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품 검색

장바구니0

특집 안전제일 연애의 고수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6-10-01 14:32 조회 29회 댓글 0건

본문

ef2dcd470b111317de8182b832f1312b_1790831206_97.png
ef2dcd470b111317de8182b832f1312b_1790831208_2388.png 

혐오 없는 연인 되는 법

남학생 연애를 이야기하는 성교육 실천기

김근우 남다른성교육연구소 교육지원팀장

성교육을 하는 ‘남성’ 강사에게 유독 자주 들어오는 의뢰가 있다. 남학생들의 혐오 표현을 멈추게 해 달라는 선생님들의 요청이다. 복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욕설은 물론이고 ‘장애’ ‘게이’ ‘따먹고 싶다’ 같은 말까지 오르내려 학교가 한바탕 뒤집힌 뒤,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을 따끔하게 훈계해 줄 사람으로 남성 강사를 찾는 식이다.
 
교실 속 농담 앞에서 든 질문
하지만 남성 강사의 훈계만으로 아이들이 혐오 표현을 멈추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이들이 그 말을 배워 오는 곳은 대체로 온라인이고, 조회수가 곧 수익인 구조 안에서 만들어진 자극적인 영상들은 아무런 장애물 없이 아이들 눈앞에 놓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혐오 표현은 ‘유별난 개인’의 문제로 축소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메시지를 바꿔야 한다. 혐오 표현을 쓰지 않는 남학생이 아니라, 혐오 표현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남성 청소년. 그런 성교육은 어떻게 가능할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물어야 한다. 아이들은 왜 그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가. 내가 찾은 실마리는 그 말들이 ‘재미’라는 형식을 입고 오간다는 데 있다. 불안하고 지루한 일상을 버티는 데 재미가 필수가 된 시대에, 재미를 줄 줄 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권력이다. 그리고 과거보다 약해졌다고는 해도, 남학생들 사이의 연대를 지탱하는 감각은 여전히 전통적인 가부장적 남성을 기준으로 삼는 남성문화다. 그 문화 안에서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를 깎아내리는 말은 자신들의 남성성을 확인하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 된다. 동시에 그것은 처벌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공정함’을 해친다고 여겨지는 이들을 향해, 스스로는 정당하다고 믿으며 내리는 처벌이다. 그렇게 혐오 표현은 ‘재미’로 포장되고, 그 말이 품고 있던 폭력의 무게는 조용히 가벼워진다. 웃음은 판단을 유예시키고, 유예된 판단은 어느새 감각의 기본값이 된다. 그렇게 자란 아이에게 혐오 표현은 폭력이 아니라 ‘웃긴 말’이 되어 있다.

ef2dcd470b111317de8182b832f1312b_1790831345_6525.png


남성 청소년을‘ 동료 시민’으로 초대한다면
문제는 이 감각이 남성들끼리의 세계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이 맺는 가장 친밀한 관계 안으로 그대로 걸어 들어간다. 내 애인이니까 이 정도 스킨십은 괜찮은 것 아니냐며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 상대가 분명히 거절해도 “사귀는 사이인데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야?”라고 되묻는다. 그래도 불편함을 말하면 마지막에 돌아오는 말은 대개 이것이다.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자기 행동을 돌아보는 대신 상대의 감각을 문제 삼는 것, 즉 책임을 넘겨버리는 태도다. 남성문화에서 연습된 문법이 관계 안에서 그대로 작동하는 셈이다. 연애를 시작할 때 아이들이 쥐고 있는 언어가 그것뿐이라면, 관계는 쉽게 서열과 성과의 문제가 된다. 어디까지 갔는지가 친구들 사이의 경쟁이 되고, 상대의 거절은 ‘튕기는 것’으로, 이별은 나를 배신한 ‘몹쓸 짓’으로 번역된다. 그런데 이것이 남성 청소년만의 문제일까. 정말로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알려 주지 않은 채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며 미뤄 온 우리 쪽의 문제는 아닐까. 현장에서 ‘연애’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는 이 아이들이 참 외롭겠다는 생각을 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설렘을 말할 곳이 없다. 진지해지면 놀림당하고, 차이면 “쪽팔린 일”이 되고, 헤어진 뒤 며칠씩 잠을 못 자면서도 친구들 앞에서는 “어차피 별로였어”라고 말해야 한다. 울 수 없는 규칙 안에서 슬픔은 갈 곳을 잃고, 갈 곳 없는 슬픔은 대개 분노나 조롱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혐오 섞인 농담은 그렇게도 자란다. 남다른성교육연구소가 남성 청소년을 따로 호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남학생을 교정해야 할 잠재적 가해자로 만나지 않는다. 겁주기와 훈계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번 확인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남성 청소년을 성평등을 함께 만들어 갈 동료 시민으로 초대하는 일이다. 답을 주는 대신 질문을 건네고, 판단하기 전에 먼저 묻는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

새로운 성교육 매뉴얼,

「모두가 궁금해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연애 이야기」

그 고민 끝에 연구소 선생님들이 합심해 만든 것이 『남성 청소년 성(평등)교육 매뉴얼』이고, 그중 연애를 다루는 꼭지가 「모두가 궁금해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연애 이야기」다. 총 2차시로 구성된 이 수업은 ‘연애를 이렇게 해야 한다’를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이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을 꺼내 놓고, 함께 흔들어 본다. 차시별 수업 활동을 다음과 같이 공유해 본다.


1차시 ① 도입 나는 무엇에 끌리는가
수업의 문을 여는 것은 활동지 한 장이다. ‘말이 잘 통하는’ ‘다정한’ ‘예의 바른’ 같은 단어가 적힌 종이를 나눠 주고, 내가 어떤 부분에서 끌림을 느끼는지 동그라미로 표시해 보게 한다. 원하는 단어가 없으면 활동지 맨 아래 빈칸에 자기 말로 직접 적는다. 한 가지 조건은 외모로 표현되는 말을 적지 않는 것이다. “그럼 쓸 게 없는데요”라며 웃던 아이들도 한참 고민하다 각자의 단어를 찾아낸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일이 외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명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확인하는 과정이자, 마지막 활동을 위한 초석을 놓는 시간이다. 이때 ‘패스권’도 함께 약속한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언제든 “패스”라고 말할 수 있고,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는다.

ef2dcd470b111317de8182b832f1312b_1790831547_6418.png

1차시 ② 전개 연애를 둘러싼 통념에 질문 던지기 질문 던지기
이제 우리가 준비한 문장들을 한 장씩 꺼낸다. “데이트 비용은 남자가 더 내는 게 맞다” “사귀면 스킨십은 당연한 거다” “싫다는 건 진짜 싫은 게 아니라 튕기는 거다” 손을 들게하지 않고 무기명으로 공감 정도를 투표한 뒤 결과만 화면에 띄운다. 익명이라 아이들은 솔직해지고, 숫자로 보기 때문에 안심하거나 놀란다. 어떤 문항에서는 응답이 정확히 반으로 갈리기도 한다. 그다음 질문은 둘이다. “연애에는 정답이 없다고들 하는데, 우리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 말들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여기서 교실이 조용해진다.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왜 꼭 지켜야 하는 규칙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또 다른 학생은 데이트 비용 문항 앞에서 “솔직히 부담됐다”고 털어놓았다. 남성에게 부여된 각본이 남학생 자신을 얼마나 옥죄고 있었는지가 우리가 설명하기 전에 아이들 입에서 먼저 나온다.

2차시 전개 연애 다시 생각하기
두 번째 시간은 구체적인 장면으로 들어간다. 핵심 장치는 나란히 놓기다. 같은 상황을 친구 사이와 사귀는 사이로 나란히 제시하고 비교하게 한다. 친구가 내 휴대폰 비밀번호를 요구하면? 사귀는 사람이 요구하면? 친구가 답장이 30분 늦으면? 사귀는 사람이 늦으면? 아이들은 곧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친구에게는 결코 하지 않을 요구를, 연인에게는 ‘사랑이니까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거절을 다루는 시간도 빠뜨리지 않는다. 고백이 거절되는 장면, 스킨십을 거부당하는 장면을 나란히 놓는다. 먼저 확인하는 것은 이것이다. 거절은 나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내가 한 제안에 대한 대답이고, 그 사람의 선택이다. 어려운 것은 그다음이다. 그

“상대를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끝내 다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만나는 경험.
그 실패의 감각이야말로 혐오의 반대편에 있다.”


래서 우리는 거절을 ‘받는’ 연습을 한다. 상대가 싫다고 말한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말과 지을 수 있는 표정을 직접 표현해 보는 것이다. “알겠어, 말해 줘서 고마워.” 하고 이유를 캐묻지 않기, 농담으로 덮지 않기, 나중에 슬쩍 다시 꺼내지 않기. 아이들은 거절을 견디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쿨한 척하거나 화를 내거나, 둘 중 하나만 알고 있다. 세 번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표정이 달라진다.
 
정리 나의 연애 원칙 한 문장 만들기
수업은 각자 한 문장을 쓰는 것으로 끝난다. 첫 시간에 동그라미 친 단어들을 다시 꺼내 놓고, 이번에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에 네모를 친다. 내가 끌리는 사람과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얼마나 겹치는가. 좋은 사람이란 멀리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되어가야 할 모습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이들은 자기 활동지 위에서 발견한다. 그 위에 마지막으로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 할 한 가지를 적는다. 어떤 아이는 “친구한테 자랑하려고 사귀지 않기”라고 썼고, 어떤 아이는 “싫다고 하면 한 번 더 묻지 않기”라고 썼다. 두 시간의 수업이 아이의 관계를 통째로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그 한 문장은 앞으로 아이가 맺을 관계의 기준으로 남는다.

좋아하는 마음,
안전하게 배우고 연습할 기회를!
남다른성교육연구소에는 성교육 원칙이 있다. 그중 넷째는 이렇다. “평등과 인권에 기반한 성교육은 공공재이며 민주시민의 권리다.” 나는 이 문장의 ‘성교육’을 ‘연애’로 바꿔 읽어 보곤 한다. 평등과 인권에 기반한 연애는 공공재이며, 민주시민의 권리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안전하게 배우고 연습할 기회는 운 좋은 아이들만 누리는 특혜가 아니라, 모든 아이에게 공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배움이기 때문이다. 시인 김현은 연애를 두고 “한 사람의 전체를 사랑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부분 부분을 사랑하여 결코 한 사람의 전체를 사랑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일”이라고 썼다(『우리 반에도 있다』, 낮은산). 내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도 결국 이것이다. 상대를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끝내 다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만나는 경험. 그 실패의 감각이야말로 혐오의 반대편에 있다. 그러니 어른의 자리는 감시자도, 심판관도 아닐 것이다. 연애를 못 하게 막는 대신 연애할 언어를 쥐여주는 일. 헤어져 우는 아이에게 “그럴 줄 알았다”가 아니라 “많이 좋아했구나”라고 말해 주는 일. 거절당한 아이에게 낙인을 찍는 대신 그 말을 받아들이는 법을 알려 주는 일. 길잡이와 방목자 사이의 균형이란 아마 그런 것이지 싶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답장을 기다리며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을 남성 청소년들의 마음을, 나는 응원한다. 그 마음을 잘 지켜내는 일이 좋은 시민이 되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상대의 “싫어”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 결국 세상의 “싫어”도 들을 줄 안다. 혐오 없는 연인이 되는 법은, 그러니까 혐오 없는 세상을 만드는 법의 가장 작고 가장 빠른 연습이다.

ef2dcd470b111317de8182b832f1312b_1790832104_6094.png
ef2dcd470b111317de8182b832f1312b_1790832145_9265.png

사랑이 우리를 자라게 하니까요

부드럽고 신중한 어린이들의 로맨스를 응원하며

김다노​ 동화작가

“나는 부드럽고 신중한 로맨스를 알고 있다.”

2018년 박물관에서 본 문장이다. 서양의 오래된 남성용 재킷 단추에 프랑스어로 적혀 있었다. 작은 단추에 그보다 더 작은 글씨로 새겨진 글은 언젠가 어린이들에게 부드럽고 신중한 로맨스를 보여 주겠다고 다짐하게 했다. 현실은 사랑을 말하기 어려운 때였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에 이어 문학, 문화, 정계, 학교에서조차 미투 운동이 일어나고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 온라인 성 착취 뉴스가 연달아 터졌다. 사람이 사람을 물건이나 소유물 취급하는 이들도 한때는 어린이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힘겨웠다.

그들이 읽고 싶었던 로맨스의 세계

 2020년 웹진 <비유>에 동화 「눈인사를 건넬 시간」을 발표했

다. 이 단편은 훗날 『최악의 최애』에 여름 이야기로 실리게

된다. 열세 살 ‘수민’은 자신을 좋아하는 ‘덕형’의 마음을 거

절하지 못한다. 수민의 모델은 6학년 때의 나 자신이다. 불편

함을 여러 번 표현했음에도 끈질기게 자신의 마음을 주장

하는 같은 반 아이 때문에 괴로웠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내 유년 시절에 연애란 조심스럽고 두렵기까지 한 것이었

다. 그랬던 내가 지금의 어린이들에겐 사랑 이야기를 들려줘

도 되는 걸까. 의구심을 안은 채 글을 쓰는 건 불가능했기

에 박물관에서의 결심은 이대로 묻히는가 싶었다.

 ef2dcd470b111317de8182b832f1312b_1790832243_6857.png 

그러던 중 내게 찾아온 것이 단편 「무지와 미지」다. 이야기는 6학년 중 가장 키가 작은 남자애인 ‘무지’가 학교에서 가장 큰 학생인 ‘미지’에게 고백받으며 시작한다. 무지는 “난 나보다 키 큰 여자는 싫어.”라고 거절한 뒤에야 미지를 좋아하게 된다. 이 작품은 「눈인사를 건넬 시간」과 같은 해에 <어린이와 문학>에 발표했고 『최악의 최애』의 첫 번째 동화가 됐다. 소심하지만 세심한 무지와 조심스럽지만 자신감 넘치는 미지의 이야기를 쓰자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어린이들이 지금의 혼잡한 세상을 답습하지 않고 진짜 사랑을 알아가길. 동화작가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린이가 따라 하고 싶을 만큼 멋진 사랑을 보여 주는 거였다. 염원을 담아 『최악의 최애』를 완성해 2024년 출간했다. 어린이가 로맨스 동화에 목말라 있음은 일찍이 알고 있었다. 연애와 아무 상관없는 『비밀 소원』을 읽은 뒤에도 어린이 독자는 “미래랑 현욱이랑 사귀어요?” 같은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엔 우리나라 로맨스 동화가 많지 않았기에 어린이들이 『최악의 최애』를 반가워할 줄은 알았지만 예상보다 현장의 목소리는 훨씬 풍성했다. “제가 읽고 싶었던 로맨스가 바로 이거거든요!” 같은 최고의 칭찬과 “저도 미지처럼 키가 커서 연애를 못 해요.”라는 공감, “고백은 언제 해요?” “장기 연애 비법이 뭐예요?” “못생겨도 연애할 수 있어요?” 식의 고민 상담이 들어오기도 했다. 한 학생은 『최악의 최애』를 읽고 졸업식 때 고백할 계획을 내 수업을 빌어 알리기도 했다. 행여 거절당하더라도 상대의 마음을 존중하겠다는 약속까지 잊지 않았다.


어린이의 연애, 존중받아야 하니까
종종 어린이의 사랑을 불편해하는 어른을 만나기도 한다. 오프라인 행사에서 『최악의 최애』를 넘겨 보는 학부모께 “로맨스예요.” 설명하면 빠르게 책을 덮고 자리를 떠난다. 온라인 구매 후기에 “연애 얘기라는데 괜찮겠죠?”라는 걱정 어린 문장을 보기도 했다. 묻고 싶다. 어린이가 사랑을 알게 됐을 때 괜찮은 건 뭐고, 괜찮지 않은 건 뭔지.
어른이 어린이의 연애를 걱정하는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다. 몸과 마음의 성장 속도가 다른 어린이가 처음 겪는 상황에 미숙하게 대처할까 조심스러울 것이다. 어떤 양육자는 자신의 아이만큼은 최대한 연애 감정에 늦게 눈을 뜨면 좋겠다 했다. 정작 어린이들이 생각하는 연애는 어른의 우려와 다르다. 어린이는 자신에게 귀 기울여 주는 경청자, 적절한 도움을 주는 조력자, 함께 한 시기를 헤쳐 나가는 동행자를 원한다. 어린이는 자란다. 자라야 한다. 그들은 주변을 넓히고 사회에 속하며 더 넓은 세계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과정 중 만나고 마주치는 타인에게 관심을 두고 감정을 느끼며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른인 우리도 이미 그 시절을 지내왔다. 많은 어린이가 『최악의 최애』를 좋아해 줬지만 딱 한 명, 부정적 반응을 보인 어린이가 있었다. 강연이 시작했을 때부터 나를 보는 눈빛이 뾰족했는데 수업이 끝날 때쯤에야 이유를 알았다. 어린이가 질문했다. “선생님, 초등학생은 연애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지금은 공부만 하고 연애는 어른이 돼서 하는 거랬어요.” 내가 “누가 그랬어요?” 되묻자 “엄마가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흥미진진한 얼굴로 나를 보는 어린이들을 향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여러분. 저는 어른이 된 지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공부를 한답니다.” 여기저기서 한탄이 터졌다. 어른이 되면 공부에서 해방될 줄 알았던 어린이들의 한숨이다. “뭔가를 해야 할 때라는 건 딱히 정해진 것 같진 않아요. 공부도 평생 해야하는 것처럼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도 나이에 상관없이 생기잖아요. 어린이는 어린이의 연애를, 어른은 어른의 연애를 하면 돼요.” 내 대답이 그 어린이를 얼마나 설득했는지는 모르겠다. 나 역시 경각심을 갖고 있다.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과 의지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이들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를 만난 어린이들에겐 이렇게 이야기를 덧붙인다. 당당하게 주변 어른과 친구에게 알릴 수 있는 연애를 하자고 말이다. 친구란 1대 다수이지만 연애는 1대 1의 관계다. 나도 모르던 내 모습과 불쑥불쑥 대면할 수밖에 없다. 연애란 상대보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견딜 수 없는 건 무엇인지, 화가 나거나 슬퍼지는 순간은 어떤 건지 깨닫게 된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자신은 물론 타인과 지내는 법을 익히는 거다. 좋은 연애는 나를 성장시킨다.

 

하지 말라는 말 대신, 어떻게 하는지 응원하는

『최악의 최애』 출간 후 후속작 요청을 받았지만 꾸준히 거절했다. 다섯 편의 동화에 모든 걸 담아 더는 할 말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26년 장편, 『미지와 무지』를 출간했다. 어린이 독자들이 “그래서, 무지와 미지는 사귄 거예요?” 재차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다.『미지와 무지』는 「무지와 미지」를 미지 시점으로 바꾸어 장편으로 작업한 것이다. 미지가 무지를 좋아한 계기, 거절당한 뒤의 마음, 반려견을 통해 사랑의 무한함을 깨닫는 과정을 세 계절에 걸쳐 그렸다. 특별히 미지가 무지와의 일을 가족에게 얘기하는 장면은 어린이들이 자신의 연애를 공개적으로 건강하게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다행히 지금까지 만난 독자들은 무지와 미지의 뒷이야기에 만족해 주고 있다. 『최악의 최애』보다 『미지와 무지』가 결말이 확실해 더 재미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 학교에서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미지와 무지』 속 인물인 ‘설’이가 ‘하이’를 좋아하는 게 맞느냐고 말이다. 둘 다 성별이 남자이기 때문에 확신을 갖기 어려웠을 거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선생


님이 말했다. “같은 상황에 있는 어린이들이 반가워할 거예

요.” 정확히 내가 바란 것이다.

‘사랑’이라고 하면 누군가는 남녀 사이를, 누군가는 부모

자식을, 혹은 반려동물이나 식물을 떠올릴 수도 있다. 사랑

은 얼마나 복잡하고 다채로운가. 그저 ‘좋아한다’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이 존경, 배려, 그리움, 때로는 질투, 실

망, 미움까지도 포괄한다. 한 시절을 지나온 어른은 어린이

에게 사랑을 얘기하고 공유해야 한다. 연애를 하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줘야 한다. 나쁜 연

애를 걱정하는 것보다 좋은 연애를 보여 주는 게 우선이다.

그들의 성장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방법이다.

 ef2dcd470b111317de8182b832f1312b_1790832552_4676.png 

얼마 전 도서관에서 만난 6학년 여학생이 5년 연애한 친구와 헤어졌다고 했다. “오래 만난 만큼 이별이 힘들었겠다.” 위로하자 어린이가 잠시 생각 후 말했다. “그렇긴 한데요, 후회도 미련도 없어요.” 어린이와 책상 두 개만큼 떨어져 앉은 어머니가 딸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 어린이는 벌써 한 차례의 사랑을 성숙하게 마무리했다. 다음 사랑은 어떤 모양일까. 그거야말로 부드럽고 신중한 로맨스의 새로운 시작이지 싶다.


ef2dcd470b111317de8182b832f1312b_1790832710_8373.png


맛보기로 소개한 특집 외 다양한 이야기는 2026 <학교도서관저널> 10월호에 수록돼 있습니다.


 

목록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물 검색

회사소개 개인정보 이용약관 광고 및 제휴문의 instagram
Copyright © 2021 (주)학교도서관저널.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