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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특집] 알 듯 말 듯 사서 고생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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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학교도서관저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9-11-05 14:57 조회 3,55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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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사람과 책을 연결하는 커뮤니케이션 실행기관이다. 문헌정보학 전공자라면 문헌정보학 개론 첫 시간에 배웠을 기본 개념이다. 이런 도서관에서 사람과 책을 연결하는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사람이 바로 사서이기에, 사서라면 누구나 이용자를 최대한 만족시키고 정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이 사명감이 때로는 마음의 짐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직업병이 사서인 나에게도 있기 때
문이다.
나에게 직업병처럼 느껴지는 증상은 매우 여러 가지이다. 어떤 장소에 가면 인테리어와 가구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기도 하고(물론 학교도서관을 상상하며^^;), 주전부리 종류를 보면 도서관 행사 때 아이들에게 줄 간식과 연결하기 여념이 없다. 또, 다양한 축제나 지역 행사를 보면 도서관 행사로 어떻게 응용할 수 있을지 본능적으로 고민하게 되고, 영화 관람이나 박물관에 가서는 방대한 양의 메타데이터를 떠올린다. 그럴 때마다 ‘아! 정말 이 참을 수 없는 이 사서의 존재감!! ㅠㅠ’하며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곤 한다.
그런데 이런 여러 가지 증세 말고도 더욱 깊은 마음의 병이 있다. 이용자를 만나면 무엇이든 해결부터 하려는 해결사 증후군이다. 이 ‘해결사 증후군’은 다정도 병이라고, 학생들에게 오지랖 부리며 애정을 나누려고 하고 누군가 문제적 상황에 처한 것 같으면 반드시 해결을 하고야 말아야겠다는 의지가 활활 타올라 나중엔 내 자신이 타버릴 것 같은 열혈 사서가 되어 있기도 한다.

프로 해결러가 마주한 단골 풍경과 처방전

도서관이 집인 아이들과 마주했다면
도서관을 찾는 단골 고객들 중에 도서관에만 있으려고 하는 아이들이 있다. 아침 자습 시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은 물론이고 수업 종이 울려도 교실로 가지 않으려는 아이, 방과 후에 나와 함께 퇴근(?)하는 아이, 수업 시간 중에 도서관으로 탈출하여 오는 아이 등등 유형도 다양하다. 어느 점심시간, 보건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던 중 우리의 꼬마 단골 고객님들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보건실 단골 학생과 도서실 단골 학생의 명단이 70퍼센트 정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차이점이라면 보건실은 수업 시간에 가고 쉬는 시간엔 도서관을 방문한다는 정도? 보건실은 일단 어딘가 아파야만 찾아갈 수 있는 장소이다 보니 꾀병이라도 말해야 하고 평균적으로 오래 머물기도 어렵다. 그에 비해 도서관은 병이 없어도 갈 수 있고 쉬는 시간 내내 머무를 수 있다. 심지어 수업 종이 울려도 교실로 안 가고 버틴다.
대부분 책이 좋아서 도서관에 있기보다 교실에 있기 어려워서 도서관을 집처럼 편하게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다. 이런 꼬마 이용자들을 보면 왜 그런지 이유가 너무 궁금해진다. 그래서 아이들을 붙들고 상담을 하기 시작한다. 물론 나는 전문 상담사가 아니다. 그래서 어느 날 성격 유형을 공부해 버렸다. 뭔가 이 아이들을 위해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친구 관계가 어려운 아이들, 담임교사와 학급에 적응을 못하는 아이들… 그렇지만 해결에는 늘 한계가 있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털어놓으려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프로 해결러의 처방전 조금은 무심해져라!
이제는 한결 해결사 증후군이 많이 조절되고 있다. 도서관이 집처럼 편하다는 아이들에게 조금은 무심해졌다. 아이들이 도서관에 있는 것에 집착해도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왜 그런지 이유를 알아내려고 애쓰기보다는 최대한 편안하게 책을읽다가 수업 시간에 늦지 않게 갈 수 있도록 잘 안내해 준다. 다정도 병이라는 옛말이 있다. 너무 다정해서 서로가 불편해지기보다 때로는 적당히 무심한 것도 서로에게 좋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한층 여유가 생겼다.

도서관에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은 6학년이 있다
학교도서관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을 관찰하다 보면(이 또한 직업병), 6학년 중에 질풍노도의 시기이자 중2병 즉, 사춘기가 빨리 온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은 내 주변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바로 어린이 도서부원들이다. 6학년 아이들은 유난히 무리 지어 다니고 도서관에 와서도 책은 읽지 않고 오로지 수다만 떤다. 심지어 학부모 봉사자가 봉사를 할 때면 다소 건방진 태도로 학부모들과 부딪치기도 한다. 학부모 봉사자들은 주로 1, 2학년 어머니들이기에 6학년 아이들의 심리 상태를 전혀 모르고, 아이들의 저돌적인 눈빛과 다소 당돌한 태도에 매우 놀라기 일쑤다. 급식을 게 눈 감추듯 먹고 돌아와 보면 6학년 도서부 아이들이 일러대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교실로 돌아간 후엔 학부모들의 성토가 이어진다. 서로가 으르렁댄다. 그럴 때면 서로를 중재해서 화해시키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두 그룹을 설득한다.(그러다 결국 지친다)
 
프로 해결러의 처방전 아이들을 많이 일하게 하라!
6학년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 하거나 감정기복이 심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럴 때 내가 내거는 구호가 ‘자력갱생단’이다. 이는 존엄한 노동을 통해 심리적 불안상태를 해결해 준다. 아이들에게 고단한 책 정리를 시키고 서가의 오배열 바로잡기 작업을 하게 하고, 이용자 만족을 위한 서비스 교육도 한다. 아이들이 “우리가 이런 것까지 배워요?”라고 물을 때면 “응, 당연하지.”라고 말한다. 몸이 힘들어지면 에너지도 해소하고 마음이 평안해지는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언제나 까칠한 학부모과 함께하는 법
학교도서관의 이용자 중 학부모 그룹은 학생과 달리 성인 집단이다. 아이들은 그냥 넘기는 것을 학부모들은 까칠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도서관의 청결 상태를 문제 삼기도 하고 사서의 표정 하나까지 신경 쓰기도 한다. 만화가 많다, 책이 지저분하다, 필독서 복본의 양이 너무 적다는 등 한마디로 까칠한 이용자다. 이런 학부모 이용자를 만나면 한마디 한마디 모두 신경이 곤두선다. 청소를 하거나 양질의 만화를 선택했다는 자부심도 갑자기 흔들리는 것만 같다. 암튼 그
들의 피드백에 한없이 위축된다.

프로 해결러의 처방전 학부모는 도서관의 친구!
학부모 이용자의 피드백에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도록 한다. 의견을 주었을 때 고맙다고 말하고, 당사자가 보는 앞에서 수첩에 메모를 한다. 마음에 상처를 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학교 도서관을 위해 조언을 해주는 것이라고 여기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학부모를 도서관편이 되어 줄 수 있는 ‘내 편 만들기 전략’을 사용한다. 학교도서관 학부모 봉사자들에게 연수를 실시하여 우리 도서관의 장서 개발 정책을 전달하고 정성껏 준비하는 각종 행사나 프로그램도 홍보한다. 그러면 그들이 훌륭한 구전 마케터들이 되어 학부모들을 좋은 도서관 친구로 만들어준다.

교수·학습 지원을 요구하는 교사들
학교도서관 이용자 그룹 중 다중적인 요구를 하는 이용자 그룹이 교사들이다. 개인의 독서 생활을 위한 요구를 할 때는 일반 성인 이용자이지만 티칭을 위한 교수·학습 지원 자료를 요구할 때는 교수자로서 이용자 계층이 된다. 사서로서의 자존심이 수면 위로 가장 드러나는 순간이 교사를 만날 때이다. 사서는 직업적으로 타인이 찾는 자료를 찾아줘야만 직성이 풀린다. ‘적서를 적시에 적자에게’란 사서의 대원칙이 있으므로. 미리 자료를 요청하고 수집할 시간을 주는 교사도 있
지만 대부분은 교과 진도를 나가면서 즉각적으로 자료를 요청하는 경우가 더 빈번하다. 이럴 때면 어떻게든 원하는 자료나 그에 준하는 자료를 매핑하느라 분주해진다. 반드시 찾는 자료를 지원해 줘야겠다는 책임감에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도 한다.

프로 해결러의 처방전 요구를 먼저 파악하라!
교사들이 요구했던 자료명이나 키워드들을 반드시 메모해 놓는다. 그 당시에는 지원을 못 해줬어도 다음 년도에는 지원을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들의 요구가 접수되기 이전에 능동적으로 요구를 파악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기 초에 교과서나 교사용 지도서를 수집해야 한다. 6개 학년 전 과목을 한꺼번에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자료에 대한 요구가 가장 많은 학년과 과목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교과연계 자료 목록을 만드는 일부터 하는 것은 가능하다.
나의 해결사 증후군은 어떤 이용자의 요구든 만족시키겠다는 강박이 있어서 생긴 것 같다. 학교도서관 18년 경력자가 된 지금 반드시 무엇을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때로는 무심하게 더러는 가볍게 넘기기도 하는 지혜를 배웠다. 하지만, 이런 해결사 증후군이 있었기에 사서인 나와 그들의 만남, 그들과 책의 만남이 행복할 수 있었다. 난 앞으로도 계속 이 증후군을 앓지 않을까 싶다. 힘들지만 행복한 병! 사람과 책 사이에 서 있는 해결사 사서! “오늘은 무엇을 해결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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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고생’이라는 말이 왜 이렇게 와 닿니?
도서관은 겉으로만 보면 잔잔한 호수에 떠 있는 백조처럼 조용하고 우아해 보이지만, 벽 하나 사이에 두고 안에서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사서선생님1)은 종일 먼지와 땀과 컴퓨터와 사람들과 씨름한다. 조용히 앉아서 책이나 보고, 정리하면 될 것을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이란 말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야 할까? 이건 일반인들의 생각이다. 도서관인이라면 감히 그런 생각을 못한다. 도서관인이라면 이용자 각각의 취향에 맞는 책을 권하고 싶고, 새로운 독서 행사로 관심을 끌어보고 싶은 욕구가 끊임없이 생긴다. 심지어 잘 완성된 독서 프로그램도 2∼3년 반복하다 보면 진부함을 느껴서 바꾸고 싶어진다. 그래서 소위 ‘일을 벌인다.’ 남들이 나를 보며 “사서 고생한다.”라고 말하는 건 기분 나쁘지만, 내가 스스로에게 ‘사서 고생하는구나!’라고 말하는 건 웃음이 나오게 만든다. “그래, 나는 좀 멋진 사서선생님이라서 진부한 거 싫어해! 고생도 사서 한다!”라며 늘 새로운 기획으로 변화하는 독서 행사와 빠르게 순환되는 자료들을 볼 때의 뿌듯함을 느껴 봤다면 사서 고생은 좀 할 만한 일들이니까.

15년 차에 접어든 사서선생님이 전하는
사서 증후군과 해소 노하우
어느 직업인이든 직업병이란 게 있을 거다.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직업병도 내가 즐겁게 일하는 직장에서 얻은 거라면 난 새로운 친구 삼아 맞이할 수 있다. 오히려 나를 더 챙기게 만드는 촉매제 역할을 할 때도 있으니까. 사서선생님이 가질 법한 직업병들을 유형별로 나열해 보았다.

1. 혼자라서 외로움병: 초임 3년 이내 매년 3~4월 발병
사서선생님은 혼자 도서관을 운영한다. 도서 선정부터 구입, 정비, 배가, 관리, 폐기에 이르는 과정만 보아도 공공도서관에서는 여러 명이 나눠서 할 일을 학교도서관에선 혼자 다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초임 시절이다 보니 누구한테 하소연도 못한다. 그냥 꾹꾹 집어삼킨다. 그렇다고 다른 교무실에 계신 선생님들이 도서관에 자주 오지도 않는다. 3∼4월에 발병하는 걸 보면 다들 바쁜 시기지만 왠지 초임 때는 그것이 외롭다. 특히 학생들이 도서관에 와서는 “선생님은 혼자 있으니까 심심하지 않아요?”라고 묻거나 “선생님은 담임 안 해요?”라고 물을 때면 더욱 무너져 내린다. 심하면 우울감에 빠질 수도 있고, 더 심하면 이직을 결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 시기만 지나면 잘 적응한다. 밥 먹으러 갈 때 학생들이 고민하는 것과 같다. 처음엔 같은 부서 부장선생님이 챙겨 주지만 수업시간표가 다르면 결국 혼자 알아서 가야 한다. 식당에 가면 끼리끼리 가르치는 학생들 이야기, 학급 이야기를 하지만 처음엔 수업이 배
정되지 않았거나 시수가 적은 사서선생님으로서는 별로 끼어들 말이 별로 없다. 외롭다. 그래서 밥을 아예 학교에서 안 먹을 때도 있다. 그냥 그런 신경 쓰이는 것에 에너지 쓰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아웃사이더를 자처하기도 한다.

해소 방법
신규 교육 때 들은 것을 기억해 보자. ‘먼저 다가가라.’ 가장 먼저 친해질 수 있을 만한 교과 선생님의 과목과 관련된 다양한 책 목록을 전달하거나 도서관에서의 차 한 잔 여유시간을 가져보도록 유인해야 한다. 어쩌다 도서관을 방문한 분이라도 반갑게, 편안하게 대해야 한다. 학교에서 도서관이란 공간이 수업하기 좋고, 마음의 평안을 찾기도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도록 선생님들께 먼저 다가가야 한다. 상냥한 미소와 함께!
나는 간단한 독서 행사를 수행평가에 활용할 만한 아이디어로 제안하며 다가가기도 했다. ‘동그라미 이야기책 만들기’가 대표적인 예다. A4 용지 4장만 있으면 할 수 있는 동그라미 이야기책의 주제를 교과 테마로 정하고, 아이들과 창의적인 스토리를 구성할 수 있다는 걸 소개하며 평가의 부담을 도서관과 나눌 수 있다고 설득해 봤다. 학생들을 이용하기도 했다. 도서부 학생들에게 책과 저작권의 날과 같이 특정한 날짜에 선생님 한 분을 모시고 도서관에 와서 책을 추천해 드리면 선물을 주겠노라고 했다. 그렇게 도서관에 발을 들이게 만든 후에 그 선생님께 다가가서 인사하고, 대화를 시도했다. 그렇게 한 학교에 근무하는 기간 동안 1∼2명만이라도 베스트 프렌드를 만들어 놓으면 ‘혼자라서 외로움병’은 사라진다. 아! 더 빨리 치료할 수 있는 방법도 있다. 학교 안에서 같은 입장인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거다. 보건선생님, 상담선생님을 나의 편으로 만드는 거다. 서로 챙겨주다 보면 금세 든든해진다. 단 특수선생님은 특수 학생들 챙기느라 바쁘시고, 영양선생님은 급식실에서 너무나 바쁘니 사실상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보건선생님과 상담선생님이 1순위 프렌드다!
 
2. 부글부글 책 정리병: 시기 상관없이 수시 발병
한국십진분류표(KDC) 기준에 따라 책이 정리된다는 걸 제대로 아는 사람은 도서관인뿐이리라.그래서인지 아무리 이용교육을 해도 대부분 이용자들은 책을 책수레에 올려두면 될 것을 굳이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서 근처에 갖다 놓거나 아예 엉뚱한 곳에 갖다 놓는다.
언젠가 한 아이가 점심시간마다 도서관에 와서 검정색 표지의 전집 도서 앞에 서더니 한 권씩 교대로 빼서 거꾸로 꽂았다. 마치 피아노 건반처럼! 처음엔 누가 그런지 몰라서 혼자 짜증내며 다시 정리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아이가 학급에서도 마음 둘 곳이 없어서 외로워하는 아이라는 걸 알고는 슬쩍 옆에 가서 책장 뒤집기(?)에 함께 동참해 보기도 했다. 책과 책 사이에 껌을 붙여 놓은 학생도 있었다. 결국 양쪽 책 앞표지와 뒤표지를 떼어내고 새로 이미지를 복사해서 붙이는 보수 작업을 해야 했을 땐 정말 마무리할 때까지 씩씩거렸다. 한 학생은 서가 사이 바닥이 차갑다는 이유로 책을 여러 권 꺼내서 깔고 앉고, 또 여러 권 꺼내서 책상으로 활용했다. 일단 책을 읽는 게 어디냐 싶어서 1단계 숨쉬기로 마음을 고른 후에 부드럽게 웃으며 “나갈 땐, 제대로 정리해 주세요!”라고 말했건만, 다른 아이들 살펴보느라 깜빡하고 종이 울린 후 달려가 보니 책들이 그냥 흩뿌려져 있었다. 또 다시 ‘우쒸쒸’ 하면서 다시 정리하는 내 마음 누가 알까?
다음으로 외부 도서관이나 서점에 방문했을 때 발병하는 증상이다. 나에게 필요한 책을 고르러 간 곳에서 어느 순간 내가 그곳 주인장인 양 책 정리 삼매경에 빠져 있곤 한다. ‘으휴, 이렇게 꽂으면 누가 찾냐, 이거, 이거 번호가 안 맞잖아, 책이 누워 있으면 쓰나. 세워야지…’ 등등 혼잣말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책 정리를 하는 나를 깨닫는 순간 “핫하하” 웃음이 나온다. 그러곤 서둘러 읽을 책을 골라서 자리를 뜨곤 한다.

해소 방법
내가 근무하는 도서관에서 특이한 이용자들로 인한 직업병 발병 시 잘못 대응했다가는 홧병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정리 상태가 엉망인 것을 보고 한번 화가 나기 시작하면 계속 뜨거워진 머리에선 열변을 토하라고 명령하고 내 입은 거침없이 한숨과 ‘우쒸쒸’가 터져 나온다. 그러니 우선 쉼 호흡부터 해야 한다. 스마트워치를 차고 스트레스 관리 화면에 가면 나오는것처럼 20초 들이쉬고, 20초 내쉬기를 몇 번 해보면 일단 침착해진다. 그리고 우주와도 같은 신비롭고 고귀한 도서관의 멋을 모르는 어리석인 사람들이니 내가 이해하자는 마음으로 책을 향해 다가가면 된다. 그러면 어느새 어지럽혀진 책들이 사라지고 말끔하게 정리된 책장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 또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저지르는 일이라면 오히려 같이 어지럽혀 보는 것도 좋다. 책장이 좀 지저분하면 뭐 어떤가. 내가 한 영혼을 구원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때론 더 고귀한 일을 위해 잠시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남의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책 정리하는 병은 좀 심각하다. 치료법은 단 하나다. ‘나는 도서관인이 아니라 그냥 독자다!’라는 말을 3번 이상 마음에 새기고 들어가라. 그럼 나에게 필요한 책만 보인다.

3‘. 샤샤샥’ 훑어보기병: 도서 선정 과정에서 발병
사서선생님이 되면 책을 정말 많이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근무하다 보면 책을 다 읽을 시간이 없다. 이용자들의 다양한 관심 분야에 적절한 도서가 무엇일지 살피는 습관부터 자연스럽게 생긴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도 책 소개 화면에 눈길이 가고, 서점에 가도 정작 나의 관심사보다는 분야별로 새로운 책이 어떤 형식으로 출판되었는지 살핀다. 그러다 보니 책의 본문보다는 표지와 서문, 각종 서평 등을 더 많이 읽게 된다. 이렇게 훑어보기를 통해서도 이용자들에게 기본적인 책 추천은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증상으로 인해 정작 본문을 읽기 시작해서다 넘기기까지 어려울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내 관심 분야가 아닌 책의 경우 더욱 그렇다. 대략 책내용을 아니까 더 읽고 싶지 않아진다. 그리고 오해를 받는다. 이런저런 책을 소개하다 보면 내가 도서관에 있는 책의 절반 이상은 다 읽고 아는 책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좀 난감하다. 작은 서점이나 도서관을 운영하는 분들의 경험담을 들어 보면, 자신이 정말 다 읽고 추천하는 책만 구비하고 있다던데 얼마나 자부심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을까? 학교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에 근무하는 사서선생님들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전문성을 스스로 의심하는 최악의 경우까지 생기기도 한다.

해소 방법
일정 기간 동안 근무하다가 자리를 옮겨야 하는 우리의 경우에는 개인 서가를 준비해 두는 건 어떨까? 먼저 개인 목록을 만들어야겠다. 내가 다 읽고,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었던 책들의 목록을 만들고 가능하면 SNS로 관리하면서 근무 장소를 옮길 때마다 그곳에서 소장하는 책을 중심으로 ‘사서선생님의 책장’이라는 이름으로 만들 수 있을 거다. 이런 활동은 북큐레이션과 연결할수 있다. 나의 책장에 주제를 나눠서 작은 규모의 북큐레이션을 해놓으면 그 서가의 책만큼은 내가 완독한 자신 있는 책으로 모일 테니까!

4. 불타오르는 열정병: 동기가 있을 때 생기거나 개인차가 있음
가장 행복한 병이다. 뭔가 막 해 보고 싶은 열정이 타오른다. 나의 경우엔 입이 거친 학생들 사이에서 귀가 정화되는 예쁜 말을 하며 다가오는 학생들을 발견할 때 발병한다. 오∼ 이렇게 귀한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어디에 가서든 무엇을 보든 어떻게 하면 책과 연결 지어서 아이들에게 유의미한 독서 행사나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독서 행사로 기획해 보려고 머리를 굴린다. 그러면 함께하는 사람들은 “또 시작이다.”라며 놀림 반, 칭찬 반 웃으며 쳐다본다.
그러나 이런 증상 덕분에 좋은 책을 만날 수 있고,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된다. 결론적으론 아이들에게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게 되니 그렇게 걱정스러운 병이 아니다. 다만, 때로는 읽는책과 만나는 사람 그 자체에 빠져들어야 하는데, 혼자서 계속 일 생각만 하는 사람으로 비춰질수 있으니 일중독이 아닌지 의심받게 된다.

해소 방법
이런 열정병은 내 삶을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지만, 너무 심하면 ‘나’를 위한 시간을 갖기 어려워질수 있다. 그래서 시기를 정한다. 학교도서관은 학생들의 시험 기간을 중심으로 연 4번의 주기를 만들 수 있다. 아이들의 시험 준비 기간에는 나도 도서관을 이곳저곳 살피고 점검하는 시간으로갖고 각종 행사나 독서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잠시 접어 둔다. 그리고 시험을 보는 당일(약 3∼4일)은 무조건 쉰다. 조퇴할 수 있는 날들이기도 하니 문화생활도 즐기고, 오랜만에 동료들과 수다여행도 한다. 이렇게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

5. 여기저기 아파병: 내 삶과 함께 점점 커져가며 발병
도서관에서 근무하며 어딘가 지속적으로 아프거나 불편하다고 느낀 건 5년차부터였던 것 같다. 책 먼지와 건조함과 싸우는 과정에서 손가락에 건선이 생겼다. 때로는 마른 논이 갈라지듯 피부가 그냥 갈라지기도 한다. 자주 손을 씻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책 먼지가 많다 보니 자주 씻지 않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늘 가렵고 아프다. 건초염도 발생했다. 책 정리를 하다 보면 한 번에 한 권씩 들고 돌아다닐 수가 없다. 도우미 학생들이 있다곤 하지만 하루 근무 시간으로 본다면 학생들이 도와주는 시간은 길어야 15분∼20분 정도다. 그 외에 시간에 자료 순환이 필요한 경우엔 모두 내 몫이다. 그렇게 한 시간만 책 정리를 하고 나면 손목이 아프다. 얼마 전엔 디스크 탈출증이란 진단을 받았다. 사실 허리가 아픈 건 5년 전부터다. 10년차 시절부터 아침에 허리를 펴기 어려워서 구부정하게 일어나서 겨우 핫팩으로 찜질하고 좀 쉬면 나아지는 걸 느꼈다. 병원에 가기도 무섭고 갈 시간도 없어서 찜질만으로 버텼는데 무거운 짐을 들거나 자주 허리를 접었다폈다 하는 동작을 한 다음 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무섭게 허리 통증이 찾아왔다. 학교도서관에서 근무하다 보면 대부분 교과서 업무도 담당한다. 무거운 교과서 박스를 들지 않고 버티기란 쉽지않다. 새로운 책이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해소 방법
요즘엔 연고와 보습제를 늘 지니고 산다. 평소에는 보습만으로 충분히 증상이 완화되지만 환절기에는 보습크림만으론 역부족이다. 그럴 때는 연고를 바른다. 건초염의 경우엔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로만 책을 들고 내려야 한다. 서가 사이를 자유자재로 통과할 수 있는 책 수레부터 장만하자. 내 손목은 귀하니까! 앉아서 허리를 펴주는 일 없이 근무하는 환경도 좋지 않다. 이제는 무거운 박스를 들어야 할 상황이 생길 경우 “나 디스크 있어요!” 하고 티를 낸다. 그리고 무조건 수레를 이용한다. 그리고 평지를 걷는 것이 디스크 통증 완화에 좋다. 난 디스크 탈출증 진단 이후 하루 50분 걷기를 실천한다. 스마트폰에 이미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기능들이 있는데 그걸 이제야 사용해 본다. 그리고 50분은 앉아서 일하고 10분은 일부러 서가를 돌아다니며 책을 살피며 걷는다. 좁은 사무실 책상만이 근무 공간이 아닌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서가 사이를 돌아다니고 나면 스마트워치에서 알람이 울린다. “걷기! 잘했어요!”라고. 아픔이 있는 만큼 성장한다. 아픔이 있기에 나를 되돌아보게 된다. 그런 점에선 감사한(?) 증상이다.

사서 고생이란 말에 갇혀 있지 말자
내가 처음에 사서 고생인가 생각했던 건 내 일이 아니라고 여기고 힘들게 생각했을 때였다. 처음부터 ‘사서선생님이 되어야지.’ 생각하고 살았던 것이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특히 학교에서는 교과선생님을 꿈꾸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딱 기본적인 도서관 업무 외에 일들이 들어오면 무조건 싫었다. 그래서 사서 고생한다는 말의 ‘사서’가 우리 ‘사서’ 업무와 전혀 상관이 없음에도 괜히 연결 짓게 되고 싫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건축에 관심을 갖고 건축반을 운영하면서 건축과 책을 엮어 보고, 보컬 교육 프로그램과 책을 엮어 보는 등 다양한 책을 관리하는 사서선생님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궁무진하게 많음을 깨달은 순간 이 모든 직업병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물론 몸이 아프면 절대 그냥 두어선 안 된다. 몸이 아프지 않게 관리하며 도서관이란 나만의 공간을 때론 우리 공간으로도 사용하는 매력 속에 푹 빠져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사서선생님이다! 이젠 가장 매력적인 직업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사서 고생? 돈 주고 사서 고생하는 것도 성장을 위한 과정인 걸 어쩌란 말인가. 나는 사서 고생하며 내 꿈과 끼를 마음껏 펼치는 멋진 사서선생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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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서관 사서로 일한 지 벌써 16년… 권태기가 있을 만도 한데 하루하루가 새롭기만 하다. 몇 년 후 퇴직을 생각하면 벌써 서글퍼진다. 이렇듯 사서라는 직업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일종의 직업병이 아닐까 반문해 보게 된다. ‘직업병’의 사전적 의미는 ‘한 가지 직업에 일정 기간 종사하게 될 때, 그직업의 특수성이 사람의 몸에 영향을 미치어 생기는 병’이다. 과연 나의 이런 점도 직업병으로 분류가 될까 의문이 들긴 하지만 나름의 근거가 있다.
좋아하는 게 있다는 것은 삶에 활력소를 불어넣는 일인데,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의 직업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취미가 되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전자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친구들한테 이런 얘기를 하면 동조하기 힘들다며 반기를 든다. 어떻게 직장에서 행복할 수 있냐고 말이다. 하지만 사서로 일하는 동안 한 번도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고, 매일매일 새로운 기대감으로 학교에 나오게 된다. 학교도서관은 항상 나에게 설렘과 행복을 주는 공간이다. 이러한 점이 나의 직업에 대한 집착이고, 이 또한 나름의 직업병으로 진단할 수도 있는 근거이다.
현재까지 행복하게 학교도서관 사서로 근무할 수 있도록 활력을 주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만남이 나의 행복지수를 높인다. 사서선생님들의 독서토론 모임, 사서선생님들의 여행 모임, 학부모 명예 사서와의 만남, 매년 새로운 도서부와의 만남, 병아리 같은 1학년 신입생과의 만남 등 내가 학교에 근무하면서 만들어지는 만남이 항상 새롭고 소중하다. 내가 다른 직업을 가졌다면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지속적인 모임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대학에 입학한 예전 도서부 아이가 찾아와서 안부를 묻고, 학부모 명예 사서 활동을 하던 학부모들도 가끔 연락하며 안부도 전
하는 등 소중한 인연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사서라는 직업의 특수성 때문에 책에 대한 정보와 새로운 연수가 늘 필요하다.
그래서 독서 모임, 서평 모임, 토론 모임, 인문학 모임 등 다양한 모임 및 연수를 통해 책 이야기도 하고 더불어 인생 이야기도 하고 새로운 정보에 자극을 받는다. 이런 모임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것 같아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학교에서 교직원들과의 교류로, 저학년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사랑스럽게 인사하는 모습으로, 단골 이용자인 고학년 아이들과 책을 통한 소통으로 매일 새로운 기를 받는다.
나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내가 오랜 기간동안 도서관에서 근무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직업병이라면 누구라도 환영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남은 재직 기간 동안에도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내 일에 대한 열정으로 학교도서관에서 행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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