 자기개방과 고백을 통해 아이들의 세계에 더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자신의 감추고 싶은 치부를 아낌없이 보여 주며 ‘조금 덜 죄짓는 교사, 조금 덜 나쁜 엄마, 조금 덜 그악스러운 사람’이 되자고 우리에게 말한다.
얼마 전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짐을 싣기 위해 남편이 차 가져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한 엄마와 아이가 카트를 모으는 곳에 자신들의 카트를 밀어 넣었다. 아이가 앞 카트의 고리를 꽂아 동전을 빼려 하자 엄마가 날카롭게 말했다.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너는 공부나 해!”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동전을 뽑는 것과 공부가 무슨 상관이지? 카트를 사용하고 나서 동전을 뽑아드는 것은 공부가 아닌가? 우리가 점을 찍는 아이를 격려해 주기는커녕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그림책에 투영된 나의 모습이 불편하면 불편할수록 아이들을 더 행복하게 해 주는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