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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새책 아동 학대에 관한 다섯 가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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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3-12-28 20:28 조회 6,73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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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미 인천 삼산도서관 사서


제일 싫어하는 말이 있다. ‘사랑 받아 본 사람이 사랑할 수 있다’는 말. 반대로 생각하면 사랑 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할 줄 모른다는 소리다. 어떤 어른은 결혼할 때 상대방의 가정환경을 잘 봐야 한다고 말한다. 겉모습은 좋아 보여도 가족한테 받은 상처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고. 너무 가혹한 이야기다. 어느 누가 원해서 어린 시절 학대를 받는가. 슬프게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힘겨운 삶을 산다. 『너는 착한 아이야』를 읽으며 악순환을 예감한다. 그럼에도 운명을 떨쳐 내려 끈질긴 노력을 하는 사람들을 본다.

이 책은 아동 학대에 관한 다섯 편의 이야기를 실은 옴니버스 소설이다. 평범한 제목과 달리 학대받고 학대한 사람, 알면서도 선뜻 돕지 못하는 사람 등 다양한 상황과 복잡한 심리에 대해 섬세한 시선으로 관찰한다. 눈에 보이지 않고 차마 보일 수 없는 일이라 충격을 주지만 주변의 돕는 손길과 성찰이 있어 삶에 대한 온기가 느껴지는 책이다.

「산타가 오지 않는 집」은 학급 붕괴로 정신없는 햇병아리 교사와 항상 같은 옷에 급식을 두 번이나 먹는 말라깽이 제자가 나온다. 자신에 대한 주변의 평가와 냉대, 학교에 대한 실망과 회의 중에 문득 발견한 이상한 아이. 그는 지금까지 겪은 부모와 달리 전혀 자녀를 돌보지 않는 보호자에 대해 진짜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남의 가정 형편에 더는 개입할 수 없는 무력한 교사이기도 하다. 그나마 “넌 착한 아이야”라는 말이라도 해주면서 학교에 계속 나가자고 다짐한다.

「웃음 가면, 좋은 엄마 가면」은 밖에서는 좋은 엄마인 척하고 집에서는 딸을 때리는 엄마의 이야기다. 다른 집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깔보면서도 억지로 하는 연기를 그만두지 못한다. 어릴 적 학대받아 누구보다 잘 키우고 싶지만, 불만족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딸에 투영해 괴롭힌다. 딸을 학대한 사실을 들킨 순간, “학대받았죠? 나도 그래요. 그래서 알아요. 얼마나 힘들었을지…….”라고 아픔을 먼저 꺼내는 이웃집 엄마 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엄마’를 버리다」에 이르면 감정의 소용돌이가 심해진다. 치매에 걸린 엄마를 동생 대신 잠시 돌보는 딸은 나를 그렇게 학대한 주제에 어떻게 전부 잊어버릴 수 있냐며 괴로워한다. 상세한 묘사에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 정도다. 동생한테 엄마를 데려다 주며 간신히 붙잡은 기억 한 자락이 유일한 추억이다. 지금도 당시 엄마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끝까지 좋아하지 못하지만 누가 이 사람에게 비난의 돌을 던지랴.

“지금 나는 엄마를 버리러 간다. 미와의 집에 버리러 간다. 엄마를 버려도 이 기억은 갖고 가자. 비 때문에 흐릿한 그네를 돌아보며 맹세했다. 이 기억만은 잊지 말고 갖고 가자. 나이가 들어 모든 걸 잊어버려도.”(210쪽)


「거짓말쟁이」는 아들의 이상한 친구를 바라보는 아빠의 이야기다. 처음엔 그저 또래에 비해 조금 유치한 아들과 어울리는 친구가 기꺼울 뿐이다. 가정환경이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잠시 멈칫하지만 둘의 우정을 진심으로 빌어 준다. 무얼 어떻게 해 주지 못하지만 그저 안쓰러운 눈으로 아들 친구의 행복을 조용히 기도한다.

“나는 안다. 둘이 헤어져서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고, 함께했던 장소가 없어져도 행복한 한때가 있었다는 기억은 평생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아무리 불행한 일이 있어도 그 기억이 힘이 되어준다.”(271쪽)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는 집에 칩거하는 할머니가 나온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줄곧 혼자 살아온 여인이다. 짙고 깊은 회한만 남은 삶에 작은 기쁨이 있다면 새 학기에 벨을 누르고 도망치는 아이들의 장난을 기다리는 일뿐. 어느 날 열쇠를 잃어버린 한 아이를 집에 들이고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에 젖는다. 엄마의 애증을 받는 장애아이지만 얌전하고 착한 모습에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한 채. 그녀는 아들을 찾으러 온 엄마와 대화하며 행복의 의미를 생각한다.

“행복. 이제는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나의 행복. 아키코, 하고 이름을 불러 주었던 어머니도 아버지도 죽었다. 누나, 하고 불러 주었던 남동생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모든 걸 잊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비 오는 날에 다른 행복이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이렇게 나이를 먹고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모든 걸 잊어버려도 상관없다.”(315쪽)

특히 마지막 세 편의 이야기는 행복에 대해 묻는다. 불행한 기억이 따라붙는 사람에게 행복이란 뭘까. 보통 사람의 생각과 조금 다른 느낌이다. 더 절실하다고 할까. 불행한 기억은 웬만해선 없어지지 않는다. 반면 행복한 기억은 금방 잊힌다는 사실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주 작은 행복 하나에 만족하고 살아간다. 어쩔 수 없이 겪은 불행에 대한 수용과 초월로 읽힌다. 이런 행복을 소중히 여기는 삶에 학대의 상처와 고리를 끊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주인공들은 그런 각오와 노력을 비쳐 준다.

나 또한 어릴 적 아빠의 폭언에 지금도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새로운 가정을 일구고 살아간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행복한 기억이 별로 없어도 이렇게 살아간다. 인생을 꾸리는 일이 아야네 엄마처럼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해도 쉽지 않을지 모른다. 상처 많은 사람은 끊임없이 삶에 대해 묻고 노력한다. 주변에서 손 내민 선의와 구원도 있다. 그러니 사랑받지 못하면 사랑할 줄 모른다는 무심한 논리를 더는 듣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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