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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이상하고 아름다운 독자의 질문&해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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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4-01-02 10:17 조회 1,46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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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이름에 '봄'이 들어가고,

엄청 재밌는 신작인데요···



정원진 구미 해마루중 사서교사



12시 20분,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도서관 문을 열고 웃으며 들어온다. 금세 이런저런 말소리들로 북적이는 도서관. 책도 읽고, 이야기도 나누고, 칠판에 낙서도 할 수 있는 도서관. 내가 만들고 싶었던 거리낌 없는 도서관. 이제는 익숙해진 그 광경을 마주할 때마다 아이들이 도서관을 편안한 공간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아 괜히 입꼬리가 올라간다. 미소 띤 얼굴로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샌가 아이들이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한다. 오전에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수업 시간에는 무얼 하냐고 묻는다. 그러다 학생들이 고요하던 나의 머릿속을 바쁘게 만드는 질문을 던질 때가 있다. “여기서 제일 인기 있는 책이 뭐예요?”나 “요즘 재미있는 책 하나만 추천해 주세요.” 같은 질문은 명함도 못 내민다.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학교도서관에 어떤 기상천외한 질문들이 날아왔을까?



특명, 책제목을 알아맞혀라!


작년에 1학년의 한 학기 한 권 읽기 독서 수업을 맡았었다. 1학년은 9반까지 있으니 일주일에 아홉 번 수업이다. 재미있고 유익한, 완성도 높은 수업을 만들고 싶어 2월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첫 시간에 어떤 수업을 할지 고민하다 나의 독서 습관을 되돌아보는 활동을 계획했다. 초등학교에서 이제 막 올라온 1학년 아이들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평소 독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한 달에 책을 몇 권이나 읽는지, 어떤 종류의 책을 읽고 싶은지 등등 아이들에게 궁금한 것들을 질문으로 만들었다. 내가 만날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더 잘 알고 싶었다.
대망의 첫 수업은 1학년 3반이었다. PPT 자료를 화면에 띄우고 퀴즈를 섞어 가며 나와 도서관을 소개하고 내 수업이 어떤 수업인지 설명해 주었다. 눈을 반짝이며 집중해서 수업을 듣고, 나의 자그마한 농담 한마디에도 까르르 웃어 주는 아이들을 보며 3반은 분위기가 참 좋구나, 하고 느꼈다. 쉬는 시간까지 15분을 남겨 두고 설문지를 나눠 주었다. 아이들은 질문을 하나하나 세심히 읽고 골똘히 고민하고 성실히 답을 채웠다. 몇 분쯤 지났을까. 한 아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선생님.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쓰는 부분 있잖아요.” 아이들이 그간 어떤 책을 읽었는지, 어떤 내용을 재미있어하는지 궁금해서 넣은 질문이었다. “제가 얼마 전에 읽은 책을 쓰고 싶은데… 못 쓰겠어요.” “왜? 내용이 기억 안 나?” “그렇기도 한데…” 아이는 말하기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고 나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 혹시, 설마. “제목을 까먹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직감했다. 그간 도서관에서 갈고 닦은 제목 맞히기 실력을 발휘해야 할 때가 온 것을. 도서관이 아닌 교실에서 제목 맞히기 놀이를 하는 날도 오는구나. 제법 긴장이 되었다. 학생과 나, 단둘이 책을 찾던 도서관에서와는 달리 스물아홉 명의 아이들 모두가 하나같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책제목을 맞혀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어깨가 무거워졌다. 길고 긴 싸움이 될 수도 있지만, 괜찮다. 도서관에서 해 오던 대로 침착하게 하면 된다. 비장하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본격적으로 스무고개를 시작했다.
“책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말해 볼래?” “작가님 이름에 봄이 들어가고, 책 크기가 작고, 엄청 재미있고, 최근에 나왔어요.” 오, 정보가 네 개나 된다. 작가님 이름에 봄이 들어가는 게 가장 큰 힌트. 머리를 굴리며 다음 질문을 이어 갔다. “등장인물 이름이 뭐니?” “기억이 안 나요.” 그래, 이름은 기억이 안 날 수 있다. 나도 종종 까먹으니까. “그럼 등장인물이 몇 살인지는 기억나니?” “아니요.” 아쉽다.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중학생인가 고등학생인가 그래요.” “여자니?” “네!”
학생과의 대화가 이어지자 설문지를 쓰고 있었던 몇몇 아이들이 손을 멈추고 나와 그 아이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보기 시작했다. “책표지가 무슨 색이니?” “노란색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한 권의 책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바로 이금이 작가의 『유진과 유진』이었다. 이 책에는 중학생 여자아이 두 명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또 신간은 아니지만 최근에 표지가 새로 바뀌어 다시 출간되었기 때문에 아이 입장에서는 신간이라고 착각할 만도 했다. 두께는 두껍지만 책 크기는 그리 크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생각한 노란색 표지는 옛날 버전의 표지였다. 새 표지는 전혀 다른 색인데 아이가 최신 버전의 책을 읽었다면 표지 색깔을 노란색이라고 말했을 리가 없다. 이마에 식은땀이 절로 났다. 그렇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꼭 제목을 맞히고 싶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스무고개를 이어 갔다.
“작가님 이름에 봄이 들어간다고?” “네, 확실해요.” 큰일이다. ‘봄’ 자가 들어가는 작가의 이름은 내 머릿속에 아직 등록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봄’ 하니까 노래 제목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봄날>, <우연히 봄>, <봄 사랑 벚꽃 말고>… 그 와중에 태연함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책 내용에 대한 힌트가 부족하다. 질문 하나를 더 던졌다. “제일 인상 깊은 장면이 뭐야?” 아이는 잠깐 고민하다 답했다. “맨 마지막 장면이요. 반전도 있고 엄청 스릴 넘쳤는데, 기억이 잘 안 나요.” ‘반전’과 ‘스릴’이라는 단어가 내 귓가에 딱 꽂혔다. 그 두 단어를 듣는 순간 갈피가 단번에 잡혔다. 여학생이 주인공이면서 스릴 넘치는 반전으로 마무리되는 책. 작가님 이름에 ‘봄’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단어 ‘꽃’이 들어가고, 책표지가 연한 베이지색인 책(앞으로 책제목 맞히기를 할 때는 표지 색깔은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2021년 6월에 출간되었으니 아직까지는 신간이라 생각할 수 있을 법한 책. 책 크기가 작고 두께도 얇은 편이라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거부감 없이 집어 들고 단숨에 읽어내는, 작년 우리 도서관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책. 청소년 소설계의 대가, 이꽃님 작가의 『죽이고 싶은 아이』가 아닐 수 없었다. 책제목을 말하자마자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어떻게 맞히셨냐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와∼ 탄성으로 가득 찬 교실에서 거만한 표정을 하고서는 멋있는 척 한 마디를 내뱉었다. “얘들아, 이게 사서교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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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서비스 학생들과 답을 찾아가는 과정

이토록 재밌고 순수한 질문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학교도서관이다. 그렇지만 사서교사는 도서관에만 있는 게 아니다. 참고서비스는 도서관 밖에서도 행해질 수 있다. 작가의 이름과 책제목을 스무고개로 추리해야 했던 위 질문도 도서관 밖에서 행한 참고서비스의 사례이다.
‘참고서비스’ 하면 국립중앙도서관의 ‘사서에게 물어보세요’ 서비스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이는 다양한 정보원을 찾아 이용자의 정보요구에 맞는 결과를 솎아내어 제시해 주는 정보서비스로,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참고할 만한 성 소수자 인권 관련 자료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라고 물으면 주제에 맞는 다양한 자료를 단행본, 논문, 기사, 영상 자료로 나누어 제공하는 그야말로 경이로운 서비스다. ‘사서에게 물어보세요’ 서비스와 비교하면 나와 아이들의 책제목 맞히기 놀이는 한없이 작고 가벼워 보인다. 그렇지만 어른들이 보기엔 별것 아닌 것 같은 ‘기억나지 않는 책제목을 찾는 일’이 아이들에겐 너무나도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학교도서관에서의 참고서비스는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참고서비스의 결과보다 참고서비스를 진행하는 과정이 갖는 의미가 훨씬 더 크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과정 속에서 교사와 학생이 어떻게 소통하는가이다. 내가 원하는 책을, 기억에서 잊힌 책의 행방을,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요즘의 고민을,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사서선생님과 함께 진지하게 이야기하며 답을 찾아 나가는 일련의 과정. 서로의 눈을 맞추며 말을 나누는 시간은 그 자체로 아이들이 더 나은 사람이 되게끔 돕는다고 믿는다. 아이들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인지하고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며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연습을 학교도서관에서 조금씩 해 나간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소한 질문에도 환히 웃으며 함께 답을 찾아 나가자고 기꺼이 손을 내미는 사서교사가 있다. 오늘 점심시간에는 아이들이 어떤 질문 보따리를 싸서 올까. 해마루중 학생들이 던졌던 유쾌하고, 솔직하고, 당돌한 질문들을 소개하며 글을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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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책방 내고 싶은데,

어떻게 준비하면 되나요?

어린이·청소년책방의 멸종을 막기 위해

예비 서점인에게 드리는 글



김선희 민들레글방 대표



글방 서가에 새로 나온 책을 들여놓았더니 어린이 회원 한 사람이 재깍 알아본다. “『도깨비폰을 해지하시겠습니까?』가 나왔네요? 『도깨비폰을 개통하시겠습니까?』 2편이에요? 와··· 2편 진짜 많이 기다렸는데 이제야 나오다니. 배신이다, 배신!” 회원은 얄밉고도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한 표정이다. 독한 말을 쏟아부은 참이긴 해도 새 책이 구겨질세라 조심조심 책을 펼쳐 드는 저 모습이란. 나는 이 설레는 만남을 방해하지 않으려 살짝 뒤로 물러선다.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가 싶다. 뒤이어 글방에 들어온 성마른 청소년 회원은 계산대 앞에서 다짜고짜 나를 혼낸다. “이렇게 장사해서 어쩌려고 그래요. 할인 좀 팍팍해 주면 안 돼요? 인터넷 서점처럼, 네? 네?” 무인 운영 시간에 손님들이 작성해 두고 가신 책 구입 목록표를 보며 하는 말이다. ‘글방 수익 걱정은 네 몫이 아니거든!’ 하고 반격하려다 참는다. 다 글방 잘되라고 하는 말이지 싶어서, 글방을 진심으로 염려하는 잔소리로 들려서 말이다. 나는 어린이·청소년 손님의 질문과 훈계에 쩔쩔매면서도 어쩌면 이들 덕분에 동네 책방이 멸종될 일은 없겠다고 안심한다. 유아 전집 판매점보다 독서논술 학원보다 어린이·청소년책방이 더 많은 세상을 조심스레 꿈꾼다. 이토록 문학에 충성도 높은 독자를 만드는 일이 바로 어린이·청소년책방의 최우선 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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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방은 남는 장사인가요?


경북 포항 남구에 위치한 민들레글방은 2019년 8월 5일에 문을 열었다. 어린이가 독자로 첫걸음을 내딛는 장소가 되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그저 순진했는지도 모르겠다)으로 유아 전집, 학습만화, 참고서, 문제집, 문구류, 음료 등 팔고 싶지 않은 어떤 품목도 글방에 들이지 않았다. 정작 그것들이 ‘돈’이 되는 상품들이라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지만 다시 고려해 볼 일은 안 되었다. 민들레글방 운영은 확실히 남는 장사라는 확신이 점점 더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교보문고 설립을 준비하던 신용호 선생의 말을 읽은 적이 있다. 

“사통팔달 한국 제일의 목에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 줍시다. 이곳에 청소년들이 와서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합시다.
이들이 커서 훌륭한 작가나 대학교수가 되고 노벨상을 타고 대통령이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 얼마나 보람 있는 사업입니까?”

혹시 어느 어린 손님이 글방에서 만난 책에 푹 빠져 책 읽기의 재미를 깨우친다면? 혹시 어느 글방 회원이 함께 읽은 책의 매력에서 헤어날 수 없어서 책을 쓰는 사람, 책을 만드는 사람, 책을 파는 사람이 된다면? 그렇다면 어린이책방을 운영하는 일은 예비 작가, 예비 출판인, 예비 서점인을 위해 연금을 들어 놓는 일이다. (...)

 

어떤 책을 진열해야 잘 팔리나요?

 
어렵고 난감한 질문이다. 이 질문은 곧, 선물 받을 사람의 책 취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제일 잘 팔리는 책을 추천해 달라는 질문과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일본 그림책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는 『있으려나 서점』에서 서점은 “장차 탄생할 명작을 위해 투자하는 곳”이라고 했다. 이 정의는 서점인의 본분이 무엇인지 잊지 않게 해 준다. 잘 팔리는 책을 진열하는 것 이상으로 꼭 팔아야 하는 책을 위해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은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린이책방에서 꼭 팔아야 하는 책은 어떤 책일까? 

어린이책방이 새로 생겼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글방 초창기에 많은 손님이 찾아왔다. 좀더 정확하게는 어린이·청소년 손님보다는 유아나 어린이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주 고객층이었다. 손님들은 해외 그림책 수상작, 교과서에 수록된 교과 연계 도서, 유명 대학교에서 추천한 필독서를 주로 찾았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책들은 준비하지 않았다. 글방에 마련해 놓은 책은 ‘도서관 책 읽어 주기’를 할 때 아이들에게 반응이 좋았던 그림책, 내 딸아이가 잠자리에 들 때 수십 번 넘게 읽어 달라고 부탁한 책, ‘동화 읽는 어른’ 책모임의 활동가들에게 호평을 받았던 책들이었다. 나름대로의 임상을 마친 책이라 자부할 수 있었다. 책은 읽을 사람이 스스로 골라야 하는데, 정작 책 읽을 손님은 나타나지 않고 그들의 대리인은 좋은 책보다는 유명하고 유용한 책에 한정해 지갑을 여니 참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물론 이것은 철저히 서점인의 사정을 말하는 것이니 오해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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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방에 들락날락하는 한 어린이 독자는 유은실 작가의 전작을 찾아내 읽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어느 날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을 읽고선, “린드그렌 선생님은 진짜 있었던 사람이에요?” 하고 묻길래, 나는 “그럼∼ 나도 엄청 좋아하는 작가님이야. 삐삐 알지? 말괄량이 삐삐! 그 이야기를 쓰신 분!” 하고 답했다. 독자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나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작가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추천했다. 이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는지 독자는 걸핏하면 이야기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사람답게 살지 않으면 쓰레기나 다를 게 없어!” 이 구절의 무게를 독자가 아는지 모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언젠가는 꼭 알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스스로 깨우치는 어린이 독자가 신통방통할 따름이다. 릴리언 스미스의 말이 맞았다. 그는 『아동문학론』에서 “참된 가치가 있는 책, 성실하고 진실한 비전이 있는 책, 어린이가 읽어서 성장할 수 있는 책만 어린이의 손에 쥐여 주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장하는 것이 어린이의 천성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나는 서점인이 된 다음 어떤 책을 진열해야 하냐며 묻는 어린이에게 ‘헌신하는 작가의 책’을 팔라고 말하고 싶다. 부모와 선생에게 잘 보이려는 책 말고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을 응원하고 지키기 위해 쓰인 책 말이다. 이런 책을 읽고 자란 어린이가 다음 세대 어린이에게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분명하게 믿는다. 

 

 

어린이책방 주인은 어린이를 꼭 사랑해야 하나요?


네다섯 살 먹어 보이는 어린이가 부모와 함께 글방을 찾아와 그림책을 뒤적이다가, “그림만 예뻐. 재미있는데 진심으로 재미있는 데가 없어. 재미있지가 않아. 뭔가 진심으로 재미있지 않아.” 하는 평을 털어놓았다. 이 예사롭지 않은 어린 비평가의 부모는 자녀의 말이 서점인에게 무례하게 들릴 것이라 염려되었는지, 어린이의 말끝마다 “예쁜 말 해야지!”, “자꾸 싫은 말 하면 사장님에게 혼난다!”, “다음에는 책방에 같이 안 올 거야!” 하는 훈육의 말을 덧붙였다. 어린이는 마음이 고되어졌는지 보던 책을 덮어 버리더니 “책 재미없어! 안 봐!” 하며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마음에 드는 책이 없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책 보는 재미에 꽤 빠졌었는데··· 그 마음을 읽어 주고 싶어서 나는 어린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재미있는 책이 없어서 미안해요. 다음에는 아줌마랑 같이 찾아봐요.” 어른의 어떤 태도는 어린이를 업신여기는 행동이 될 수 있다. 이제 막 움트는 새 마음을 무심코 밟아 죽일 수도 있다. 어린이책방을 운영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어린이를 그저 귀엽게 여기기보다는 어린이가 자신만의 책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응원하고 지지해 주었으면 한다. 자신이 어린이였던 시절을 잊지 않고 말이다. 
(...) 어린이와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만으로도 어린이책방 주인 자격은 충분하다(이렇게 같은 편에게 응원을 보내 본다). 다만 한마디를 보태자면, 어린이책방 주인은 서점인인 동시에 어린이 운동가나 다름없는 정체성을 지님을 기억해야 한다. 아동문학가 방정환은 “어린이 운동가는 어린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어린 사람을 상대로 하는 데는 다른 무엇보다 책임이 무겁다. 그러므로 아주 썩 노숙한 보모 역을 하는 한편으로 어린 사람과 꼭 같은 순진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린이는 새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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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지 않고 책방을 운영하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가요?


“서점이 참 예쁘네요. 이곳만의 분위기가 확실히 있어요. 책장과 테이블은 어디서 구입하셨나요?
혹시 임대료는 얼마나 내는지 물어봐도 되나요? 저도 이런 가게를 차려 쉬엄쉬엄 놀면서 장사하고 싶어요. 오호호∼ 사장님, 진짜 부럽네요!”

자신이 ‘갑’이라고 생각하는 손님의 무례한 질문에 질려 글방에 머무는 시간이 고역인 때가 있었다. 공간을 연 지 일 년이 채 안 되어 코로나19 시국이 닥치는 바람에 그나마 찾아 주던 단골들의 방문도 뜸해졌다. 나도 어린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주 양육자인지라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 책모임이 없는 시간에 글방을 무인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사각지대가 없도록 CCTV 설치도 마쳤다. 회원들의 걱정이 대단했다. “아니, 도둑이라도 들면 어쩌려고 그래요?” 단언컨대 지금까지 단 하나의 분실품도 확인한 바가 없다(어쩌면 어리바리한 주인장이 미처 확인하지 못한 물건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굳이 책을 도둑질하려는 마음을 가지지 않을 것이고, 도둑이라면 굳이 책방에 들어와 훔칠 물건을 찾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맞았다. 
책방 운영자는 1인 사업장에서 혼자 일하는 자영업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말인즉슨, 일터의 운영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고 자기 복지를 실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혼자서도 잘 놀고, 작고 사소한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 서점인으로 적합하다. 글방에 들어온 어린이 독자가 묻는다면 아마도 그리 답할 것이다. 책에게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이 세계를 지키고 싶다고 작정한 사람이 오래오래 이 일을 할 수 있다. 책방지기는 직업의 세계 가장 후방에 머무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영원불멸의 세계 가장 최전방에 선 사람인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존재 이유를 찾아 존재해야 한다. 그렇게 자기 일에 지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꼭 책방 운영이 아니어도 무슨 일이든 좋다.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책으로 가는 문』에서 어린이문학은 독자가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 생각하도록 쓰인 글이라 했다. 아동문학가 이오덕은 『삶을 가꾸는 어린이 문학』에서 잘못된 환경과 교육에서 입은 독소를 풀어 주는 일이 어린이문학이 해야 하는 가장 큰일이라고 썼다. 훌륭한 말씀이다. 어린이책방은 어린이문학을 지키는 곳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큰 어른들의 글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 짓자니 참 부끄럽다. 나의 말이 아직 태어나지 않았음을 선명하게 느끼는 탓이다. 다 자기 그릇대로 사는 것이지 싶다. 내가 한 걸음 야무지게 내딛으면 다음 사람이 또 한 걸음 든든하게 내딛겠거니 생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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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생신 준비를 하려고요.

미역국은 어떻게 끓이나요?

 

구혜진 전남 매안초 사서교사



우리 학교도서관은 매일 아침, 거대한 물음표의 향연으로 시작된다. 아이들이 하나둘 도서관에 들어올 때마다 나에게로 향하는 물음표도 함께 통통통 다가온다. 아침의 싱그러운 공기 속에서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나누려는 어린이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이 도서관을 가득 채운다. 이를테면 이런 물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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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어린이들은 아침부터 나에게 물음표를 한가득 날린다. 물음표를 선물 받았으니, 느낌표나 마침표로 답하는 것이 인지상정. 우선은 “얘들아, 그렇게 다 함께 물어보면 한꺼번에 답할 수 없잖아. 한 명씩 순서대로 차례차례 이야기하자.”라고 얘기하고, 아이들의 질문에 하나씩 답해 나간다. 어린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일은 언제나 큰 기쁨이다. 하나하나의 물음표에 답하고, 어린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순간은 도서관이 풍성한 지식의 바다가 되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렇듯 학교도서관은 어린이들의 귀여운 궁금증이 꽃피는 곳이며, 그 꽃들이 피어나는 모습은 늘 나를 기쁘고 즐겁게 한다.



"직접 끓인 미역국을 선물하고 싶어요"

학교도서관에서 아이들과 나눈 다양한 질문과 대답 속에서, 특별했던 순간이 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선생님, 며칠 후에 저희 엄마 생신인데요. 선물을 드리고 싶어요.”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래 어떤 선물을 생각하고 있는데?” 물었더니, “엄마는 항상 제 생일에 맛있는 미역국을 끓여 주시거든요. 저도 엄마께 직접 끓인 미역국을 선물하고 싶어요. 미역국 끓이는 법을 알려 주는 책이 있을까요?”라고 질문했다.



첫째, 요리책 함께 찾아보기

뜻밖의 질문에 놀랐다. 엄마의 생일을 담뿍 축하하기 위해 무엇을 선물할지 고민했을 아이의 모습이 내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었다. 아이의 질문을 통해 나는 어떻게 타인을 환대하고 축하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기회를 얻었다. 이제 그 순간들을 함께 소개해 보고자 한다. 우선 엄마의 생신을 축하하는 특별한 방법을 물색할 시간이다. 미역국을 끓여서 부모님께 선물하고 싶다는 아이를 위해, 우리는 먼저 요리법을 알려 주는 책을 함께 찾아보기로 했다. 요리에 관한 책들이 꽂힌 590번대 서가에 가서 도서관이 소장하는 요리책들을 찬찬히 함께 살펴보았다. 도서관에 꽤 여러 권의 요리책이 있었지만, 미역국 레시피를 알려 주는 책은 거의 없었다. 다행히 『열두 달 토끼 밥상』(김정현)에서 미역국 끓이는 방법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이 책을 참고하기로 했다.

둘째, 공공도서관 서비스 연결하기
우리 학교도서관에는 미역국 끓이는 방법이 담긴 책이 한 권밖에 없어서 인근 도서관 자료를 더 검색해 보기로 했다. 도서관 홈페이지에 접속해 ‘미역국’이라고 검색하자, 『내가 끓이는 생일 미역국』(고은정)이라는 책이 검색 결과로 나왔다. 급하게 필요했기 때문에 상호대차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신 도서관에 직접 방문하여 책을 빌려 왔다. 『내가 끓이는 생일 미역국』은 미역국을 끓일 때 필요한 재료부터 만드는 방법까지 자세하게 소개하여 아이에게 안성맞춤이었다. 우리는 함께 책장을 넘기며 미역국 끓이는 방법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책 속에도 미역국 만드는 방법이 자세히 쓰여 있었지만, 미역국에 넣을 소고기는 어디에서 사야 할지, 국의 간은 어떻게 맞출지 등은 직접 알려 주기도 했다. 

“사서선생님, 이 책에서 알려 주는 방법이랑 선생님께서 얘기해 주신 대로 하면 미역국을 제대로 끓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엄마께서 제가 끓인 미역국 좋아해 주시겠죠?”

아이의 목소리에는 기대감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요리하면서 칼을 쓸 때나 불을 켤 때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해. 그때는 아빠나 언니, 오빠의 도움을 받아 함께하면 좋을 거야.
엄마께 멋진 생신 선물 드리렴.

내가 직접 선물을 드리는 것처럼 무척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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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연주회를 하는데 어떻게 축하해야 할까요?"

한 학생이 어느 날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제 친구가 이번에 피아노 연주회를 한대요. 너무 멋지죠. 축하해 주고 싶은데 어떻게 축하할지 고민이에요!” 나는 “종이접기로 작은 꽃다발이나 따뜻한 축하 카드를 만들어서 선물하는 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그 학생은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저 종이접기 좋아해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종이접기에 관한 책 추천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먼저 도서관 검색용 컴퓨터를 활용했다. ‘종이접기’라는 검색어를 입력하자, 다양한 종이접기 책이 검색되었다. 서가에서 책을 고르기 전에, 아이는 종이접기 책들의 청구기호를 메모했다. 서가에서 책을 펼치며 각각의 책이 어떤 꽃모양이나 축하 카드를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는지 살펴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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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와 기쁨을 전하면 생겨나는 일

얼마 후, 미역국 레시피를 찾았던 학생이 엄마 생신에 미역국을 맛있게 만들었다고 말해 주었다. 엄마께 선물한 따뜻한 미역국에 그 아이의 예쁜 마음이 담겨 더욱 특별한 맛을 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친구의 피아노 발표회를 축하하며 손수 만들었던 꽃다발을 선물한 아이는 선물 받은 친구가 매우 기뻐했다고 전해 주었다. 이런 감동적인 순간들에 도서관이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뿌듯한 마음이었다. 학생들의 질문을 통해 책으로 전해진 작은 도움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깨달았다. 또한 서로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다시 한번 느꼈다. (...)

학교도서관은 언제나 더 나은 참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생들의 소소한 물음을 통해 다양한 지식을 나눈다. 이는 학교도서관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즐거움이 되고 있다. 책은 단순히 지식을 전하는 수단이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을 알려 주는 소중한 매개체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호기심을 키우고 지식을 쌓아 가는 과정에서 학교도서관은 학생들에게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더 나은 참고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이뤄지는 어린이들의 성장과 지식의 나눔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늘 새롭게 깨닫는다. 학교도서관은 작은 공간일지라도 큰 세계를 품고 있다. 어린이들의 궁금증은 끝없는 지식의 나눔을 통해 더욱 풍성한 미래를 열어젖힐 것이다.


 

맛보기로 소개한 특집 외 다양한 이야기는 2024 <학교도서관저널> 1+2월호에 수록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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