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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응답하라, 학교도서관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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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5-03-04 16:07 조회 100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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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시대를 나아갈 소명으로

탄생한 <학교도서관저널>

한기호 <학교도서관저널> 발행인



국내 최초, 민간이 만든 학교도서관 잡지 <학교도서관저널> 창간호가 출간된 것은 아이패드가 등장한 2010년 3월입니다. 그해 5월에 아이패드가 발매되자 일본에서는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타고 나타나 문호 개방을 강요하던 흑선(黑船, 구로후네)이 출몰했다며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종이책은 완전히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마저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아마존, 애플, 구글 등의 대형 IT 기업이라는 ‘신대륙’이 신문, 텔레비전, 출판 등의 전통기업(‘구대륙’)을 어떻게 변모시킬 것인가를 알아내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즈음 출간된 『전자책의 충격』의 저자 사사키 도시나오는 킨들, 아이패드 같은 전자책을 읽는 데 적합한 기기, 쾌적하게 책을 구입해 읽을 수 있는 플랫폼, 자가(自家) 출판과 책의 플랫화, 그리고 콘텍스트를 매개로 책과 독자가 얽히는 새로운 매칭의 세계라는 퍼즐 조각이 전부 맞춰져 새로운 전자책의 생태계가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1년 6개월이 지난 뒤에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딱 잘라 말해서 전자책 업계에는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말할 정도로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2016년 3월에는 알파고가 출현해 이세돌과 바둑을 다섯 판 두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인공지능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최고 인재는 ‘명문고’ 출신이 아니라 ‘알파고’ 출신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후 학력이 아닌 창의력이나 상상력이 중요하다는 담론이 넘쳐났습니다. 덕분에 <학교도서관저널>의 정기구독자는 크게 늘어서 안정화되기 시작했습니다.



AI 시대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요체, 학교도서관


인공지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2022년 말에는 생성형 AI인 챗GPT가 등장했습니다. 챗GPT는 인류가 생산한 거의 모든 텍스트를 읽어 들여 융합한 후 대화를 통해 질문에 대한 답이나 지시한 글쓰기 작업 등 언어 기반의 지적 작업을 수행합니다. 전문가들은 2028년에 AI가 인간만큼 모든 것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AGI(범용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이제 인간은 AI라는 비서를 이용해 인간이 오랜 세월 축적한 지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필요한 지식에 접근하거나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은 인

공지능을 이용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동 번역으로 인해 언어적 차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학교 교육은 앞으로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동원한 모든 지식을 통합해 결론을 도출하는 융합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갖추지 않고는 인간은 행복한 인생을 구가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은 집단지성입니다. 인간은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창의력을 도출해야 합니다. 함께 모여 다양한 정보와 아이디어, 비전을 나누고 허심탄회하게 토론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면 생각의 차이가 드러납니다.생각의 차이가 바로 상상력입니다. 앞으로 인간은 상상력이 가득한 글을 써 내야만 경쟁력을 갖출 것입니다. 그런 활동을 최선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학교도서관입니다.

이런 일은 학생들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서교사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교육 당국은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허울 좋은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사서교사 인력부터 늘려 책 읽는 학교를 제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2024년 기준 1만 1792곳 가운데 학교도서관 전문인력이 배치된 곳은 4568곳, 즉 38.74%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한국교육개발원). 서울시의 387개 중학교에는 사서교사가 단 한 명도 배치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구조를 고치지 않고는 바람직한 창의력 교육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알파 세대가 공평하게‘ 편집력’을 키울 수 있도록


2010년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을 알파 세대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자랐고, SNS에 자신들의 모습이 투영되는 것을 보고 컸으며, 부모가 AI스피커라는 디지털 기기와 대화하는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배운 말이 ‘엄마’가 아니라 AI 스피커를 부르는 말인 ‘알렉사’였다는 사실이 보고될 정도로 알파 세대는 ‘디지털 키드’입니다. 이런 신인류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텍스트보다 이미지에 더 익숙한 알파 세대는 문해력이 매우 부족합니다. 이들이 문해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강조하자면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여야만 합니다. ‘티칭(teaching)’의 시대는 지고 ‘러닝(running)’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함께 토론하면서 러닝한 사람들은 자신이 알게 된 지식들을 연결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정보의 수집력이 아니라 정보의 편집력이 중요해진 시대를 주도할 수 있습니다.

원래 읽기와 쓰기는 연동되어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사대부 자제들은 인간으로 바로 설 유일한 기회인 과거 시험에서의 ‘쓰기’를 위해 평상시에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산업혁명과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소수’가 쓰고 ‘다수’가 읽게 되었습니다. 소셜미디어가 득세한 이후에는 누구나 읽고 써야 하는 시대가 다시 도래했습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이 등장한 이후 이제는 누구나 짧은 영상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넓은 의미의 읽기와 쓰기가 연동된 시대에 사는 셈입니다. 이런 활동을 주도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학교도서관입니다.

<학교도서관저널>은 시대적 소명을 갖고 탄생한 잡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탄생하는 순간부터 꼭 필요한 임무를 부여받은 것 같았습니다. <학교도서관저널>은 15년 동안 이런 역할에 도움이 되는 매체가 되고자 했습니다. 좋은 책을 큐레이션하고 학교에서 체득한 ‘경험(팩트)’을 자유롭게 털어놓는 매체가 되고자 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이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많은 애정과 질책을 부탁드립니다.



학교도서관이라는 이름의 ‘열정 시대’

나라는 씨실과 학교도서관이라는 날실 엮기 ① 2000~2010


이덕주 한국학교도서관협의회 대표, 송곡관광고 사서교사



봄방학이 시작되고 개학을 기다리던 날, 도서부장 소영이에게 다급한 전화가 왔다. 2004년 2월 18일쯤이었다. “선생님 신문 좀 봐 주세요! 우리 학교를 위한 광고가 실렸어요.” 도대체 뭐길래 싶어 봤더니, 거의 모든 일간지에 전면 광고가 실린 바, 한 통신사에서 학교도서관 리모델링을 지원하는 행사를 알리고 있었다. 전국 5,000개가 넘는 중고등학교에서 다섯 군데를 선정해 5천만 원 상당의 리모델링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바로 도서관 홍보 활동에 몰입했다. 방학 중인데도 매일 출근했다. 아이들과 연락하면서 유인물을 만들어서 동네방네 뿌리고 다녔고, 선생님들과 졸업생들에게 연락해 응모해 달라고 독려했다. 다음카페나 싸이월드 온라인 게시판 등에 홍보하는 일에도 미쳐 있었다. 다들 내 집을 리모델링하듯이 하루하루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응모 순위표를 확인하던 시간이었다. 덕분에 송곡여고는 두 번째 리모델링 학교로 선정되었고, 온돌방이 있는, 당시로선 파격적이고 학생 친화적인 아름다운 도서관을 만들 수 있었다.



전국적인 도서관 살리기 열풍··· 명과 암


당시는 사회적으로 도서관 열풍이 불던 무렵이었다. MBC 프로그램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방송으로 인해 기적의도서관이 방방곡곡에서 개관되고, 학교도서관에 리모델링 예산이 투입되면서 더 이상 케케묵은 학교도서관이 아닌 산뜻한 학교도서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었다.

2004년 3월 27일은 학교도서관 운동과 출판·문화계를 잇기 위해 준비해 온 비영리시민단체 학교도서관문화운동네트워크가 학부모, 작가, 출판인, 도서관계 교수, 교사, 사서교사, 사서 들과 함께 창립대회를 열었다. 여러 일간지에 창립대회 소식이 보도되었다. 그해 7월 7일에는 학교도서관문화운동네트워크 주최로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학교도서

관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학교도서관살리기국민연대 출범 이후 가장 많은 인파가 모여 학교도서관 정책이 나아갈 길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했다. 2004년은 학교도서관 부흥 열기가 정점인 해였다. 돌이켜보면, 2000년부터 2009년까지의 학교도서관은 열정의 도가니였다. 각계각층에서 학교도서관과 사서교사를 응원했다.

2000년 6월, 경남에선 경남정보사회연구소에서 학교의 독서 교육환경 개선과 독서교육을 통한 교육환경 개선에 도움이 되고자 1월부터 ‘학교도서관 살리기’ 사업을 실시했다.1)이를 통해 우수 도서관 사례를 나누는 일이 진행되었다. 2000년 8월 16일 경기도에서는 군포경실련, 수원여성회, 안산상록수문화사랑회, 안양지역사회교육협의회 등이 모인 좋은학교도서관만들기협의회가 당시 경기도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경기도의 사서 파견 사업, 도서관 전산화 사업을 추진했다.



1)“ …또 경남정보사회연구소는 1994년부터 학교도서관 살리기 운동도 함께 벌여왔다. 죽어버린 학교도서관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것이 이들의 주장과 노력이었다.”<경남도민일보>,“ [사람in] 도서관 만들기 운동 벌여온 경남정보사회연구소 이종은 소장”, 김범기 기자, 2008.



학교도서관을 부흥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


2000년 11월 30일에는 드디어 학교도서관살리기국민연대가 창립되었다. 그 날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학교도서관이란 타이틀을 내건 행사에 국회의원, 교육부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각기 다른 진영의 시민단체, 교사단체가 오로지 학교도서관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는 공감대로 힘을 합친, 당시로서도 대단한 사건이었다. 2002년 4월 3일과 2003년 1월 3일은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에서 우리나라 사서교사 배치율이 당시 100학교당 1명(1%)인 상황이 보도되었다. 일본이 사서교사 배치율 100%인 것과 비교되면서 전국민들에게 ‘사서교사’란 단어를 제대로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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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교양 프로그램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영상 캡처.

사서교사 배치율이 100%인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 사서교사

배치율이 당시 100학교당 1명(1%)인 상황이 보도되었다.”



그럼에도 지속적이지 못한 사서교사 배치


2002년 8월에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인적자원개발회의의 심의를 거쳐 학교도서관 활성화 종합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1년에 600억 원씩 3,000억 원을 투입해 매년 1,200곳 학교에 5천만 원의 예산을 지원하여 ‘좋은 학교도서관 만들기’ 4대 중점추진과제를 시행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지식정보사회에 부응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자기주도적 학습환경을 조성하자는 것이었는데, 정작 리모델링이 완료된 도서관을 운영할 사서교사 배치 계획은 부재했다. 그래도 건국 이래, 정부 차원에서 학교도서관을 중심으로 하는 최초의 정책안이란 데 의미가 있었다. 이것을 근거로 각 시도 교육청 등에서 학교도서관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진전되었다. 정부는 국민적 열기 속에서도 사서교사 배치에는 계속 인색했다. 2002년 33명, 2003년 45명, 2004년 34명 수준이었다. 이마저 경상북도교육청에서 내린 파격적인 결정이었고, 2005년엔 17명만 뽑더니 급기야 2006년에는 전국 교사 정원 ‘동결’ 방침에 따라 사서교사 신규 채용은 없을 것이란 말이 돌았다.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사서교사들과 예비 사서교사들은 단군 이래 처음 ‘도서관계의 봉기’를 일으켰다.

 


암흑기 가운데서도 향상하는 독서교육


2005년 9월 30일, 한국 도서관계는 처음으로 시위를 벌였다.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사서교사 티오 0명 예측에 항의하는 집회를 연 것이다. 주로 서울 지역 사서교사들과 문헌정보학과 학생들 그리고 공주대를 비롯해 각 지역 사서교사들이 조퇴하고 버스를 타고 대거 모였다. 처음 사회를 맡은 그날, 떨렸지만 교육부 앞에서 한풀이라도 하자며 나름대로 최선의 몸부림을 쳤다. 부슬부슬 내린 비가 그간의 울분과 설움을 더 받쳐 주었다. 거짓말같이 그해에 무려 154명이란 사서교사 티오가 났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한다.

2006년 8월 23일,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이 주최하는 서울세계도서관정보대회(WLIC)에 송곡여고가 방문 도서관으로 선정되었다. 외국의 사서교사, 사서 들이 학교에 방문하여 국제적으로 한국의 학교도서관 서비스를 알린 날이었다. ‘학교도서관의 주인’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던 터라 도서부 학생들이 발표하도록 했다. 사서교사와 함께한 자원봉사자 조직이 어떻게 학교도서관을 발전시킬수 있는지가 주된 발표 내용이었다. 당시 학생들과 영어로 발표를 하기 위해 준비했다. 나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서랑 도서부 학생들이 얼마나 뿌듯하던지··· 도서관이 대내외적으로 주목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잇따랐다.

2007년에는 서울 지역 무려 약 60곳 사립학교에서 사서교사를 정규직 교사로 임용했다. 이로써 서울 지역 사립고에만 109명의 정규직 사서교사가 근무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바뀌고 2008년 10월 6일에는 또 다시 사서교사 신규 채용 0명이라는 절망적 상황에 부딪혔다. 사서교사들은 다시 정부종합청사 앞으로 모였다. 다시 집회를 준비하고 사회를 맡았다. 당시 교원 정원 동결 조치에 항의했지만 결국 서울에서 퇴직교사 4명과 충남에서 5명의 사서교사를 합해 겨우 9명만 뽑혔다. 당시 서울 지역 사서교사 경쟁률이 전국 모든 과목을 통틀어 가장 높은 ‘100대 1’ 이상에 치달았다. 당시 뽑힌 사서교사들을 나와 동료들은 100대 1이라 불렀고, 그중 한 분이 전보라 서울 신목고 사서교사다.

2009년에는 송곡여고가 ‘특색 있는 학교 만들기’ 사업2)에 교과수업을 지원하는 학교도서관 협력수업 모델로 선정되었다. 이를 통해 학교도서관이 도서관에서 나아가 학교의 다양한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실제적인 장소임을 알리고자 애썼다. 이 암흑기를 다시 동료교사들과의 연대로 뚫고 가는 수밖에 없다는 직감이 들었다. 하여 사서교사로 하여금 학교교육이 바뀔 수 있음을 알리는 사례를 만들고자 부던히 움직였다. 내가 일관되게 동료 교사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다음과 같다. “교실 안 수업으로 제한하지 마라, 도서관에 학생들을 데리고 와서 책과 노트북을 활용하라. 무엇보다 사서교사와 함께 수업하라. 무엇을 목표했든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더 효율적인 수업이 될 것이다.”



2) 고교별로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특색 있는 교육 프로그램 운영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학교의 다양화 특성화를 유도하겠다는 목표로 시행된 교육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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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령인구 감소 시대, 학교도서관의 오늘을 다지려면


이천년대 초, 한 학교라도 사서교사를 더 배치하라 촉구했던 학부모, 출판인, 작가, 동료 교사 들의 에너지가 어디서 어떻게 비롯됐는지 학교도서관 운동의 주체들은 오늘날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지금, 학교도서관 운동의 방향도 점검해야 한다. 그때 제기했던 우리나라의 근본적인 교육·독서환경 문제는 나아졌는가?

학교도서관을 담당하는 전문가는 늘어났다. 자리가 안정된 무기계약직 공무직 사서들, 아직도 적지만 그동안 늘어난 정규직 사서교사들, 경기도의 사서교사나 사서, 모든 학교에 배치하라는 정책으로 생긴 교육부의 티오를 인정받지 못하고 한 해 한 해 조마조마하게 근무하는 정원 외 사서교사들··· 하지만 어쩌면 각기 다양한 인력 문제라는 프레임에 갇혀 우리가 학교도서관 운동의 외연을 좁히고 있는 건 아닌지도 돌아봐야 한다.

사서교사가 배치되면 학교도서관만이 아니라 학교 교육 시스템도 급격하게 변할 거라고 운동을 이끌었던 이들에게 내가 했던 변명이 있다. “이제 신규 교사 한 명이 학교에 들어가서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겠습니까. 이들의 10년 뒤, 20년 뒤의 열매를 봐 주세요. 그만큼의 시간은 필요합니다.” 어느덧 그 시간이 도래했다. 제도와 법률적으로도 해결할 문제들이 많지만, 학교도서관이 교내 소통의 촉매자임을, 학교 교육의 활력소임을 입증하며 살아내는 동안 학생 수는 감소했고, 2025년 초중등 교사는 3060명이 감원되었다. 이 와중에 사서교사의 정원 증가는 42명에 그쳤지만 그래도 늘어났다. 내년에도 수천 명의 교원 정원이 감축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왜 사서교사를 늘려야 하는지 묻는 이에게 우리가 각각의 교육 현장에서 감당하는 몫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서교사의 존재와 능력을 굳이 증명하면서까지 근무해야 하냐고 볼멘소리를 내는 후배 사서교사님들을 본다. 안타깝지만 우리의 현실인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사서교사가 펼쳐내는 학교도서관의 역량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학생과 교사를 생각하자. 다만 한 걸음씩 같이 걸어 가자는 말을 지면을 빌려 건넨다.



광주 1호, 고군분투 학교도서관 인생사

나라는 씨실과 학교도서관이라는 날실 엮기 ② 2006~2019년


오선지 광주 장덕고 사서교사


그리 대단한 포부 없이 입학한 공주대의 귀퉁이 강의실에서 ‘문헌정보학원론’의 첫 수업은 내게 새내기의 설렘과 함께 그때는 알 수 없었던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은 길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날 신입생들을 가만히 바라보시던 교수님은 좋은 교사이자 훌륭한 사서이기도 해야 할 사서교사의 역할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그 모델은 주로 국제적 사례에서 찾을 수 있었다.



 2006~2009  후미진 도서관, 악전고투의 시작

2006년, 티오가 0명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가, 154명으로 최종 확정되었을 때 ‘이건 계시다’ 싶었다. 내가 나고 자란 지역인 광주에서 처음으로 열네 명의 사서교사를 채용한다고 발표했다. 이제 우리의 자취가 남고, ‘가지 않은 그 길’이 곧 다른 길과 거의 같아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신규 교사 연수 때 급격히 친해진 발령 동기들과 1층의 중앙 교무실에 나란히 앉아 있다가 그들의 책상이 배정되는 것을 바라보았다. 나는 맨 나중에 4층의 구석, 후미진 곳에 위치한 도서관으로 안내받았다. 인수인계 물품은 찍찍이 쥐덫 몇 개와 어마어마하게 쌓인 교과서 더미였다.


자율학습실을 ‘움직이는 도서관’으로 만들기 위하여

당시 광주는 학교도서관 전담인력 배치율이 타 시·도에 비해 월등히 높았지만, 대부분사서 무자격자(이후 사서실무사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또는 계약제 사서(현재의 공무직 사서) 1인이 단순한 자료 관리의 수준에서 학교도서관을 운영하는 경우였다. 3학년 교실 사이에 있었기에 안 그래도 학생들 왕래가 적었던 학교도서관은 내가 부임하고 한 달쯤 후 구석으로 서가를 몰고 도서관 안에 중간 가벽을 설치해 완벽한 자율학습실이 되었다.

국어교육을 복수 전공한 이력이 있어, 학교에서는 내게 스페어 국어교사 역할을 요구했다. 7차 교육과정 시기였고, 상대적으로 진도와 평가의 부담이 덜한 ‘국어생활’ 교과 수

업을 맡았다. 착실히 교재 연구를 하고 문학 보충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학생들은 내가 국어선생님인지, 사서선생님인지 혼동했다. 위기감이 들었다. 공부하던 것과 너무 다른 현실이 당혹스러웠다. 학교도서관을 살아 움직이게 하겠다던 나의 다짐에는, ‘그래서 사서교사가 뭐냐’는 질문에는 전공 책 속 정의를 더듬더듬 말하는 것 이상의 실천이 필요했다.

혼자는 힘에 부쳤고, 조력자가 필요했다. 독서 토론부가 아닌 ‘도서관 운영 동아리’를 모집한다 했더니 낯설어하는 학생이 많았는데, 그 반응이 묘하게 재미있었다. 도서관에서

앞으로 운영할 모든 프로그램을 함께 기획하게 될 것이라 홍보했고, 그렇게 모인 학생들에게 나와 같은 ‘제1기’라는 타이틀을 붙여 주었다. 너희가 안 오면 내가 가겠다! 강당, 매점, 야외 교사 곳곳에서 열린 찾아가는 도서관, 계기교육 행사와 연계한 주제별 독서 프로그램,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독서 골든벨, 독서 활동 장려 포스터·표어 제작 대회 등은 모두 제1기에서 제4기까지의 ‘집현전’ 도서관 운영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학교도서관을 알린 캠페인이었다.


교육청과 기획한 범시민 독서운동

교과로 맡게 된 국어생활 과목은 일반 선택과목이라 수능과 직접 연계되지 않았다. 하여 교육과정을 자유롭게 구성해도 된다는 협의에 따라 독서 토론 논술 프로젝트 수업으로 진행했다. 함께 읽어 봤으면 했던 청소년소설의 일부를 복사하고, 연관된 사회적 이슈와 관련 신문 기사를 접목해 신토피컬 독서(Syntopical Reading)의 형태로 나아갈 수 있도록 했다. 프로젝트 수업에 호응이 높았기 때문에 그다음 학기에는 이 수업을 아예 방과후 보충 수업의 한 강좌로 개설했다. 당시 나의 고군분투를 예쁘게 봐 주셨던 선배 선생님이 보충 수업 담당자였고, 국영수 위주로 짜인 보충 수업 시간표를 다양한 주제로 구성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학교 관리자를 설득해 주신 덕분이다.

비슷한 시기에 광주시교육청에서는 보다 활발한 독서교육 정책을 위해 담당 장학사와 관내 사서교사와의 협의가 여러 차례 진행되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는 광주의 ‘빛고을 독서마라톤’과 관내 대부분의 학교에 자리매김한 ‘학부모 독서회’가 이때 생긴 광주의 대표적인 범시민 독서운동이다. 집현전 동아리 학생들과 사제동행 팀으로 참가하여 수상하기도 했던 빛고을 독서마라톤은 세월에 따라 변모를 거듭하다 올해부터는 전용 누리집이 사라지고 독서로의 독후활동 코너 속 ‘독서마라톤’으로 방식이 일원화된다.



 2010~2015  첫 전입교, 절망에서 살아남기

2008년 ‘제1차 학교도서관진흥기본계획’이 공표되고, 노후된 학교도서관의 현대화 리모델링 사업이 시작되었다. 전임 선생님의 세심한 노력으로 다시 디자인된 전근 학교의 도서관은 별도의 수업 공간과 웹 브라우징 코너가 마련되어 있어 학교도서관 활용수업이 이루어질 수 있는 물리적 여건이 충분했다. 그러나 환경의 쾌적함이 곧 학교도서관의 교육적 역할에 대한 필요조건으로 이어지는 데는 다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3월 초 교무부에서 보내온 파일은 교무 회의 시 교사 자리 배치표였다. 출력해서 수업 공간에 부착해두라는 것이었다. 비민주적인 학교 분위기를 감지했다. 리모델링 된 학교도서관은 온갖 교무 회의, 교과 협의, 학생 상담, 학부모 회의 등을 위한 다목적 공간이 되었다. 학교도서관 전담인력인 사서교사의 업무 분장에는 납득할 수 없는 행정 잡무가 공식화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절망의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수업을 방해해 교실에서 분리할 필요가 있는 아이들이 도서관에 모였다 흩어지길 반복했다. 도서관에서 운영하던 동아리는 이전의 지도 방식이 통하지 않았다. 학교급의 차이를 노련하게 인식하여 대응하지 못했고, 학교의 필요에 현실적으로 부응하는 방법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학교도서관의 진가를 발휘한 순간들

기초학력 지원사업인 ‘두드림 학교’가 운영되면서 나에게도 수업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동안 분리가 필요한 학생을 왕왕 맡아 왔다는 점이 참작되었다는 것은 절망의 아이러니이다. 기초학력 부진을 넘어, 등교 자체가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림책 수업을 계획했다. 사랑과 우정, 배려나 자존감 등 보편적 가치를 주제로 한 좋은 그림책을 선정하고, 이를 비슷한 주제의 청소년문학 분야 책으로 확장하는 활동을 10차시에 걸쳐 진행했다. 수업이 있다는 것을 잊고 하교해 버린 학생들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한참을 다독이고, 활자공포증(?)을 운운하는 아이들과 과거의 나를 돌아보는 인생 그래프를 함께 그렸다.

수업 이후에 이 아이들이 학습 부진에서 탈출했을까? 그것보다는 변화를 기대하는 그 과정이 교사로서의 즐거움이었다. 가장 큰 성과는 업무 분장에 가두어지지 않는 학교도서관의 진가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나에겐 2만 권에 달하는 장서가 있었고, 구석구석 내 손길이 닿은 그 책들이 내가 학생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순간마다 기꺼이 매개가 되어 주었다. 이후 마음이 통한 동료들과 전교생의 절반이 참여하는 독서동아리를 만들고, 독서 캠프, 전시와 강연, 발표와 대회를 거듭하는 동안 학교도서관은 회의보다 학생들의 모임으로 더 활발한, 살아 움직이는 곳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2016~2019  입시를 동력으로 문·이과를 아우르다

나의 세 번째 학교는 우리 지역의 명문고였다. 평준화 이후 진학 성적이 특별히 뛰어나진 않았지만 100년의 전통이 학교의 전반에 스며 있어 묵직한 아우라를 형성했다. 학생들은 도전적인 성향이 강했다. 대학 입시 전형이 크게 변화하여 수시에 학생부종합전형이 신설 되고 비교과 활동 이력이 중요하게 부상했다. 각 교과, 각 업무 부서에서 학생들의 심화 활동을 돕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특별히 참여를 독려하는 이벤트가 없어도 입시 전형 자체가 중요한 동력이 되어 학교도서관을 찾는 학생이 많았다. 각 교과 프로젝트를 준비하기 위해 질 좋은 자료를 요구하는 학생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의 정보 요구와 학교에서 열리는 여러 대회의 주제들을 분석해야 했다. 교과별 심화 탐구 키워드를 정리하고, 함께 보면 좋은 전문 자료와 단행본, 기사, 영상 자료 등을 정리했다.

학교도서관은 문·이과를 통합한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가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기 때문이다. 학교도서관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은 그래서 모두를 아우를 수 있었다. 디베이트, 서평단, 학생 저자 프로젝트, 학생 기자단, 고전 심화 읽기, 인문학 캠프, 독서 발표 한마당 등은 회차를 거듭해 가며 내실 있는 학교도서관 프로그램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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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서관, 늘 필요와 맞닿아 열정을 뿜는 곳이길

인문계고에 근무하는 해가 늘어날수록 성인으로서의 삶을 목전에 둔 학생들에게 좋은 독서교육이 무엇일까 고민한다. 나는 학생들이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각자 삶의 과제를 적확한 자료를 견주어 가며 해결할 수 있길 바란다. 모두에게 열려 있고, 각자의 호기심만큼 다양한 주제의 자료가 모여 있으며, 이것을 여러 형태로 버무려 원하는 곳곳에 손을 내미는 사서교사가 있는 곳. 그러한 학교도서관은 학생들의 성장을 넉넉히 품어내고, 그 자체로 역동적이다.

2025년, 다섯 번째 학교로의 전근을 계획하고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첫 해이자 작년에 개발한 ‘미디어 정보 리터러시’ 교육과정을 개설해 볼 기회이다. 광주의 사서교사는 아직 40명이 채 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누군가에게 나는 처음 만나는 사서교사가 될 확률이 높다. 나와 학교도서관이 그들의 필요에 맞닿아 열정을 뿜어 내는 곳이기를. 늘 신선한 즐거움이기를.


 


맛보기로 소개한 특집 외 다양한 이야기는 2025 <학교도서관저널> 3월호에 수록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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