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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정_ <처음 읽는 수영 세계사>(이케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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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8-08-20 10:18 조회 22,410회 댓글 3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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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수영 세계사
 
Strokes of Genius_a History of Swimming
문화와 문명에서 탐험하는 수영의 재미와 발달
 
에릭 샬린 지음|김지원 옮김|이케이북 펴냄|값 18,000원|2018년 7월 10일 발행
분야 : 국내도서> 역사 > 세계사 일반|ISBN 979-11-86222-20-1 03900
 

 
: 헤엄치는 모험과 상상력에 관한 기발한 이야기
 
네 가지 원소 중에서 물만이 우리를 기꺼이 환영하고 그 액의 품으로 끌어들인다. 우리는 새처럼 공기 속을 날아오르지 못하고, 두더지처럼 흙 속을 파고 들어가지도 못하고, 샐러맨더처럼 불을 뚫고 지나가지도 못하지만 물고기처럼 헤엄칠 수는 있다. 현란한 라이크라 수영복을 입고 인어나 트리톤으로 변신해서 지상에서의 서투른 행동과 일상적인 걱정을 털어버리고 속세의 땀과 죄를 씻어버릴 수 있다. 수영은 물의 저항력에 팔을 젓는 힘을 적용해서 물을 이동시키는 역학 이상의 행동이다. 수영은 우리에게 육체적・정신적・영적인 행복이라는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은 수영을 수영장이나 바닷가에서 놀이나 건강을 위해서 하는 활동으로, 또는 다섯 가지 수중 활동 중 네 가지 경쟁 종목으로 여기지만 과거와 현재 모두에서 수영이 관련된 활동의 범위는 놀이와 스포츠를 포함하여 수렵, 농작, 노동, 상업, 전쟁, 건강과 신체 단련, 종교, 과학, 예술 등 인간 활동의 모든 측면에 이른다. 이 모든 내용을 아우르기 위해서 이 책에서는 오래 전에 잊힌 과거의 물의 세계를 끄집어내고, 거의 알려지지 않은 당대 사람들의 존재를 밝히고, 미래의 물의 세계에 대해서 살펴볼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세계에 대해서도 조명하고 그 기원과 진화를 시간과 문화, 장소에 걸쳐 알아본다. 이 책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상세한 역사를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수영과 우리의 길고 오래된 감정적 정신적 문화적 관계의 기원을 살피는 것이다.
 
 
: 인류와 수영의 과학적 사회적 문화적 관계의 기원을 찾아서
우리는 대체 왜 수영을 하는 걸까? 《꿈의 해석》에서 프로이트는 수영을 우리의 의식적이고 합리적인 더 높은 자아가 통제하거나 감독할 수 없는 정신적인 일부분인 감정과 무의식, 성의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수영보다 훨씬 더 자주 하는 걷기나 달리기 같은 일상적인 인간 활동보다 더 강력한 이런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헤엄치는’ 태아였던 우리 개인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과거로, 우리 인류의 기원까지 올라가야 한다. 즉 지금으로부터 5백만 년에서 7백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고 대형 유인원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던 최초의 조상의 진화부터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수영을 가르친 개들을 제외하면 다른 육지 포유류는 자진해서 물에 들어가지 않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은 아예 물을 피한다. 이런 일반화의 유일한 예외는 우리의 사촌인 영장류이다. 영장류는 다수가 종종 물에 몸을 담그고, 그것을 굉장히 즐긴다는 온갖 신호를 보여준다. 이것은 우리가 짧은 물속 여행에 즐거움을 느끼도록 타고났다는 뜻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이 책에서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전까지 거슬러가서 호미닌 혈통의 진화에 관한 해결되지 않은 논쟁부터 살펴본다. 또한 우리와 수영을 이어주는 것들에 대해서 알아보고, 왜 많은 사람이 수영을 그토록 즐기는지 설명하고 있다. 70여 장의 관련 사진과 그림이 재미와 이해를 보탠다.
 
… 수영장이 사각형인 이유・세계 최초의 폐쇄형 지상 수영장 모헨조다로의 대욕장・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잠수부・포세이돈의 인간-물고기 혼종 신하인 트리톤・아리스토텔레스의 주전자・고대부터 사용된 다이빙 벨・중세 시대에는 하층민의 취미였던 수영・1786년경에 센강에 만들어진 수영장・티그리스강을 건너기 위해 부양 장치로 이용된 부풀린 염소 가죽・1930년경 발명한 최초의 고무 오리발・카를 융과 프로이트이 분석하는 물과 수영의 상징・《걸리버 여행기》와 《로빈슨 크로스》의 수영・《해저 2만 리》 속 표준잠수복 다이버들・수중에서의 자유를 선사한 아쿠아렁과 스쿠버 세트 기술・원자폭탄만큼의 충격, 원피스 수영복(1907)과 비키니(1946)・여배우의 수중발레에서 시작된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탈의의 딜레마 목욕과 수영・진주잡이로 활용된 노예나 사형수 …

: 역사에 나타난 수영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유역과 중국 같은 구세계에 나타난 최초의 도시문명은 수영이 생존기술이자 취미로 사용되었던 강 유역에서 융성했다. 유목민이었던 조상들처럼 정착한 인간들은 바다와 호수, 강에서 음식을 구하기 위해 헤엄을 치고 다이빙을 했지만, 문명이 더 복잡해지고 계층화되면서 이전까지 일용할 음식과 함께 우연히, 혹은 호기심에 가져왔던 물품들이 주된 사냥감이 되기 시작했다. 진주, 밝은 색깔의 조개껍질과 산호는 청동기 시대 권력자들의 몸을 꾸미고 신들을 찬미하는 장신구로 가공되었다. 그래서 문명 그 자체와 함께 직업으로서의 수영도 나타나게 되었다.
나중에, 인간이 바다로 나아가고 그리스, 카르타고, 로마 같은 위대한 해상 제국들을 건립하면서 수영은 선원과 군인에게 귀중한 기술이 되었고, 천연 수원과 특히 점차 늘어난 인공 수영장에서 수영 연습을 하게 되었다. 특히 로마인들은 취미 및 군사적 목적 양쪽 모두에 관한 수영 기술을 발달시킨 위대한 주창자들이었다. 하지만 고전 시대가 지나고 중세 기독교의 영향으로 인체에 대한 태도가 바뀌면서 많은 사람이 고대의 물의 세계에 등을 돌리고 수영하는 법을 잊었다. 수생환경은 경이롭고 실용적이고 즐길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 무슨 수를 쓰든 피해야 하는 괴물이 가득한 무시무시한 곳이 되었다.
서구 세계에서 인간이 물로 돌아가기까지는 수 세기가 걸렸다. 인체와 물의 안전에 관한 태도가 바뀌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내륙의 도시에서 떠나 예전과 새로운 물의 세계로 돌아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수영이 건강에 유익하고 귀중한 군사적 기술이자 즐거운 취미활동이라고 추천하는 고대의 기록들을 다시 발견하면서 인간은 예전의 물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유럽인들이 대항해 시대에 더 넓은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물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수영의 필요성이 되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비서구식 수영법까지도 찾게 되었다.

: 수중에서의 자유를 선사한 아쿠아렁과 스쿠버 세트 기술
인간은 선사시대에 처음 이 지구를 탐험하고 정착지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탐색하게 되었다. 곧 인간은 하늘 위까지 진출했고, 망원경과 현미경을 만들어서 상상도 기대도 하지 못했던 거시적・미시적 세계까지 밝혔다. 하지만 수중 세계는 기묘할 정도로 그런 탐험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고대부터 다이빙 벨 기술이 사용되긴 했지만, 잠수부가 얕은 해저를 걸을 수 있도록 공기호스로 수면과 연결되어 있는 잠수복은 18세기에야 나왔다. 이 기술은 19세기에 완성되었고 1950년대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기술은 공기호스가 깊은 곳에서 잘리거나 잠수부의 몸에 이산화탄소가 쌓이는 등 본질적으로 위험할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이것은 탁한 천해를 허우적거리며 걸어 다니는 ‘수중 비행’에 지나지 않았다.
20세기 초에 과학자들과 군대, 잠수의 개척자들이 마침내 잠수부를 수면과의 연결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는 새로운 스쿠버 기술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1942년 아쿠아렁(잠수용 수중호흡기)의 개발로 정점을 찍었고, 잠수부가 수중에서 훨씬 안전하게 큰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스쿠버 세트를 전 세계에 선사했다. 수면이나 해저의 포로 상태를 벗어난 인간은 전례 없이 지구상의 물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기술 발전이 도래하면서 20세기 후반에는 취미 수영과 스포츠 수영이 폭발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 겨우 지하 10킬로미터뿐인 마리아나 해구의 가장 깊은 곳에 간 사람은 단 네 명뿐이다
바티스카프는 1946년부터 1948년 사이에 설계되고 제작되었으며, 똑같은 설계의 독립적 자체추진식 심해잠수정 세 척 중 첫 번째였다. 미 해군은 세 번째 바티스카프인 트리에스테를 1957년 이탈리아에서 사들였다. 1960년에 조그만 구형 선실에 선원 두 명을 태운 트리에스테는 괌 남쪽, 태평양 북서쪽에 있는 지구에서 가장 깊은 곳,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해연에 도착했다. 해연은 깊이가 10,920미터이고, 그 후에 유인 잠수정이 들어간 것은 2012년 3월 25일에 영화 감독 제임스 캐머런이 디프시 챌린저호를 타고 해구 바닥에 내려갔을 때였다.
지구에서 384,550킬로미터 떨어진 달에는 여섯 번 유인 우주선이 착륙했고 총 열두 명의 우주비행사들이 달 표면을 밟았지만, 겨우 지하 10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 마리아나 해구의 가장 깊은 곳에 간 사람은 단 네 명뿐이라는 말은 기억해둘 만하다. 우리의 태양계에 있는 달과 행성과 다른 천체들을 계속해서 탐사하고 지구 궤도 안에 영구적인 우주정거장과 2,000개가 넘는 인공위성이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존재하고 있지만, 해저 조사 연구소는 딱 하나뿐이고 연구원들이 머무는 기간도 연중 몇 달뿐이다. 여러 대의 잠수함이 아무 때나 바다 밑을 다닐 수 있다는 건 사실이지만, 이들 대부분은 심해잠수정이 아니라 군사용이다. 현 세대 미국 핵잠수함과 다른 열강들의 잠수함들이 갈 수 있는 깊이는 490미터로, 이 정도로는 해저 대부분의 지역에 도달하지 못한다.

: 지구 표면의 71퍼센트를 덮고 있는 바다와 호모 아쿠아티쿠스
기후과학의 최악의 예측을 따르자면, 지구상의 대도시와 인구가 밀집된 해안가 지역 대다수를 포함해서 세계의 지표면 대부분이 언젠가 물에 잠기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더 높은 곳으로 가야 할까, 바닷속으로 들어가서 더 푸르러진 지구에 정착지를 만들어야 할까? 설령 세계가 물에 잠기지 않는다 해도 늘어나는 인구와 천연자원 이용 및 개발로 인한 경쟁으로 인해서 현존 육지에 대한 압력이 늘어나며 결국에는 거주 가능한 공간뿐만 아니라 아무도 손대지 않은 광범위한 식량과 천연자원의 보고인 바다로 뒤덮여 있는 지구 표면의 71퍼센트를 개척해야만 할 것이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 수영은 인간의 기본 이동 방식인 걷기를 대체하게 될 거고, 우리는 결국에 호모 아쿠아티쿠스로 진화하게 될 수도 있다.
 

: 차례
 
들어가는 글
 
1. 수생인
2. 성스러운 수영선수들
3. 바다의 보물 수확하기
4. 수영의 기술
5. 순수하고 깨끗하고 건강한
6. 수영하는 미녀들
7. 넵투누스의 신전
8. 침묵의 세계
9. 스포츠 라이프
10. 가상의 수영선수들
11. 수생 인간
 
이 책을 마치며
주석
참고 문헌
찾아보기
 

: 《처음 읽는 수영 세계사》 본문에서
 
<39쪽> 갓 태어난 아기들은 물에 들어가면 자동적으로 목 안쪽을 닫고 팔다리를 휘젓는 기본 동작을 한다. 이 능력은 우리가 수생환경에서 살았던 시절의 유물일까? 인간은 또한 육지 포유류 중에서는 독특하게도 태지라는 지방질로 뒤덮인 채 태어난다. 일레인 모건은 물에서 태어난 아기들에게 방수막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48쪽>  탐험과 발견의 시대(15세기부터 18세기)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부터 제임스 쿡 선장에 이르는 유럽인들은 그들의 배까지 헤엄을 쳐서 그들을 맞이하거나 공격하러 오는 원주민들의 수영 실력에 깜짝 놀랐다. 당시 유럽에서는 물과 인간의 관계가 완전히 끊겨서 수영하는 법을 아무도 모르고 바다를 그저 의심스럽고 두렵게만 여겼기 때문이다. 아메리카와 아시아-태평양의 많은 원주민은 노예로 팔리거나 몰살 정책에 당하거나 유럽의 전염병에 숨져서 멸종된 서인도 원주민들처럼 완전히 사라지거나 하와이 원주민과 뉴질랜드 마오리족처럼 유럽인들이 정착한 후 생활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몇몇 부족은 우리 조상들이 지구를 정복하는 것을 용이하게 해주었던 반수생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바다 유목민인 사마-바자우족은 배나 바다에 기둥을 박고 지은 집에서 살며 낚시를 하거나 육지의 이웃과 바다의 산물을 교환하며 살아가고 있다.
<78쪽> 그리스인들은 특히 인간의 형태를 찬양했고 이는 예술에서뿐만 아니라 스포츠나 사회적・종교적 행사에서 남자의 나체를 공공연하게 드러냈던 것에서 알 수 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나체를 드러내는 것은 훨씬 지양했지만 로마인들도 사치스러운 공중목욕탕 테르마에 같은 반사적 환경에서는 기꺼이 벌거벗었다. 나중에 보겠지만 로마 남자들은 능숙한 수영선수였고, 수영은 군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계층에서 남자가 꼭 익혀야 하는 기술로 여겨졌다.
<102쪽>  고대 진주 교역의 역사에서 고대에 나온 가장 놀라운 기록 중 하나는 교역로와 조수의 상태, 기후, 항구, 주요 수출품, 동아프리카와 아라비아, 페르시아만, 인도의 왕국들에 대해 묘사해놓은 서기 1세기 상인의 여행기 〈페리플루스 마리스 에리트라이(에리트리아 바다 주위로의 여행)〉이다. 남부 인도의 진주조개잡이에 관한 장에서 〈페리플루스〉는 그곳에서 진주조개를 잡는 것은 ‘사형수들’이라고 말한다. 진주조개를 잡는 수영선수와 잠수부의 신분이 바뀐 것이다. 진주가 수익성 좋은 정부의 독점사업이 된 지역에서 국가는 노예나 사형수처럼 쉽게 쓰고 버릴 수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활용했다.
<178쪽>  서구 세계만이 의학적・사교적 목욕을 독점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양과 비서양 세계의 전통 간 가장 큰 차이는 수영에 적합한 시설이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많은 이슬람 국가에 만들어졌던 하맘 증기탕은 테르마에의 건축적・사회적 후손이었으므로 로마 목욕탕의 많은 특성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대체로 커다란 수영장은 없었다. 이스탄불을 방문했을 때 나는 중세 슐레이마니예 하맘을 가보았다. 이곳은 콘스탄티노플의 기독교 로마-비잔틴 목욕탕을 오토만-이슬람이 점령한 것이다. 따뜻한 물로 몸을 씻고 나면 목욕탕 직원들이 피부가 벗겨져 나갈 정도의 비누 마사지를 벅벅 해줘서 머리가 멍해질 것이다. 그러고 나면 이제 따뜻한 대리석 판에 누워 둥근 오토만-비잔틴 돔을 올려다보며 완전히 긴장을 풀 준비가 된다.
<199쪽>  상류층은 수영이 아니긴 했지만 스파와 해안가 리조트에서 다시 목욕을 하기 시작했고, 이런 리조트들은 상류층의 모임 장소가 되었다가 점차 사회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하게 되었다. 제인 오스틴이 바스를 배경으로 쓴 두 권의 소설 《노생거 사원》과 《설득》(둘 다 1817년 출간)에서 귀족 고객들은 좀 더 낮은 출신의 사람들과 도시의 신고전주의 스타일의 펌프룸을 함께 사용한다. 중산층과 노동계층이 여가 활동에 쓸 수 있는 시간과 돈이 생긴 빅토리아 시대의 대규모 사회적 현상을 암시하는 조지 시대의 전조이다. ‘중간’계급에 속했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에게 육상 스파나 해안가 리조트에 가는 것은 조상들의 취미 활동을 등지고 ‘더 나은 사람들’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
<204쪽>  자기 극복이라는 이 사소한 승리의 뒤를 금세 따라오는 것이 물속에서 누리는 육체적인 즐거움이다. 뜨겁고 땀이 흐르고 텁텁한 스페인의 공기가 갑작스러운 물의 차가움으로 바뀐다. 그 뒤를 이어 금세 느껴지는 것은 공리주의의 아버지 제러미 벤담의 표현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특히 적당한 신체적 노동으로 느낄 수 있는 건강의 즐거움, 또는 건강과 정력이 가득한 상태에서 오는 영적인 흐름이나 느낌이 주는 내적 즐거움.”
<251쪽>  수영은 19세기 전반에 걸쳐 노동계층 소년과 남자에게 인기 있는 활동이었다. 그들은 미국 도시 대부분을 둘러싸고 있는 호수와 강, 만에서 수영을 하고 빅토리아 시대 규범에 어긋나는 서민적이고 남성적인 수영 문화를 만들었다. 그들은 알몸으로 수영을 하고, 욕을 하고, 싸우고, 관리들을 피했다.
<269쪽>  1691년, 에드먼드 핼리는 수면에서 내려보낸 무거운 통으로 공기를 공급하는 다이빙 벨에 관한 특허를 냈다. 그는 이 시스템이 실용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20미터 깊이에서 90분을 버텼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항상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핼리는 가장 초기에 기록된 실험 중에 중이에 압력손상을 입었다. 잠수할 때 압력으로 인해서 귀 안쪽이 손상된 것이다. 핼리의 다이빙 벨은 난파선 인양과 항구나 다리 같은 해저 건설에 사용되었다. 좀 더 개선된 후에는 잠수부들이 다이빙 벨에 연결된 호스를 통해 공기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잠수부들이 움직이는 범위가 호스의 길이 내로 제한되고 안전이 호스의 방수성에 달려 있었다. 고무와 방수 플라스틱이 발명되기 한참 전이었기 때문이다.
<276쪽>  쥘 베른이 《해저 2만 리》의 무장 잠수부들을 상상하던 시기에 진짜 잠수함이 전 세계 해군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잠수함들은 노틸러스호에 비해 훨씬 작고 더 약했다. 잠수함은 최초의 기계화 전쟁인 제1차 세계대전 때 사용되었지만 당시의 표준잠수복은 대단히 제한적이고 전투에서 사용하기에는 취약했기 때문에 스쿠버가 그리 크게 쓰이지는 않았다. 1918년, 두 명의 이탈리아 잠수부가 사람이 조종하는 탈착식 탄두가 달린 어뢰를 타고 이스트리아의 폴라항(현재의 크로아티아에 위치)에 가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전함을 공격해 침몰시켰다. 하지만 그들은 스쿠버 장비를 사용하지 않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가 항복한 다음에, 전함이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할 때 침몰시켰다. 대전 사이 기간에 이탈리아인들은 계속해서 적함을 공격하는 데 쓰는, 사람이 조종하는 어뢰와 소형 잠수함 기술을 발전시켰다.
<373쪽>  버클리는 물에 관한 당대의 시대정신을 답습했다. 같은 해에 시카고 진보의 세기 국제박람회, 혹은 시카고 세계박람회에서 미시간 호수에 특별히 제작한 수영장에서 대규모 워터쇼를 열어 1만 명에 달하는 관객이 몰렸던 것이다. 이 행사의 광고 문구는 “10종의 복잡한 동작을 완벽하게 똑같이 하는 35명의 현대판 인어들이 시카고 세계박람회에서 라군 시어터의 고객들에게 가장 현대적인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예술을 선보입니다”였다. 여기서 이전까지는 수중발레라고 일컬어지던 것을 처음으로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이라고 명명했다.
 

: 지은이와 옮긴이 소개
 
지은이・에릭 샬린
현역 연구자이자 코치로서 글쓰기와 학문적 연구, 스포츠와 운동을 결합시켰다. 지은 책으로는 《완벽의 신전: 운동센터의 역사》(Reaktion, 2015)가 있다.
 
옮긴이・김지원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강사로 재직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산책자를 위한 자연수업》, 《미생물에 관한 거의 모든 것》, 《지구 100 1》, 《뇌가 섹시해지는 모스크바 수학퍼즐 1・2》, 《비하인드 허 아이즈》, 《루미너리스 1・2》, 《뇌가 섹시해지는 책》,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등이 있다. 엮은 책으로는 《바다기담》과 《세계사를 움직인 100인》 등이 있다.
sandmeer@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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