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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지금, 성평등 책을 읽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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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10-04 14:00 조회 767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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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도서 금서 논란,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진숙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부뜰’ 충남인권교육모임 활동가)



지난 8월, 충남에선 ‘공공도서관을 향한 성평등 책 금서 요구,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차제연)’와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이하 충남차제연)’, ‘충남청소년인권더하기’가 공동으로 주최한 토론회에는 인권활동가, 어린이책시민연대, 책 읽는 모임, 성교육 강사와 도서관 관계자 들까지 많은 사람이 모였다. 성교육 도서를 금서로 지정하고 퇴출하라는 요구의 부당함을 논하고 왜 지금 그 책들이 금서가 돼야 하는지 맥락을 살폈다. 공공도서관과 사서의 역할과 권리, 금서를 둘러싼 성평등과 민주주의의 퇴행에 어떻게 대응할지 모색했다. 토론회는 충남차제연에 접수된 한 시민의 제보로 시작되었다. 첫 제보는 특정 학부모 단체에서 자신들이 보기에 어린이·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여겨지는 책들(나다움 어린이책 선정 도서 등)’을 공공도서관의 어린이·청소년 서가에서 일반 서가로 옮기라고 주장하는 홍보물을 도서관에 비치하도록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제보는 이들이 지속적인 전화와 방문으로 도서관 종사자들을 괴롭혀, 사서들이 ‘민원’에 대응하며 극심한 스트레스로 분노와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충남차제연은 최초 제보 이후 연대하는 단체들과 해당 도서를 함께 읽으며 이야기 나누는 릴레이 책담회를 진행하던 중에 두 번째 제보를 받았다. 사태가 심각함에 따라 공론화를 위한 토론회를 추진했다. 당시 우리는 사태가 이렇게 커질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비상식적인 행태라 언론을 통해 공론화된다면 큰 무리 없이 정리되지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상황은 지방의원과 단체장이 가세하고 다른 지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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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금서로 지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처음 ‘다학연’이 제기한 내용은 그들이 배포한 ‘도서관에서 살아남기’ 홍보물에서도 볼 수 있듯 아이들을 조기 성애화, 페미니즘, 동성애와 성평등으로부터 살아남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페미니즘과 성평등은 모두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가치이고, 동성애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적 지향의 하나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 상식이기에, 이러한 가치로부터 아이들을 구하겠다는 발상은 어떻게 나온 것인지 의아했다. 충남차제연은 이들의 주장이 정말 무엇인지, 폐기하라는 책들이 어떤 책들인지 궁금증을 가지고 책담회를 진행했다. 그 결과 책이 나온 지 오래되어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오히려 성평등 가치에 부족한 점이 있는 책들도 있음을 알게 되었고, 성이 궁금한 청소년뿐만 아니라 비청소년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친절한 안내자 역할을 하는 책들도 만났다. 특히 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겐 책이 주는 정서적 위로와 공감의 힘이 얼마나 클지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다학연은 조기 성애화를 불러오는 책이란, ‘성적 호기심, 성적 충동을 과도하게 극대화하는 책들’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은 『사춘기 내 몸 사용 설명서』 등의 책에 나오는 “서로의 몸을 안아 하나의 성기에 다른 성기를 넣어”, “섹스를 하면 우리 몸에서 행복 호르몬이 나와” 등의 문장과 여성과 남성의 생식기를 표현한 삽화가 조기 성애화를 불러온다고 주장한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성교육 도서’가 사람의 몸과 성, 성관계에 대해 과학적 정보를 전달하며, 바람직한 성에 대한 태도를 알려 주는 것은 당연한데, 이것이 조기 성애화를 불러온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오히려 문제는 어린이·청소년이 성교육 도서가 아니라, 바람직하지 않은 경로로 왜곡된 성을 접하는 것이다. 성교육 도서가 성적 충동을 극대화한다는 주장은 객관적인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청소년은 무성적 존재도 아니다. 모든 사람이 성적 존재이며, 어린이·청소년이 성에 호기심을 갖는 것은 금지할 수도 없을뿐더러 금지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 다학연 등은 왜 성교육·성평등 도서 열람을 제한하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이는 2020년 여가부의 나다움 어린이책 회수 사건과 연결된다. 여가부는 2019년부터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남녀 성역할에서 벗어난 ‘나다움’을 위해, 좋은 책을 골라 학교에 보내는 ‘나다움 어린이책 사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한 국회의원이 나다움 어린이책 134종의 책 중에서 7종의 책을 거론하며 “조기 성애화가 우려된다, 동성애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표현한다.”라고 비판하자, 다음 날 바로 여가부는 학교에 배포된 해당 도서를 모두 회수했다. 일부 기독교계 매체에서 도서 내용을 문제 삼으며 민원을 넣고, 국회의원의 발언이 보도되고, 논란이 되자 성평등에 앞장서야 할 여가부가 성평등 지향을 포기한 것이다.이는 성평등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더욱 부추기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성소수자’, ‘섹슈얼리티’와 더불어 ‘성평등’ 용어가 삭제되자, 다학연 등은 교육과정이 바뀌었으니 교육청 산하 공공도서관에서 성교육·성평등 도서를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금서나 도서 검열에 대해 도서관과 시민사회는 강하게 저항했고 성평등과 페미니즘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시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자 최근에는 성교육·성평등 도서들에 ‘음란도서’ 프레임을 씌워 몰아가고 있다. 맥락을 지우고 특정 단어를 문제 삼아 어린이·청소년이 알면 안 되는 단어가 있으니 폐기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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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를 둘러싼 혐오의 정치와 빼앗긴 권리

충남차제연이 책담회를 열고 확인한 것은 다학연 등의 주장이 결국 성평등 반대와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를 선동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일부 편집된 문장과 삽화, 특정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며, “어린이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며, “유해, 위험, 음란하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면 미처 책을 읽지 않은 시민들은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어린이·청소년을 위험한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은 마음, 불안한 마음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필요한 것은 위험한 세상으로부터 무언가를 금지하는 보호가 아니라, 자유롭게 다녀도 위험하지 않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고, 무엇이 왜 위험한 것인지 따져 보는 것이다. 읽어 보고 따져 보고 배울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답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부 정치인들은 다학연 등의 주장에 동조하며 법적 근거도 없이 열람 제한 조치를 했다. 이러한 검열로 도서관과 사서의 지적 자유와 윤리, 사명을 위협하고 자유롭게 책을 읽을 시민의 권리를 빼앗고 있다. 기본권인 학문·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는데, 이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서 시작된 것이다. 조직적으로 지역을 순회하며 진행하는 ‘음란도서 퇴출’ 기자회견은 혐오에 포섭된 정치의 민낯을 보여 준다. 


바람직한 독서, 자유롭게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금서 요구에 대해 시민들은 당신들이 왜 책의 유해성 여부를 판단하느냐고 물었고, 판단할 권력을 누가 주었냐고 물었다. 어떤 독자는 유해하다 느낄 수 있고, 어떤 독자는 유익하다 느낄 수 있는데, 판단은 각자가 자유롭게 하는 것이기에 자신의 판단을 타인에게 강요할 순 없다. 강요는 폭력이다. 그렇다면 어떤 책이 청소년에게 바람직할까? 인권 감수성을 깨우는 책, 감동을 주는 책, 자신을 이해하고 관계를 건강하게 하는 책을 꼽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책은 어떨까’ 하고 제안할 수는 있지만 정할 수는 없다. 모든 청소년이 동일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고, 청소년 한 명 한 명이 각기 개별적인 존재라서 그이에게 바람직한 도서를 읽으라고 정할 수도 없다. 책은 독자를 만나 의미를 갖는다. 필요한 것은 ‘바람직한 도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바람직한 독서’가 아닐까. 그래서 홍성군 홍동밝맑도서관에서 열린 ‘금서 읽기 대축제’가 정말 반갑고 힘이 난다. 널리 방방곡곡 마을마다 학교마다 금서 읽기 대축제가 열리면 좋겠다.



이다 작가에게 듣는다

금서로 거론된 『걸스 토크』를 쓰고 그린 작가와의 일문일답



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Q. 『이다의 허접질』(2003) 출간 이후 여성의 감정을 건강하고 솔직하게 표현해 많은 마니아층을 확보하셨지요. 이후 여러 작품을 내시며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삽화 작업·도서 출간도 꾸준히 해오셨는데요. 십 대를 위해 주로 어떤 이야기를 쓰고 그리시나요? 

A. 저의 장기 목표 중 하나가 동화를 그리는 것입니다. 처음에 어린이·청소년 책을 작업하게 된 것도 미래의 작업에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고요. 또 어린이·청소년의 세계를 잘 알고 싶은 마음이 있어 작업을 꾸준히 하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혼란스러울 소녀들을 위해 『걸스 토크』를 쓰고 그렸고, 청소년 페미니즘 입문서인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삽화를 그린 청소년책으로는 남자 청소년들의 자립을 위한 『소년이여, 요리하라!』, 아프리카의 역사를 다룬 『아프리카 쟁탈전』, 청소년들의 미디어 리터러시 함양을 위한 『소셜미디어는 인생의 낭비일까요?』 등이 있습니다. 또한 제 책 중에 『이다의 자연 관찰 일기』, 『내 손으로, 치앙마이』는 어른을 위해서 쓴 책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이 더 좋아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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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최근 경기, 충청 지역 학부모단체에서 지정한 117종 유해도서 목록에 작가님께서 내신 『걸스 토크』가 포함되었습니다. “어린이·청소년에게 유해하다.”, "조기 성애화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문제를 제기했는데, 이들 입장에 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자신의 아이를 순수하게 지키고 싶다는 마음만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감추어 놓고, 비밀로 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모르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요즘 아이들은 정말 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어른이 미리 알려 주지 않는다면, 책으로 미리 배우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오히려 다른 곳에서 더 자극적이고 그릇된 성 지식을 습득하게 됩니다. 부모가 아이와 환경을 모두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책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에 나오는 구절 중 충청 학부모단체에서 문제로 삼으시는 것이 “애는 아빠 꼬치랑 엄마 잠지가 만나면 생긴다.”라는 문장입니다. 이건 저희 엄마가 제가 11살 때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정자와 난자니, 배란기니 이런 어려운 말보다도 바로 머리에 꽂히는 지식이었고요. 간단명료해서 혼란스럽지도, 고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제 어머니의 교육이 참 시의적절했던 것이, 딱 이때부터 학교에서 남자아이들이 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여자아이들을 놀리거나 희롱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엄마에게 정확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아마 이때 남자아이들의 말을 통해 (아이가 생겨나는 과정을)알게 되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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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걸스 토크』는 ‘서울시립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에서 제작하는 청소녀 건강수첩에 들어가는 일러스트 작업에서 출발한 책이기도 하지요. 당시 센터 내 책자 일러스트 작업을 시작한 이유, 단행본으로 확장하면서 책을 만든 과정을 자세히 들어보고 싶어요. 

A서울시립십대여성건강센터 나는봄은 여성 청소년들의 건강에 도움을 주는 활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성 지식과 피임법, 성병 예방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데, 아시다시피 대다수 아이들은 글로만 적혀 있으면 잘 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솔직하고 재미있는 짧은 만화를 부탁하셨어요. 종종 아이들은 어른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잖아요. ‘이러이러한 걸 조심해야 돼!’라고 명령하듯 말하면 아예 그 메시지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요. 그래서 저는 일단 제 얘기를 솔직하게 풀어 놓으면서 아이들에게 정보를 슬쩍 전달해 주는 방법을 취했습니다. 이후 제가 삽화 외주 작업을 하고 있던 시공주니어에서 청소녀 건강수첩을 보게 되었고, 이런 책이 있다면 소녀들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셔서 단행본으로 작업한 것입니다.


 Q. 여성을 쉽게 성적 대상으로 삼는 사회 분위기를 짚고, 나를 지키는 방법을 십 대 소녀들이 알 수 있도록 자전적 경험을 책에 녹여내셨어요. 어떤 대목들을 청소년에게 가장 전하고 싶었나요? 

A『걸스 토크』의 제5장 “나 말고는 누구도 결정할 수 없는 것: #나의_성_이야기”의 “나를 사랑한다면 섹스” 파트가 제가 제일 하고 싶던 말을 담은 장면들이에요. 여성청소년이 연애를 시작하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 남성의 욕구에 끌려가게 되는 일이 많이 생깁니다. 저도 그런 부분 때문에 다소 상처를 입기도 했고요.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꼭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성관계를 알려 주는 책이 아닙니다. 성관계의 즐거움을 알려 주는 책도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관계를 한다면 후회한다고 말하는 책입니다. 책을 읽어 보시면 스킨십을 이야기하다가 교묘히 임신을 말하는 장면이 이어지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나를 사랑한다면 존중해”장, 120쪽). 책에는 성관계 묘사가 아예 나오지 않습니다. 여성 청소년들이 자신의 몸과 성관계가 무엇인지 알되, 지나친 환상을 가지지는 않게 일부러 연출한 것입니다. 오히려 성관계가 가볍고 즐거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해 한번 더 생각해 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읽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오히려 성관계가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아이가 이 책을 읽고 성관계에 대해 오히려 약간의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부모님들도 계시고요. 특히 여성 청소년의 성관계는 자신의 욕구를 잘 아는 상태에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제가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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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우리 사회는 (나의 성적) 욕망을 다스리는 법을 터부시하는 문화가 강합니다. 한편에서는 양육자가 청소년의 건강한 성 인식을 위해 최소한의 검열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자녀를 위한 '최소한의 검열'이 있다면, 들어보고 싶어요. 

A저도 최소한의 검열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반대하는 것은 남성이 여성에게 강제적으로 또는 그루밍(신뢰 관계를 쌓아 성을 착취하는 행위)을 통해 성적 행동을 하는 장면, 또는 그런 것이 로맨틱하거나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것입니다. 남성 청소년에게는 이런 행동을 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주고, 여성 청소년에게는 그런 것이 로맨틱한 것이라는 왜곡된 성 시각을 심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Q. 해외에서는 '포괄적 성교육(성에 대한 인지, 감성, 신체, 사회적 측면을 종합적으로 가르치는 교육)'을 실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국내 성교육은 여전히 폐쇄적인 흐름에 놓인 듯한데, 십 대 청소년으로 돌아간다면 교사나 부모에게 어떤 성교육을 받아 보고 싶나요? 

A ‘나’라는 자아를, 그리고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성교육을 받고 싶습니다. ‘결혼하기 전까진 절대 성관계해서는 안 된다’가 아니라 ‘여성이 원하지 않으면 절대 성관계해선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여성도 성관계를 원할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단지 남자는 늑대고, 그런 남자에게서 나의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그런 말은 오히려 남자가 강력하게 원한다면 어쩔 수 없다는 뜻으로 들렸습니다. ‘한번 순결을 잃으면 망하는 거다’라는 극단적 메시지로도 받아들여졌고요. 제가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고, 나를 가장 먼저 생각해도 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실수를 많이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Q. 작가로서 생각하시는 '건강한 성교육 도서를 고르는 기준'을 자유로이 알려 주세요. 끝으로 성에 대한 호기심이 한창일 청소년들에게 메시지를 전하신다면요? 

A 『걸스 토크』를 정독하지 않고 일부만 보면 자극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내 몸을 잘 알고, 현명한 판단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들과 자극적인 장면들로 넘쳐납니다. 인터넷을 5분만 해도 폭력적인 성과 그릇된 성의식을 바로 만나게 됩니다. 책으로 배우는 것이 제일 안전합니다. 부모님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책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개인이 결정하실 수 있습니다. 문제가 된다고 생각되는 책이 있다면 부모님이 읽어 보신 다음 아이에게 보여 줄지, 보여 주지 않을지, 아니면 언제 보여 줄지 시기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또 읽고 나서 자신이 생각하는 점을 알려 주거나 토론을 해도 아이에게 도움이 되겠지요. 무조건 금지한다면 오히려 괜한 궁금증만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현실적으로 남자 청소년과 여자 청소년이 성관계를 맺을 때 양측의 신체적, 정신적 부담은 다릅니다. 그렇기에 두 성 모두에게 똑같은 성교육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여성 청소년들을 위한 성교육이 꼭 필요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매일매일 힘듭니다. 모든 것을 처음 겪기에 혼란스러운 것이 당연합니다. 때론 세상에 나만 이상한 사람인 것 같은 괴로움에 빠집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실수하거나 나쁜 일을 겪더라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매일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성교육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문주선 어린이책 편집자



“모 단체가 배포한 유해 도서 목록에 『줄리의 그림자』가 있다는데 혹시 봤어요? 그들이 지역 공공도서관에 열람 제한이나 폐기를 신청한대요.”, “기사 봤어? 『줄리의 그림자』가 금서 목록에 올랐다던데?” 지난여름, 지인들의 메시지가 휴대 전화와 컴퓨터에 반복해서 뜨고 졌다. 2020년에 있었던 ‘나다움 어린이책 회수 해프닝’이 다시 회자된 것인가 했는데 웬걸, ‘공공도서관 성교육, 성평등 도서 열람 제한’, ‘성평등, 성교육 책 금서 지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는 버젓이 2023년에 올라온 기사라는 표시가 달려 있었다. 성역할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나답게 살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도서가 금서라니!3년 전의 사태를 겪으면서 어린이책 출판계는 시대적인 요구와 세계적인 추세, 독자들의 수준에 맞추어 성교육 책 속에 학문적·사회적으로 검증된 정확하고 바른 정보, 평등하고 다양한 삶을 긍정하는 모습을 담으려고 애썼다. 한발 앞서서 이끌어 가면, 느리지만 조금씩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이 책들을 향한 극소수의 시선과 언어는 안타깝게도 과거의 낡고 그릇된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 시민과 함께 고민할 이야기

2019년 출간된 『줄리의 그림자』는 이마주 출판사의 ‘철학하는 아이’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이 시리즈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어린이 시민과 바로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갈등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책들로 꾸려져 있다. 시리즈 중 한 권인 『분홍 모자』는 2017년 세계여성공동행진의 뜻을 기억하는 그림책으로, 세계 안팎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인권 문제, 평등과 연대의 가치를 어린이들과 나누고 싶어 기획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성 청소년이 나답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여성이 미래다』를 번역하면서 양육자로서, 어른으로서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기회와 가능성이 담긴 선택지를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서 성별과 성역할 고정관념을 넘어서려는 시도는 성인이나 청소년 문학뿐 아니라 어린이 문학 속에서 더 활발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생애 주기에서 가장 많은 책을 읽고, 책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바로 어린 시절 아닌가.

2018년 어린이 문학 계간지 <창비어린이> 여름호에 프랑스 통신원 조경희 선생님이 쓴 “68혁명 50주년과 아동문학” 기사가 실렸다. 68혁명이라는 생소한 사건, 50년이라는 시간, 프랑스와 한국이라는 공간의 간극이 있었지만, ‘차별과 혐오를 넘어 연대를 향해’ 나아가는 시대정신과 ‘어린이의 자유로운 해석을 확장’하는 그림책 출판 붐이 2018년의 우리 현실과 맞닿아 있어 눈길이 갔다. 기사 말미에는 당시 프랑스에서 출판된 그림책 몇 권의 사진과 제목이 함께 실려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권이 『줄리의 그림자』의 원서인 『소년의 그림자를 가진 줄리 이야기(Histoire de julie qui avait une ombre de gar on)』였다. 소개글과 표지 이미지에 끌려 검토해 보니 이 책이 바로 내가 찾던 그 책이었다.

주인공인 여성 어린이 줄리는 사회가 정한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그것을 고민하고 거부하는 예민함과 의지를 지녔으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적인 인물이다. 또 다른 등장인물인 남성 어린이 벤 역시 마찬가지다. 이 책은 성역할 고정관념이 성별을 막론하고 모두를 괴롭힌다는 것을 균형 있게 보여 준다. 더 나아가 진정한 나다움은 사회가 정해 놓은 무엇으로도 가둘 수 없다는 열린 시선은 50년 전 작품임에도 그동안 우리 어린이 문학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 어린이 독자는 물론 성인 독자에게도 매력적인 책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계약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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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까?

앞서 말했듯 『줄리의 그림자』는 ‘철학하는 아이’ 시리즈에 속한 책이다. 이 시리즈는 가치 지향적인 그림책들로 꾸려져 있기에 번역자나 해설자의 지향점도 섭외 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형식과 내용 면에서 새로운 이야기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섭외에 공을 들였다. 그러다가 그림책에 대한 남다른 시선을 가진 미술사학자이자, 올랭프 드 구주와 시몬 베유의 책을 번역하며 인권사도 오래 연구해 온 박재연 교수님을 만났다. 교수님의 번역과 해설은 이 그림책이 지닌 고유한 색에 빛을 더해 주었다.
어린이책은 다른 매체와 달리 접근이 쉽고 생명력이 길다. 어린이책을 편집할 때는 책을 읽는 어린이와 구입을 결정하는 성인 모두의 수준과 정서를 고려해야 한다. 그런 어려움 때문에 어린이책 편집자들은 단어 하나, 이미지 한 컷도 출간 전까지 끊임없이 검열한다. 특히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일 만한 소지가 있는 책들은 누군가를 대상화하거나 타자화하지는 않는지, 비하나 차별의 표현은 아닌지,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읽힐 여지는 없는지 등을 점검하며 교정지를 보고 또 본다. 외국 도서를 번역 출간하는 경우에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용어나 이미지가 다수의 정서에 부합하는지도 주요하게 살핀다. 『줄리의 그림자』를 편집하며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것도 정서의 차이였다.
예를 들어 작가는 줄리의 생물학적 성별과 성기를 “cette fente entre les cuisses qu’elle aime bien toucher doucement(부드럽게 쓰다듬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허벅지 사이의 틈)”이라고 표현했다. 자위를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여기는 서구 문화권에서는 눈에 띄거나 받아들이기 힘든 표현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성교육을 표방하는 책이 아닌 어린이책에는 자위와 관련된 표현이 흔하지 않고, 성기가 간접적으로라도 언급되는 것을 매우 낯설고 불편하게 여긴다. 번역가와의 논의 끝에 문화적 차이와 국내 정서, 책의 맥락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여자의 몸’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해 출간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우리도 성과 관련된 용어를 아무렇지 않게 책에 싣고, 자연스럽게 읽을 날이 올까?
(...) “줄리는 줄리”를 외칠 때 속이 시원했다는 어린이 독자들, 자신의 양육 태도나 교육 방식을 되돌아보고 수정하게 되었다는 양육자와 선생님들,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스스로 결정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아름다웠다는 성인 독자들까지, 모두가 책 속의 줄리, 내 안의 줄리를 응원하며 나다움을 찾아가고 있다.
나답게 살겠다는 것은 내 멋대로,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것이 아니다. ‘나다움’은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알고, 그를 따르는 삶의 방식이다. 내가 나다울 때 비로소 자신을 존중할 수 있고, 나아가 타인의 그것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알게 된다. 나다운 이들이 서로 어우러진 사회에서는 감히 타인의 알 권리와 읽을 권리, 판단할 권리와 표현할 권리를 함부로 결정하고 제한하지 못할 것이다.



금서는 새로운 시대를 여는 도구

나를 알고 나답게 사는 것, 그리고 타인을 존중하며 사는 것은 올바른 성교육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유네스코에서 권고하는 포괄적 성교육 커리큘럼에는 관계, 가치관·권리·문화·섹슈얼리티, 젠더 이해, 폭력과 안전, 건강과 복지, 인체와 발달, 성적 행동, 건강한 성과 생식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제대로 된 성교육은 성의 성숙함이나 부정적 결과에 대한 교육이 아니라 자신을 애정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인권 교육인 것이다.
얼마 전 동료 양육자에게 아이들 몇을 그룹 지어 성교육 ‘과외’를 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공교육의 성교육은 시대에 낙후되고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양육자는 물론이고 어린이들에게도 외면받은 지 오래다. 그런데 최근 유네스코에서 권고한 다양성과 평등, 포용의 개념이 학교 교육과정의 성교육 영역에서 제외되어 신뢰성은 더 추락했다. 자연히 양육자들은 전문가를 섭외해 과외를 하거나, 지역 센터의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관련 책을 아이들에게 사 주는 등 사적인 영역에서 성교육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 성교육도 사교육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돈 혹은 시간, 또는 정보가 부족해서 개인의 영역에서 성교육을 행할 수 없는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이렇게 벌어진 틈을 메꿔 주고 채워 주는 것이 책과 도서관이 하는 일이다. 금서 지정, 열람 제한 등으로 그 역할과 기능마저 제한한다면 우리는 공공의영역에서 무엇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이렇게 소외되는 어린이들의 좁아지는 세계는 누가 지켜 줄 수 있을까. 건강하고 정확한 성교육의 부재로 인한 사건 사고가 나날이 갱신되는 시절이다. 그 어느 때보다 올바른 성교육이 절실한 상황에서, 넘쳐나는 자극적인 매체들은 외면한 채, 가장 온건하고 정제된 매체인 책을 제한하고 폐기한다니!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해도 어린이들에게는 한참 늦은 발걸음인데 느닷없이 과거, 그것도 대과거로의 뒷걸음질이라니!
‘금서’ 운운하는 이 사태가 장기화되거나 고착화된다면 가뜩이나 각종 예산 폐지로 위축된 출판 시장은 더욱 축소될 것이고, 도서의 다양성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도서 관련 종사자들과 독자들의 몫이 된다. 하지만 금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도구이기에 이 기회를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논의의 장이 열릴 거라는 기대도 품게 된다. 그에 부응이라도 하듯 최근 금서 목록에 있는 도서를 찾아 읽고 의견을 나누는 ‘책담회’가 곳곳에서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금서(禁書)가 아니라 금서(金書)다’, ‘혐오에 반대하는 책이라면 오히려 평등의 필독서다’라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줄리의 그림자』도 재조명되어 새로운 독자들과 만남을 이어 가는 중이다. 거꾸로 가는 성교육의 시계를 바로 가게 하기 위해 필요한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50년 전 세계가 외친 한마디다. 이 말을 많은 사람들이 곱씹어 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맛보기로 소개한 특집 외 다양한 이야기는 2023 <학교도서관저널> 10월호에 수록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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