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먹는 책, 읽는 부엌,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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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어린이들의 간식 탐구생활
이은미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밥·빵·국수』 저자
어린 시절 읽던 책 속에 등장하는 생소한 음식 이름은 늘 호기심의 대상이었습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대추야자는 어떤 과일일까, 꿀을 바른 국수라니 도대체 어떤 맛일까. 멸치 국물에 볶은 야채와 달걀 지단을 얹은 잔치국수나 김치를 넣어 버무린 비빔국수를 먹던 어린이에게 꿀과 국수의 조합은 상상하기 어려운 맛이었습니다.
다문화꾸러미를 만들며 만난 존중의 맛
국립민속박물관에서 학예연구직으로 일하면서 어린이를 위한 여러 전시를 만들고, 다양한 대상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해 왔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의미 있고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로 문화다양성 이해를 위한 문화상자 ‘다문화꾸러미’ 기획을 꼽을 수 있습니다. ‘급격하게 다문화사회로 변하는 상황에서 박물관이 어린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고민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어린이박물관은 어린이의 성장과 배움을 위하여 체험형(Hands-on) 전시와 교육을 운영하는 곳입니다. 미래를 살아갈 어린이들에겐 무엇보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친구가 되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다문화꾸러미는 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물건과 내용을 담고 있는 교구재입니다. 2010년 베트남과 몽골을 시작으로 필리핀, 대한민국,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중국, 일본, 태국, 인도 등의 다문화꾸러미를 개발했습니다. 필리핀꾸러미를 개발할 때 일입니다. 결혼이주여성을 비롯한 한국에 있는 필리핀 분들과 ‘한국의 어린이를 위한 필리핀 꾸러미에 무엇을 담을까’ 회의를 거듭하는 도중, ‘어린이 간식 따호는 꼭 들어가야 해요’라는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따호는 간단하게 말하면 순두부에 시럽을 끼얹은 어린이 간식입니다. 마치 꿀을 바른 국수처럼 두부와 단맛의 조합이 탁월한 간식입니다. 생소하기만 한 이 간식을 마음을 열고 맛보니 두부와 단맛의 조화가 썩 괜찮았습니다. 우리는 낯선 것에 호기심을 갖기도 하지만, 모르는 것에 배척심을 갖기도 합니다. 이럴 때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음식은 참 좋은 통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문화꾸러미의 축적된 성과를 어린이박물관 전시로 만들면서 제목을 ‘맛있는 아시아, 밥·빵·국수’로 정했습니다. 식문화를 통해 아시아 어린이들이 친구가 되기를 바라며 밥·빵·국수 같은 아시아의 주식과 간식, 그리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시에 담아 호응을 얻었습니다. 아시아의 어린이들이 즐겨 먹는 간식을 여러분에게도 고르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아시아의 맛있는 간식, 어린이들의 즐거운 이야기
떡볶이는 ‘한국 어린이의 소울푸드’이자 세대와 문화를 초월해 사랑받는 간식입니다. 아시아 어린이들은 일상에서 어떤 간식과 길거리 음식을 즐길까요? 다음 안내하는 이 음식들은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친구와 나누는 정, 가족과 함께한 기억, 지역 공동체의 문화가 담긴 이야기입니다.
필리핀의 활기찬 아침, 따호
필리핀에서는 아침 일찍 거리를 나서면 “따호!”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바로 따 호를 파는 상인들 소리인데요. 따호는 부드러운 순두부에 달콤한 흑설탕 시럽과 쫀득한 타피오 카 펄을 넣어 먹는 간식입니다. 따뜻하고 부드러 워서 아침 식사 대용으로도 그만이죠. 우리나라 의 순두부와 비슷하지만, 달콤한 맛이 더해져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습니다. 길거리에서 간단히 즐기는, 필리핀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간식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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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이색적인 맛, 오딱오딱
동남아시아 해양 국가에서는 생선을 활용한 간 식이 발달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오딱오딱입니 다. 이 음식은 생선살을 갈아 코코넛 밀크, 향신 료와 함께 반죽하여 바나나 잎이나 코코넛 잎에 싸서 굽거나 찌는 음식입니다. ‘오딱(Otak)’은 뇌 를 뜻하는데, 부드러운 식감이 뇌 같다고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해요. 매콤하면서도 고소 한 맛이 특징이며, 칠리 소스와 함께 먹으면 더 욱 맛있습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즐 겨 먹는 간식으로, 특히 해변가나 시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잎에 싸여 있어 이동 중에도 간편하게 즐길 수 있기에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죠. | |
태국의 달콤한 간식, 망고 스티키 라이스
태국을 여행하다 보면 길거리 노점상에서 노란 망고와 함께 푸른색 또는 흰색의 찹쌀밥이 놓 여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카우 니 아우 마무앙(Khao Niao Mamuang), 즉 망고 스티키 라이스입니다. 달콤한 코코넛 밀크로 지은 찹쌀밥에 잘 익은 망고를 곁들이고, 그 위에 바삭한 튀긴 콩을 뿌려 먹는 태국의 대표 간식이죠. 쫀득한 찹쌀밥과 부드러운 망고, 고소한 코코넛 밀크의 조화가 일품이에요. 이 간식은 특히 망고가 제철인 여름에 인기가 많으며, 태국 어린이들이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친구들과 함께 즐겨 먹는 ‘소확행 간식’ 중 하나입니다. | |
인도의 매콤 바삭한 유혹, 사모사
인도에서는 삼각형 모양의 튀김 만두인 사모사 를 길거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얇은 밀가루 피 안에 매콤하게 양념한 감자, 완두콩, 양파, 때로는 고기나 렌틸콩을 넣어 바삭하게 튀 겨낸 간식이에요.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우 면서도 향신료의 매콤한 맛이 입맛을 돋웁니다. 사모사는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남아 시아 전역에서 사랑받는 길거리 간식으로, 단순 한 간식을 넘어 종교적 행사나 명절에도 등장하 며,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나눠 먹는 즐거움 을 선사합니다. | |
몽골 유목민의 지혜가 담긴 간식, 아롤
광활한 몽골 초원에서는 유목 생활의 지혜가 담 긴 간식이 발달했습니다. 바로 아롤입니다. 아롤 은 유목민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만들어 먹던 말린 유제품입니다. 양이나 염소, 소의 젖을 발 효시켜 응고시킨 후, 꾸덕꾸덕하게 말려서 만드 는데, 마치 딱딱한 치즈 같기도 합니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우러나오고, 영양가가 풍 부하여 몽골 어린이들의 훌륭한 간식입니다. 유 목 생활 특성상 휴대와 보관이 용이하다는 장 점이 있어요. | |
베트남의 숨은 보석, 꼼
꼼(Cốm)은 베트남의 쌀 요리입니다. 덜 익은 벼 에서 떨어낸 쌀을 약한 불에 덖어서 방아에 찧 어 납작하게 만든 푸른색 쌀입니다. 쫀득하고 고소하며 은은한 단맛이 나는 것이 특징인데, 꼼 자체로 먹기도 하고, 꼼으로 만든 다양한 후 식으로 즐기기도 합니다. 꼼의 진정한 맛을 느끼 려면 꼼을 손으로 가볍게 뭉쳐 입에 넣고 천천히 씹어야 합니다. 하노이 사람들은 꼼을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가을의 정취와 풍요로움을 상징 하는 소중한 음식으로 여깁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햅쌀로 떡을 빚어 먹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 |
함께 나누는 식탁, 이해의 시작
이처럼 아시아 각국의 어린이들은 각자의 문화와 환경 속에서 다양한 간식을 맛보며 성장합니다. 이러한 간식들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그들의 역사와 생활 방식, 그리고 공동체의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서양의 패스트푸드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지만, 아시아에는 그에 못지않게 건강하고 맛있는, 그리고 이야기가 담긴 간식이 많습니다. 아시아 친구들의 식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곧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됩니다. 이는 우리 반에 있는 이주민 친구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나아가 세계 시민으로서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는 태도를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함께 나누는 식탁’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음식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소통하고 공감하는 자리입니다. 다문화 사회는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관용적 태도뿐 아니라 우리의 가능성을 확장해 주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선언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문화적 다양성은 사회의 문화적 자산을 풍부하게 해 주며 함께 사는 것을 배우게 함으로써 사회를 성숙시킵니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창조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면서, 더불어 함께 행복한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함께해 나갈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먹방 대신 미식독서 어때요?
정은지 미식독서가, 『내 식탁 위의 책들』 저자
먹방의 시대다. 방금 도정한 쌀로 가마솥에 지은 밥에 삼 대째 내려온 씨간장으로 조린 전복을 먹는 것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음식을 먹는 영상’을 돈까지 내며 보는
사람이 이리 많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독서 시장에서도 음식은 중요 콘텐츠다. 요리책이나 음식 에세이의 출간이 급증했고, 점점 더 많은 소설에서 음식을 비중 있게 다룬다. 소설 속 먹방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새로운 서브 장르가 생겼으니, 이른바 ‘미식독서’ 혹은 ‘맛따라 책따라’다.
미식독서, 저는 이렇게 빠졌답니다
방과후 '혼밥'과 함께 펼쳐지던 책 속 음식들
그렇지만 음식은 늘 책 속에 존재했다. 요즘처럼 아예 서사의 중심이진 않았지만 먹고살기 힘들었던 옛날엔 음식이 오히려 더 절절히 그려졌다. 나는 그런 장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세월이 흘러 줄거리는 가물가물해져도 어떤 책에서 어떤 음식이 나왔는지는 잊지않았다. 지금도 종이 위 음식을 욕심스럽게 먹던 순간을 언제든 다시 불러올 수 있다.
나는 목에 열쇠를 걸고 다니는 어린이였다. 안쓰럽게 보던 사람들은 상상 못 하겠지만, 나만의 열쇠로 문을 열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는 것은 짜릿하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런 날이면 익숙하게 냉장고를 열어 밥상을 차리며 책도 한 권 꺼내 왔다. 그 시절은 휴대전화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였다. 책도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고 어린이책은 더 그랬다. 나는 엄마가 장롱 밑에 숨겨둔 시드니 셀던의 소설과 친구네서 빌려온 세계명작 전집을 가리지 않고 읽었다. 『동아 원색세계대백과사전』을 1권 첫 장부터 30권 마지막 장까지 순서대로 읽었고, 선풍기 설명서부터 농약 카탈로그까지 글자라고 생긴 것은 무조건 읽었다. 우리 집에 있던 어린이 위인전은 어린이에게 교훈을 주입하겠다는 불순한 의도하에 이책 저 책을 되는 대로 짜깁기한 결과물이었다. 마르고 닳도록 읽은 결과 내가 조금이라도 더 기특한 어린이가 되지는 않았다. 내게 남은 것은 링컨이 잠을 자던 옥수수 껍질 침대와, 처칠이 수영 시합의 승리를 위해 입원 중이던 병원으로 몰래 들여온 비프스틱과(물론 이것은 비프스테이크다), 베토벤이 모차르트를 만난 후 먹은 누들수프에 대한 집착이었다
베토벤이 먹은 누들수프, 한국식으로 따라 만들다
1787년 16세의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큰 뜻을 품고 비엔나로 모차르트를 찾아갔다. 자유분방한 오스트리아인은 고지식한 독일 소년의 연주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마지막
으로 간단한 테마를 제시했다. 이 테마를 변주한 베토벤의 즉흥 연주는 위대한 음악가의 마음을 움직였고, 소년 베토벤은 모차르트의 제자가 되는 데 성공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가 진짜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존재한다지만 내 알 바 아니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위인전 속 베토벤이 모차르트의 집을 나와서 간 식당이었다. 도파민이 폭발한 십 대 베토벤이 얼마나 배가 고팠겠는가. 마음 같아서야 코스 요리로 떡 벌어지게 한 상 차려 먹고 싶었겠지만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베토벤은 딱 하나의 요리만 주문해 소스까지 빵으로 말끔히 닦아 먹었다. 친절한 주인은 방금 설거지한 것 같은 접시를 보고, ‘만일 근처에 살며 자주 올 생각이라면 코스요리를 특
별 할인 가격으로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베토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오늘 코스의 나머지 요리라며 줄줄이 나오는 음식들에, 베토벤과 나는 영혼을 빼앗겼다.
비엔나 청소년이 아귀같이 먹는 사이, 책 밖의 서울 어린이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뚜껑이 덮인 우묵한 접시에 담겨 나온 계란이 든 누들수프’ 가 뭘까? 수프는 가끔 가던 동네 경양식 식당 에서 먹어 봤고, 엄마에게 물어 보니 누들은 국 수란다. 아마도 프리타텐주페(Frittatensuppe, 오 믈렛을 넣어 만든 쇠고기 수프)였겠지만 그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인터넷이 발명됐어야 했다. 내가 아는 음식 중 제일 비슷한 것은 ‘계란라면’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라면을 먹을 때마다 베토벤 전기 책을 들고 왔다. 여럿이 밥을 먹느라 책을 못 읽는 날에는 하도 읽어서 저절로 펴지는 그 페이지를 머릿속으로 읽었다. | |
음식을 상상하는 즐거움, 내 세계를 넓히는 기꺼움
‘히말라야 낭가파르밧 등정기’를 읽다가 눈보라에 갇혀 죽어 가는 탐험대원들에 라면 생각이 났다. 지금 이들에게 라면, 아니 누들수프를 끓여다 주면 얼마나 기뻐할까? 더 버틸수 있는 용기를 얻어 정상까지 오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애초에 왜, 인간은 목숨을 걸고 산에 오르는 걸까? 사람들은 왜 패딩도 없던 시절 북극에 가고, 왜 돌덩이 같은 빵과 구더기가 끓는 물로 연명하며 대양을 건넜을까? 질문과 상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먹고 싶은 게 많았고, 알고 싶은 게 많았다. 모르던 걸 아는 건 즐거웠다. 더 정확히는, 알려는 행위 자체가 그랬다. 어렸던 내가 뭘 얼마나 알아 내겠는가. 결국 실패하더라도, 이것저것 상상하는 게 즐거워 견딜 수 없었다. 식탁에 앉은 채 내가 못 가는 곳은 없었다. 나의 세계는 넓어지고 있었고 음식은 나만의 열쇠였다. 당연한 일이다. 음식은 세상의 일부, 그것도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일부니까.
새로운 방식으로 넓어지는 미식독서의 세계
혼자 사는 집에서 혼자 일하는 지금은 대부분의 끼니를 혼자 먹는다. 어떤 날은 된장찌개와 시금치나물과 잡곡밥, 어떤 날은 더블치즈버거와 감자튀김과 맥주, 또 어떤 날은 양장피 잡채와 군만두에 녹차. 그렇게 음식을 차려 놓고 마지막으로 책을 골라 온다. 피곤한 날에는 수십 번 봐서 저절로 펼쳐지는 책에 안주하고, 의욕이 넘치는 날에는 새로운 책에 도전한다. 어린 시절과 달라진 점은 과거의 내가 책에 물 한 방울이라도 묻힐까 전전긍긍하는 사람이었다면 현재의 나는 책에 찌개 국물이 튀어도 그러려니 한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며 성숙해졌다기보다는 에너지가 부족한 탓이다. 바로 그 이유로 새로운 책에 대한 도전도 줄었다. 아쉽지만 그렇다고 나의 세계가 더 이상 넓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소설 속 음식으로 사유하는 당대의 사회
‘오토맷(Automat)’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유행한 동전 자판기 형식의 비대면 간이식당이다. 한밤중에 혼자 커피를 마시는 지친 표정의 여자를 그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오토맷>은 그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대도시의 삭막함과 외로움을 표현했다고 평가된다. 내가 십 대 초 읽은, 뉴욕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추적극 『새벽의 데드라인』(윌리엄 아이리시)에서도 오토맷은 시골에서 꿈을 품고 뉴욕으로 왔다가 좌절한 젊은 여성 주인공 브리키의 피곤함과 외로움을 상징한다. 이십 년 후 『새벽의 데드라인』을 다시 읽었을 때, 나는 1940년대에 혼자 식사하는 여성은 무례한 시선과 수군거림을 각오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밝고 청결한 오토맷은 임금 노동자 여성이 혼자서도 마음 편히 식사할 수 있는 드문 공간이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식탁을 공유하더라도 통성명 없이 각자 음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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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하는 게 암묵적 규칙이었기 때문이다. 댄스홀에서 일하 며 낯선 남자들과 부대끼다 퇴근길에 들른 오토맷에서 브리 키가 느낀 것은 외로움보다 안도감과 평화일 수 있다. 호퍼 의 그림 속 여자 역시 고된 하루 끝에 드디어 혼자 있는 시 간을 음미하는 중일지 모른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얽힌 가출 남매 이야기 『클 로디아의 비밀』(E. L. 코닉스버그) 속 어린 남매 역시 가출 후 오토맷에서 종종 끼니를 때운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저렴해서’라고만 생각했는데, 책을 두 번째 읽으면서 전구 에 불이 들어온 듯 깨달았다. 주문도 계산도 자판기를 통 하는 오토맷이라면, 어린이끼리 주문하고 계산하고 식사하 는 게 수상쩍어 보일 일이 없었다! 1938년 2월 26일자 <THE NEW YORKER> 표지에는 오토맷에서 동전을 넣는 어린 남매가 등장한다. 어쩌면 『클로디아의 비밀』의 작가가 여기에서 영감을 받았을지 모른다. 아닐 수도 있지만, 무슨 상관이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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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디아의 비밀』과 1938년 2월 26일자 <THE NEW YORKER> 표지
“텍스트는 그림보다 자극적이다”
나는 웹소설도 많이 읽는다. 번듯한 전자책뿐 아니라 ‘천마가 힘을 숨김’ 같은 낯뜨거운 제목으로 연재되는 웹소설도, (자랑은 아니지만) 그 어떤 십 대보다 많이 읽고 댓글까지 꼬박꼬박 읽는다. 그런데 어느 웹툰의 댓글 창에서 ‘너무 재밌으니 웹소설로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보았다. 웹툰을 웹소설로 내 달라니. 요즘 청소년이라면 소설보다 만화를 선호하리라는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상상에는 한계가 없기에, 텍스트는 그림보다 결국 자극적이다. 필요한 것은 그저 읽는 것뿐이다. 세상의 모든 책은 연결되어 있고, 나의 세상은 계속 넓어진다.
미식독서 초심자를 위한 침 고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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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