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의미, 기능, 정보, 표상, 목적, 자유, 도덕 등 전통적으로 철학에서 고찰해 온 중요한 개념들을 다룬다. 이 개념들은 세계가 물리적인 상호작용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과학적, 유물론적 세계관 아래서는 그 존재 여부가 의심스럽다. 이 책에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유사 존재’는 사물의 세계에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발생해 점차 진화하여 우리가 알고 있고, 사용하고 있는 개념으로 발달해 왔다고 말한다. 이런 가설을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결국 과학이다. 과학이 밝혀낸 사실을 통해 철학은 그 전체상을 그려낼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의미에서 유물론적, 발생적,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기술되었고, 마찬가지로 이런 관점으로 작업하고 있는 페레붐, 데닛, 드레츠키 등의 철학자가 주장하고 있는 이론을 참조하면서 유사 존재를 알아본다.
|출판사 서평|
과학과 철학을 어우르는 새로운 통합을 시도하다!
이 책이 갖는 장점은 저자의 목표 의식이기도 한, 사물과 정신의 세계를 한 그림 안에 그려넣기, 즉 통합적인 세계관을 제공하는 데 있다. 기존의 많은 철학 입문서들은 특정 철학자의 사상을 소개하거나 철학사(史)상의 중요한 학자들의 사상을 연대기 순으로 설명하는 방법을 취해 지식을 외우게 하는 데 집중하고 있기도 하고, 그중 대다수가 ‘인문학적 영역’에 머물러 제반 개념들을 고찰하는 데 그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철학사상의 중대한 형이상학, 존재론적 발전은 동시대 혹은 앞 시대의 중요한 과학적 발견으로 인한 인식론적 진보에 기반해서 이루어지지만, 갈수록 복잡해지고 방대해져 가는 과학 분과와 지식들을 통합하여 설명하는 개념들을 제시하기가 점점 어려워져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진행 중인 과학의 작업을 참조하면서 그것이 보여주는 세계상에 걸맞은 개념을 만들어 내기. 이것이 ‘진정한 철학’일 뿐만 아니라, 분열되어 있는 과학과 인문학을 관통하는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유니크한 것이다. 현재 활동 중인 학자들의 따끈따끈한 사상과 방법론을 접할 수 있다는 것도 ‘짭짤한 덤’이다._박철은(고베대학 이학 박사/와세다대학 초빙연구원)
과학의 성과를 정면으로 받아들인 세상에서 철학,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역시 있는 것에는 ‘의미, 정보, 목적, 기능, 가치, 도덕, 의지의 자유, 아름다움, 인생의 의미’ 가 있다. 이를 ‘유사 존재’라 한다. 유사 존재는 ‘중성자, 물 분자, 화강암, 학질모기’ 등이 이 세상에 있는 방식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색도 냄새도 갖지 않고 질량, 전하나 그 외의 물리량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만지기도, 잡고 던지기도 불가능하다. 바꿔 말하면 이것들은 과학이 가르쳐 주는 ‘이 세상에 있는 것’의 기본적인 범위에는 들어 있지 않다. 그러면 의미, 가치, 목적 같은 것이 실제로는 없는 것인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런데 유사 존재가 이 세상에 서서히 솟아났다고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보자. 개구리의 ‘먹는다’를 목적으로 한 시스템은 눈앞에 검고 작은 점(대개는 파리)이 나타나면 자동적으로 혀를 내밀어 먹어 버린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멈추지 않는다. 머지않아 목적은 차차 독립하게 된다. 달성되지 않은 목적을 일단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욕구의 시작이다. 달성되지 않은 목적은 진화해서 결국 ‘인생의 목적’이 된다.
이렇게 유사 존재는 원시적 성격에서 점차 진화하여 우리가 알고 있고, 사용하고 있는 개념까지 발달해 왔다. 생물의 표상 능력의 진화가 유사 존재들의 발생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생물이 없는 세계에서 흐르고 있던 ‘정보’로부터, ‘지금 여기에 없는 것’을 나타냄을 ‘기능’으로 하는 ‘표상’이 등장했다. 이 표상은 고도로 진화하여 보다 고차적인 단계인 ‘목적’, ‘자유’, ‘도덕’ 등도 나타나게 되었다. ‘인생의 의미’도 이런 고도의 인지 능력의 진화를 통해 고찰할 수 있다. 이런 가설을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결국 과학이 된다. 개별 과학들이 밝혀낸 사실을 통해 철학은 그 전체상을 그려낸다. 철학의 이런 사변이 과학적 방법을 통해 반증된다면 이론을 수정하면 된다. 이 책은 이러한 의미에서 유물론적, 발생적,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기술되었고, 마찬가지로 이런 관점으로 작업하고 있는 페레붐, 데닛, 드레츠키 등의 철학자가 주장하고 있는 이론을 참조하면서 유사 존재들을 살펴나간다.
|책 내용|
1장 의미
인지과학의 주류파는 인지가 표상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어떤 행위자(agent)가 갖는 (심적)표상이 무언가를 의미함이란 어떤 것일까? 표상의 해석자, 즉 생물이 표상을 해석할 때 의미가 생긴다는 생각은 그 표상을 해석하는 무한한 메타 해석자를 요청하게 된다. 반대로 표상이 자력으로 무언가를 의미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사물뿐인 세계 속에서 의미함이란 인과관계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자연화된 의미론인 인과의미론은 오표상, 즉 잘못 의미하는 경우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과 무한한 인과연쇄 중에서 어떻게 특정한 대상을 골라낼 수 있는가 하는 표적 고정문제에 답하기 어렵다. 밀리칸은 ‘본래의 기능’이라는 목적론적 개념에 주목하여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 한다. 어떠한 기능이 생물에게 생존상의 유리함을 야기하여 그것이 후손들에게 전수되었다면 그것은 본래적이다. 반면 이것이 잘 기능하지 않는다면 기능부전 상태(즉 오표상은 그 한 종류)에 있다. 어떤 표상이 존재하고 있음은 그것이 생존상의 유리함을 야기하여 선택적으로 수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특정 표상은 무수한 인과연쇄를 갖지만 그 중에서 특정 기능 때문에 존재하게 되므로 표적 고정 문제를 회피할 수 있다. 이 목적론적 의미론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이 존재하지만 옹호 가능하며, 유망한 설명이라 할 수 있다.
2장 기능
커민스는 시스템의 기능을 부분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기능을 메커니즘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본래의 기능’을 설명할 수 없다. 물의 순환이라는 인과적 메커니즘 내에서 구름의 기능은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구름의 본래적 기능이라고는 말하기 힘들다. 또한 기능 부전을 일으킨 아이템이 그래도 본래의 기능을 위한 것임을 설명할 수 없다. 커민스의 정의는 실제로 아이템이 시스템 속에서 행하고 있는 기능에 대한 설명으로는 충분하다. 이에 비해 밀리칸이 주장하는 기능의 기원론적 설명은 기능 범주나 정상과 이상을 구별함으로써 목적이나 의미를 자연계에 통일적으로 그려 넣는다는 이론적 목표에 더 유익하다.
3장 정보
정보 개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장에서 할 작업은 행위자가 없는 양적인 정보 개념을 세계에 관한 지식을 의미하는 일상적 정보 개념과 통합하는 것이다. 전자의 의미에서, 벨연구소의 연구자들은 통신 시스템의 능력을 잴 척도를 구하기 위해 시스템의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성질에만 의존하는 정보 개념을 제시했다. 통신 시스템에서 전송되는 신호의 모든 가능한 열을 생각, 의미의 이해는 버리고 한 기호와 다른 기호들 간의 정보량과 가능성이 반비례하는 관계에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어떤 통신 시스템이 효율적인가 아닌가는 사용하는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 객관적인 성질이기 때문이다. 이 정보 개념은 의미를 버린 반면 확률을 부여할 수 있는 사건이라면 어떤 것에든지 수반된다고 할 수 있는 확장성을 얻게 되었다. 드레츠키는 이 의미 없는 정보 개념을 바탕에 깔고 그 특수한 경우로서 지식계 정보 개념을 위치지었다. 어떤 행위자가 품은 P라는 믿음이 정보 P에 의해 야기될 때 그 행위자는 P를 안다고 정의한다. 즉 지식은 정보에 의해 생산된 참인 믿음이다. 다만 정보의 흐름이 꼭 인과관계인 것은 아니며 두 사건이 직접 인과관계로 결부되어 있지 않아도 그것들 사이에 조건부 확률을 1로 하는 의존 관계가 있기만 하면 된다. 우리의 세계는 인과관계로 이루어져 있는 세계로서 사건끼리 결부되어 있으므로 또한 정보의 흐름으로서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사건은 지금 현실화되어 있지 않은 다른 사건에 관한 ‘정보’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4장 표상
한 사건이 갖고 있는 많은 자연적 정보 중에서 생물은 일부만을 가려 내어 지향적 기호로 사용한다. 하지만 드레츠키의 생각처럼 지향적 기호가 그저 생물을 위해 산출되었고, 일단 생겨 버린 자연적기호가 사실로서 정보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생물에게는 두 사건 간에 있는 연관의 확률이 100%일 필요는 없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보다는 강하지만 보편 법칙보다는 약한 ‘연관’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 연관은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인과관계가 전형적이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국지적으로 반복되는 자연적 기호이면 된다. 하지만 지향적 기호를 생산하는 메커니즘이 국지적으로 반복되는 자연적인 기호의 생산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밀리칸은 기호의 생산자뿐만 아니라 소비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호의 소비자는 생산자에게 참인 기호를 생산할 것만을 요구하며 기호가 어떻게 생산되었는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기호의 생산 메커니즘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자연적 기호가 생산되는 것이다. 자연적 기호를 지향적 표상과 자연적 표상으로 구분하고 지향적 표상의 성립에는 소비자가 관계한다는 것을 이해하면 표적 고정 문제가 해결된다. 소비자는 정보의 일부만을 채택하여 이용하므로 특정한 인과적 선행자를 지정할 수 있는 것이다.
5장 목적
지향적 표상을 갖는 것의 이점 중 하나는 목적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가능한 여러 행위의 결과를 예측해서 가장 목적에 적합한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이 ‘목적 수단 추론’은 더 원시적인 목적에서 진화한 것이다. 밀리칸은 사실을 기술함과 동시에 그에 어울리는 행동을 지령하는 원시적인 지향적 표상을 ‘푸시미 풀유 표상’이라 부른다. 이것은 깁슨의 ‘어포던스’ 개념과 유사한데, 이 푸시미 풀유 표상의 연쇄를 통해 동물은 단기적이거나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가능한 행동을 고려,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해서 새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표상의 기술 측면과 지령 측면이 다르게 코드화되어 있기 때문에 특정 목적 이외의, 지금 자신과 어떤 관계에 있지 않은 사실을 표상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과 같은 목적 수단 추론이 가능하려면 푸시미 풀유 표상은 분절화되고 여러 방식으로 재결합되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상과 그 대상이 갖는 속성의 표상이 분리되어야 한다. 일단 같은 대상을 많은 목적을 위해 인식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6장 자유
데닛은 우리의 일상적 자유 개념을 약화시키면, 자유는 있다고 말할 수 있고, 또한 자유에는 결정론이 오히려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유는 다른 행위가 가능했어야 한다는 타 행위 가능성과 자기제어라는 두 요소로 이루어진다. 무작위로 우리 행위가 발생한다면 결정론과는 역으로 우리 책임, 자유로 인한 행위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가 제어할 수 없는 것에는 자유도 책임도 없는 것이다. 자연이나 우리의 내적 메커니즘은 행위자는 아니므로 어떤 의도나 목적을 갖고 우리를 제어하고 있지는 않다. 물론 알콜 중독처럼 내적 장애로 인해 자기제어가 잘 되지 않는 경우는 있지만 내적 메커니즘 일반이 자기제어의 장애물은 아니다. 자연법칙에 그저 따르는 것은 어떤 행위자가 우리를 억지로 움직이게 하는 것과는 다르다. 인과적으로 결정되어 있기에 이유에 따라 행동할 수 있고, 표상이 목적 수단 추론을 행할 수 있도록 진화했기에 자신이 행위하는 이유도 알 수 있다. 이로써 자신의 목적까지 제어할 수 있다.
7장 도덕
도덕적으로 중요한 자유를 가지기 위해서는, 자기제어에 더해서 행위의 이유가 자신이 구축한 이야기적 자기 아래에서 통합되어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합리적인 자기제어자로부터 책임 있는 주체가 진화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데닛은 책임과 자유의 우선권을 뒤집는다. 책임을 떠맡는 것으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서로 협력하는 행동이 진화해야 하고 그 메커니즘을 발전시켜야 한다. 최종적으로 정말로 좋은 인간이 되도록 자신을 재프로그래밍하는 것이 자기 형성의 뿌리가 된다. 이런 소통의 진화를 도와준 것은 언어 능력이다. 언어를 통해 자기모니터링과 자기제어의 능력을 쌓아 올리게 되는 것이다.
|저자 소개|
지은이 도다야마 가즈히사(戸田山和久)
1958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89년에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과학 연구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나고야 대학 대학원 정보과학과 연구과 교수. 전공은 과학철학이다. 과학자와 철학자 양쪽으로부터 미심쩍다는 시선을 받으면서도 철학과 과학의 통합화를 지향하며 고군분투 중이다. 저서로 『논리학을 만든다(論理学をつくる)』, 『지식의 철학(知識の哲学)』, 『과학철학의 모험(科学哲学の冒険)』, 『신판 논문 교실(新版論文の教室)』, 『‘과학적 사고’ 수업(「科学的思考」のレッスン)』 등이 있다.
옮긴이 박철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반대학원 서양철학 석사, 고베(神戶)대학 이학연구과 비선형과학 전공 이학 박사. 현재 와세다(早稻田) 대학 이학학술원 총합연구소 초빙연구원. 과학과 철학의 접점을 찾아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방랑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생명과 장소』, 『가능세계의 철학』, 『토포스』, 『허구세계의 존재론』, 『생명이론』 등이 있다.
|책 속에서|
그 대신에 이 책에서는 데닛, 밀리칸, 드레츠키, 페레붐 등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철학자들이 언급된다. 이 중에서 데닛은 어쩌면 조금은 알려져 있을지도 모른다. 번역도 꽤 돼 있고. 그래도 그 외의 사람들은 그다지 들은 적이 없을 것이다. 밀리칸이 뭐야, 과자 이름? 이 사람들 대부분은 이 책의 집필 시점에 아직 생존은 물론이고 대활약 중이다. 내가 바로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는 철학, 즉 과학의 성과를 정면으로 받아들여 과학적 세계상의 한가운데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철학의 주역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이 여러분에게 권하는 ‘철학’은 과거의 문화유산이 아니라 바야흐로 지금 진행 중인 작업이다. -16쪽
그런데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역시 있는 것’이란 무엇일까? 대표적인 예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의미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나는 나 자신이 뇌까리고 있는 말에 의미가 있음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코딱지를 후비면서 『가장 위험한 유희(最も危険な遊戯)』의 마쓰다 유사쿠(松田優作)는 멋있었지 하고 생각할 때 내 마음은 지금은 사망한 마쓰다 유사쿠를 의미하고 있다. 전자 메일로는 의미를 갖는 문장을 보내거나 받고 있다. 역의 홈에 걸려 있는 휴대전화에 가위표가 그려진 기호는 여기서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일상생활에서는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의미는 ‘있을 듯한 것’이기는커녕 ‘당바자’다. ‘당연하지 바보 자식’을 줄인 말이다. -17쪽
‘지금 여기에 없는 것’에 대한 관계는 생물에게는 흔한 현상이다. 예를 들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항체’라는 표현을 생각해보자. 이 항체는 어떤 특정한 형태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결합하여 처치함을 기능으로 한다. 그 바이러스가 지금 여기에 없어도, 혹은 금후 결코 만날 일이 없어도 그 항체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항체이다. 사과가 눈앞에 없어도 사과의 표상은 사과를 의미하고 있듯이. 이런 점에서 항체는 표상과 닮아 있다. 따라서 항체에는 오표상을 닮은 현상도 있을 수 있다. 본래 공격하기 위한 것은 아닌 대상, 예컨대 자기 자신의 정상적인 조직이나 세포를 항원으로서 간주하고 항체가 공격을 해 버리는 경우이다. 이 면역계의 기능 부전은 ‘자기 면역 질환’이라 불린다. 관절 류머티즘, 원형탈모증, 전신성 에리테마토데스, 바제도병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108쪽
최근 이러한 분석철학의 이념에 대해 중대한 비판이 행해지고 있다. ‘실험철학’이라 불리는 조류가 그것이다. 요점은 단순한데 ‘우리의 개념’을 분석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모두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설문지 조사나 심리학 실험을 행했다. 그렇게 하니 분석철학자들이 ‘우리의 직관’이라든가 ‘우리의 판단’이라 부르고 있던 것이 고학력 백인 남성의 그것에 지나지 않는 극히 편향된 것임이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철학자의 직관이 여러 변수에 좌우되어 흔들리기 쉬운, 그다지 신뢰할 수 없다는 것까지 폭로되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116~117쪽
양자역학은 자유의지가 실재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그렇다고 말하는 철학자도 있다. 우리의 뇌 속에는 다음 상태가 확률적으로만 정해지는 ‘양자 주사위’와 같은 구조가 있고 그것이 자유의지의 정체라는 것이다.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려고 하기까지는 정해져 있다고 하자. 거기서 실제로 테이블 앞에 섰을 때 내 뇌는 이 주사위를 던진다. 선택지는 기린 혹은 삿포로. 양자 주사위의 눈은 기린으로 나왔으므로, 나는 기린 맥주를 집고 계산대로 간다. 이러한 이유로 내가 삿포로가 아니라 기린을 사는 것은 미리 정해져 있지 않았다. 나는 자유롭게 기린을 산 것이다. 자유 만세, 이치방 시보리(一番搾り) 만세! 그러나 나는 이러한 논의에는 회의적이다. -293쪽
이러한 있는 듯 없는 듯한 것에 대한 데닛의 전략은 항상 같다. ‘실체로서 있다’와 ‘환상에 불과하다’의 중간 지점을 찾는다. 지금까지 생각되어 온 대로의 자기는 없지만 탈신화된 디플레이션이라면 있어요 하는 것이다. 눈으로 들어온 시각 정보를 이해하고 행동을 계획하며 신체를 조종해서 그것을 실행하는, 그러한 실체로서의 자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망막→시각역→두정엽→운동신경→행동이라는 경로 어딘가에 자기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경로 그 자체가 자기인 것이다. 즉 자기는 실체라기보다 조직화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주장에 실질적인 내용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희석된 ‘자기’의 근저에 있는 메커니즘을 명백하게 하고 ‘자기’가 그렇지 않은 것으로부터 어떻게 진화했는가 하는 시나리오를 그릴 필요가 있다. 그러면 자기는 어떻게 나타난 것일까? 이것도 항상 같다. 우리의 자기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자기 같은 것(원자기原自己)으로부터 서서히 진화해 왔다. 사마귀 암컷은 교미가 끝난 수컷을 잡아먹지만 자신이 먹고 있는 수컷의 다리와 자신의 다리를 확실히 구별해서 자신의 다리를 먹는 일은 없다. 우리 신체 속에서도 면역계는 공격해야 할 적(자신이 아닌 것)과 자신의 세포를 구별하고 있다. -331쪽
인생은 짧은 목적 수단 연쇄의 집적이다. 인생 전체가 목적 수단의 연쇄로 성립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집적(=인생)이 전체로서 가치 있는 것이었는지 아닌지는 그 연쇄가 모두 궁극적 목표와 연결되어 있었는가와는 관계없다. 하나하나의 짧은 목적 수단 추론을 진지하게 행하고 그때마다 자신의 목적에 있어서 최선의 수단을 취하려고 하는 한에 있어서 우리는 자신을 가치 있는 것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살 가치가 있는 것으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네이글이 말하려고 하는 바이다. -390쪽
|목차|
옮긴이의 말_ 과학과 인문학을 어우르는 현재 진행형 철학
서장_이것이 진정한 철학이다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역시 있는 것/ 예컨대 ‘의미’는 있는지 없는지 생각해 보자/ 나의 유물론 선언!/ 철학적 ‘과제’란 다소 골칫거리/ 첫 번째 전략―이것이 유사 존재의 정체다!/ 환원주의로는 잘 해결되지 않는다/ 두 번째 전략―유사 존재는 관점에 따라 나타난다/ 세 번째 전략―인생에 필요한 것은 모두 박테리아 시절부터 갖고 있었다!/ 이 책은 의외로 본격적이다/ 철학에게 가능한 것, 불가능한 것
제1장 의미
철학은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중요/ 튜링 테스트/ 정신분석의 형 프로그램 이라이자/‘지능을 갖는 척’은 가능한가/ ‘의미의 이해’가 없지 않은가!/ 중국어 방/ 설의 논의에 반론해 보자/ 설의 재비판에 반론해 보자(그 첫 번째)/ 설의 재비판에 반론해 보자(그 두번째)/ 로봇이라도 안 된다는 설의 논의/ 왜 로봇은 마음을 갖지 않은 듯 생각되는가/로봇에게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하여/ 생존의 목적을 갖는 로봇만이 ‘의미’를 이해한다/후반의 과제/ 인지과학은 인지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문제의 재정립 작업/ 해석자가 없는 의미/ 인과의미론/ 목적론적 의미론/ 목적론적 의미론에 대한 비판에 대답해보자
제2장 기능
이 장의 질문은 중요하다고/ 있는 듯 없는 듯한 기능/ 중요한 유사 존재로서의 기능/ ‘지금 여기에 없는 것’에 대한 관계/ ‘기능’의 기원론적 설명과 그것에 대한 반론/ 밀리칸은 반론에 어떻게 대답했는가/ 개념분석이란 무엇인가/ 개념분석과 분석철학에 대한 의문/실험철학의 충격/ 철학의 작업은 개념을 만드는 것이다/ 철학은 사항 그 자체를 탐구(해야)한다/ 밀리칸의 정의는 기능의 개념을 만들고 있다/ ‘본래의 기능’의 사정 범위는 넓다!―기능 범주란 무엇?/ 통합적인 설명이 과학에서 행하는 역할/ 기원론적 설명 VS. 인과역할적 설명/ 밀리칸의 역습/ ‘본래의 기능’ 개념이 갖는 이론적 목표
제3장 정보
해독자를 전제하지 않는 정보/ 정보 개념이 갖는 다의성과 모호함/ ‘정보란 무엇인가’란 무엇인가를 앞서 물어야/ 세 가지 정보 개념과 관계 설정의 과제/ 이 장에서 할 것/ 샤농의 정보 이론을 복습하자/ 통신 시스템의 정의/ 현대식으로 정의한 정보량과 엔트로피/샤농 자신은 정보 이론을 어떻게 전개했는가/ 샤농 등이 제시한 발상의 새로움/ 통신과 관계없이 쓸 수 있는 정보의 개념/ 드레츠키 작업의 목표/ 정보량의 이론으로부터 정보 내용의 이론을 만들려면/ 모호도―정보량의 이론으로부터 정보 내용의 이론을 만들기 위한 준비/ 제록스 원리―정보 내용의 정의를 목표한 최종 준비/ 제록스 원리로부터 정보 내용의 정의가 충족해야 할 요건을 유도한다/ 정보 내용의 정의가 충족해야 할 요건/ 드디어 정보 내용을 정의하다/ 정보의 네스트 용기 구조/ 정보 A는 어떻게 되었나/ 인과와 정보의 흐름/ 의미의 소(素)가 손에 들어왔다
제4장 표상
‘장점 취합’은 촌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철학의 중요한 작업/ 지향성이란 무엇인가/ 이 장에서 할 것을 명확히 기술하면/ 지향적 기호와 자연적 기호/ 드레츠키의 ‘자연적 정보’ 개념은 생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물에게 유용한 것은 ‘국지적 정보’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보다는 강하고, 보편법칙보다는 느슨한 ‘연관’/ 국지적 반복 자연 기호/ 자연스러운 준거영역/ 지향적 기호와 자연적 기호는 어떠한 관계인가①―드레츠키 비판을 실마리로 생각한다/ 밀리칸의 드레츠키 비판―기호의 소비자도 생각하라/ 지향적 기호를 재정의 하라!/ 지향적 기호와 자연적 기호는 어떠한 관계인가②―생각한 것보다 까다로운 양자의 관계/ 드레츠키와 밀리칸은 목표는 같지만 접근이 다르다/ 기호 생산 메커니즘의 본래 기능은 참된 표상을 산출하는 것/ 지향성의 수수께끼는 풀렸는가
제5장 목적
틀릴 수 있는 표상을 갖는 이점이란/ 사람은 어째서 ‘목적 수단 추론’을 하게 되었을까 하는 질문/ 생물의 인지 디자인의 진화를 생각하는 틀/ 푸시미 풀유 표상/ ‘푸시미 풀유 표상’과 ‘어포던스’/ B 어포던스/ 푸시미 풀유 동물에게는 불가능한 것, 그리고 왜 불가능한가/ 사람은 어떻게 하면 실현 가능한지 알 수 없는 목적을 가질 수 있다/ 기술적 표상과 지령적 표상의 분리를 위한 첫걸음!/ 2종류의 준사실적 표상/ 목적 상태 표상이 완전히 분화해 있음은 어떠한 것인가/목표가 실현되도록 행동을 조정하고 인도하는 표상/ 믿음의 분화/ 우리들은 포퍼 형 생물이다/ 시뮬레이션에 불가결한 것은 어떤 표상인가/ 역문제와 과업 분석/진짜 목적 수단 추론/ 진짜 목적 수단 추론의 특징/ 목적 수단 추론은 다른 능력 진화의 부산물?―(그 첫 번째) 타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 목적 수단 추론은 다른 능력 진화의 부산물?―(그 두 번째) 언어의 운용 능력/ 인간은 확장 기능이 달린 푸시미 풀유 동물이다
제6장 자유
돌이나 개구리에게는 자유가 없지만 우리들에게는 자유가 있다……!?/ ‘자유의지는 있는가’가 왜 문제가 되어 왔는가/ 라플라스의 악마/ 메커니즘 결정론/ 결정론과 자유의 문제를 둘러싼 몇 가지 입장/ 데닛의 양립가능론과 그 특징/ ‘행위자 인과’로서의 자유의지?/ 자유의지의 탈신화화 혹은 디플레 정책/ 자유의지 개념의 두 구성요소/ 양자역학의 확률적 법칙은 자유의지의 구원이 되는가/ 자기제어로서의 자유/ 결정론은 자기제어의 장해가 아니다/ 자연법칙에 따른다고 해서 뭔가에 의해 ‘제어’되는 것은 아니다/인과와 이유/ 인간의 자유와 원시적인 생물의 자유/ ‘반성적 검토’는 인과적 세계에서 의미를 갖는가/ 타 행위 가능성/ ‘결정되어 있다’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것과는 다르다/다르게도 할 수 있었던 능력/가질 가치가 있는 ‘자유’
제7장 도덕
‘하야부사’가 위대한가?/ 도덕적으로 중요한 자유의지/ 언어를 통한 반성적 사고는 자기형성을 가능케 한다/ 자기형성이 왜 자유와 관계하는가/ 자기형성은 서서히 진행한다/ ‘자기’는 어떻게 나타난 것인가/ ‘자기’는 이야기로부터 만들어지고 있다/ 책임 있는 의지적 행위/ 책임이 있기 때문에 자유의지가 있다?/ 책임을 진다는 실천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협력의 진화가 자기형성의 원천이 되었다/ 소통의 진화가 도와주었다/ 데닛에 대한 불만/ 만약 ‘자유’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페레붐의 하드보일드노선/ 자유와 책임이 없어진다면 도덕은 어떻게 될까?/ 귀결주의는 흠집 없이 남는다/그밖에 남는 것은 있을까?/ 강한 결정론은 범죄자를 어떻게 다룰 수 있는가/ 벌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격리설은 정당화되는가?/ 범죄자를 ‘치료’한다/ 만약 과학이 인간의자기제어 능력이 취약함을 증명해 버린다면/ 자유 의지 없는 세계는 디스토피아인가
결론을 대신하여_인생의 의미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으므로 인생에 의미 같은 것은 없어/ ‘의지적 노력’의 가치/ 우리들은 그저 진화의 산물이고 그 생에 궁극적 목적 같은 것은 없지/ 인생은 짤막한 목적 수단 연쇄의 집합체이다/ 이 대우주 속 작고 보잘 것 없는 우리들의 삶에 의미 같은 것이 있을까요……/ 왜 인생이 무의미하게 생각되는가/ 아이러니한 웃음을 띠고 아등바등 살다―디플레적인 인생의 의미
참고 문헌과 독서 안내
감사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