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애프터 팬데믹, 얼굴을 기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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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3-06-02 11:18 조회 1,585회 댓글 0건본문
맨얼굴로 등교를 시작한
중학생에게 물었다
남양주 마석중 학생들 (지도교사: 김애란 사서교사)
Q1. 마스크를 벗고 등교한 첫날 기분은 어땠나요?
Q2. 마스크를 쓰던 때와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보며 소통하는 요즘을 비교하면 무엇이 달라졌나요?
Q3. 마주 보며 이야기할 때 지켜야 할 에티켓을 이야기해 본다면요?
Q4. 교실에서 친구들과 대화할 때 어떤 표정을 짓고 싶나요? 친구의 어떤 표정을 보고 싶나요?
Q5.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감정이 있지요. 그중 표현하고 싶은 감정을 선택해서 얼굴을 그려 볼까요?
마음 마스크 해제를
할 수 있으려면
최김소연 이천 아마초 교사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은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손 소독제가 곳곳에 비치되고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는 간격을 유지하도록 권하는 표식이 붙었다. 어렵고 힘들었던 감염병 대응 시기를 지나, 올해 3월부터는 실내외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되었다. 지난 3년과는 또 다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새 학기 적응 기간, 동료 선생님들을 마주치면 새로 만난 학생들과 학급 분위기에 대한 기대와 걱정, 다짐을 나누곤 한다. 어떤 어린이가 눈에 띄는지, 학급 학생들이 가까워질 수 있도록 어떤 활동을 하는지 정보를 공유하는 것과 더불어 특별한 질문 한 가지를 더 나눈다.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마스크 어떻게 하고 계세요?” 코로나19 초기 2년 동안은 비대면 원격 수업을 병행하면서 학생들이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짧았다. 전면 등교로 전환된 작년부터는 충분한 간격을 두기엔 좁은 교실 안에서 방역 수칙을 유지하는 것이 큰 고민거리였다. 한편 책상에 가림판을 부착하고 마스크를 쓴 채로 체육활동을 하며 짝이나 모둠 활동보다 개인 활동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생활에 적응하고 나니, 새 학기부터 마스크 착용이 해제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
여전히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어린이들
마지막 의견을 작성한 학생만 남학생이고, 안타깝게도 나머지는 모두 여학생의 답변이다. 학교생활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학생 중 남학생의 비율이 매우 높은 것과 반대로, 절대 마스크를 벗지 않는 학생 중 여학생의 비율은 압도적이다. 이는 우리 학교만의 상황이지만 동료 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봤을 때 다른 학교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생님들 역시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얼굴 보이기가 어색하다고 토로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는 청소년만의 문제는 아닐 듯하다. 마스크 덕분에 화장하지 않아도 돼서편하다는 사람이 많아진 것만큼 마스크를 쓰면서도 꾸밈에 대한 노력을 지속하는 사람이 많았다. 화장이 묻어나지 않는 마스크가 새로 개발되거나 마스크에 묻어나지 않는 화장법과 화장품이 인기를 얻을 정도로 말이다.
1) “청소년의 외모지상주의... 마스크 대신하는 심리적 방패막이 필요”(<한겨레>, 김아리 객원기자), 2023.02.28.
2) 마스크와 사기꾼을 합성한 낱말로 마스크를 벗으면 마스크를 썼을 때보다 못생겨 보이는 사람을 가리킨다
우리가 놓친 교실 속 '사회적 성장'
3)“코로나19 유행이 영유아 지능 발달 방해했다”(<동아사이언스>, 미 브라운대 연구팀), 2021.08.24.,“마스크 착용 장기화… 아이들 언어 능력 떨어진다”(<헬스조선>, 전종보 기자), 2021.04.02.
있는 그대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습
그림책 속 얼굴,
페미니즘 관점으로 마주 보기
윤아름 서울청량초 교사, 전교조 성평등특별위원장
전교조 여성위원회 선생님들과 같이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그림책 속 성별 고정관념과 성차별 문제를 인식했다. 성평등한 그림책을 찾아 헤매다가 ‘나다움어린이책’ 사업에 참여했고, 다움북클럽과 함께 성평등한 어린이·청소년책 목록과 칼럼을 담은 『오늘의 어린이책 1, 2』를 썼다. 책의 바다에서 예민한 젠더 감수성으로 책을 건져 올리다 보니 성인지 감수성은 물론 높은 예술성을 갖춘 많은 그림책을 만났다. “페미니스트라고 저절로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겠으나 페미니스트가 아니면서 좋은 교사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1)라고 말한 최현희 선생님의 말을 빌려 오자면, 성평등 관점을 가진 어린이책이라고 모두 다 좋은 책은 아니겠으나 성평등하지 않으면서 좋은 책일 수는 없었다.
『오늘의 어린이책』이 제시하는 ‘어린이책 서사와 인물에 대한 26가지 질문’은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책을 고르는 유용한 기준이며, 페미니즘 교육 및 포괄적 성교육 도서를 고르는 분명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26가지 질문 중 ‘인물의 개성이 성별 고정관념으로 결정되지는 않나요?’, ‘표정, 자세, 차림새 등의 그림이 성별 고정관념에 따라 표현되지는 않나요?’를 준거로 그림책 속 인물의 얼굴이 어떻게 통념적으로 드러나는지 분석하고, 성별 고정관념을 뛰어넘은 다채로운 얼굴을 담은 그림책을 소개하고자 한다.
1)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최현희 외 지음, 동녘, 2017.
해적만 안대를 차는 것은 아니다
제주의 독립서점 ‘책은선물’에서 『오늘의 어린이책 2』 출간 기념으로 선정 도서를 전시하고 서점에 방문한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행사를 하였다. 어린이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였던 책은 『나의 몸 너의 몸 다른 몸』(서맨사 커시오)이었다. ‘크기, 색, 장애, 젠더를 넘어 바라보는 우리 몸의 다양성’이라는 부제와 책 속에서 재미있게 표현된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어린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중 다양한 얼굴을 소개하는 페이지에는 “얼굴에는 눈이 두 개, 어쩌면 하나만 있을 수도 있어.”라는 글과 검은색 한쪽 눈 안대를 한 사람이 등장한다. 이 장면을 본 어린이들은 한결같이 “후크 선장 같다.”라고 말했다. 사실 후크 선장은 갈고리 팔을 갖고 있을 뿐 안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한쪽 눈 안대=해적’이라는 익숙한 공식이 후크를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세상에는 해적 말고도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사람이 많다고 이야기했지만 생각해 보면 해적 말고는 안대를 한 사람을 그림책에서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사 “다양성도 조기교육이 효과적입니다(김효실 기자, <한겨레21>, 2023)”에서 소개한 얼굴에 흉터 등 눈에 띄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영국의 비영리단체 ‘체인징 페이시스(Changing Faces)’의 캠페인 ‘나는 당신의 악당이 아니다(#IAmNotYourVillain)’를 보면 어린이들의 반응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캠페인은 영화 속 악당이 주로 흉터나 변형된 얼굴을 갖고 있어서 어린이에게사회·문화적 편견을 갖게 한다고 지적한다. 그림책의 등장인물이 어떤 얼굴로 어린이를 마주하고 있는지 되짚어 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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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1. 아줌마, 엄마의 역할을 고정하는 얼굴
CASE 2. 성별 정체성을 협소하게 표현한 얼굴
가해자, 피해자의 얼굴을 표현할 때에도 비슷한 양상이 이어진다. 푸름이닷컴의 성교육 도서 전집 중 『네 잘못이 아니야!』(김현정)에서 성폭력 가해자는 뿔 달린 괴물의 그림자를 가진 얼굴로 나타나는데, 언론 기사의 삽화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표현 방식이다. 여성가족부의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 추세와 동향 분석」(2023)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가해자의 60.9%는 가족·친척 외 아는 사람, 9.2%는 가족·친척으로 대부분 면식범이다. 성폭력 가해자를 악마 같은 얼굴로 표현하는 것은 성폭력이 일상 속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가린다. 또한 이 책의 표지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우는 얼굴의 피해자와 엄마의 모습을 담고 있다. 성폭력 피해 어린이의 회복 과정을 담은 『말해도 괜찮아』에서 주인공이 웃는 얼굴로 표지에 등장하는 것과 매우 상반된다. 피해자의 나약함, 엄마의 보호자 노릇 같은 ‘피해자다움’을 강조하는 표현은 2차 가해로 이어지기 쉽지만 피해 생존자의 능동성과 회복 가능성의 강조는 그들의 정신 건강과 성폭력 문제에 대한 인식 개선에 효과적2)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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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투운동 지켜본 성폭력 피해자, 우울감 큰 폭으로 줄었다”(<한국일보>, 홍인택 기자), 2022.8.15. 참조.
다채롭고 자유로운 얼굴을 그린다는 것
『프레드가 옷을 입어요』(피터 브라운)의 주인공 프레드는 얼굴만 봐서는 성별을 구별하기 어렵다. 다만 이름으로 남자아이일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프레드가 화장을 하고 머리를 치장하는 것은 세상을 탐색하는 과정이자 즐거운 놀이이다. 『발명가 로지의 빛나는 실패작』(안드레아 비티)이 그리는 교실에는 다양한 피부색, 머리 모양의 어린이들로 가득하다. 선생님과 이모들은 짙은 화장, 화려한 헤어스타일과 장신구로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며 로지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발명품을 만드는 과정을 응원한다. 앞의 두 책에서 립스틱은 여성만의 것도 아니며, 멸시의 대상도 아니다. 『혼자 갈 수 있어』(현이지)의 여성 아동 주인공은 킥보드로 온 동네를 용감하게 누비기 위해 단단해 보이는 파란 헬멧을 쓰고, 『숨이 차오를 때까지』(진보라)의 여성 인물들은 머리칼이 헝클어지고 숨이 가빠 표정이 일그러져도 최선을 다해 달리는 데만 집중한다. 『파도야 놀자』(이수지)와 『파도가 차르르』(맷 마이어스)에서는 여성 어린이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바람에 머리카락을 맡긴다.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얼굴에 드러내며 바다를 탐색한다. 『일곱 할머니와 놀이터』(구돌)에서는 짧은 파마머리 대신 단발머리, 올림머리, 땋은 머리를 한 할머니들이 개성 있는 머리 모양만큼이나 특별한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갓난아기에게도 딸을 표식하는 리본을 달아 주고, 여성 스포츠 선수의 숏컷 머리가 비난받고, 여성 연예인의 무표정함이 ‘인성 논란’을 불러오는 세상에 살고 있다. 어린이책 속에 성별 고정관념이 담긴 얼굴이 등장한다면 그것은 성차별적인 현실의 반영일 것이다. 오늘의 어린이에게 보여 줘야 할 세계,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사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성별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머리 모양을 자유롭게 하고, 남을 위한 애교스러운 미소가 아니라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의 표정으로 나타낼 수 있는 세계여야 할 것이다. 때로는 세상이 꿈쩍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다양한 얼굴이 등장하는 그림책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세상은 더디더라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든다. 이것이 루딘 심스 비숍(Rudine Sims Bishop) 박사가 아동문학 애호가가 갖고 있다고 말한, 좋은 책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이상주의적 경향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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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보기로 소개한 특집 외 다양한 이야기는 2023 <학교도서관저널> 6월호에 수록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